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의사는 영원한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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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무나
작품등록일 :
2024.09.03 10:01
최근연재일 :
2024.09.19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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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9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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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유노, 세우다 (1)

DUMMY

“사제님. 사제님. 일어나보세요.”

“어? 어···칼란?”


칼란이 부르는 소리에 나는 눈을 떴다. 분명 눈을 떴지만 정신이 멍하고 앞이 흐릿했다. 눈을 뜬게 맞나? 눈을 한 번 비벼봤지만 흐릿한건 여전했다. 눈이 문제가 아니다. 사방에 안개가 자욱해 고작 몇 미터 앞도 보이지 않았다.


“여기가 어디지?”

“저도 모르겠어요. 앞으로 쭉 걸어봤는데 다시 이곳으로 돌아왔어요.”


앞으로 걸었는데 다시 이곳으로 돌아왔다니. 그런 마법같은 일이. 아, 여기는 마법이 존재하는 세계였지. 그렇다고해도 이렇게 광범위하게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그러고보니 우리가 왜 여기있는지 알아? 기억이··· 기억이 없어.”

“저도 기억이 나지 않아요.”


정말로 기억이 나지 않았다. 무언가에 얻어맞았거나 마법에 당해서 기절을 했다면 그 전까지의 기억이 남아있어야 할 텐데, 주변에 떠다니는 안개가 머리 속까지 가린 것처럼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나는 심호흡을 한 뒤 확실한 기억부터 차근차근 짚어가기로 했다.


우선 카디즈에서 출발했을 때 부터. 나와 칼란은 북부의 주도인 칼스타드로 출발했다. 칼스타드까지는 약 4,5일정도 꾸준히 걸으면 도착할 거리. 첫 날은 아무 일도 없이 칼란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걸었었다. 마주친 사람도 없이 그저 우리만. 그러다가 야영을 했었지. 아침까지도 아무 일 없었고.


두 번째 날. 숲을 통과하기 위해 나무 사이로 난 좁은 길로 진입했었다. 그리고···그리고, 어떤 집을 발견했던 것 같은데. 아닌가? 사람을 만났었나?


“칼란. 우리가 숲으로 들어온 뒤로 어떻게 됐었지?”

“숲이요? 우리가 숲에 들어왔었나요? 아, 아! 기억났어요! 숲에 들어와서···숲에 들어와서···”


같이 한참을 고민해봤지만 진전이 없었다. 조금만 더 고민하면 기억이 날 듯 했지만 기억을 찾자고 이 곳에서 죽치고 있을수는 없는 일. 나는 엉덩이를 털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기억은 됐어. 어떤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움직여보자. 식량도 없는데 여기서 가만히 있을 수는 없잖아.”

“네. 알겠습니다. 제 뒤로 따라오세요.”


나보다 무력이 월등한 칼란이 앞장섰다. 이런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앞뒤가 무슨 의미가 있겠냐만은 그냥 넘어가자.


이 곳이 어떤 공간인지 모르겠지만 다리에 피로가 느껴질 정도로 걸었는데도 어떤 것도 만나지 못했다. 사람이나 동물을 만나지 못했다는 것이 아니라 단어 그대로 어떤 존재, 식물, 무기물, 건물도 보지 못했다. 그저 바닥과 안개뿐. 한 곳을 빙빙 돌고있는건지 내가 최면에 걸려서 주변을 인지하지 못하는건지도 모르는 상황.


“칼란. 멈춰봐.”


우선 멈춘다. 더 걸어가도 의미가 없을 것 같았다. 이 세계에 존재하는 정상적인 공간이라면 이럴 수 없다. 마법이 확실했다. 그렇다면 강력한 에너지를 쏘아낸다면 이 공간에서 나갈 수 있지 않을까. 신성력이 통할지는 모르겠지만 개떡같이 써도 찰떡같이 할 일을 해주던 힘이니 믿어보기로 했다. 의지를 집중하자 내 주변으로 천천히 빛이 퍼져나왔다. 빛이 안개를 먹어치운다. 볼 수 있는 곳이 점점 넓어진다. 5미터, 10미터, 그리고 어느 임계점을 넘은 순간, 모든 안개가 확 하고 사라졌다.


안개가 사라지자 우리가 서 있는 넓은 땅과 그 끝자락, 지평선에 걸쳐있는 거대한 집들이 보였다. 분명히 신성력으로 안개를 몰아냈으니 우리가 보고있는건 현실이라는건데, 이 것이 현실이 맞는지 의심이 갔다. 저런 거대한 집을 도대체 어떻게 지었으며 누가 사는 것일까. 내가 처음 겪는 상황에 당황해 얼이 빠진 사이, 어디선가 희끄무레한 형체들이 나타나 우리를 향해 다가왔다. 반투명한고 사지의 구분이 불명확한 걸 봐선 당연히 인간은 아니다. 공격하려는 의지는 없어 보였지만 혹시해서 신성력을 끌어올리고있자니 그들이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거알아?”

“그거알아?"


말소리가 돌림노래처럼 사방으로 퍼진다. 처음에는 대화하는 정도였던 소리가 귀를 울릴 정도로 커지지더니 그 소리가 뭉쳐 거대한 스크린으로 화했다.


“뒷산에 오두막 알지?”

“뒷산에 오두막 알지?”


스크린에서 영상이 재생되면서 내레이션처럼 설명이 들려온다.


“보름달이 뜨는 밤에 거기서 유령이 나온대!”

“보름달이 뜨는 밤에 거기서 유령이 나온대!”


소리가 울렸지만 영상과 같이 들으니 얼추 의미는 알 수 있었다. 뒷산의 오두막에서 밤에 유령이 나오니 다같이 담력 시험을 가자는 것. 낮에 그곳에 물건을 놓고 오고 밤에 가서 그걸 가져오면 승리자가 되는 식이다.


“오늘 보름달이 떠!”

“그럼 오늘이다!”


오늘인가. 이 공간의 존재이유는 모르겠지만 분위기를 봐서는 우리도 이 담력시험에 참여를 해야하는 듯 했다. 하지만 어른인 우리한테는 이런건 식은 죽 먹기일텐데.


그 순간 어둠이 드리웠다. 다시보니 우리를 뒤덮은건 거대하지만 경계가 명확한 어둠, 그림자였다. 뒤를 돌아보니 엄청나게 거대한 희끄무레한 형체가 우리를 굽어보고 있었다.


“이 놈! 시간이 몇시인데!”


거인이 반응할 틈도 주지 않고 나와 칼란의 뒷덜미를 낚아채 들어올렸다. 칼란이 그림자로 반항을 해보았지만 전혀 통하지 않았다.


“오늘이야!하하하!”

“오늘이야!하하하!”


주변에 서있던 작은 형체들은 꺄르륵 웃는 소리를 내며 우리에게서 멀어져갔다. 그리고 그 순간, 정신이 끊어졌다.


-----


“사제님. 일어나세요.”

“어···응.”


데자뷰가 느껴지는데. 주위를 둘러보는데 칼란이 보이지 않았다.


“칼란?”

“사제님. 여기에요.”


갑자기 뒤에서 무언가가 내 어깨를 잡았다.


"으악!"

"저예요. 진정하세요."


없는 애가 떨어질 뻔 했다. 목소리를 들어서는 내 바로 뒤에 있는게 분명했지만 칼란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너무 어두워서 제대로 보이는게 없어요.”


아까는 안개때문에 시야가 제한되었다면 지금은 어둠이 너무 짙어 제대로 보이는게 없다. 눈이 어둠에 적응할 정도의 충분한 시간이 지났는데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 걸 봐서는 동굴이나 창문이 없는 방 안에 갇힌 듯 했다.


“안되겠다. 신성력을 써야겠어.”

“잠시만요.”


신성력으로 주위를 밝히려던 나를 칼란이 말렸다.


“저길 보세요.”


어둠 속이라 어딜 가리킨건지 전혀 알 수 없었지만 두리번거리다보니 오른쪽 어깨 뒤로 스포트라이트처럼 빛이 들어온 곳이 있었다. 그 중심에 서있는 건 정신을 잃기 전에 봤던 희끄무레한 형체. 그것은 소리를 내기 싫다는 듯 까치발(발이 없었지만 분명 내게는 까치발로 인식되었다.)로 천천히 앞으로 걸어나갔다. 무언가를 피하는지 이리저리 방향을 꺾으며 나아간다. 그러다가 어딘가를 턱 하고 손으로 짚더니 슬그머니 민다. 어둠이 갈라지며 문의 형태를 이루고, 그것은 그 문 밖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스포트라이트가 꺼졌다.


“저걸 따라가야되나봐.”

“그런가봐요.”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방금의 형체를 따라가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렵지 않지. 뭐가 있었길래 이래저래 방향을 꺾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신성력이 있다. 순살해주마. 인간 형광등 나가신다!


주위가 천천히 밝아온다. 나무 바닥이 보이고, 그 주변에 흩어진 거대한 장난감들이 보인다. 높이가 몇 미터는 될 듯한 탁자도 보이고 신발같은 잡동사니도 있다. 다행히 위험해보이는 함정은 보이지 않았다.


“가자. 칼란.”


그 순간, 하늘에서 벼락같은 음성이 들렸다.


“안 자고 뭐하는거야!”

“무슨···!”


그 순간 나는 정신을 잃었다.


-----


“사제님, 사제님.”

“어···칼란.”


벌써 정신을 잃었다가 일어난게 세 번째다. 짜증이 몰려온다. 우리가 너무 느긋하게 걸어서 무언가에 들킨 것 같았다. 이번에는 잡을 새도 주지 않을 것이다.


“칼란. 빠르게 간다.”

“네. 사제님.”


몸을 푼 뒤 크라우칭 스타트 자세를 취했다. 빛을 밝히는 순간 출발이다. 하나, 둘, 출발! 빛이 밝혀진다. 탁자의 다리가 보인다. 아까는 탁자가 멀리 있었는데. 잠시 생각한 뒤 왼쪽으로 꺾는다. 다리를 돌자 보이는 거대한 신발을 뛰어 넘는다. 착지!


“안 자고 뭐하는거야!”

“헉!”


정신을 잃었다가 다시 일어났다. 일단 깨어날 때 마다 물건들의 위치가 랜덤하게 바뀐다는 건 알았다. 오케이. 한 걸음 전진했어. 저번 시도에는 불이 너무 밝았던 것 같다. 정말 약한 불만 켜고 출발했다. 시야가 좁아져 기둥과 박을 뻔한 걸 칼란이 내 덜미를 잡아서 방향을 틀어줬다. 하지만 그 앞에도 장난감이 있었다. 부딪힌 순간 큰 소리가 났다.


“안 자고 뭐하는거야!”


다시! 속도를 줄인다. 부딪힐 염려는 없다. 아까보다 소리도 덜 난다. 순조로웠다. 그러나 중간 쯤 왔다고 생각한 순간.


“안 자고 뭐하는거야!”


너무 조심한다고 충분히 빠르지 못했나? 다시!


“안 자고 뭐하는거야!”


뭐가 문제였지? 일단 출발해볼까?


“사제님. 잠시만요.”


칼란이 나를 붙잡았다.


“일단 진정하세요. 제가 봤을 때는 신성력을 사용하면 무조건 처음으로 돌아가게 돼 있는 것 같아요.”

“하지만 신성력이 없으면 이 곳을 빠져나갈 수가 없잖아. 전혀 보이지가 않는데.”

“제가 해볼게요. 제 손을 잡으세요.”


나는 칼란의 손을 잡았다. 그 동안 험한 일을 많이 한 것 치고는 손이 작고 부드럽구나··· 무슨 생각을 하는거야! 기절했다가 일어났다를 반복하다보니 정신이 나갔는지 미친 소리를 속으로 중얼거리던 중 공기가 떨리는게 느껴졌다. 칼란이 마법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렇지. 칼란의 마법은 그림자와 어둠을 이용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 주변을 탐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림자가 주변을 탐색하는지 천이 벽을 스치는 듯한 소리가 가끔씩 들려온다. 칼란은 망설임 없이 앞으로 전진했다. 어둠 때문에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할 속도. 이리저리 칼란의 손에 끌려다니다보니 어느새 투명한 벽이 막고있는 느낌이 드는 곳에 도착했다. 칼란이 손을 뻗어 앞으로 밀었다.


끼이익


밖이다! 밖은 보름달이 흩뿌리는 달빛으로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오랜만에 빛을 봐서 그런지 눈이 아플 지경이다.


“사제님. 저기인가봐요.”


칼란이 가리킨 곳을 보자 아까 봤던 형체가 울타리 밖으로 나가는게 보였다. 저 곳으로 가면 되겠지.


크르릉. 푸우.


목적지로 가기 위해 몇 걸음 걸었을까.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거대한 짐승이 코를 고는 듯한 소리. 듯한 소리가 아니다. 실제로 거대한 짐승이 우리의 길을 막고 잠을 자고 있었다. 불독을 10배정도 확대한 뒤 스테로이드를 잔뜩 주입하면 이런 모습이 될까. 자고 있지만 저 짐승이 일어나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눈에 선하다.


칼란이 나를 바라본다. 그렇게 보지 마. 나도 몰라. 강행 돌파냐, 몰래 가보는 거냐. 생각해보면 아까 이 곳을 나간 형체는 어둠 속에서 조심조심 전진했었지. 그리고 울타리 밖으로 나갈 때 까지 짐승이 움직이거나 깬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조용히 가자.”

“네.”


천천히 전진한다. 울타리 밖으로 나가는 문과 우리 사이를 짐승이 막고 있기 때문에 조금 돌아가야하지만 그리 먼 거리는 아니다. 혹시라도 저 녀석이 깬다면 한 입에 내 몸을 두동강 내겠지. 아니야. 이런 생각 하지마. 무섭지 않다. 무섭지 않다.


짤그랑


“어?”

“사제님. 죄송해요.”


앞서 나가던 칼란이 무언가를 건드렸다. 쇠사슬이었다. 높이 자란 풀에 가려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천천히 쇠사슬을 따라 시선을 돌리니 당연히도 짐승의 목까지 연결되어있었다. 목줄이었구나.


“칼란.”

“네.”

“뛰어!”


짐승이 눈을 떴다. 지체할 틈이 없다. 발바닥에 땀이 날 정도로 뛴다. 그 와중에 칼란은 마법사라 그런지 저만치 앞서나갔다. 짐승이 나를 향해 빠르게 달려온다. 먹힌다. 이대로라면 먹힌다!


“으아아! 눈 감아!”


복잡하게 생각할 틈도 없었다. 어떻게든 돼라! 나는 뛰는 와중에 신성력을 그러모아 공중으로 투척했다. 신성력 구체는 공중에서 잠시 멈추더니 펑하고 터졌다. 물리력은 없는 섬광탄. 깨갱 하는 소리가 뒤에서 들리지만 돌아볼 엄두가 나지 않는다. 어느새 울타리에 다다랐다.


“안 자고 뭐하는거야!”


공중에서 천둥같은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 순간 온 힘을 다해 밖을 향해 몸을 던졌다.


작가의말

이틀만 일하면 주말이네요. 화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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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노, 세우다 (1) NEW 19시간 전 11 0 13쪽
15 유노, 발을 담그다 (8) 24.09.18 8 0 13쪽
14 유노, 발을 담그다 (7) 24.09.17 12 0 11쪽
13 유노, 발을 담그다 (6) 24.09.16 17 0 12쪽
12 유노, 발을 담그다 (5) 24.09.14 17 0 12쪽
11 유노, 발을 담그다 (4) 24.09.13 16 0 11쪽
10 유노, 발을 담그다 (3) 24.09.12 17 0 11쪽
9 유노, 발을 담그다 (2) 24.09.11 19 0 12쪽
8 유노, 발을 담그다 (1) 24.09.10 28 0 11쪽
7 유노, 전염병을 마주하다 (5) 24.09.09 24 0 12쪽
6 유노, 전염병을 마주하다 (4) 24.09.07 24 0 12쪽
5 유노, 전염병을 마주하다 (3) 24.09.06 24 0 12쪽
4 유노, 전염병을 마주하다 (2) 24.09.05 29 0 12쪽
3 유노, 전염병을 마주하다 (1) 24.09.05 27 0 13쪽
2 은호, 유노가 되다 (2) 24.09.04 28 0 12쪽
1 은호, 유노가 되다 (1) 24.09.03 49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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