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의사는 영원한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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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무나
작품등록일 :
2024.09.03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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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0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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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노, 발을 담그다 (1)

DUMMY

카디즈는 예상보다는 작은 도시였다. 도시라고 해서 수 만명은 모여 살 줄 알았는데 정주하고 있는 인구는 5000명 정도. 한국 아파트 단지 한 두개밖에 안된다고 생각하니 너무 적어보이는 느낌이지만 나름 북부의 도시라고 성벽까지 단단하게 세워놓았다. 중세의 성을 직접 볼 수 있다는데에 만족하기로 했다.


로미온은 자신과 같이 북부의 주도인 칼스타드로 가자고 했지만 나는 거절했다. 같이가면 편하겠지만 왠지 귀찮은 일이 있을 것 같다. 다행히도 로미온은 한번 제안한 뒤에는 더 붙잡지 않았다.


“어서 오시게.”


로미온이 나의 신원을 보장해줘서 빠르게 도시의 주교를 만날 수 있었다. 나를 맞이해준 카림 주교는 제롬 수도원장과 비슷하게 살집이 두툼한 인물이었다. 만나는 성직자마다 심장 혈관을 뚫어줘야 할 것 같은 예감이 왔지만 애써 무시했다. 내 앞에서만 쓰러지지 않으면 되는거니까.


“환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부제 유노입니다.”

“하하. 이제는 사제라네. 신의 뜻을 전하는 자가 고작 부제라니. 말도 안되는 일이지. 내가 미리 사제의 직을 받아두었지. 축하하네. 유노 '사제'.”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카림 주교님.”


카림은 사람 좋게 웃었다. 미리 사제의 직위까지 받아주면 나야 편하다. 교회에 가서도 사제라고하면 웬만한 부제들에게 식사 심부름이라도 시킬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관광다니기 더욱 편해졌다.


“그대가 일주일동안 유목민들에게 납치당했었다고 들었네. 정말 고생 많았네. 우선은 푹 쉬도록 하게. 방은 미리 마련해두었으니 편하게 잘 수 있을걸세. 다만.”


카림 주교는 말하다말고 숨이 찼는지 물을 한 모금 마신다. 이거 불안한데. 데자뷰가 느껴진다.


“내일 모레가 주일인건 알고 있을걸세. 그대도 사제이니 당연히 기도에 참석하겠지?”


-----


모레부터는 또 다시 인간 형광등 역할을 해야할 걸 생각하니 자연스레 한숨이 나왔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내가 당장 돈이 있는 것도 아닌데. 일단 모레의 일은 모레 생각하고 오늘은 오늘의 관광을 하기로 했다.


“어디로 가십니까?”

“산책이나 나가보력 합니다.”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따라오십시오.”


내가 나가려고하자 부제가 한 명 따라왔다. 카림 주교가 내 수발을 들라고 붙여준 모양이다. 수도원에 있을 때는 나, 아니 유노가 가장 어려서 온갖 잡일은 도맡았었는데 이 녀석은 10대 중반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이름이?”

“칼란입니다. 유노 사제님."

"그래요. 칼란 부제. 이 성에 가볼만 한 곳이 있을까요?"

"안내하겠습니다. 제게 말씀을 높이지 않으셔도 됩니다."


칼란은 능숙하게 나를 이끌었다. 역시 잡일 담당. 웬만할 걸 시켜도 다 잘한다. 속으로 눈물을 훔치며 칼란이 이끄는대로 한 시간 정도 걸었을까, 성 관광이 끝나버렸다. 처음에는 중세의 사람들이 사는 모습들이 신기했지만 그래봤자 인구 5000명의 조그만 도시. 특별한 시설도, 관광 스팟도 없다. 정말로 한 시간만에 관청을 제외한 웬만한 곳을 다 가볼 수 있었다. 이게 뭐야. 잔뜩 기대하고 있었는데.


이럴꺼면 로미온을 따라서 대도시로 갈 걸 그랬다. 듣기로는 제국의 대도시들은 인구를 만단위로 샌다고 하니 나름 관광할 맛이 있었을텐데. 어쩔 수 없이 이 성의 유일한 빵집에 가서 빵을 잔뜩 산 뒤 (교회 앞으로 달아두었다. 카림 주교가 이 정도는 내주겠지.) 숙소로 돌아가기로 했다.


“가져가.”


교회의 이름으로 산 빵을 나만 먹을 수는 없지. 칼란에게 몇 개를 따로 싸서 내미니 감동을 받은 표정을 짓는다. 그 느낌 안다. 맨날 이거해라 저거해라 잡일만 하다가 누군가가 친절을 베풀어주면 얼마나 좋은지.


칼란의 행색을 보면 귀족의 자식은 아닌듯하고 그나마 평민으로서 출세할 수 있는 길인 성직자의 길을 택한 듯 했다. 그러나 좋은 선택은 아니다. 평민이 부제부터 시작하여 위로 올라가려면 정말로 특별한 능력이 있거나 더러운 일을 하는 게 아닌 이상 사제로 올라서는 것만 해도 수십년이 걸린다.


같이 걸으며 물어봤을 때 17세라고 했으니 아직 고생할 날이 많이 남았다. 키나 몸에서 남자답지 못한 느낌이 물씬 나는 걸 봐서는 제대로 먹지고 못하고 고생하는 것 같은데... 많이 먹어라. 성장기에는 먹는게 중요하단다.


그러나 칼란은 내가 준 빵 중에서 가장 작은 빵을 꺼내 한입 베어물더니 다시 챙겨 넣는다. 길거리에서 걸으면서 음식을 먹는게 그리 보기좋은건 아니지만 빵 정도는 괜찮을텐데.


“왜 한 입 먹고 말아?”

“아. 동생들에게 가져다주려고 합니다. 괜찮을까요?”


그렇게 말하면서 내 눈치를 보는 칼란. 아마 교회에서 음식을 챙겨서 가족에게 가져다주려다가 혼난 적이 있나보다. 나는 내가 나중에 먹을 것 두개만 챙기고 나머지를 모두 칼란에게 내밀었다.


“가져가도록 해. 나 혼자 먹기에는 많은것 같아서.”


칼란의 얼굴이 활짝 펴진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사제님을 위해서 매일 기도하겠습니다!”


나는 칼란에게 빵을 가지고 가족에게 가보라고 했다. 교회는 종탑이 우뚝 솟아있어 내가 알아서 찾아갈 수 있다. 이럴때라도 쉬어야지. 칼란은 연신 고개를 숙이고는 교회와 반대편으로 뛰어갔다. 이렇게 좋아하는 걸 보니 카림 주교에게는 미안하지만 매일매일 빵을 사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교회로 돌아와 잠시 시간을 보내니 저녁 시간이 되었다. 북부라 그런지 해가 상당히 짧다. 배는 그리 고프지 않지만 지금 먹지 않으면 긴 밤을 굶주리며 지새야하니 어쩔 수 없이 식당으로 향했다. 하지만 목적지에 도착하기도 전에 카림 주교가 나를 기다렸다는 듯 낚아챘다.


“아, 유노 사제. 잘 만났네. 저녁 먹었나? 아. 대답하지 않아도 되네. 먹었어도 상관 없네. 일단 따라오시게.”

“아, 예.”


언제 준비를 해놨는지 교회 앞에는 마차가 대기하고 있었다. 이 좁은 성에서 마차를 탈 이유가 있나싶지만 원래 쓸데없는 걸 하는게 높으신 분들의 미덕인 법. 나와 카림 주교를 태운 마차는 느긋하게 움직였다. 길이 제대로 정비돼있지 않아서 빨리 갈 수도 없다. 그렇게 10분정도 갔을까. 낮에 칼란이 시장의 저택 겸 업무실이라고 알려준 성에 도착했다. 지구에 있는 노이반슈타인 성이나 베르사유 성같은 삐까뻔쩍한 성은 아니다. 유목민의 침입에 대비해서 지은 실용적인 모습. 이름만 성이지 차라리 창고에 가까운 형태다.


성을 지키고 있는 병사들은 카림 주교의 마차가 익숙한지 별다른 검문도 하지 않고 들여보내준다. 시장이 봤으면 경을 칠 일이지만 뭐 내가 관여할 일은 아니니까. 마차가 멈추자 카림 주교는 나보고 어서 내리라고 재촉한다.


“어서 가세. 다들 기다리고 있을걸세.”

“예. 근데 누가 기다리고 있다는겁니까?”

“가보면 알게 될 것이네. 그냥 식사자리니 긴장하지 말고.”


그냥 식사자리라고 했지만 대충 알 것 같다. 높으신 분들에게 적당히 신성력을 뿌리라는 거겠지. 그래도 최소한 하루 정도는 가만히 놔 둘줄 알았는데 꽤나 사람을 알뜰하게 쓰시네. 좋다. 내일은 빵집을 완전히 털어버려야겠다.


카림 주교를 따라 2층으로 올라가니 영화에서나 보던 길쭉한 테이블에 음식들이 준비되어 있었다. 물론 중세의 음식들이라 현대인 기준에서는 제대로 된 음식들이라고는 보기 어렵지만 일주일동안 유목민들과 동고동락하면서 비린내나는 양, 말고기나 먹었던 내 입장에서는 이 정도면 천상의 음식이나 다름없었다.


의자에 앉아서 잠시 기다리니 시장 내외와 도시의 높으신 분들이 자리를 채웠다. 다들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본다. 그 희귀하다는 신성력 사용자를 보는 것이니 당연하겠지만 형광등 역할을 해야하는 내 입장에서는 귀찮기만 할 뿐이다.


시장이 상석에서 일어나 입을 열었다.


“이 자리에 오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귀하신 분이 자리하셨으니 제가 먼저 저를 소개하죠.”


청중들이 미소짓는다. 카디즈를 다스리는 시장은 귀족이긴 하지만 황제에 의해 중앙에서 발령을 받은 관리다. 그래서인지 분위기가 딱딱하지만은 않은듯했다. 시장은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한 뒤 나에게 바통을 넘겼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간단히 자기소개를 한 뒤 겉치레로 카림 주교에게 양해를 구했다.


“주교님. 혹시 이 자리에서 식전기도를 주최하는 영광을 제가 누려도 될까요?”

“얼마든지. 유노 사제. 그대의 뜻대로 하시게.”


나는 경건하게 몸가짐을 바로한 뒤 손을 뻗었다. 원래는 다들 눈을 감아야하는게 정석이나 눈을 감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형광등 빛을 보고싶다는 거겠지.


“하올라시여.”


집중을 하자 천천히 황금색의 빛이 흘러나온다.


“오오!”

“하올라시여!”


그래. 밥값은 해야지. 나는 눈 앞의 음식들을 생각하며 천천히 광량을 늘려나갔다.


-----


식사가 끝나고 잠시 사교의 시간을 가진 뒤 돌아오니 벌써 늦은 밤이었다. 카림 주교는 나를 교회에 내려다준 후 어디론가 사라져버렸기에 지금은 나 혼자다. 현대였다면은 인터넷 세상 탐방을 했을테지만 이 곳에서는 할게 너무나도 없다. 해가 지면 잠이나 자야한다.


“헉!”


방으로 들어가려고 하는데 문 앞에 누군가가 서있었다. 어둠속에서 형체가 툭하고 튀어나와서 깜짝 놀랐다. 한 달 채우기도 전에 심장마비로 돌아가실뻔 했네.


“유노 사제님. 늦은 시간에 정말로 죄송합니다.”

“아, 칼란 부제. 불은 밝히고 있는게 어때. 무슨 일이지?”


칼란이 우물쭈물하면서 입을 열지 못한다. 안그래도 신성력도 쓰고와서 졸린데 어둠 속에서 가만히 서있자니 쓰러질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하지만 방으로 들어가고 싶어도 칼란이 정확히 문을 막고 있어서 슬쩍 들어갈 수도 없다. 이 자식. 놀래켰으면 빨리 말하고 가던가. 하나만 해라.


“칼란 부제. 급한 일이 아니면 내일 말해주겠어?”

“...사제님!”


칼란이 소리를 빽 하고 지른다.


“아, 죄송합니다. 그게··· 사제님 정말로 실례를···”

“일단 진정해. 진정하고. 심호흡을 천천히 하고. 그렇지. 이제 말해봐.”

“유노 사제님. 정말 염치없지만 부탁하나만 드리겠습니다. 혹시 내일 잠시만 시간을 내 주실수 있나요? 아랫마을에 제 가족들이 살고 있는데, 아, 그 아랫마을이 어디냐면요!”


가만히 두면 끝도 없겠다. 나는 칼란의 말을 끊었다.


“알겠어. 내일 시간 많으니까 같이 가보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주일은 내일 모레. 웬만한 높으신 분들은 오늘 봤으니 내일은 특별한 일정이 없겠지. 아랫마을이 어디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차피 작디작은 변방의 성. 금방 다녀올 수 있을 것이다. 연거푸 고개를 숙이는 칼란을 방으로 보낸 뒤 나는 피곤해서인지 언제 잠들었는지도 모르게 잠에 들었다.


작가의말

팍팍 써보겠습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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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유노, 발을 담그다 (7) 24.09.17 10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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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유노, 발을 담그다 (3) 24.09.12 16 0 11쪽
9 유노, 발을 담그다 (2) 24.09.11 18 0 12쪽
» 유노, 발을 담그다 (1) 24.09.10 27 0 11쪽
7 유노, 전염병을 마주하다 (5) 24.09.09 23 0 12쪽
6 유노, 전염병을 마주하다 (4) 24.09.07 23 0 12쪽
5 유노, 전염병을 마주하다 (3) 24.09.06 23 0 12쪽
4 유노, 전염병을 마주하다 (2) 24.09.05 27 0 12쪽
3 유노, 전염병을 마주하다 (1) 24.09.05 26 0 13쪽
2 은호, 유노가 되다 (2) 24.09.04 26 0 12쪽
1 은호, 유노가 되다 (1) 24.09.03 44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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