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의사는 영원한 의사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새글

가무나
작품등록일 :
2024.09.03 10:01
최근연재일 :
2024.09.19 08:20
연재수 :
16 회
조회수 :
315
추천수 :
0
글자수 :
85,879

작성
24.09.13 08:20
조회
14
추천
0
글자
11쪽

유노, 발을 담그다 (4)

DUMMY

카디즈라는 곳에 벌써 질려버렸다. 이 곳을 떠나서 다른 곳으로 가고 싶지만 아직 수행사제의 위를 얻어내지 못했다. 모든게 인편으로 운용되는 중세의 한계 때문에 결국 기다리는 수 밖에 없다.


주일 이후 이틀동안 칼란을 만나지 못했다. 카림 주교가 어디로 배치했는지 모르겠지만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는걸 보면 최대한 구석진 곳에 쳐박아놓고 잡일이나 시키고 있는 듯 했다. 어제도, 오늘도 빵이라도 잔뜩 사주려고 했지만 만나지 못해 교회 주변에서 놀고있던 아이들에게 빵을 나눠줄 수 밖에 없었다.


“아. 유노 사제님. 이런 곳에서 뵙네요.”


빵을 나눠준 뒤 멍하니 광장에서 구름을 보고있는데 누군가 말을 걸었다. 돌아보니 카디즈에서 가장 부유하다는 상인 미트리가 마차 창문으로 나를 보고있다. 이 사람 아내의 편두통을 치료해 줬었던가.


“아, 미트리님. 다시 뵙네요. 아내분은 어떠신가요?”

“하하. 사제님께서 돌봐주신 뒤로 날라다닌답니다. 사제님. 지금 잠깐 시간이 있으신가요?”


시간? 시간이라면 있다. 넘쳐서 문제다.


“예. 시간은 많습니다.”

“다행입니다. 아내가 언제 한번쯤 사제님을 모실 수 있을까 벼르고 있어서요. 실례가 아니라면 저의 누추한 집에 모실수 있을까요?”


미트리는 마차의 문을 열어준다. 그러고보니 시장의 성에서였던가 미트리가 가죽을 팔아서 부를 쌓았다고 들었었다. 그리고 아랫마을은 무두질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고. 카림 주교도 내게 미트리가 그들에게 일자리를 줬니마니 말을 했었지. 그렇다면 미트리에게 도대체 왜 칼란이 구타를 당해야하는건지, 내가 왜 아랫마을에 가면 안되는건지 물어볼 수 있겠다는 계산이 섰다. 나는 기꺼이 미트리의 마차에 올랐다.


-----


미트리의 아내가 내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는건 거짓말이 아니었다. 미트리가 아내에게 내가 왔다는 사실을 알리자 하녀의 손을 빌리지도 않고 직접 다과를 내왔다. 그것도 시장의 성에서도 볼 수 없었던 부드러운 케이크를 한가득. 오랜만에 폭신한 음식을 먹게되자 하늘로 날아오를 듯 하다. 나중에 어떤 형태로든 갚아야겠지만 지금은 이 행복을 즐겨야지.


“입에 맞으신지요?”

“이렇게 환대해주시다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다행입니다.”


미트리는 차를 홀짝인다. 며칠 전에 왔을 때와는 다른 향의 차다.


“그러고보니 며칠 전에 사제님께서 아랫마을에 가셨다고 들었습니다.”


어떻게 말을 꺼낼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미트리가 먼저 말을 꺼내주었다. 이왕 이렇게 된거 직진하기로 했다.


“예. 맞습니다. 같이 다니던 부제의 가족이 아랫마을에 살고있더군요. 카림 주교님께 들으셨나요?”

“아닙니다. 촌장인 올도에게서 들었습니다.아랫마을 사람들은 모두 제 고용인입니다. 핍박받는 그들을 보호해주는 대신 적당한 가격에 그들을 고용한 것이지요.”


적당한 가격. 상인의 입에서 적당한 가격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면 얼마나 후려쳤을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 아마 입에 풀칠이나 간신히 할 수 있을 정도일 것이다. 그러나 미트리가 악인이라고 단정짓기는 힘들다. 북부는 험한 곳이고 어딜가나 차별을 받는 유목민과 제국민의 혼혈의 입장을 생각하면 안정된 일자리, 안전한 주거지를 보장하는 미트리는 오히려 선인이라고 불려 마땅할 것이다. 칼란의 모친인 젤라의 건강상태는 심각해보이긴 했지만 마을의 촌장인 올도는 몸집이 좋은게 먹을게 부족해보이지도 않았다. 선악판단은 일단 미루고 정보를 더 얻기로 했다.


“젤라가, 아, 사제님의 수발을 들던 부제의 어미입니다. 젤라가 저주에 걸려 혼자 생활을 한다더군요. 사제님께서 잠깐 가서 봐주셨다고 들었습니다. 제 아내 뿐만 아니라 고용인까지 돌봐주셔서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미트리님도 저주라고 하시는군요.”

“하하. 올도의 표현을 그대로 쓴 것입니다. 실은 저주가 아니라 병입니다. 무두장이들이 우연히 걸리는. 치료가 어렵고 전염이 되어 걸리게 되면 어딘가에 가두어 놓는게 최선이지요. 젤라가 불쌍하지만 올도는 그저 최선의 행동을 했을 뿐입니다. 너무 미워하지는 말아주십시오.”


젤라의 오른팔에 있던건 역시 병이었다. 무두질을 하는 사람들이 걸리는 병이라. 뭔가 떠오를 듯 하다. 하지만 어떤 병인지 떠올리는 것 보다는 카림 주교가 왜 그렇게까지 하는지 아는게 먼저다. 흔히들 상인들을 상대하려면 대가를 지불해야한다고 하지만 미트리의 말을 들어보면 정말로 나에게 고마워하는 듯 하다. 그 부채의식을 이용한다면 좀 더 쉽게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미워하지 않습니다. 그들도 같은 제국민 아닙니까. 물론 카림 주교께서는 그리 생각하지 않는것 같으시지만요. 혹시 미트리님도 비슷한 생각이신지···”

“유노 사제님.”


미트리가 찻잔을 딱 소리나게 내려놓는다. 방금 전까지의 호의 가득한 표정은 어디가고 상인으로서의 차갑고 날 선 표정이다.


“사제님이 무엇을 궁금해하는지는 알고 있습니다.”


미트리의 말이 차갑게 날아와 꽂힌다.


“하지만 저는 어디까지나 카림 주교님과 같은 입장입니다. 제게 아무리 질문하셔도 그리 대답할 수 밖에 없군요. 아, 물론 그들이 신의 축복을 받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있긴 하겠죠.”


방법이 있다··· 카림 주교와 어떤 관계인지는 몰라도 아마 이 정도가 미트리가 내게 호의로 내어줄 수 있는 최대한의 정보이리라.


“들어보겠습니다.”

“이득입니다. 그들이 신의 자녀로서 축복을 받는게 사람들에게 이득이 된다면 모두가 그들을 받아들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은 그들이 신께 버림받은게 모두에게, 아니, 미트리님께 이득이 된다는 말씀입니까?”

“저는 상인입니다. 이득이 아니라면 제가 가만히 있을거라 생각하십니까? 아, 신의 말씀을 전하는 분께는 너무 천박한 말이었겠군요. 사과드리겠습니다.”


미트리가 빙긋 웃었다. 상인의 미소였다.


-----


미트리의 집을 나서서 교회까지 천천히 걸어가며 고민을 해보았다. 북부 사람들은 유목민을 혐오한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 혼혈인 아랫마을 사람들은 어딜가나 핍박받을 수 밖에 없는 존재. 일정 부분의 편의를 희생해서라도 안전과 직업을 보장받는다면 그들도 나쁘지 않은 거래일 것이다. 과연 내가 이 모든 상황을 바꿀 정도의 이득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그것보다 더 앞서 내가 그렇게까지 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마침 떠올랐는데 젤라가 걸린 병은 탄저병일 것이다. 탄저병이라고 하면 흔히들 생물병기로 쓰이는 무서운 이미지를 떠올릴것이다. 물론 위험한 병은 맞지만 전염력이 낮기도 하고 젤라는 피부에 탄저병 균이 감염된 케이스. 운이 나쁘지 않다면 살아남을 확률이 높다. 내가 신성력으로 적당히 병의 기운을 눌러놨으니 생존할 확률이 더 높아졌을 것이다. 거기다 주변을 한번 소독하고 왔으니 다른 이들에게 전염될 염려도 없을거고. 젤라만 멀쩡해지면 나서서 행동할 이유가 사라지는 것이다.


내가 끼어들어 이리저리 바꿔봤자 임시적인 봉합일 뿐, 내가 평생 이곳에 남을게 아니라면 눈을 잠시 감고 조용히 넘어가는게 상책일 것이다.


그렇다. 가만히 있는게 상책이다.


“사제님.”


칼란, 이 녀석만 아니라면.


주위를 둘러보니 다행히 지나가는 사람은 없었다. 혹시라도 누군가 칼란이 나를 만난걸 봤다가는 칼란이 다시 구타를 당할 수도 있다.


“사람 없는 곳으로 가자.”


칼란이 순순히 사람이 없는 곳으로 안내한다. 교회 뒤쪽 골목에 있는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이다.


숨을 고르고 살펴보니 다행히 얼굴은 멀쩡해보인다. 하지만 옷으로 가려진 부분은 그렇지 않을 것이 뻔했다. 대화보다는 치료가 먼저. 신성력으로 몸을 살피니 다행히 부러진 곳은 없지만 전신이 멍이다. 나이도 어린게 이렇게 맞고 다니면 나중에 골병으로 고생한다. 칼란이 알아챌 수 없게 최대한 약하게 신성력을 사용해서 치료를 시작한다.


“사제님. 괜찮습니다. 저에게 신성력을 사용하지 않으셔도 돼요.”


어떻게 알았지? 빛도 거의 보이지 않고 느낌도 없을텐데. 일단 신성력 사용을 멈췄다.


“아, 그래. 알겠어. 몸은 괜찮니?”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걸어다닐 수 있을 정도로 멀쩡합니다. 정말로 괜찮습니다.”


칼란은 그렇게 말한 뒤 갑자기 쿵 하고 무릎을 꿇었다.


“사제님. 염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하지만··· 제발 한번만 더 어머니께 같이 가주세요!”


칼란이 머리를 박더니 흐느낀다. 직감이 왔다. 지구에서 수도없이 봤던 그 모습이다. 어떻게든 자신의 가족을 살려달라고 비는 사람들의 모습. 듣지 않아도 알 것 같다. 젤라의 상태가 악화된 거겠지. 제기랄. 분명히 나아질 확률이 더 높았을텐데.


“어머니가, 어머니가, 어머니가 죽어가고 있어요! 저는 괜찮습니다! 어떻게 되어도 좋으니 제발 딱 한번만! 한번만 부탁드립니다!”

“괜찮겠어?”


내가 잠시 아랫마을에 다녀온 것 만으로도 칼란은 심한 구타를 당했다. 거기에 이틀동안 꽤나 심한 구박을 받았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나를 아랫마을로 다시 데려가 젤라를 치료하게 한다면? 칼란 개인이 고생을 하는 것을 넘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아랫마을을 차별함으로써 발생하는 이득을 먹고사는 이들이 칼란을 가만히 둘 것인가. 그 화가 칼란을 넘어 가족들에게까지 닿지 않을까.


내 말을 이해했는지 칼란의 말문이 일시적으로 막힌다. 하지만 고민은 길지 않았다.


“네. 어떤 일이 일어나건 제가 감내하겠습니다.”

“그래. 그렇다면 내가 아랫마을로 갈게. 대신 너가 먼저 아랫마을로 가있어. 둘이 같이 가면 분명히 다른 사람의 귀에 들어갈거야.”


칼란은 고개를 끄덕인 뒤 빠르게 사라졌다.


3분정도 기다린 뒤 폐가의 밖으로 나갔다.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이틀 전 아랫마을로 갔을 때와 비슷한 시간. 아랫마을로 향하며 젤라의 상태를 떠올린다. 영양도 부족했고 전체적으로 상태가 좋지 않았다. 내가 신성력을 주입했을 때 신체가 감염을 해결하지 못했다면 지금은 피에 세균들이 잔뜩 증식해서 목숨이 경각에 달했을 확률이 높다. 한시라도 빨리 치료해야한다.


바쁘게 걸음을 옮기고 있자니 어느 순간 누군가가 내 앞길을 막아섰다.


“유노 사제님.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여쭙겠습니다.”


교회의 젊은 부제 셋이 아랫마을로 향하는 길을 막고 있었다. 이전에도 봤던 얼굴들이다. 칼란에게 발길질을 하고 있었지.


“혹시라도 아랫마을로 가시는거라면 돌아가주시기 바랍니다.”

“너희가 어떤 권한으로 내 길을 막는거냐.”


리더로 보이는 부제는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카림 주교님의 명입니다. 돌아가주시죠.”


신성력을 발현한다. 기운이 폭발적으로 몸에서 튀어나온다.


“좋은 말로 할 때 비켜라. 심판받고 싶지 않으면.”


작가의말

금요일이니 오늘 하루 힘내시길 바랍니다. 재밌게 보셨으면 댓글 부탁드립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한번 의사는 영원한 의사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일반연재 승급 안내 24.09.18 3 0 -
공지 업로드 글 수정 완료 24.09.10 17 0 -
16 유노, 세우다 (1) NEW 9시간 전 8 0 13쪽
15 유노, 발을 담그다 (8) 24.09.18 7 0 13쪽
14 유노, 발을 담그다 (7) 24.09.17 10 0 11쪽
13 유노, 발을 담그다 (6) 24.09.16 13 0 12쪽
12 유노, 발을 담그다 (5) 24.09.14 13 0 12쪽
» 유노, 발을 담그다 (4) 24.09.13 15 0 11쪽
10 유노, 발을 담그다 (3) 24.09.12 16 0 11쪽
9 유노, 발을 담그다 (2) 24.09.11 18 0 12쪽
8 유노, 발을 담그다 (1) 24.09.10 26 0 11쪽
7 유노, 전염병을 마주하다 (5) 24.09.09 23 0 12쪽
6 유노, 전염병을 마주하다 (4) 24.09.07 23 0 12쪽
5 유노, 전염병을 마주하다 (3) 24.09.06 23 0 12쪽
4 유노, 전염병을 마주하다 (2) 24.09.05 26 0 12쪽
3 유노, 전염병을 마주하다 (1) 24.09.05 26 0 13쪽
2 은호, 유노가 되다 (2) 24.09.04 25 0 12쪽
1 은호, 유노가 되다 (1) 24.09.03 44 0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