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독시] 전지적 패러디 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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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미도K
그림/삽화
카미도K
작품등록일 :
2024.09.08 09:13
최근연재일 :
2024.09.10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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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8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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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1. 주인공들의 모임 (4)

DUMMY

“여러분, 진정 좀 하세요.”


모두가 내 말에 집중한다. 그게 참 부담스러운데, 생각보다 참을 만하다. 되려 어느 순간부터 자연스러워졌다.

점점 이 세계에 감화되어 가는 기분이다.


“그렇게 흥분해봤자 얻을 수 있는 건 없습니다. 차분히 상황을 정리하고 생각해야만 하죠. 그래야 많은 사람이 살 수 있습니다.”


나는 잠시 시간을 확인해보았다.


[현재 남은 시간 : 22:54]


아직 생각보단 시간이 많다. 이 정도면 설득하고도 충분하겠다.


“심호흡하시고, 그런 다음 이제 저희가 무슨 일을 해야 할지 대화를 나눠야만 합니다.”


내 말에 다들 심호흡하며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정말이지 그 모습에 조금 헛웃음이 나올 뻔했다.


예전에는 내 말에 사람들이 막 따르고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적도 있었는데. 실제로 그런 상황이 되니 별 느낌이 없다. 그냥 해야 할 일만 막 떠오를 뿐이다.

주인공들은 이런 상황을 어떻게 즐기기까지 하는 걸까. 참 이해할 수 없는 존재들이다.


“자, 이제 진정 좀 됐을 테니 대화를 시작해봅시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나는 최대한 여러 사람을 존중한다는 듯 물어보았다. 친절하지만, 그래도 어딘가 다급한 말투. 좀 더 사람들이 내 행동에 진심이라고 생각하게 만든다.

다들 어느 정도 진정되었는지 천천히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어, 어떻게 라니. 방법이 없는 겁니까?”

“저도 당장은 생각할 거리가······.”

“저기, 그. 벌레가 안 된다면 그, 몸에 있는 세균이라든가 그런 건 안 됩니까?”


나는 그 말에 순간 놀라고 말았다. 설마하니 이런 급박한 상황에 바로 창의적인 대답을 내놓을 사람이 있을 줄이야. 머리가 좋은 사람인 걸까. 나는 잠시 그 사람 얼굴을 바라보았다.


<인물 정보>


이름:이승협

나이:15

배후성(背後星):없음(현재 한 개의 성좌가 해당 인물에게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전용 특성: 웅크린 자(일반)

전용 스킬:[창의적인 사고력 Lv.1], [소소한 행운 Lv.2]

종합 능력치:[체력 Lv.1], [근력 Lv.1], [민첩 Lv.2], [마력 Lv.2]

종합 평가:평범하게 운이 좋은 중학생입니다. 엮인다면 행운의 영향력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르니 가까이 있는 것이 좋습니다.


앞에 있던 남자의 정보가 떠올랐다.


‘흠, 그렇군.’


혹시나 뭐 특별한 인물인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닌 듯하다.

그래도 ‘웅크린 자’ 특성은 대단하긴 하지. 일단 언젠간 도움이 될지도 모르니까 기억해두자.


“죄송하지만, 그건 불가능할 겁니다. 그렇게 따진다면 우리 몸에 있는 세포 중 몇몇 개는 지금도 죽어가고 그러는데, 그랬다면 지금쯤 모두가 성공했다는 메시지가 떴겠죠.”

“아······.”

“그래도 이런 의견은 감사합니다.”


나는 다른 사람들을 바라보며 다시 말했다.


“다른 의견은 없나요? 빨리 생각해두지 않는다면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모두가 움찔거리며 고개를 푹 숙였다. 떠오르는 것이 없다는 것쯤 바로 알 수 있는 분위기였다.

나는 그 당연한 분위기 속에서 낙담한 듯한 말투로 작게 중얼거렸다.


“그렇다면, 결국 살인을 할 수밖에 없는 겁니까?”


사람들이 내 말에 놀라며 고개를 벌떡 들었다. 동공이 흔들리며 혼란이 찾아온다. 이곳에 절망이 다시금 다가오고 말았다.

아마 여기 있는 사람 전부 내 말에 부정하고 싶을 것이다. 실제로 입을 뻐끔거리고 있으니까 확실하다. 하지만 이런 상황 속 논리적인 말이 나올 리가 없기에 다들 다물고 있을 뿐이다.


“그래, 이제 너도 알겠지? 어쩔 수 없이 죽일 수밖에 없는 거라고.”


그때 이준철이 당당해진 미소로 앞에 나왔다.


“어쩔 수 없지. 결국 사람을 죽이는 수밖에. 그치?”


이준철이 내 어깨를 툭 건들며 말했다. 그는 벌써부터 승리를 만끽하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런 역겨운 놈.


“자자, 그럼 죽기 싫은 사람은 사람을 죽이자고. 살고 싶잖아. 아직 우리에겐 할 일이 많이 남았잖아. 죽고 난 이후가 두렵잖아. 안 그래? 근데, 여기서 과연 누굴 죽여야 할까?”


사람들이 전부 이준철의 목소리를 집중해 듣는다.


“자, 먼저 벌레 죽이기를 실패한 사람들. 이 질문에 대답해라. 지금 상황이 너무 초조하고 불안하잖아. 이러다가 진짜로 죽는 건 아닌지 걱정하고 있잖아. 맞지? 근데 지금 이런 감정을 못 느끼는 애들이 있는 건 아냐?”


놈이 주변을 훑어보았다. 거기에는 벌레 죽이기에 성공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이 흠칫 놀라 뒤로 물러섰다.


“저 새끼들. 지금 저기 있는 새끼들 그저 자신은 살아남았다고 안심하고 있다고. 우릴 무시하고 있지. 이게 말이 돼? 우린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불안해 죽겠는데?!”


나는 바로 녀석이 뭘 의도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룹을 나눌 생각이군.’


한쪽은 벌레 죽이기에 성공한 사람들, 나머지는 실패한 사람들. 그렇게 나눠서는 싸우게 만들려고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결국 ‘사람을 죽여본 사람들’만 남게 해 자연스럽게 리더가 될 모양이다.


나름대로 영리한 새끼였군.


‘그래서 일부러 분열을 일으키려고 하는 거고.’


그게 아무리 유치한 말이라고 해도,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목소리 큰 것만으로 설득력이 있을 테니까. 선동당하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거지.


‘일단 좀 더 지켜볼까.’


언제 끼어드는 것이 옳을까. 일단 나는 가만히 있기로 했다. 괜히 안 좋은 타이밍에 입을 열어봤자 발언이 묵살이 날 수도 있는 노릇이니까.

무엇보다도.


「지금까지는 의도한 대로다.」


이준철이 입을 연 것도.

그리고 분열을 일으킨 것도.

전부 내 의도 안에서 일어난 일이다. 한마디로 내가 나서야 할 차례는 누구보다 내가 잘 안다는 뜻이다.


그러니 아직은 좀 더 기다릴 때다.


“자, 잠깐만! 그게 무슨 소리야!”


그때 역시나 내 의도대로 아까 그 빙의자가 앞에 나섰다. 녀석은 누구보다 화를 내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마에 주름이 깊게 팼고, 눈초리는 노려보듯 맹렬히 흔들렸다. 그런 상태로 이준철에게 다가갔다.


“뭐? 아무 죄도 없는 사람을 죽이겠다고? 이게······! 넌 진짜 역겨운 놈이야.”

“하, 어쩔 수 없다니까 그렇네? 죽지 않기 위해서라도 누군가를 죽여야 한다고. 이건 그저 생존을 위한 일이야.”

“아니, 근데 그걸 왜 시나리오까지 해결한 사람들을 죽이자는 걸로 되는 건데!”


이준철이 살짝 미소를 지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니까. 근데 말이야······.”


잠시 그가 말을 늘어 틀어 놓는다. 듣고 있는 사람들에겐 엄청난 초조함을 느끼도록. 모두가 침묵한다. 몰입감이 심한 영화라도 보듯 마른침까지 삼킨다.

이준철은 그들의 마음을 알고 있다는 듯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너도, 벌레 못 죽인 것 같던데. 이렇게 나와 싸워도 되겠어?”

“!”


그렇다.

빙의자도 벌레를 못 죽인 것은 마찬가지다. 그건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연약한 몸을 가진 그녀는 뒤늦게 사람 무리에 들어간다는 악조건으로 벌레를 잡아야만 했다. 나와 대화를 나누다 보니 생긴 문제였다.


그녀는 주변을 너무 신경 쓰지 않았다. 그 때문에 결국 잡지 못한 것이다.


그런 주인공이다. 그런 이야기.


연약한 몸을 가진 소녀. 아마 초등학생 여자애조차 쉽게 질 게 보이는 몸을 한 주인공. 주인공이 과연 사람 하나는 제대로 죽일 수 있을까.


「당연하게도 불가능하지.」


그 사실을 빙의자가 누구보다도 제대로 느낄 터. 그녀가 혀를 찼다.


“이봐. 내가 도와줄게. 아까까지 욕한 건 미안했다. 우리 같이 이곳에서 살아남자고.”


이준철이 제안했다. 그 제안은, 완벽한 악마의 속삭임이었다.

연약한 몸을 가진 소녀가 살아남을 수 있다는 기회. 누구라도 그녀 같은 상황이었으면 그 속삭임에 넘어갔을 것이다.

빠져나올 수 없다.


“꺼져.”


그러나 그녀는 정의롭고, 당당한 주인공이었다. 겨우 이런 유혹에 넘어가기에는 너무나도 의젓한 사람이었다.

얼마나 의젓하면 아무 죄 없는 나까지 무시했겠어.


“그래? 어쩔 수가 없네. 참 아깝게 됐어.”


이준철은 정말로 안타깝다는 듯 눈살을 찌푸렸다. 아무래도 이번에는 설득할 수 있을 줄 알았나 보다.


“하지만, 우릴 방해하지 말아라. 방해할 거면, 아까 벌레 얘기마냥 제대로 된 해결방안과 함께 말하라고.”

“······.”


빙의자는 입을 다물었다. 아무리 그녀가 완벽에 가까운 주인공이라고 할지라도 당장 해결법이 떠오르지 않을 거다. 머리가 좋다고 해서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을 터.

특히 전독시를 읽었으니 더더욱 모를 거다.


「벌레도 없이, 아무도 죽이지 않고 살아남을 방법. 이 세계엔 그딴 거 따위 없다.」


그 사실을, 우리는 안다.


“자, 잠깐만요. 아, 아니.”

“지, 진짜로 죽일 생각이세요?”

“오, 오지 마. 오지 마!”


벌레를 죽인 사람들이 천천히 뒤로 물러선다. 그러나 이준철이 무서운 얼굴로 그들에게 다가갔다.

벌레를 못 죽인 사람들이 그걸 바라본다. 여전히 그들은 망설이고 있었다. 하지만 곧 있으면 그들도 이준철처럼 사람을 죽이려고 하겠지.


「문득, 아까 그 빙의자와 눈이 마주쳤다.」


그녀가 나를 바라본다.

나도 그녀를 바라봐줬다.


녀석은 눈으로 말했다. 이 상황 어떻게 할 수 없겠냐고. 단지 눈빛만이었지만, 그런 질문이었음을 알았다.

나는 살짝 씨익 웃어줬다.

마치 ‘김독자’처럼.


「물론 나는 김독자가 아니지만.」


심지어 내가 할 방법은, 김독자가 싫어할 방법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이해는 해주겠지.

그것만으로도 난 충분하다.

그녀도 날 이해해줄 거라는 뜻이니.


「이제 나설 차례다.」


쾅!!


나는 아까처럼 벽을 세게 쳤다.

큰 소리가 사람들의 행동이 멈췄다. 그리고 동시에 그들이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사뭇 달라진 표정으로 분노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은, 또 헛소리를 지껄여 주시는군요?”


이준철이 내 말에 표정을 확 구겼다.


“뭐? 너 지금 뭐라고.”

“아무 죄도 없는 사람을 죽이자니. 이게 합리적이라고 생각합니까?”

“허?”


이준철이 내게 다가와 물었다.


“그럼, 뭐. 다른 방법이라도 있다는 거냐?”


나는 그 말에 잠시 입을 다물었다. 바로 대답해선 안 된다. 조금이라도 더 긴장감 있게 연출을 줘야만 한다.

그래야 여기 있는 사람들이 설득할 수 있으니까.


‘그래. 난 할 수 있다.’


누군가를 설득할 때 굳이 말까지 잘할 필욘 없다. 물론 잘한다면야 좋겠지만, 어휘력이 부족하면 최대한 분위기나 연출을 끌고 오면 되는 것이다.

내가 우위를 점하면 끝날 일이다.


“······곧 있으면 뉴스에 국무총리 연설이 뜰 겁니다. 1급 국가 재난 상황이 선포될 거고요. 먼저 그 뉴스나 보시기나 하죠.”

“뭐?”


내 말에 다들 바로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그들은 전원 얼마 남지도 않은 데이터로 뉴스를 키고는 그 영상을 집중해 바라보았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께 알립니다. 현재 서울을 비롯한 불특정 지역에서 정체불명의 테러리스트들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역시나 원작 그대로 잘 나오고 있었다.


“참고로 대통령은 이미 사망했습니다. 그리고 국무총리도 곧 사망할 겁니다.”


모두가 내 말에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주변 사람들은 입을 벌리고 눈을 몹시 크게 뜨며 몸을 움츠렸다. 그만큼 내 말은 당장 믿을 수 없는 것이었다.

그리고 내 말이 무슨 말인지 제대로 의문을 품기도 전이었다.


“꺄아악!”


곳곳에서 총성이 들려왔다. 대부분 스마트폰을 놓쳐버렸으며 몇몇은 아예 자리에 주저앉아버렸다.

그 떨어트린 스마트폰 안에는 검붉게 칠해진 화면만이 있을 뿐이었다.


[여러분, 제가 말했잖아요. 이건 ‘테러’ 같은 장난이 아니라고.]


그때 화면 속에서 도깨비가 나타나 비웃듯 말했다.


[아직도 못 알아들은 모양이죠? 지금도 이 상황이 게임처럼 느껴지나 봐요? 벌레 몇 마리 죽인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라고요.]


상황은 계속 이해하기 힘들게 흘러간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벌써 미쳤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현재 남은 시간 20분.]


삐빅, 하고 허공에 타이머가 나타났다.


[이제 20분 남았어요. 죽기 싫으면 다들 힘내라구요. 당신네 지도자들처럼 되기 싫다면 말이죠.]


녀석은 일부러 충격적인 장면을 위해 시체가 된 국회의원을 다시 화면에 보이게 했다. 모두가 겁에 질린 채 눈물까지 흘러버리고 말았다.


“이게 뭐야······. 뭐냐고······.”

“흐윽, 엄마. 엄마······.”


벌레 잡기를 성공한 사람들조차 다시 공포에 떨기 시작했다. 이성은 완벽히 다시 마비되었다. 사고가 움직이지 않으며, 그저 무서울 뿐.

이런 상황이라면 내 말을 더 들을 수밖에 없겠지.


「계획대로다.」


나는 혼란 속에서 다시 입을 열었다.


“다들 정신 차리세요. 지금 상황 이제 이해가 가시겠죠?”

“도, 도대체 뭐가 이해된다는······.”

“우리는 여기서 살아남아도 다음이 있다는 거죠.”


다들 내 말이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바라본다. 나는 좀 더 설명이 필요하다는 걸 깨닫고는 잠시 생각을 정리했다.


“뉴스를 봤으면 알겠지만. 이 테러는 전국 아니, 어쩌면 전 세계적으로 일어난 사태일 겁니다. 우리 인간들 손으로 어찌할 수 없는 기현상이라는 뜻이죠.”

“그게 어쨌다는 거냐.”


이준철이 험악한 표정으로 물었다.


“간단합니다. 아마 여기서 어떻게든 살아남는다고 할지라도, 또 목숨이 위험한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거죠.”

“또, 또라고요?”


사람들이 내 말에 헛웃음을 지었다. 비로소 그들은 당장 살아도 앞으로 살 수 있을지에 관한 확신을 못 가지게 된 것이다.


“헛소리 하지 마! 그, 근거가 있긴 있어?!”


그때 어떤 남자가 소리를 질렀다.

나는 그 말에 되레 여유를 가지며 피식 웃었다.


“당연하죠. 앞에 뜬 메시지를 보세요. 저 샵 기호 옆에 붙은 1이라는 숫자를. 누구라도 숫자 1 다음에는 2가 있다는 것쯤 알 겁니다. 다음이 있는 건 분명하죠.”


희망의 빛이 꺼져가며 캄캄한 어둠이 삼켜버렸다. 짙은 검은 안개가 온몸을 에워싸고 숨쉬기조차 힘들 터. 모두가 절망에 빠지는 것은 당연했다.


“그, 그래서 뭐 어쩌라는 건데!”


이번에는 어떤 여자가 내게 물었다.


“제 의견은 이렇습니다. 앞으로도 저희는 계속 목숨의 위협을 당할 겁니다. 어쩌면, 그게 누군지도 모를 사람과의 싸움일 수도 있는 일이죠. 그런 상황에서 무의미하게 더 사람을 죽이게 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뜻입니다.”

“그게 무슨 뜻이죠?”

“한마디로, 더 많은 사람들이 생존하기 위해서라도 벌레 죽이기를 성공한 사람들은 그냥 내버려 두는 편이 옳다는 뜻입니다.”


이준철의 표정이 험악해졌다. 그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내 멱살을 붙잡더니 크게 소리를 질렀다.


“뭐? 내버려 두라고!? 씨발 이게 장난하냐!”


그가 분노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누구라도 제 뜻대로 되지 않으면 화가 날 테니 말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저 행동이 타당하다는 건 아니지만.


“멱살 좀 그만 잡으시죠? 거, 참 더럽게 아프네.”


나는 대충 녀석의 팔을 쳐내곤 옷의 먼지를 털어냈다.


“제 말에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라도 있는 겁니까? 정말 멍청하기 짝이 없군요.”

“이 새끼가······ 후우. 씨발 진짜.”


이준철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당장이라도 날 공격하고 싶은 심정 같았지만, 그런 행동이 무의미하다는 것쯤 느낀 모양이다. 이준철은 분노보단 설득하기로 했다.


“이해가 안 된다는 게 아니라. 씨발 그럼 우리는 어떻게 살아남으라는 거다! 그냥 여기서 다 같이 뒈지자는 소리는 아닐 거 아니냐. 어?!”

“당연하죠. 제 말의 의도는 다 같이 죽자는 것이 아니니까요.”


나는 잠깐 말을 끊고는 심호흡했다.

단 조금의 연출이다. 그 연출로 여기 있는 사람들이 내 말을 따라주기만 한다면, 난 성공하는 것이다.

일부러 분위기를 고조시키며 말했다.


“그저, 많은 사람이 살아남기 위해 소수의 희생이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모두가 그 말에 순간 숨을 들이켜 마셨다. 누군가는 기침하기도, 또 다른 누군가는 소리 없는 비명을 질렀다.

벌레 죽이기에 실패한 사람들은 곧바로 미래에 있을 이야기를 떠올리고 말았다.


“벌레 죽이기에 실패한 사람들끼리만 누굴 죽이고, 죽이질 정합시다. 그렇게 해서 여기 더 많은 사람들을 살리자고요. 다수를 위해 소수를 희생하자. 모두가 인정하는 말이죠?”


나는 벌레 죽이기에 성공한 사람들을 쳐다보며 말했다. 그들을 향해 살짝 미소를 지어주자 눈치 빠르게 입을 열었다.


“그, 그래! 그런 무의미한 살인은 있어선 안 되지! 앞으로 무슨 일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맞아요! 더 많은 사람을 살려야죠!”

“그럼! 옳은 말씀!”


절반가량의 사람들이 내 말에 동의하기 시작했다.

그 사람 전부가 벌레 죽이기에 성공한 사람이라는 것은 설명할 필요도 없는 일이었다. 그들이 내 선동에 잘 따라주고 있었다.


벌레 죽이기에 실패한 사람들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건 이 상황을 받아드려서가 아니다. 감정적으로는 여전히 부정하고 싶을 터. 하지만 논리적인 말이 떠오르지 않으니 반박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 말에는 단 조금의 틀린 말도 없었으니까.」


다수를 위해 소수를 희생하자.

학교에서도 배우고, 군대에서도 배우며, 사회에서도 배우는 당연한 말 한마디. 그게 당연하다는 인식이 있는 이상 반론은 불가능했다.


‘일단 분위기가 과열되기 전에 더 입을 열어야겠군.’


너무 극단적인 분위기로 되어갈 느낌이다.

어쩌면 그냥 벌레 죽이기에 실패한 사람들은 자살하라고 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런 사태는 원치 않기에 더 입을 놀려주기로 했다.


“물론, 아무나 죽으라곤 할 순 없죠. 더 정확히는 살 사람에 대해 제대로 정해야 하는 일입니다. 그냥 운이 좋아서 살리는 건 의미가 없잖습니까? 그래요. 예를 들어서, 유능한 사람이 살아남아야 한다는 소리죠.”


유능한 사람이 살아남아야 한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사람들은 자신이 생존할 방법을 떠올릴 수 있었다. 그래서 내 말에 반박하기보단 자신의 유능함을 외치기 시작했다.


“저, 저요! 저 이래 봬도 수능 올 2등급 이상은 나왔어요! K대까지 다니는 중이라고요!”

“저는 힘이 좋습니다! 이런 사태에선 힘이 제일 중요한 법 아닙니까! 3대 500 정도 친다고요!”

“저, 저는 학교 다닐 때 언제나 반장을 했어요! 시키면 뭐든 할 수 있다고요!”

“아이큐 테스트 120 이상 나왔습니다! 여러 게임도 잘하고요, 아무튼 잘합니다!”


그저 눈앞의 생존을 위해 소리를 지른다.

어쩌면 내 말을 반박하는 것이 더 생존을 위한 유리한 방법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분위기에 휩쓸려 유능해야만 산다는 인식이 박혀버렸다. 그 결과 내가 생각했던 대로 상황을 이끌어갈 수 있었다.


전부 내가 의도했던 대로다.


「그러니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뭘?


「이제부터 저들이 죽는 것은 전부 ‘내’ 탓이라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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