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이번에 나는 진지하게 생각해보았다.」
단지 새하얀 화면을 빛내고 있는 노트북.
당장이라도 글을 쓰라고, 안 그러면 고문이라도 시키겠다며 내게 협박해오는 듯했다. 하지만 나는 그 협박에도 굴하지 않고 키보드 위에 손을 올려놓지 않는다. 간단한 문장조차도 쓰지 않았다. 이 얼마나 대단한가!
아마도 내게 어떤 위협을 해오더라도 나는 글을 쓰지 않을 자신이 있다! 세계가 멸망하더라도! 한번 공격해봐라!
다 버텨주마!
「농담은 이쯤에서 끝내고.」
나는 오늘도 써지지 않는 내 소설을 바라보았다.
대충 그렇게 유명한 작품은 아니고, 연재 한 번 하면 치킨 한 마리 정돈 값은 들어올 그런 작품. 보는 독자님들도 별로 없어 눈치 볼 것 하나 없는데도 나는 슬럼프에 빠져버렸다.
그게 얼마나 지독한지, 연재일 수가 너무나도 들쭉날쭉하다. 솔직히 아직도 보는 독자님들이 있다는 점에서 내 죄스러움이 커진다. 언제나 생각하는 거지만 내가 재능 없다는 게 이렇게나 고통스럽다.
재능이 있고 싶다.
생각만 하면 바로 글을 쓸 수 있는 그런 재능.
「그래, 예를 들어서 ‘한수영’처럼.」
문득 그런 생각이 들자 나의 사고가 멈추고 말았다. 왠지 그런 생각하는 나 자신이 우스워졌기 때문이다. 농담이 아니라 한심했다.
언제부터 나는 이런 슬럼프에 빠져든 것일까.
그건, 아마도 내가 글에 재능이 없다는 걸 깨닫고 난 뒤부터일 터. 다른 사람들이 쓰는 소설을 볼 때면 느껴졌다.
예전에 나는 친형한테 내 소설 감평을 들어본 적이 있다.
웹소설 지망생인지라, 어떠한 악평이더라도 기대하고 기다렸었다. 되려 피드백도 되고 얼마나 좋은가? 내 소설을 고쳐 성장할 수만 있다면 어떠한 짓이라도 좋았다.
그리고 그런 내 기대에 들려온 목소리는 아주 간단한 평가.
「“글 못 쓴다.”」
대충 요약하자면 이랬다.
글을 제대로 쓴 적 없는 놈이 쓰는 글 같다고. 스토리도 별로라고 했으며 기본기조차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고 했다.
그래, 내 문장은 너무나도 비문이 많았다고 한다.
아니, 씨발 뭐라고?
장난이 아니라 문장이 별로라고? 대체 어디가? 뭐가 문젠데? 왜?
그래서 어떻게든 고쳐보려고 노력했다. 최대한 그 문장만이라도 해결해보려고 했다. 근데, 솔직히 난 아직도 모르겠다.
대체 어디가 문제라는 건지.
그때 나는 제대로 깨달았다.
「나는 재능이 없다.」
그 뒤부터는 슬럼프게 세게 왔다. 그럼에도 연재만이라도 하려 했으나 간단한 문장조차 제대로 쓰지 못했다. 아마 내 게으름도 한몫했겠지······.
나는 재능이 없다. 슬프게도 그게 진실이었다.
「그래서 나는 가끔 이런 망상을 하곤 한다.」
뭘?
「유중혁이 내 앞에 나타나서 뒤통수 세게 때려주는 망상.」
재능 없는 나 대신 한수영이 연재해달라고. 내가 너의 소설, 남들이 많이 볼 수 있도록 하겠다고.
왜 나는 선택 받지 못하냐고. 그 재능 나한테도 좀 달라고.
몇 번 빌어보고, 생각해보았다.
그게 진짜라면 도리어 비겁하다는 걸 알면서도. 내 재능을 생각할 때마다 계속 빌곤 한다.
「사실, 진짜로 하는 망상은 따로 있지만.」
예를 들어서······ ‘내’가 ‘전독시’ 세계로 빙의를 당한다든가 하는······.
여담으로 이 ‘「」’, 이 기호 안에 들어간 내용은 내가 특별한 생각을 한다는 뜻이다. 그래, 전독시 외전에서도 나온 그거 맞다. 나름대로 인상이 깊어서 따라 하는 중이다.
“후우, 진짜 못 쓰겠네.”
결국 오늘도 쓰지 못했다. 그 사실에 나는 씁쓸하게 미소를 지었다. 아무래도 나, 웹소설 작가는 되지 못하겠다.
“인생 진짜.”
나는 억울함과 죄스러움에 미쳐 결국 일단 다른 일을 해보기로 했다. 그래, 내가 연재하던 작품은 이거 말고도 하나 더 있잖아?
『전지적이지만은 않는 시점.』
내가 예전부터 조금씩 연재하던 작품.
아까도 내가 언급한 전독시 패러디 소설이다.
「아, 맞다.」
생각해보니까, 내가 그 중요한 ‘전독시’에 관한 이야기를 안 했구나? 이거 어쩌지. 이제라도 설명하자면 전독시, 즉 ‘전지적 독자 시점’이라는 웹소설이 하나 있다. 구구절절 헛소리는 집어치우고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엄청나게 유명한 작품이다.
「[오직 나만이, 이 세계의 결말을 알고 있다.]」
장르는 대충 판타지물이고, 스토리는 주인공이 읽던 소설이 현실이 되어 여러 사건을 겪는다는 내용. 따지고 들자면 생각보다 흔한 스토리지만, 재미만큼은 확실하게 보장한 웹소설.
나는 그 작품을 웹소설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게 없을 때 읽었다. 그래서 전독시는 어떤 작품보다도 내게 제일 인상이 깊은 웹소설 중 하나다.
「아마 내 꿈을 심어주기에도 충분할 정도로.」
‘물론 전독시를 보기 전부터 판타지 소설가는 내 꿈이었지만 말이야.’
단지 웹소설이란 무엇인지 새로 깨닫게 해줬을 뿐이다. 그리고 그 깨달음은 내가 전독시에 애정을 생기게 했으며 덕분에 수많은 전독시 관련 콘텐츠를 소비해 왔다. 예를 들어서 작가님의 다른 작품까지 읽는다던가 팬아트를 찾아서 본다던가 같은, 그런 행위.
특히나 나는 한 번 빠져들면 깊게 빠지는 타입인지라 패러디 소설도 읽었다. 심지어 못 쓴 작품까지 전부. 그러다가 문득 영감을 받았고 그 영감에 따라 나는 직접 패러디 소설을 써보았다. 그 결과물이 바로, 이 ‘전지적이지만은 않는 시점’이다.
처음에는 개그물 비슷하게 써보려고 했다. 그 고통스러운 아포칼립스 세계에서 개그라니······ 존나 신선하다! 분명 통한다! 재밌다! 그러나 문제는 나는 개그 따위를 못 하는 인물이었다는 거다. 그래, 나는 진지충이다.
덕분에 몇 화 지나지도 않아 스토리 노선을 바꿨다. 그래, 다른 패러디 작가들은 쓰지 않은 작품으로 쓰자! 재밌겠다! 실제로 초반에는 나름대로 성공하는 듯했다. 그러나 그걸 쓰던 작가, 즉 내가 빡대가리인지라 원작 전개에선 벗어나지 못했다. 그 때문에 ‘전지적이지만은 않은 시점’은 흔한 패러디 작품들 중 하나, 아니 실제론 그조차도 못 된 작품으로 끝났다.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그야 나는 재능이 없었으니까.
「그럼에도 나는 아직도 이 작품에 애정을 품고 있다.」
그래서였던 걸까. 가끔 아직도 이 작품을 쓸 때가 있다. 솔직히 제대로 보는 독자가 없다는 걸 알고 있음에도 전독시를 다시 보면서······. 재능이 없어도 가끔 쓰고 싶은 글이 있는 법이니까.
「그렇게 독자이자 작가인 나는 이 패러디 소설을 쓴다.」
우웅.
핸드폰에서 진동음이 울렸던 것은 그때였다. 노트북 화면을 보던 시선 자연스럽게 핸드폰 쪽으로 돌아갔다. 순간 이상한 감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무의식적으로 진동이 왜 올린 것인지 확인해보기로 했다. 친구한테서 카톡이라도 날아왔나?
그러나 그 메시지는 예상도 못 한 내용이었다.
─업데이트★ 전지적 독자 시점
‘전독시’ 새로운 화가 올라왔다. 방금까지 계속 그 전독시에 대한 생각을 했던 지라 살짝 놀라고 말았다. 어째서 지금? 나는 잠시 날짜를 확인해보았다.
6월 12일.
생각해보니 오늘이 전독시 외전 2부가 시작하는 날이었다. 그걸 까먹고 있었다니. 아무래도 난 전독시 팬이라고 할 수 없는 모양이다.
‘그럼, 올라왔으면 바로 읽어야지.’
나는 앱을 켜 보관함으로 들어가 전독시를 눌렀다. 전독시가 휴재를 시작한 이후 다음화가 계속 기대됐던 만큼 심장까지 떨리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재빨리 소설을 읽으려고 했다.
하지만 내 뜻대로 되지 않았다.
+
전지적 독자 시점 – 총 616화
─작가 싱숑
+
“?”
나는 뭔가 이상함을 느끼며 다른 소제목들을 읽어보았다.
+
외전 64화 Episode 12. □□ (7)
외전 63화 Episode 12. □□ (6)
외전 62화 Episode 12. □□ (5)
외전 61화 Episode 12. □□ (4)
외전 60화 Episode 12. □□ (3)
+
새로 늘어난 화수는 없었다. 며칠 전부터 계속 보던 그 소제목 그 화수 그대로였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지? 그냥 사이트 오류인가? 이 새끼들 괜히 사람 기대하게 만드네.
근데 잠깐만. 그럼, 오늘 왜 안 올라오는 거지? 혹시 휴재라도 하나?
나는 이상함을 느끼면서도 그저 무시하기로 했다.
······생각해보면 그때부터 전조가 있었구나.
이상한 일이 있었는데도 무시하고 일상을 지내는 거. 그거 원래부터 클리셰였잖아. 설마 그 클리셰가 내 현실에서 벌어질지는 꿈에서도 상상 못 했다.
그때의 내게 말할 수만 있다면 한가지 말해주고 싶다.
마음 단단히 먹으라고.
앞으로 이 이야기는 네 이야기라고.
「그렇게 갑자기 나는 의식을 잃고 말았다.」
이제부터 주인공이 되라고.
말하고 싶다.
- 작가의말
전독시가 문피아에서 시작한 만
이 글도 문피아로 넘어왔습니다
여담으로 ‘전지적이지만은 않은 시점’은 제가 실제로 다른 곳에서 연재하던 전독시 패러디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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