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즈음에 기형도의 복수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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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기형도
그림/삽화
박준기형도
작품등록일 :
2024.09.04 2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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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2 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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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8 0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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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편> 너 때문에 내 인생에 빨간 줄 그어질 뻔 했다고! -1-

DUMMY

하고 싶은 말은 해야 한다.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한다와는 좀 다르지.


나는 그동안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고 살았을까?


떠올려보니 셀 수 없을 정도로 참은 게 많더라.


그렇다고 그 모든 걸 적어놓을 정도로 철두철미한 성격도 아니고.


그렇다면 과연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고 살았다면, 아니 그 중 몇 개라도 했더라면 내 인생은 바뀌었을까?


하 웃긴다. 이런 하나마나한 생각에 꼬리를 물고 있다니. 역사에 만일이 없듯 내 인생도 만일은 없을 테지.


하지만 어젯밤 일을 겪고 나서 확실히 알게 된 게 있다.


하고 싶은 말을 했을 때와 안 했을 때의 차이 그 질감이라는 것을.


그건 손바닥에 똥이 묻어 있을 때와 아닐 때의 차이만큼 선명한 질감이었다는 것을 밝히고 싶다. 특히 지금의 나로서는.

똥이라니, 똥이라니. 이해 바란다.


있다면 뭐 당연한 말이겠지만, 후일 그 ‘만일’을 생각하지 않도록 이제 미연에 방지해 보자는 게 늦은 내 다짐이라고 하겠다.


어제의 뒷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김명수와 애매한 무승부 후에 타겟으로 삼은 최나연.


불혹을 넘어선 나에게 아직 그녀를 향한 감정선은 애증의 교차점에 있다.


다만 증오의 감정이 애정보다 크다는 게 명확한 거고.


그리고 그 배경엔 세 개의 일화가 있다.


명수와 달리 비록 짝사랑이었지만, 남녀간의 문제로 협착되는 일인지라 나 혼자 별 앰병지랄을 했더라도 남는 게 있더라.


그리고 꼭 이 짝사랑 이야기를 꺼낼 때 나는 이걸 서두에 걸어놓는데, 최나연이 아무리 싫더라도 그녀에 대한 내 최소한의 예의, 매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남들이 보면 뭐 이런 같잖네, 못난게 지 걱정이나 하지 어디 여자 걱정이냐 하겠지만...아니다. 무슨 여자 걱정인가. 내 코가 석잔데. 이게 정말 우울하기 짝이 없는 이야기인데... 그 정도로 최나연은 나를 단 한 번도 사람으로 취급해준 적이 없었다.


계속 이 부분을 언급하니 꼭 강조하는 것 같은데 절대 아니다. 아니 외려 이 부분을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야 그녀에 관한 무슨 이야기든 나는 떳떳하다는 입장이다.


이게 말하다 보면 감정선이 계속 상승선을 타면서 오버하게 마련인데, 딱 지금도 그렇다.


내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식으로 내가 비록 못나고 걔 스타일은 아니어 무시받을 수 있으나, 내 존재 자체와 의의를 싸그리 무시당할 수는 없는 법이다.


내가 그런 점까지 감수하고, 물론 이 과정엔 그녀를 향한 무척 오버스런 감정이 한껏 치솟았지만, 그래서 마지막이랄 수 있는 영영동파출소에서 그 수모를 당했지만....


나는 이제나저제나 떳떳하고 당당하다. 믿거나 말거나 나는 이걸 꼭 말하고 싶은 것이다.


이게 사실 상당히 낯부끄럽고 속된 말로 쪽팔리는 이야기지만, 그럼에도 그나마 최나연과 그런 기억조차 없었다면, 그녀의 나를 향한 무시와 터부시와 부인, 그리고 내 부서진 자존감, 기타 등등 이런 거 저런 거 다 상관없이 정말 비참했을 것이다.


일화를 표징으로 걸어보면, 보디가드 커피숍, 대학교 기숙사, 그리고 영영동파출소 이렇게 그림이 나온다.


다 장소지만 ‘표징’이란 단어를 부여한 이유가 물론 있다. 특별한 이유는 없으나, 일반적인 연애사의 관점에서 유추가 좀 가능하리라고 본다.


솔직히 최나연과 통화 이야기를 길게 빼고 싶지는 않으나, 이게 백데이터가 없으면 그냥 나뭇잎 하나 없는 나무줄기나 다름 없기 때문이다.


보디가드 커피숍에서의 첫 기다림! 대학교 기숙사에서의 두 번째 기다림! 그리고 영영동파출소에서 완전한 파국.


성경에서 예수가, 너희들 중에 첫 닭이 울기 전 세 번 나를 부인할 것이라는 말씀이 나온다.


내 꼴에 예수의 일화를 빗대는 건 좀 많이 주제 넘은 것 같지만, 한 존재를 부인하고 터부시하는 사례로서는 가장 비슷해 보여서 언급했고.


앞으로 기회가 된다면 물론, 보디가드 커피숍과 기숙사에서의 기다림에 대한 일화를 꺼낼 것이고, 오늘 중점적으로 다룰 것은 어제 통화와 직결된 마지막 에피소드다.


에피소드라고 하니까 개념대로 재미있는 이야기라거나 알려지지 않은 토막 이야기 같은데, 사실 그건 경찰들이 공식적으로 접수하는 하나의 ‘사건’이었다.


내가 먹고 대학생 신분인 걸 알고 당시 영영동파출소 직원들이 불쌍하고 안타깝게 여겨 봐줬기에망정이지 아니면 유치장 신세를 졌거나 더 크게는 빨간 줄 까지도 그어질 정도로 아슬했다.


하필 ‘기형도식 복수전’은 내 인생 전환점에 있어 철저히 비밀이다. 그래야 가정이든 직장에서 모르게 써먹을 수 있는 거니까.


언급했지만 난 기형도 시인을 썩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기 시인의 시를 좋아하지 않는다. 어렵다기보다 난해하다? 도통 무슨 말인지 모르긴 매 한가지인데, 유독 뇌피셜을 이리저리 해매게 하니 한편 한편 읽을수록 심하겐 스트레스 받을 정도다.


현대인의 고독과 좌절, 센틸리즘 같은 거를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여공들이나 노동자의 죽음을 얽혀내며 형상화에 성공?했다는데 나는 그 중 단 한 개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더라.


그런데 기 시인의 유일한 출판시집에서 제목으로 걸어놓은 ‘입속의 검은 잎’시를 최근에 다시 읽다가 깜작 놀랐다.


시의 개념을 절묘히 포착해서 무얼 알았다는 게 아니다. 나는 그 시에서 언급하는 택시 운전사란 단어를 읽고 전율을 느꼈다. 무릎이 탁 쳐 지더라. 의미는 상관없다. 그와 내가 사는 시공간이 다르지만 그저 ‘택시 운전사’라는 단어로 감정 이입에 동일체 된다는 시적 상상력으로, 나는 기형도 시인의 친구가 된 기분이었다.


그러면서 나는 이거 기형도 시인의 뽕이 내게 주입된 게 내 억지춘향식 합리화는 아니잖아, 라는 생각이 들어찬 거다. 이런 희열은 물론 드물기도 하지만, 그래서 반갑기도 하지만 위험성 또한 있음을 안다.


왜냐하면 오직 내 주관적 관점에서의 논리적 구성이기 때문이다. 이게 논리건 비논리건 이걸 만일 마음먹고 때려잡고 싶어 달려든다면 나는 백전백패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나는 기쁘기 짝이 없다. 물론 시적 내용은 내가 겪은 일화와 완전히 다름이 명백하다. 하지만 나처럼 일차원적 사고를 즐기거나 단편적 사건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능히 내 일화를 이해해 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래서 각주를 달아야 함에도 굳이 ‘입 속의 검은 잎’시의 서두 일부를 인용해본다.


택시 운전사는 어두운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이따금 고함을 친다, 그때마다 새들이 날아간다*........


새들이 날아가는 이유를 나는 모른다.

하지만 고함을 치는 택시 운전사라....


스물 다섯 살의 그 밤, 나는 우연찮게 고함을 치는 택시 운전사를 만났다.


집에서 외조모가 차려준 저녁을 먹고 후다닥 방으로 들어온 나는 윈도우98을 부팅시킨 후 드르럭 거리는 하드 소리를 감상했다.


길고 지난한 소리였지만 당시에는 당연한 거라 지루함을 느낄 수 없는 시간. 윈도우98 바탕화면의 창연한 화면이 호기심 가득한 환희로 다가옴을 알기에.


나는 배포판 쉐어웨어 MP3플레이어를 실행시킨 후 시디에서 추출해서 한 곡으로 녹음 시킨 퀸의 ‘러브 오브 마이 라이프’를 듣기 시작한다.


프레디 머큐리가 영국에서부터 유럽까지 대박이 나고, 미국 공연에 이어 남아메리카까지 세계 투어를 다닐 때 아내를 그리워하며 썼다는 곡인데, 알게 모르게 향후 자신이 양성애자가 될지도 모른다는 염려가 투영되며 사랑의 파국 그 비극을 노래한 게 아니었을까, 라는 게 내 생각이지만...


아무튼 나는 이 곡을 들으며 최나연만 오직 생각했고, 최나연만 오직 생각하다보니 나를 전혀 사람 취급해주지 않는 최나연에 몰입되며, 그 최나연이란 사람이 보고 싶은 건데, 그 감정을 주체할 수가 없더라.


그리고 아주 조금 과장하자면, 성적인 욕구의 분출과는 완전히 무관한, 플라토닉 러브의 결정체가 한 알씩 한 알씩 사리가 되어 몸 속 어딘가에 따박따박 저축되는 소리가 떼구르르 들릴 정도로 착각 아닌 착각을 했으니 말 다했지.


그리고 첨언하자면 당시까지도 숫총각이던 나라는 사람이 있었고. 사리란 게 기회가 된다면 정말 내 몸속에도 생길 수 있는 것일까 하는 호기심을 억누른 채 사는 사람.


냉정히 떠올려보면 퀸과 프레디 머큐리가 만든 음악의 선율에 포박되어 버린 것이었다.


나는 바로 튀어나가 아파트 상가 끝자락의 동네마트 앞에 서 있는 택시에 올랐다.


거기에 택시 운전사가 앉아 있었다. 등판이 널따란 내 또래 남자.


- 어디?


내가 뒷좌석에 앉자마자 대뜸 반말이 날아왔다.


나는 ‘어디’라는 반말을 계속 곱씹었다.


택시를 타자마자 내 머릿속에서 최나연을 바로 지워버리는 이 마법은 지금 회자되는 표현대로라면 일종의 가스라이팅정도 되지 않았을까.


처음에 심장은 이건 뭐지 하며 차갑게 반응했으나, 이후 어쩔줄 몰라하자 내 심장은 쿵쾅 거리기 시작했다.


이걸 반격이라고 해야 하나.

그냥 , 네, 영영동 무슨 아파트로 가주세요, 할 수는 없었던 것일까.


택시 운전사가 젊어 보여 내 또래인가 싶었는데, 나보다는 서너 살 많아 보였다.


그럼에도 난 끝끝내 존댓말을 꺼낼 수 없었다. 아니 안 꺼냈다.


내가 좀 외모가 떨어지긴 했지만, 내 자존심을 박살 낸 최나연이를 그것도 무려 3년 만에 느닷없이 너무 보고 싶어서 만나려 가려고 택시를 탔는데, 하다 하다 내게 반말을 하는 택시 운전사를 만난 거네?


이게 짧은 순간이었으나, 나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런 상황을 좌시한다면, 당시 내가 택시라는 시공간에서 느낀 감정과 공기의 밀도, 실내의 향취와 기압, 택시기사의 신체 노화지수, 공기의 산소 함유량 등 이 상황을 만든 수백 수천 수만가지의 계량적, 정성적 수치와 그 총합까지와 총합이 드러내는 엔트로피까지...


이 모든 게 나름 조화가 되어 내 눈앞에 짜잔 하고 나타났다는데, 이 걸 그 수많은 노고와 분위기와 바닥의 눈치까지 보며 쩔쩔매다가 좌시하고 인정해버리면, 앞으로 그걸 자초한 내게만큼은 계속 반복되며 지속적으로 나타날 것이라는 예감 정도는 이미 경험칙화 되었던 셈이다.


바꿔서 이걸 짧게 말하면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줄 안다.


그렇다고 내가 생판 얼굴도 처음 보는 택시 운전사를 앞에 두고, 아니 왜 손님에게 반말을 하고 그러세요? 라며 딴지를 걸 정의의 사도도 아니거니와 나는 당장 시간이 급박했다.


여하튼 간만에 최나연에게 흠뻑 빠져 있는 내게 택시 운전사의 반말 따위는 사실 발톱의 때보다도 못한 일이어야 하거늘, 나도 꼴에 성인이랍시고 쉽사리 용납지 못했던 것이었으니.


- 영영동.


나는 짧고 굵게 답했다.

이게 나름의 최선이었을 것이다. 기억으로 영영동이다, 라고 조사를 붙이진 않았으니. 그건 도발이니까. 한판 붙어보자는. 최소한 그거는 싫기도 싫었거니와 우선은 어서 영영동으로 가야만 했으니까.


이게 참 웃긴 게, 최나연을 향한 내 감정선을 잃고 싶지 않았는데 아니 그게 뭐라고, 생활비처럼 쭉쭉 빠져나가는 것도 아닌데... 아무튼 나는 그게 행여나 찢어진 모래주머니에서 빠져나갈 스르륵 모래처럼 빠져나갈봐 전전긍긍.


그 짤막한 답이 확실히 효과가 있었다.

도발은 아니고, 지가 반말을 했으니 나도 똑같은 수준에서 응대한 게 확실했으니까.

그때서야 택시 운전사가 가운데 백미러로 나를 쳐다보기 시작했다.


나는 짐짓 모른척 했다.


찰나의 순간, 내 눈을 백미러에 슬쩍 돌려 택시 운전사 눈깔이 상태를 확인하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내가 몰래 시선을 가운데 백미러에 얹으면 그는 운전대 앞을 응시했고, 그가 백미러에 눈깔이를 우측으로 보내면 나는 창 밖의 마트 입구를 쳐다보았다.


음, 미친 놈이 분명했다. 이정도 시간이 경과 했으면 모른척 출발해야 정상 아니겠나.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온 모양이었다. 모기소리만하게, 에휴.


- 어디라고?


음. 갈팡질팡. 바로 최나연인가, 아니면 다른 택시를 탈 것인가.


스물 다섯의 나는 사실 그의 뒷모습을 딱 보아도 우락부락한지라 무서워할 것 같았지만 아니었다.


어른들이 한 번씩 해주시는 말씀따나 어디에서든 누구와 절대 원수지지 마라, 말씀이 참 정답인 거다.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동네 유도관을 찾아가서 ‘강해지고 싶습니다.’한마디로 유도를 배우기 시작해, 2~3년을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다녔더니 유도 단증 2단을 주더라. 그리고 조만간 유도 3단증이 반경에 들어와 있는 상태. 유도 유단자가 된 것은 김명수의 영향이 아니라고는 말 못하지.


아무튼 싸움으로는 택시 운전사가 무섭지 않았다. 그렇다고 쉽사리 승복하고 싶지도 않았다. 이게 뭐라고, 가 아니었던 것이다. 최나연을 무작정 만나러 가는 마당인데, 이렇게 택시 운전사에게 굴욕을 당하는 것은 연장선상에 어울리지 않았으니까.


- 영영동이라고..............요.


나는 애써 합의했다. 길게 빼다가 들릴 듯 말 듯 ‘요’를 붙인 것이다.


기사도 느꼈을 것이다.


그래 님도 보고 뽕도 따고, 이만 하자.

이쯤 하면 되었지. 유치하게 시리


택시는 서서히 출발했다. 급가속은 하지 않는다. 그나마 운전 매너는 정상이었다.


시내를 빠져나간 후 외곽 간선도로를 타자 택시의 가속음이 묵직했다.


거기까지 듣다 까무룩 잠이 들어버렸다.


엄청난 바람이 들어왔고 맞바람이 내 얼굴을 때리며 잠이 깼다. 택시 운전사는 창을 내린 상태에서 어두운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흐으읍...퉤 하고 가래침을 뱉는 것이었다.

바로 이어서 한 마디.


- 영영동 어디라고 했냐?


역시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줄 안다.


이건 정말 아니다.

했냐?고?........ 에휴


* 입 속의 검은 잎. 기형도 시집(문학과 지성사.P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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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즈음에 기형도의 복수가 시작된다.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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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7편> 이렇게 까는 거야? -2 24.09.12 17 0 12쪽
6 <6편> 이렇게 까는 거야? -1- 24.09.12 23 0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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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4편> 너 때문에 내 인생에 빨간 줄 그어질 뻔 했다고! -2 24.09.09 31 0 14쪽
» <3편> 너 때문에 내 인생에 빨간 줄 그어질 뻔 했다고! -1- 24.09.08 43 0 15쪽
2 <2편 기형도식 복수전> 24.09.06 30 0 14쪽
1 <1편 너 그때 나한테 왜 그랬냐?> 24.09.04 70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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