한번 의사는 영원한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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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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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3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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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1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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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노, 발을 담그다 (2)

DUMMY

날이 밝았다. 오늘 무엇을 할지를 생각해본다. 칼란을 데리고 아랫마을이라는 곳에 다녀오면 되겠지. 중간에 빵집에 들러서 빵을 잔뜩 사가야겠다. 어제 높으신 분들에게 신성력으로 재롱을 피워줬으니 카림 주교도 아무 말 못하겠지.


“아! 유노 사제. 잘 만났네. 어서 가세.”


하지만 계획은 계획일 뿐. 아침을 먹으러 가는 나를 카림 주교가 붙잡았다. 어제 밤과 비슷하게 어김없이 마차를 타고 어디론가 향한다. 아침을 안먹어도 카림 주교의 뱃살이 유지될 수 있을까 궁금했지만 질문을 간신히 참았다.


“여기는 어디입니까?”


마차는 중세 기준으로 저택이라고 부를만한 집에 도착했다. 외관에서 주인의 재산이 어느 정도일지 짐작이 갔다.


“들어가면 알게될걸세. 가세나.”


문을 열고 들어가니 이미 중년의 남자가 응접실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름은 잘 기억은 안나지만 어제 시장의 성에서 봤던 사람이다. 상단을 운영한다고 했었는데··· 이름이 뭐였더라? 미트파이?


“미트리.”

“카림 주교님. 아, 유노 사제님도 오셨군요. 정말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미트리님. 저를 기억해주시는군요.”

“신의 종이 어찌 신의 기적을 행하는 자를 잊겠습니까. 앉으시죠.”


하녀가 차를 내온다. 슬롱이 내주는 말젖차같은 비리고 진한 느낌이 아니고 정말로 찻잎을 우려서 낸 차다. 북부에서는 차를 마시려면 꽤나 멀리서 가져와야 할 텐데 집도 그렇고 재산이 어디서 나왔을지 궁금할 정도다.


“차 향이 좋군요.”

“주교님과 사제님이 오신다기에 숨겨놨던걸 꺼내봤습니다. 하하. 입에 맞으신다니 다행이군요.”


상인답게 혀가 매끄럽게 돌아간다. 비싼 차를 내놓은만큼 바라는게 있겠지. 나한테 바랄건 신성력 밖에 없을거고. 어차피 신성력을 써야한다면 최대한 많이 뜯어먹고 싶지만 시간낭비는 사절이다. 괜히 튕기다가 카림 주교와 척지는 일도 만들고싶지 않고.


“북부에서 이렇게 맛있는 차를 마시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제 고향인 페스카라 공국이 생각나는 맛이군요. 어떻게 보답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보답이라는 말이 나오는 순간 미트리의 눈빛에 이채가 돈다. 이렇게 순순히 나올 줄은 몰랐을것이다. 서비스는 해줄거면 팍팍 해줘야지. 나는 차를 한모금 느긋하게 들이킨 뒤 말을 이었다.


“카림 주교님께 들으니 미트리님이 신심이 아주 깊으시다더군요. 이런 분께 축복이 닿지 않는다면 아무도 신을 믿지 않겠지요.”

“당치도 않은 말씀입니다. 저는 축복을 바라고 신을 믿는 사람이 아닙니다.”


맞잖아. 거짓말하면 못써요.


“하하. 신께서도 미트리님께 신의 기적이 닿는 것을 원하실 것입니다. 미트리님께 신의 축복을···”

“그렇다면 유노 사제님. 잠시 따라와 주실수 있으신가요?”


미트리는 나를 윗층의 침실로 이끌었다. 침실로 가면서 이래저래 미사여구를 붙였지만 결국 하고싶은 말은 자신의 아내가 아프고 신의 힘이 필요하다는 것. 침실의 문을 열자 깡말라보이는 여성이 끙끙대며 침대에 누워있다.


“용하다는 의사를 데려와도 원인을 알 수 없다고 하더군요. 좋다는 약이란 약은 모두 써봤지만 이런 일이 계속 반복될 뿐입니다. 사제님의 축복이 마지막 희망입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중세의 의학이라면 수준이 뻔하다. 진단은 당연히 무리고 약이라고 해도 진통효과를 가진 약초를 말리고 찌는 수준이겠지. 현대의 약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미트리의 말을 들어보니 몇 주, 몇 달에 한 번씩 아내가 이렇게 드러눕는다고 한다. 드러눕기전에는 갑자기 이상한 냄새가 난다면서 온갖 향수를 뿌려대다가 머리에 극심한 통증을 호소하며 짧게는 2,3일, 길게는 일주일 가량 누워있는다는 것. 확인을 해봐야겠지만 증상만 들었을 때는 전형적인 편두통 증세다.


나는 미트리의 아내 옆으로 가서 이마에 손을 댄다. 눈을 감고 집중을 하자 머릿속이 보이기 시작한다. 다행히 특별한 질환은 보이지 않는다. 편두통은 아직 원인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질환이 보이지 않는다는게 편두통이라고 확진할 수 있게 해줬다. 그렇다면 남는건 치료뿐. 완벽한 치료나 예방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완벽히 해결해 줄 필요는 없지. 힘들겠지만 죽을 병은 아니고 미트리가 원한건 축복이니까.


미트리의 아내의 뇌에 전체적으로 신성력을 흩뿌린다. 정확히 어떻게 좋아질지는 나도 모르겠지만 신성력이 어떻게든 해줄 것이다. 혈관까지 적당히 보강해주자 표정이 훨씬 편안해진게 보인다. 어느정도 먹혔구나. 고맙다 도라x몽 주머니.


-----


미트리는 연신 감사함을 표하며 나와 카림 주교를 극진히 배웅했다. 마차에 탄 뒤 나는 카림 주교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왜, 왜그러나?”

“주교님. 부탁이 있습니다.”

“부탁? 얼마든지 말하게. 내가 들어줄 수 있는 것이라면 얼마든지 들어줌세.”


찔리는게 있는지 말이 빨라지는 카림 주교. 그래. 찔리겠지. 나를 이렇게 써먹고도 안찔리면 그건 양심이 없는거다. 카림 주교가 미트리를 대하는 태도를 봐서는 미트리가 상당한 양의 돈을 교회에 기부하는게 분명했다. 그 와중에 카림 주교의 뒷주머니로 들어가는 돈도 있겠지. 이번 일로 그 양이 늘면 늘었지 줄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돈 값을 해라.


“수행사제의 위를 주십시오.”

“수, 수행사제말인가? 그건 내 선에서 처리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네. 최소한 대주교님정도의 선은 되어야···”

“아, 그렇습니까. 알겠습니다.”


나는 마차의 문을 열었다. 내리려는 액션을 취하자 주교가 나를 황급히 붙잡는다.


“잠깐 기다리게! 알겠네! 내가 어떻게든 해보겠네. 오늘 바로 서신을 보내지. 문을 닫게나.”


나는 다시 문을 닫고 자리에 앉았다. 속도를 줄였던 마차가 다시 속도를 올린다. 그런데 방향이 교회쪽이 아니다. 카림 주교를 바라보자 카림 주교가 멋쩍은지 눈을 슬쩍 피한다. 아, 한 곳이 아니었구나. 수행사제의 위를 달라고 하길 잘했다.


수행사제는 사제의 직위 중에서 특수한 자리다. 일반적인 사제는 한 교구에 소속되어 일정한 지역 내에서 활동하지만 수행사제는 자신이 가고싶은 곳으로 다니면서 생활할 수 있다. 그만큼 위험성도 있지만 제국은 치안이 안정된 곳이고 수행사제의 표식을 보여주면 그 곳의 교회에서 지원을 얻을 수 있다. 이런 일이 귀찮은 나에게는 최적의 지위. 최대한 빨리 얻어내 이 곳에서 도망치리라 다짐했다.


-----


미트리의 저택에서 나온 뒤로 두 곳을 더 돌고나니 어느새 석양이 보이는 시간이 되었다. 그러고보니 오늘 해야될게 하나 있었던것 같은데.


“사제님!”


방으로 돌아가자 칼란이 기다리고 있다. 아, 이런··· 칼란과 아랫마을에 가려고 했었지.


“칼란 부제. 정말 미안하지만 오늘은···”

“사제님! 오늘 꼭 부탁드립니다!”


칼란이 내가 거절할 줄 알았는지 매달린다.


“저기, 잠시만···”

“사제님! 오늘이 아니면 안돼요! 지금 부탁드립니다!”


한국이었으면 시간에 상관없이 가자고 했겠지만 이 곳은 가로등 따위는 없는 곳이다. 어둠이 내리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하지만 칼란이 거머리처럼 떨어지려고 하지 않는다. 신성력을 많이 써서그런지 떼어낼 힘조차 없다. 빨리 해결하고 치울 수 밖에 없나.


“그래. 가자. 칼란 부제. 빨리 갔다 오자.”

“네! 정말 감사합니다! 따라오세요!”


빵집에 들러 남은 빵을 싹쓸이한 뒤 아랫마을로 향했다. 아랫마을은 다행히 멀지 않았다. 외성을 나가잠시 걸으니 카디즈를 감싸듯히 흐르는 조그만 강 근처에 옹기종기 집 십 수채가 모여있는게 보였다. 가까이가니 동물의 가죽들이 여기저기 쌓여있다. 그리고 동시에 악취가 코를 찌른다.


“사제님 정말 죄송합니다. 조금만 참아주세요. 무두질을 하는 곳이라 그래요. 금방 적응되실거예요.”


금방 적응될 정도가 아닌데. 너무 심하잖아 이건. 무두질의 과정은 정확히 모르지만 최소한 동물의 똥으로 한다는건 알겠다. 칼란을 따라온게 후회가 될 정도. 하지만 지금 돌아간다고 하면 칼란은 목숨을 걸고라도 나를 막을 것이다. 최대한 빨리 처리하고 떠나는게 상책이다.


칼란은 아랫마을의 집들 중에서도 특히 낡아보이는 집으로 걸음을 옮겼다.


“얘들아! 나 왔어!”

“칼란! 어! 빵이다!"


칼란이 문을 열자 옹기종기 모여있던 아이들이 칼란, 아니 칼란이 들고 있던 빵을 반긴다.


“이 녀석들! 나보다 빵이 먼저야?”


핀잔을 주지만 기분은 나빠보이지는 않은 칼란. 동생들로 추정되는 네 명의 아이들은 행복한 표정으로 빵을 먹는다. 피골이 상접하다 까지는 아니지만 꽤나 마른 모습이다. 하긴, 오면서 본 집들의 면면만 봐도 잘 먹고 다닐 것 같지는 않다. 칼란은 잠시동안 아이들을 웃으며 바라보더니 방 안으로 휙 하고 들어갔다.


“얘들아. 엄마는?”


칼란이 묻자 아이들의 움직임이 멈춘다.


“엄마는 어디갔어?”

“칼란. 사실 그게···”

“올도 아저씨가 데려갔구나! 맞지?”


칼란의 다그침에 아이들이 고개를 천천히 끄덕인다. 뭐라고 할 새도 없이 칼란이 집 밖으로 뛰쳐나간다. 순식간에 어둠 속으로 사라져서 어디로 갔는지도 보이지 않는다. 칼란이 사라지자 분위기가 어색해진다.


“아저씨는 누구예요?”


네 명의 아이들 중 가장 나이가 들어보이는 아이가 말을 걸어줬다. 고맙다. 말 걸어줘서.


“칼란이 있는 교회의 사제야. 칼란이 부탁해서 오게 됐어.”

“아, 아저씨가 그 사제님이신가보네요. 어제도 칼란이 빵을 사주셨다고 말해줬어요. 감사합니다.”


아이들이 고개를 꾸벅 숙인다.


“칼란은 올도 아저씨한테 갔어요. 쭉 앞으로 가서 가죽더미가 보이면 오른쪽으로 꺾으면 돼요.”


뭐지? 가보라는건가? 아닌것 같으면서도 명백한 축객령이다. 그래도 빵을 사줬는데 이건 좀 너무하지 않나싶은데.


“칼란은 사제님을 기다리고 있을거예요. 부탁드려요.”

“그, 그래. 맛있게 먹으렴.”


영악한건지 머리가 좋은건지. 내가 나가자 아이들이 빠르게 빵을 먹기 시작한다. 맛있게 먹어라. 나는 꼬마의 말에 따라 걷기 시작했다. 올도 아저씨라는 사람의 집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칼란이 그 집 앞에서 웬 덩치 큰 사내에게 소리를 지르고 있었으니까.


“어쩔 수 없잖아! 칼란! 네 동생들이 위험하다!”

“내가 사제님을 데려왔다구요!”


짧은 대화였지만 역시나 치료할 사람이 있었구나. 빨리 돌아가고 싶은 마음에 나는 앞으로 나섰다.


“칼란 부제. 진정해.”

“아, 사제님! 올도 아저씨! 봤죠? 사제님이 오셨잖아요!”


으, 시끄러. 변성기가 오지 않은것 같은 날카로운 칼란의 목소리가 귀에 꽂힌다.


“에휴. 칼란. 너 이거 감당할 수 있겠냐.”


올도가 고개를 젓는다. 어떤 감당을 말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웬만한 질환은 신성력으로 해결 가능하다.


“사제님. 죄송합니다. 칼란 녀석때문에 누추한 곳까지 오시게했습니다. 따라오시죠.”


올도는 한숨을 푹 쉬더니 별 말 없이 순순히 나를 안내한다. 하지만 칼란과는 다르게 얼굴에는 어두운 기운이 가득하다. 내가 신성력을 사용할 수 있다는건 칼란에게 들었을텐데. 신성력이라는 힘을 믿지 못하는건가?


올도가 나를 안내해 준 곳은 다른 집과는 어느 정도 거리를 둔 조그만 오두막이었다.


“사제님, 조심하십쇼. 저주입니다. 저주.”


우리를 두고 재빨리 돌아가는 올도. 나는 조심스럽게 오두막의 문을 열었다.


작가의말

오늘 하루 즐겁게 보내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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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유노, 발을 담그다 (4) 24.09.13 14 0 11쪽
10 유노, 발을 담그다 (3) 24.09.12 16 0 11쪽
» 유노, 발을 담그다 (2) 24.09.11 18 0 12쪽
8 유노, 발을 담그다 (1) 24.09.10 26 0 11쪽
7 유노, 전염병을 마주하다 (5) 24.09.09 23 0 12쪽
6 유노, 전염병을 마주하다 (4) 24.09.07 23 0 12쪽
5 유노, 전염병을 마주하다 (3) 24.09.06 23 0 12쪽
4 유노, 전염병을 마주하다 (2) 24.09.05 26 0 12쪽
3 유노, 전염병을 마주하다 (1) 24.09.05 26 0 13쪽
2 은호, 유노가 되다 (2) 24.09.04 25 0 12쪽
1 은호, 유노가 되다 (1) 24.09.03 44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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