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스승의 원수가 나였다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퓨전

이리서기
작품등록일 :
2024.09.10 10:15
최근연재일 :
2024.09.14 09:48
연재수 :
6 회
조회수 :
172
추천수 :
1
글자수 :
36,016

작성
24.09.12 08:54
조회
24
추천
0
글자
12쪽

4화. 귀환자, 회귀자, 환생자

DUMMY

4화. 귀환자, 회귀자, 환생자


우비랑이라는 이름에 변한 것은 단순한 표정 뿐만이 아니었다. 어지간한 사람이라면 몸이 떨릴 듯 차갑게 내려앉은 공기, 세 사람의 기운이 주변을 잠식하다 못해 환경마저 뒤틀고 있다는 증거였다.


<극히 위험합니다. 이 자리를 떠나... 아니, 눈 하나 깜빡이지 마시기를 추천드립니다.>


아사가 대번에 경고를 보내오기 시작했고, 나도 그 경고에는 적극 동의하는 바였다. 사실 마음 속으로는 중재고 뭐고 당장이라도 이 자리를 벗어나고 싶었지만 그랬다가는 별로 좋은 꼴을 보지 못할 것이라는 느낌도 받을 수 있었기에 나도 움직이지 않는 쪽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러는 와중에도 내 머릿속은 복잡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나 또한 내 이름만 기억하고 있을 뿐 이 이름을 가지고 내가 죽기 전에 무슨 짓을 했는지는 전혀 기억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혹시나 설마 천하를 주름잡던 마두는 아니겠지? 내가 이런 말 하기에는 그렇지만 그러기에는 내 성격이 너무 좋지 않은가? 그런데 분명 저 세 사람이 보는 눈빛은 어지간한 원한이 있지 않고서는 보기 힘든 눈빛이다.


그리고 확실히 분노에 차 있으니 세 여인의 본 실력에 대한 편린이 보이는 듯 했다.


'망할. 생각보다 한수... 아니, 두, 세수는 더 강하다고 봐야 하나? 설마 내 이름을 알고 있을 줄은 몰랐는데. 대체 무슨 관계지?'


아니면 중원에서 유명한 색마? 눈 앞의 세 사람에게 공통점이라고는 눈씻고 찾아봐도 찾기 힘들 정도로 이들은 각자 살아온 삶이나 성격이 판이하게 달라 보였다.


그나마 억지로 같은 점을 찾으려고 해보니 여자라는 것 뿐이었고, 여자들이 공통적으로 이렇게 혐오하는 존재라면 그쪽이 아닌가?


그렇게 세 여인들은 내 이름을 듣자 마자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나를 관찰하듯 훑어보기 시작했고, 나 또한 아사의 말대로 눈 하나 깜빡이지 않은 채 정면을 주시하고 있었다.


이런 분위기라면 바로 공격이 날아와도 이상하지 않다.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그렇게 된다면 최선을 다해 달아나보는 것 밖에는 선택지가 없다.


"후... 이름이 별로 좋지는 않네."


하지만 유라설이 한숨을 푹 내쉬면서 이렇게 말했고, 그와 동시에 착 가라앉아 있던 분위기가 어느 정도 정상으로 돌아왔다.


"개명추천. 최악의 이름..."


주여령도 눈가를 잔뜩 찌푸린채 내 이름에 대해 평했다.


"우리가 착각한 모양이로구나. 설마 네가 '그'일리는 없겠지."

"애초에 어불성설... 그가 죽었다면 우리가 모를 수가 없어..."

"그렇게 쉽게 죽을 놈도 아니고."

"그 라니... 우비랑이라는 이름을 알고 있는 겁니까?"


분위기가 가라앉기는 했지만 사실 가장 놀란것은 바로 나일수밖에 없었다. 우비랑이라는 이름에 대해 한명이라면 몰라도 세명 모두 알고 있는 듯한 눈치가 아닌가?


하지만 세 여인은 대답 대신 내 질문이 놀랍다는 듯 눈을 약간 크게 뜨면서 반대로 되물었다.


"그 이름을 알고 있냐고? 뭔가 말투가... 이상한데."

"본명이라고 제시한 이름을 자기가 몰라...? 모순..."

"흐음... 뭔가 사연이 있는 것이냐?"


사실 나도 내가 물어놓고도 생각해보니 말이 안되기는 했다. 내 이름이라고 내가 직접 말해놓고는 다시 되묻는 것도 웃긴 일이 아닌가? 하지만 나는 그렇게 물을 수밖에 없었고, 그런 사실이 세 사람의 의문점을 자아낸 모양이었다.


"난 사실 이름 외에는 내가 그 전에 뭘 했는지 기억이 없어."

"기억이 없다고? 흐음... 넌 선각자가 됐을 때 어떤 현상... 아니, 증상... 이것도 아니고. 어떻게 해서 된거지?"


유라설이 말하기 어려운지 약간 버벅거리면서 되물었지만 그런 것도 알아듣지 못할 정도로 바보는 아니다. 나는 손을 들어 목을 옆으로 그으며 말했다.


"부활. 나는 분명 한번 죽었었어."

"흐음... 나랑 비슷한 경우겠네. 나는 죽음을 겪지는 않았지만 말이야."

"납득... 생사초월의 경우에 가끔 발생. 기억소실."

"시간 차이는 있는 것 같아?"


유라설이 관심이 있는지 고개를 들이밀면서 되물었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기억이 없으니 대조를 해볼 수도 없잖아. 다행히 평범한 상식 수준의 지식은 있는 모양있지만... 일단 느낌 상으로는 내 몸은 맞는 것 같아. 조금... 어려지기는 한 것 같지만 말이지."

"아... 그렇겠네. 회귀라면 선공을 익히기 전의 몸으로 돌아갔을테니 몸에 선기도 없겠지. 나도 꽤 고생했단 말이지."


씁쓸한 웃음을 지으면서 과거를 회상하는 듯한 유라설의 모습에 나는 그녀가 회귀자라는 사실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아니, 사실 유라설 뿐만이 아니라 나머지 두 사람도 어느 정도는 짐작이 가는 부분이 있기는 했다.


주여령의 경우에는 특이한 말투와 옷차림, 그리고 행동에서 몸을 단련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 어느 정도 보였기에 아마 평행 무림에서 돌아온 귀환자일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채주선은 뭐... 말할 것도 없다. 말투나 하는 행동은 무림의 원로를 넘은 노인네나 다름 없는데 신체는 저렇게 어리니 흔히들 말하는 반로환동... 환생을 겪은 것이 틀림 없다.


각자 회귀, 귀환, 환생... 선각자들이라면 겪은 현상들 중 가장 일반적인 것들로 분류한 것이다. 각자 조금씩 자세한 차이는 있을지언정 크게 이 세가지를 벗어나는 경우는 없다고 봐야 한다.


"그렇다면 환생의 일종이겠구나. 죽음을 겪으면서 몸이 어려지는 경우도 있다고 듣기는 했지."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기는 합니다."


채주선이 내린 결론에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내 경우는 반로환동이라고 할 정도로 젊어진 것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죽었다가 살아났으니 환생의 일종이라고 보는 편이 옳기는 할 것이다.


"기억이 없는데 떠오르는 이름이라고는 그 이름 뿐이니 그게 내 이름이 아닐까?"


사실 나도 우비랑이라는 이름이 내 이름이라는 확신은 없었다. 그 인물에 대한 과거를 모르는데 그것이 과연 현재의 나라고 자신할 수 있겠는가?


대부분의 사람은 그러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기억상실이라는 것이기도 했고.


"편견... 꼭 그렇다고 볼 수만은 없어. 자신의 기억 속에 깊이 각인되어 있는 이름일지도 모르지... 다망한 의미로."

"워낙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니는 놈이니까 너도 이름 정도는 기억하고 있을 법 하지. 그리고 사람들은 생각보다 자기 이름을 되뇌일 기회가 잘 없기도 하고."


주여령과 유라설은 아무래도 내 이름이 우비랑이 아니라는 것을 확신하고 있는 듯 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확신한다기보다는 그쪽으로 몰아가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기는 했지만...


상황이 이렇게 되니 나도 그 이유가 궁금해졌지만 뒤를 이은 채주선의 말에 물어볼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어찌되었든 그 이름은 별로 좋지 않은 이름이로구나. 다른 이름을 써볼 생각은 없느냐?"

"있다고 한들 기억이 나야..."

"기억이 안나면 하나 지으면 될 일이지. 기억이 나면 그때 다시 본명을 사용하면 되고. 무림에서 가명 한둘 정도야 세삼스럽게 놀라울 것도 없지 않느냐?"


듣자하니 채주선의 말도 틀린 말은 아닌지라 나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우비랑이라는 이름 또한 홀로 작게 되뇌었다.


다른건 몰라도 이 이름만 기억하고 있다는 것은 최소한 나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이름이라는 것은 확실하다는 뜻이다. 기억을 잃어버린 내게 있어서는 어떤 단서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 이름은 있어야겠지. 저딴 이름보다 훨씬 좋은 이름을..."


유라설이 중얼거리면서 생각에 잠기는 듯 했고, 주여령과 채주선도 비슷하게 뭔가를 생각하는 듯 했다. 그리고 세 사람이 동시에 고개를 들자 그대로 눈이 마주쳤다.


"다들 같은 생각? 양보할 수 없는데..."

"쯧. 너희 같은 애송이들이 작명의 오묘함을 알겠느냐? 이 일은 내게 맡기거라."

"늙어서 좋겠수다. 그리고 나도 나이는 먹을 만큼 먹었는데? 설마 육체나이로 따지자는 건 아니겠지? 그러면 나야 좋지만."


애초에 선각자들에게 있어 나이라는 것은 신체의 나이가 아니라 혼의 나이를 의미한다. 신체의 나이로만 따지면 채주선이 가장 불리하기도 했고.


"너희는 천하의 이치를 몰라... 양명화복(量命禍福). 사명지도(事名之道)..."

"어허. 애송이가 누구 앞에서 곰팡내 풀풀 나는 도사 행세를 하려는 게냐?"


보아하니 내 이름을 지어주는 것 가지고 서로 싸움이 벌어진 모양이었고, 나는 한숨을 푹 내쉬면서 손을 들며 입을 열었다. 그래도 모두에게 말할때는 적당히 존대를 섞어 써야겠다.


"내 이름이니 내가 정하죠. 불만 없겠지?"


일단 중재자를 하기로 했으니 적어도 내 편의를 위해서라도 나는 빠르게 중재안을 꺼냈고, 세 사람은 별로 마음에 들어하는 표정은 아니었지만 그것보다 더 나은 해결책을 찾지는 못한 것인지 말해보라는 듯한 시선을 보냈다.


"말하기 전에 한가지 제안하겠는데 일단 세 분의 이름에서 한자씩 따올겁니다. 괜찮겠죠?"

"오호. 기특하구나."

"눈치빠름... 뛰어난 능력."


그래도 나 또한 그 정도 눈치가 없는 것은 아니었기에 적당히 타협안을 제시했고, 세 사람은 그제서야 기분이 풀리는 듯 보였지만 아무리 그래도 아직 불안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마침 여인도 세명, 이름도 세글자이니 그 부분에 있어서는 딱히 걸릴 것이 없었지만 문제는 순서다. 사실 이름 세글자에 무슨 중요성의 상하가 있을까 했지만 다른 건 몰라도 성은 중요했다.


"내가 무슨 이름을 제시하든 불만을 제시하면 안됩니다. 알겠죠?"

"일단 들어보고."


유라설이 애매모호하게 말했지만 사실 그쪽은 별로 걱정되지 않던 나는 주여령과 채주선을 보면서 생각해둔 이름을 말했다.


"유선령(流鮮鈴)으로 하죠. 당연히 괜찮으시겠죠?"

"오. 좋은 이름이야."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성을 꿰찬 유라설이 의기양양한 웃음을 지으면서 주여령과 채주선을 바라보았지만 의외로 두 사람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은 이름..."

"사실 여인들 이름을 섞어 남성 이름을 짓는게 쉬운 일은 아니지. 이 정도면 무난하구나."

"어? 다들 그 반응은 뭐야? 갑자기 왜 이렇게 관대해진거지?"

"그리 내세울만한 가문도 아닌지라."

"성을 쉽게 주는 것도 문제..."


약간 말을 흐리면서 말하는 주여령과 채주선은 뭔가 사정이 있어 보이는 것 같기도 했지만 피차 그런 걸 서로 물어볼 처지는 아니었기에 유라설을 머리를 살짝 긁적일 뿐이었다.


어차피 원하는 것을 얻었으니 별로 신경쓸 것은 없다는 표정이었고, 나 또한 일단 싸움은 벌어지지 않았으니 이 정도면 안심이라고 할 수 있었다.


"좋아. 선령. 음... 이것도 여인 이름 비슷한 것 같기는 한데 저 소괴(小怪)말대로 이 정도가 최선이겠지. 그러니까 넌 기억상실이란 말이지? 네 과거에 대해서는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고?"


소괴라니. 채주선을 말하는 건가? 어린 괴물도 아니고 작은 괴물이라. 틀린 말 같아 보이지는 않았지만 이 정도에 표정관리도 못하지는 않는다.


"그래. 지금은 그런 상태지."

"흠. 일종의 부활 후유증이군. 기억이야 차차 떠오를테니 걱정말거라."

"그랬으면 좋겠지만... 거기에 관해서 한가지 더 제안할 내용이 있는데."

"제안? 무슨 제안 말이더냐?"

"여러분을 중재해주는 것 까지는 좋습니다. 하지만... 나는 여러분을 돕기만 할 뿐 전혀 얻는게 없단 말이죠."


사실 이건 일종의 도박이다. 저쪽에서 목숨을 살려주는 것만 해도 어디냐고 말하면 내가 할말은 없다. 하지만 이런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얻어야만 하는 게 있다.


"긍정. 일리가 있어..."

"흠. 원하는게 있으면 말해보거라."

"그래. 빙빙 돌리지 말고. 말도 안되는 제안이면 거절하면 그뿐이니까."


하지만 세 사람은 내 제안을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듯 했고, 나는 곧바로 본론을 꺼냈다.


"선공을 알려주었으면 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세 스승의 원수가 나였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비정기 연재입니다. 24.09.10 14 0 -
6 6화. 첫번째 수련 24.09.14 12 0 13쪽
5 5화. 세명의 스승 24.09.13 19 0 13쪽
» 4화. 귀환자, 회귀자, 환생자 24.09.12 25 0 12쪽
3 3화. 중재자 24.09.11 25 0 12쪽
2 2화. 구천회옥(舊千回獄) 24.09.10 36 1 14쪽
1 1화. 부활 24.09.10 55 0 15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