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의사는 영원한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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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무나
작품등록일 :
2024.09.03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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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9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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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6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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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노, 발을 담그다 (6)

DUMMY

“나으리. 저는 가보겠습니다. 돈만 주면 어디든지 간다! 태양물류였습니다. 또 이용해 주십쇼. 감사했습니다요.”


다음 날 새벽, 나는 카디즈에 도착했다. 나를 데려다 준 남자는 영업사원같은 말을 내뱉은 뒤 새벽의 미명 속으로 사라졌다. 돈만 주면 사람이건 뭐건 옮기는 걸 봐서는 떳떳하지 못한 사람들이겠지만 뭐 어떤가. 이곳에 왔으니 상관없다.


해가 뜨기 직전이라 카디즈는 고요했다. 우선 아랫마을로 가야한다. 아랫마을은 외성 밖에 있으니 아무에게도 걸리지 않고 갈 수 있을 것이다. 가서 우선 젤라부터 치료해야한다.


하지만 젤라가 있던 오두막에는 도착했을 때, 젤라는 이미 그곳에 없었다. 사람이 있고 없고 전에 오두막이 박살나있었다. 짐승이 발톱으로 긁은 것 같은 파괴의 흔적이 오두막과 주변의 땅에 선명하게 남아있다. 다행히 핏자국은 없어 누군가가 크게 다치지는 않은 것 같지만 어떤 일이 있었는지 짐작조차 가지 않는다.


“사제님.”


어쩔 줄 몰라 서있는 나를 누군가가 불렀다. 교회 사람이라면 기절이라도 시켜야되나싶어 돌아보자 아랫마을의 촌장인 올도가 서있었다. 다만 뼈라도 부러진 듯 왼쪽 다리에 부목을 대고 작대기를 짚은 상태. 거기에 그의 눈.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에너지가 가득한 느낌이었지만 지금은 혼이라도 빠져나간 듯 하다.


“올도 촌장.”

“혹시 잠시 시간이 되십니까. 어떤 일이 있었는지 말씀드리겠습니다.”


나는 올도를 따라 집으로 들어갔다.


“걱정마십시오. 처자식은 성 안에 잠시 가있습니다.”


올도는 힘겹게 의자에 앉았다. 방금 전 본 흔적이나 올도의 상처를 봐서는 큰 일이 있었던건 분명했다. 하지만 누가 이런 일을 할 수 있었을까. 사람을 다치게 하는건 그렇다치고 오두막을 박살낼 정도라면 바타르 정도의 마법사나 가능할 수준이다.


“이걸 어디서부터 말해야할지.”

“그저께 오후에 칼란이 이 곳에 왔을거야. 거기서부터 아는대로 전부 말해.”

“예. 칼란이 오고나서 잠시동안은 별 일이 없었습니다. 제 엄마를 보러왔나보다 했습니다. 일이 바빠 집중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큰 소리가 들리는 겁니다.”


-----


이틀 전. 유노가 수면제를 먹은 뒤 태양물류의 직원과 함께 카디즈를 떠났을 무렵. 오두막 쪽에서 들려오는 소란에 올도는 몸을 일으켰다.


“이 자식. 왔으면 조용히나 있지.”


오늘 해야할 일이 산더미다. 다른 사람들에게 작업을 계속하라고 한 뒤 올도는 오두막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아, 왔나. 올도.”

“아, 카림 주교님. 이 곳에는 어쩐 일로···”

“중요한 일이지. 내가 이런 냄새나는 곳에 와야할 정도로.”


오두막에 있던건 카림 주교였다. 올도와 아랫마을 사람들의 목숨줄을 쥐고 있는 권력자. 그의 말대로 그가 이런 곳까지 올 일은 웬만해서는 없을 것이다. 단 하나, 칼란과 신의 기적을 베푼다는 사제와 관련된 일을 제외하고는.


“칼란이 또 주교님께 무례를 저질렀나봅니다. 제가 경을 치겠습니다. 주교님. 부디 화를 거두어주십시오.”

“하하. 올도. 이 친구야. 내가 이래서 자네를 좋아해.”


카림이 껄껄 웃는다. 하지만 정말로 기분이 좋아서 웃는것일까? 아닐거라고 올도는 속으로 확신했다.


“자네의 잘못은 없지. 암. 칼란이라는 천둥벌거숭이가 혼자서 날뛴건데 자네가 무슨 잘못이 있겠나?”

“아닙니다. 주교님. 다 제 불찰이지요.”


올도는 더욱더 자세를 낮추며 주변을 둘러본다. 분명히 방금전까지 소란이 있었는데 칼란이 보이지 않는다. 카림을 수행하는 부제들 뿐이다.


“그런가? 그럼 자네에게 부탁 하나만 함세. 나 대신 저 오두막을 잘 살펴봐주게.”

“오두막 말씀이십니까? 예. 당연히···”


올도는 고개를 들어 오두막을 봤다. 잘 보니 오두막의 문이 막혀있었다. 단순히 문이 닫힌게 아니라 나무 판자로 못까지 박아 아예 아무도 나오지 못하게 문을 막아버린 것이다. 음식을 넣어줄 수 있는 구멍 정도만 작게 뚫린 상태. 아까부터 어디에서 쿵쿵거리는 소리가 들려오나 싶었는데 오두막에서 들려오는 것이었다.


“주교님, 혹시 저 안에···”

“아, 걱정말게. 자네가 일을 하고 있을때나 밤에는 내가 보낸 사람들이 경비를 설테니. 내 어찌 자네에게 모든 걸 맡기겠나. 하하. 그럼 가보겠네.”


카림 주교가 마차에 올랐다. 카림 주교는 온 몸에 향수를 뿌린 뒤 올도를 돌아봤다.


“아, 혹시해서 하는 말인데 밥은 2인분 준비하게나. 그럼.”


올도는 한숨을 쉬었다. 칼란에게 물어보고 싶은게 너무나도 많지만 우선 일을 하는게 먼저다. 잠시 오두막 안에 있는다고 죽는건 아니니까. 저주에 전염될 가능성이 있는건 문제지만 그건 다음 문제. 일단 일을 한 뒤 저녁 즘 말을 걸어보기로 했다.


-----


“무슨 일이냐.”

“밥을 가져다주려고 합니다.”


일이 끝난 저녁. 올도가 식사를 가지고 오두막에 다가가자 대번에 건장한 부제들이 막아선다. 올도가 가져온 그릇을 보여주자 고개를 까닥인다. 오두막의 입구로 간 올도는 문을 두드렸다.


“어이. 있냐.”

“올도 아저씨? 올도 아저씨죠?”

“그래. 나다. 좀 어떻냐. 젤라는?”

“아저씨. 아저씨. 사제님은요? 사제님이 오셨나요?”


올도는 조그만 구멍으로 식사를 밀어넣었다.


“사제는 뭔 사제. 카림 따까리들만 있다.”

“아저씨. 지금 엄마가 너무 힘들어하는거같아요. 유노 사제님이 오셔야해요. 제발 부탁이에요. 유노 사제님을 불러주세요.”

“칼란. 잘 들어라. 이 곳에는 사제가 올 수 없어.”


칼란이 교회에 부제로 들어가기는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아랫마을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한 보여주기. 카림 주교는 칼란을 교회의 일원으로 대할 생각은 전혀 없을 것이다. 아랫마을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부제 하나 나왔다고 해서 갑자기 차별받지 않게된다거나 하는 일은 없다.


“이해해라. 칼란. 몸조리 잘하고.”


젤라의 몸이 상하게 된건 남편이 죽은 이후로 아이들을 먹여 살리느라 그렇게 된 것. 저주에 걸린 것 또한 누군가를 탓할 수 있는게 아니다. 그저 불운한 것일 뿐이다. 하지만 칼란은 유노 사제라는 사람에게서 희망을 봤다. 올도는 오히려 유노 사제를 원망했다. 희망을 가질 수 있다는 것 조차 몰랐으면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유노에게 조용히 욕을 내뱉은 올도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기에 있어봤자 바뀌는건 없으니까. 몇 걸음 옮겼을까. 갑자기 안에서 칼란이 오두막의 문을 마구 두드렸다.


“뭐야!”


큰 소리에 부제들이 다가온다. 올도도 놀라 문 근처로 다가갔다.


“칼란. 무슨 일이냐.”

“아저씨! 엄마가 숨을 이상하게 쉬어요! 제발 사제님을 모셔와주세요! 제발요!”


올도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부제 하나가 문을 걷어찼다.


“야! 유노 사제님은 이미 떠나셨어! 카디즈에 계시지도 않은 분을 어떻게 불러오냐! 조용히 해!”

“사제님은 오시기로 했어요! 제발요!”


부제들이 낄낄거린다.


“주교님께서 이미 사제님을 칼스타드로 모셨다니까. 조용히하고 있어. 나오고 싶으면!”

“거짓말하지마!”


오두막이 떨린다.


“야, 야! 뭐하는거야! 그만 두드려!”


부제가 들고있던 막대기로 문을 툭툭 치면서 말했다. 하지만 올도가 보기에 이건 오두막을 손으로 두드리는 진동이 아니었다. 올도는 본능적으로 몇 걸음 물러섰다. 진동이 점점 커져 지진이 난 것 마냥 떨리기 시작했다.


“아니, 안에서 도대체 뭘 하길래···”


쾅!


오두막의 벽이 터져나갔다. 거대한 무언가가 주변을 휩쓴다. 오두막 주변에 있던 부제들이 그것에 얻어맞고 저 멀리 튕겨져 나간다. 부제들은 그대로 쓰러져서는 움직이지 않는다. 그들을 걱정할 법도 하지만 올도도 코가 석자다. 그림자가 뭉친듯한 거대한 존재가 올도를 향해 다가온다.


“아저씨.”


그림자 덩어리의 중심에서 올도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오두막에서 나왔고 자신을 아저씨라고 부른걸 봐서는 칼란일 것이다. 칼란이 이런걸 했다는 건가.


“칼란··· 큭!”


덩어리에서 검은 줄기가 뻗어나와 올도의 다리를 잡고 들어올렸다. 엄청난 압력. 다리가 터져나갈듯하다.


“사제님 어딨어요?”

“나도 모른다. 칼란. 정말이야.”

“올도 아저씨가 모르면, 카림 주교는 알고있을까요?”

“그,그래. 그럴거다. 아까 부제들이 하는 말 들었지. 카림 주교가 유노 사제를 칼스타드로 보냈다고 했으니 그는 알고 있을거야. 일단 진정···크악!”


다리를 잡고있던 줄기가 순간적으로 콱 조였다. 우두둑 소리가 들리며 다리가 뒤틀린다. 분명히 부러졌다.


“이 정도로 끝난 걸 다행인 줄 아세요.”


검은 줄기가 올도를 놓자 공중에서 머리부터 떨어진다. 머리를 부딪힌 충격과 다리의 통증으로 정신이 혼미해진다. 흐릿해지는 시야로 칼란 주변의 검은 무언가가 젤라를 감싸는게 보였다. 그것이 올도의 마지막 기억이었다.


-----


“저도 어제 낮이 되어서야 간신히 정신을 차렸습니다. 들어보니 이미 칼란이 교회로 가서 거의 박살을 내놨다더군요. 카림 주교는 그 때 교회에 없어서 사제들이나 부제들 몇이 다치는 정도로 끝났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제 이후로는 아무 일이 없는건가?”


아직 몸이 많이 힘든지 올도는 물을 들이킨 뒤 말을 이었다.


“네. 아직까지는 칼란이 발견되었다거나 하는 말은 없는 것 같습니다. 카림 주교는 교회가 습격당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시장의 성으로 숨었습니다. 병사들이 지키고 있을테니 칼란도 섣불리 달려들지는 못할겁니다.”


성으로 숨은 카림 주교. 어떤 힘인지는 모르겠지만 갑자기 엄청난 무력을 가지게 된 칼란. 칼란과 같이 있는 상태 불명의 젤라. 누구를 먼저 만나야할지, 일을 어떻게 해결해야할지 막막하다. 아, 그러고보니 칼란의 동생들이 있었지.


“칼란의 동생들은 어디있지?”

“그게··· 제가 정신을 잃은 사이 카림 주교가 사람을 시켜 데려갔다더군요. 아마 시장의 성에 같이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최악이다. 인질까지 있다니. 목숨이 위험하니 막 나가기로 한건가? 카림 주교의 성격을 생각하면 인질들을 앞세워 칼란을 끌어내어 죽일 수도 있다. 물론 대외적인 이미지가 있기에 당장에는 안전장치 정도로만 사용하겠지만 사태가 길어지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 인명피해가 일어나지 않게 하려면 내가 나서는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아랫마을에 자네 말고도 아직 사람들이 있겠지. 일이 마무리 될 때 까지는 잠시 성 안에 가있어. 최대한 빨리 일을 끝낼테니.”

“저도 그러고싶지만 납품해야할 물건들이 있습니다. 그걸 마무리를 해야···”


올도의 말에 미트리가 떠올랐다. 카림 주교가 여기서 손을 떼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가 미트리에게서 오는 뒷돈 때문일것이다. 미트리와 카림 주교의 관계를 이용할 생각을 하자 얼추 계획이 세워진다.


“미트리에게는 내가 말해놓지. 걱정말고 숨어있어. 길어봐야 하루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갈 곳이 많다. 카림 주교도 봐야하고 미트리도 만나야한다. 미트리가 집에 있어야할텐데.


“아, 다리는 고쳐놨으니 더 이상 부목은 하지 않아도 돼. 어서 내가 말한대로 해.”


내 말에 멍하니 다리를 만져보는 올도를 뒤로하고 나는 성으로 향했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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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유노, 발을 담그다 (5) 24.09.14 15 0 12쪽
11 유노, 발을 담그다 (4) 24.09.13 15 0 11쪽
10 유노, 발을 담그다 (3) 24.09.12 16 0 11쪽
9 유노, 발을 담그다 (2) 24.09.11 18 0 12쪽
8 유노, 발을 담그다 (1) 24.09.10 27 0 11쪽
7 유노, 전염병을 마주하다 (5) 24.09.09 23 0 12쪽
6 유노, 전염병을 마주하다 (4) 24.09.07 23 0 12쪽
5 유노, 전염병을 마주하다 (3) 24.09.06 23 0 12쪽
4 유노, 전염병을 마주하다 (2) 24.09.05 27 0 12쪽
3 유노, 전염병을 마주하다 (1) 24.09.05 26 0 13쪽
2 은호, 유노가 되다 (2) 24.09.04 26 0 12쪽
1 은호, 유노가 되다 (1) 24.09.03 44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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