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즈음에 기형도의 복수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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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기형도
그림/삽화
박준기형도
작품등록일 :
2024.09.04 2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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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2 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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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6 0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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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쪽

<2편 기형도식 복수전>

DUMMY

2편



김명수의 아버지가 죽던 그날.


나는 거기 근방에 있었다.


그리고 여기서 거기는 명수의 집 부근 큰 사거리다.


그날 나는 녀석의 집근처 - 명수의 집주소는 5년전부터 알고 있었다 - 에서, 중고로 구입한 코란도를 몰고 어슬렁거리듯 배회했다.

나름 티나지 않게 지역을 순찰하듯 혹은 지나가는 과객인냥 운전하며 돌고 또 돌고 있었다.


차가 생겼다는 묘한 호기심 반에, 만천하에 얼굴 내비치는 뚜벅이에서 차속에서 얼굴 가리는 익명성으로 생긴 용기 반이 더해진 결과물이 그날 초저녁의 행차 본색이라 하겠다.


사실 명수의 집은 내가 사는 곳에서 멀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가까운 건 아니었다. 그보다 나는 정말 김명수란 녀석이 거기에 살고 있는지 그게 참 궁금했던 것 같다.


나는 취업 후 돈을 좀 모았고, 모든 돈으로 검정색 코란도를 전남 광주까지 가서 시세보다 한 50만원 저렴하게 구입했다. 취업 후 1년이 지났으니 서른 살 무렵이었네.


그러니까, 생각해보니 ‘서른즈음에’ 였는데, 나는 고등학교 졸업 후 11년이나 지나서도 녀석이 무심코 펼쳐놓은 그물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질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코란도로 녀석을 혹은 녀석이 타는 차를 밀어버리겠다는 생각은 그야말로 상상이었을 뿐.


왜냐하면, 정말 이거 속된 말로 쪽팔리는 얘기지만, 막상 녀석이 산다는 동네에 와 있는 ‘나’자신이 어딘가 겁에 질려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내심 당황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게 이제 좀 컸다고, 나이도 서른은 넘었겠다, 나는 차속에 있는 나를 속여보겠다며 그걸 꾹꾹 억눌렀다. 외려 좀 과장스럽게 짐짓 의연한 척 애쓰며 차속에 앉아 있었다


코란도 차속에서 운전석 의자를 한 45도 정도 넘겨 눕듯이 앉아 지평선을 바라보듯 큰 사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퇴근 시간이 지난 7시 무렵의 부촌의 커다란 사거리.


땅거미가 찾아오지만, 주홍빛 노을 햇살이 비스듬히 교차로를 내비치며 한껏 땅거미를 밀어내며 버티고 있다.


그 산란의 와중에 벤츠며 아우디 같은 수입 외제차들이 신호 대기선에서 끔뻑거리고 있고, 각 대인교차로 정지선에는 온갖 직장인과 학생과 주부들이 가득한데, 이 정경이 나를 사로잡은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고등학교 1학년때였던가 명수네 아파트가 58평 이란 얘기를 어디서 스치듯 분명 들은 적이 있다. 옆에 있던 애들이 우와 그랬던가.


그때 내가 살던 주공아파트가 13평이었다.


명수가 사는 아파트촌은 신도시에 계획적으로 만든 부촌 지역이었다.

대로도 넓고 교차로 사각 꼭지점 부분의 인도 경계에서는 커다란 나무가 높다랗게 서 있어, 꽤 근사해 보였다.


커다란 사거리 교차로 주변에 심지어 그 흔한 가로등 하나 없다고 해보라. 썰렁하다 못해 얼마나 휑해 보이는지.


김명수는 그 동네의 최고급이라는 헤러티지W 고층에 살고 있었다.


딱 보아도 유독 치솟아 있는 게 내가 서 있는 사거리에서도 보일만큼 거대한 아파트였다.

물론 부러웠다. 하지만 부러움의 양상이 전개되자 나는 좀 그게 삐딱해진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무척 비논리적이라고 해야 할까.


김명수 집이 부자인 건 사실 나와 하등의 관계가 없는 일 아니겠는가.


그런데 학창시절에 녀석이 나같은 조무래기들을 때리며 히히덕거릴 때조차 녀석은 이미 아파트가 58평정도되는 집에 살았다는 그 사실이, 너무나 그것도 되게 부당해보였다. 왜? 내가 녀석에 맞았으니까? 침이 묻은 슬리퍼로 내 얼굴을 때렸으니까?

맞다. 녀석은 안전한 비행으로 학창시절을 마무리 했다.


덕분에 나는 개구리가 되었고.

무심코 던져진 안전한 비행으로 내 머리는 터지고, 코피가 흘렀다.


이게 무슨 말인고 하니 쉽게 말해서 김명수라는 개새끼가 누린 행복 안에 나는 작은 부품 조각처럼 역할을 했다는 말인데....


나도 안다. 무척 억지스럽다는 것.


하지만 나는 그 사거리 구석 갓길에 중고로 싸게 구입한 코란도 –옆면과 하부에 녹이 좀 들은- 차 안에서, 내 마음이 그럴진대 그게 진실 아니겠냐고...


갑자기 실소가 터져나왔다.


내가 미친놈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아니 퇴근을 했으면 집에 가서 빨래를 하거나 책을 보든가, 아니면 친구를 만나 술을 마셔야지.


지금 나는 내가 사는 동네도 아닌 사거리에 와서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정말 모르겠다고, 생각하자 황당하게 웃겼던 것인데...


그때, 내 허탈한 냉소와 자조를 그야말로 단칼에 찢어버리는 굉음이 들렸고, 나는 눈을 들어 보았다.


전형적인 교통사고의 굉음소리였지만 정말 무시무시한 소리였다.


보는 건 사실 의미가 없을 정도였다. 찰나의 순간이라고 해야 하나.

봤던 것 같기도 한 잔상만 남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엄청난 굉음이 쑥 사라지자 사거리는 정적에 휩싸이고.


그러다 광풍처럼 쏟아지는 고함소리와 클랙션 소리가 뒤죽박죽.


내 코란도가 서 있는 곳에서 거리가 좀 있었지만, 움직임이 다 보였다.


차량 두 대가 그야말로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이 찌그러져 반대편 차선의 길가에 처박혀 있다.


차가 아니라 철과 알루미늄 합작으로 생겨난 쓰레기 뭉치 같았다.


다행히 불길은 없었고 생겨날 기미도 안 보였다. 연기가 부근을 다 가릴 정도로 피어났지만 이내 사라지고 있었다.


세상이 정지된 듯한 그 순간이 지나자 주위를 지나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묘한 호기심과 걱정으로 사고 차량에 모여들기 시작하는데.


이건 원체 사고가 너무 컸다. 두 차량 안에 몇 명이 탔는지 모르지만 전원 즉사했다고 보일 정도였으니.

직후 소방대와 경찰차의 사이렌 소리가 묘한 간격으로 교차하며 요란하게 울리며 다가왔는데도, 사거리 정지 선에 있는 차들은 움직일 줄을 몰랐다.


난 왜 그런지 그 이유를 그때서야 알 수 있었는데.


두 차량이 전파되듯이 부서지며 문짝처럼 큰 파편들이 사거리 가운데를 부분 부분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혹시나 하고 김명수가 사는 동네에 와서 배회하다가 기회되면 김명수를 스쳐 지나겠지 했는데, 이 사고 장면을 본 이후로 명수는 사실 잊고 있었다.


사실 이렇게 가까이서 교통사고를 본 건 처음이었다.


정말 놀라운, 무지막지한 광경이었다. 다시는 잊을 수 없을 정도로...


나는 딱히 할 게 없었으니 사고 첫 장면부터 수습되는 과정을 그야말로 눈으로 녹화하듯이 차속에서 생생히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사거리의 사고 부근에 거기 사람들이 막 분주하게 돌아다니며 뭉쳐 있는 그곳에서 한 남자를 본다.


처음엔 그냥 저냥 영혼없이 바라봤던지라 전혀 감지하지 못했다.


그러다 갑자기 혹시나 하고 왔건만 우와 정말 이 동네에 김명수가 사는 거야? 싶은 거였다.


그런데 뭐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갑자기 드는데, 내 가슴이 차갑게 식는 건 둘째 치고, 웬지 저기 서 있는 저 남자, 김명수란 사람의 가슴이 차갑다 못해 얼어버리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니까 사고 후 20분 정도 지나 사고 차량과 시신의 수습이 마무리 될 때 김명수로 보이는 사람이 거기로 다가서는 걸 봤다.


아니 처음부터 거기 있었던 건지, 이제 막 도착한 건지 정확히 모르겠다. 한데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나는 거길 떠나지 않고 있으며, 똥마른 강아지처럼 배회하는 한 남자가 바로 그 남자가 정확히 김명수라는 걸 대번에 알 수 있었다.


지난 11년간, 나는 녀석을 꿈속+상상속에서 합하면 대략 총 일백 번 정도 죽였을까?


그리고 나는 김명수란 녀석이 태권도 복장을 하거나 혹은 태권도 비슷한 겨루기로 나오는 꿈을 한 오백 번 정도 꿨던 것 같다. 그때마다 등 뒤는 식은땀으로 젖어버렸다.

땀이 식어서 냄새가 나서 그런지 내내 불길한 꿈이었다.


한데 사실 그같은 김명수가 저기 서 있는데 내가 알아보지 못한 다는 게 말이 되지 않는 거지.


그런데 갑자기 뭔가 내 뒷통수를 후려치듯 드는 생각이 이거였다.


- 아니 근데 저 새끼가 왜 저기 계속 있는 거지??


이 의문은 자연스럽게 사고를 당한 사람과의 관계로 이어붙는 것이었고.


그렇다고 내가 차에서 내려 저기에 다가가, 네가 김명수냐, 정말 오랜만이다, 근데 사고 난 사람이 누구냐,무슨관계냐? 가족이냐, 혹은 형제자매냐, 이렇게 물어볼 수는 없는 일이지.


벤츠였는데도 불구하고 음주 운전을 한 5톤 트럭이 신호위반을 해서 100키로 이상으로 추정상 140km로 부딪히니, 아무리 벤츠라고 해도 그냥 휴지 조각처럼 구겨지고 말았던 것.


그러니까 벤츠의 차주는 김명수의 아버지였다.

내가 찾아간 날, - 아니 엄밀히 말하면 녀석을 보러 간 것은 아니지.- 하지만 여하튼 그날 그 사고를 내가 목격해 버린 것이었는데.


이날부터 나는 이전보다 더욱 코너로 몰리게 된다.


그날 사고가 나서 뭐 내 아버지 아니니까 남일이잖아. 명수 아버지 안타깝고 불쌍하지만 돌아가셨네, 하고 나름 경황이 없어 그냥 가볍게 의미없게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밤이 깊어지자, 손발이 덜덜 떨기 시작했다.


졸업 후, 김명수가 내 뺨을 발차기로 때린 그 날부터 이후로 난 녀석을 죽이고 싶었다고 고백했었지만, 그후로 꿈에서 지속적으로 나타나 내 영혼을 갉아먹으니 난 한 번씩 저주를 내렸던 것 같은데.


그걸 그날 사고 장면을 봤던 순간에는 그런 저주를 완전히 까먹고 있던 것이었다.


물론 안다.

내가 내린 저주가 그날 그렇게 정말 소원을 들어주듯이 이뤄진 것도 아니고.


설마.


내가 김명수 가족 누구라도 그냥 뒈져버려랴! 하고 아무리 저주를 내린다고 해도 그런 저주로 그런 일이 일어날 확률은 거의 없으니까.


아니 일어난다고 해도 그 저주와 관련성을 어떻게 인간이 알 수 있단 말인가.


그런데. 여하튼 말은 그렇다는 말이고 나는 아무리 냉정하게 생각을 해보려 했지만 그게 되질 못했다.


김명수의 아버지의 사고사가 마치 내가 벌인 일인 것처럼 확대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했던 것인데...


김명수의 아버지가 불의의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고, 녀석이 고등학교때 내게 벌인 학폭이 사라진다거나, 혹은 내가 겪은 고통이 그만큼 줄거나 사라지는 건 아니겠지.


아닌 만큼 내게 더욱 심적 고통이 배가되며, 학창 시절의 그날의 장면으로 돌아가는 빈도가 더 늘어나니 그야말로 아이러니했다.


나는 그날 차도 있겠다 싶어, 차를 이용해 녀석의 근거지를 한 번 스윽 탐색해보려는 의도였다는 게 내 본심이었는데...


내가 아무리 이런저런 합리화를 한다고 해도 내가 그걸 누구에게 말할 수 없는 거겠지만, 말한다 해도 누가 그걸 믿겠으며 이해해 준단 말인가.


결국 인연 선이 흐르다 흘러 최악으로 간다는 악연이란 말인가.





- 너 그때 나한테 왜 그랬냐?


무섭게 초 시간이 흘렀다. 침묵이 깊고 느렸다.


시간이 간다면 대개 내심 째깍째깍 하며 의성어가 떠오를 법한 데 녀석의 침묵 앞에서 나도 무아지경에 빠지고 만 것이었을까.


녀석은 날 학폭한 거 말고 또다른 죄가 많았을까.


녀석은 역시 강단이 있었다. 끝내 아무런 말을 하지 않을 모양이었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 대찬 녀석이다. 그러니 낭랑 십팔세 시절에 나같은 조무래기 같은 게 껌이었겠지.


하지만, 나는 기형도의 서른즈음으로 다시 한 번 더 말할 수 있었다.


- 너 그때 나한테 왜 그랬냐?


뚝...


김명수는 전화를 끊어버렸다. 음 정확히 말한다면 통성명을 못했으니 김명수로 추정되는 사람이 전화를 끊었다.

나는 그 남자를 명수로 알고 ‘너’라는 호칭을 썼지만, 남자는 자신을 명수로 인정하는 발언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존재의 구분 역시 확실치 않다.

이건 명확한 사실이다. 그리고 나또한 녀석에게 너가 나한테 무슨 짓을 하긴 했는데 왜 했냐고 물었지만, 그 일이 무엇인지, 그리고 대상인 내가 누구인지 밝히지 않았기 때문에 김명수로 추정되는 남자도 당연히 나를 모를 것이다.


그렇게 한 밤의 한판 승부는 무승부로 끝났다.


하지만 기형도의 효과는 대단했다. 내가 사십 언저리니 40년 동안 살아오면서 내 가슴 속에 지구의 핵같은 곳에서 올라오는 본능적 행동을 실행한 것은 단연 처음이다.


정말 짜릿했다. 귓가에 들리는 소리 주위의 공기의 무게가 달라진 것 만 같았다.


난 벙어리가 아니지만, 나도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나도 말할 수 있다’ 라는 경험칙은 굉장했으며 소중했다.


나는 오늘 경험으로 터특한 이 기법을 ‘기형도의 복수’라고 칭하기로 정했다.


..


그리고 남은 최나연에게 써먹기로 마음 먹었다.


그녀 번호를 알아낸 건 쉽지 않았다.


- 여보세요?


- 최나연 선배?


- .......누, 누구세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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