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스승의 원수가 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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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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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0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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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3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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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세명의 스승

DUMMY

5화. 세명의 스승


내 제안에 세 여인은 잠시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내 제안이 상당히 의외인 것 같았다. 사실 나도 저들의 반응이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애초에 선공이 어디서 쉽게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는 건 둘째치고, 선각자가 선공을 알려달라고 한다? 그것만큼 말도 안되는 일은 없겠지만... 내게도 이유가 있다.


"기억을 잃었다고 하더니 익혔던 선공도 잊어버린 거야?"


유라설이 그리 어렵지 않게 전후사정을 파악해내고는 되물었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알아차리기 어려운 일도 아니지 않은가.


"선기야 그럭저럭 남아 있지만 선공은 아무것도 기억이 안나."

"흠... 익힌 선공을 알고 있다면 본인의 정체를 알아차리는데 큰 도움이 되었을터인데. 아쉽구나."


채주선의 말대로 어떤 선공을 익히고 있는지 알 수 있다면 적어도 소속 문파 정도는 알 수 있다. 아니면 혹시 일인전승의 독문무공 같은거라면 정체를 알아내는 것도 쉬운 일이고.


"선기를 활용하는 선공이 없다면 제아무리 거대한 선기라도 무용지물... 납득이 가."


주여령도 어떻게든 선공을 익히려고 하는 내가 이해가 간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말대로 제아무리 거대한 선기라고 해도 선공이 없다면 가진 힘을 온전히 발휘하지 못한다.


100의 선기를 그대로 사용해봤자 100의 힘 밖에는 내지 못하지만 선공을 통해 사용한다면 선공의 종류와 숙련도, 운용에 따라 200이나 그 이상의 힘도 낼 수 있는 것이다.


여기가 그냥 평범한 감옥이었다면 현재 가진 선기만 해도 탈출하는데는 어려움이 없었겠지만 구천회옥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일단 내게 가장 급한 것은 삼류라고 해도 일단은 선공을 익히는 것이 급선무다.


"딱히 제자로 삼아달라거나 그런 말은 아냐. 세명 중 아무라도 상관 없고... 그냥 쓸만한 선공 아무거나 알려주면 되니까요."


나는 진짜로 절박함을 담아 한 말이었지만 아무래도 세명 중 아무라도 상관 없다는 내 말이 세 사람의 뭔가를 순간적으로 자극한 것 같았다.


"흐음. 그런거라면 잘 골랐어. 내 비전의 선공... 까지는 무리겠지만 어디 가서 부족함이 없는 걸로는 전수해 줄게. 이것만 제대로 익혀도 구천회옥을 탈출하는데는 문제가 없을 뿐만 아니라 무림에서도 한가락 한다는 소리는 들을 수 있을걸?"


유라설이 자기만 믿으라는 듯 호탕하게 가슴을 두드리자 뭔가가 흔들렸지만 나는 거기에 시선이 뺏기기보다는 일단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아직 안도의 한숨을 내쉬기는 일렀던 것일까? 주여령이 끼어들었다.


"안될말... 선령이는 그냥 봐도 무투기(武鬪技)를 사용하는 무사가 아니라 선술기(仙術技)를 익힌 선사가 적합해 보여... 무식하게 몸을 쓰는 무투기 보다는 우아한 선술기가 더 어울릴거야."

"뭐? 무식? 이 음침귀녀가 말이면 다인 줄 아나? 자고로 무인이라면 몸을 움직이여야지!"


꽤 강하게 긁힌 것인지 유라설이 허공으로 팔과 주먹을 내지르면서 흥분해 외쳤다. 딱히 위협적인 움직임은 아니었지만 움직이는 팔과 다리는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흐릿하게 보이는 것이 상당히 위협적으로 보였다.


"쯧. 또 싸움이더냐. 이런거라면 간단한 해결책이 있지. 셋 다 가르치면 되지 않느냐? 어때? 꽤 괜찮은 방법이지 않나?"


채주선이 혀를 차면서 해결책을 제시했고, 그 제안이 꽤 의외였는지 유라설이 주여령을 쳐다보던 고개를 대번에 돌렸다.


"켁. 소괴도 하려고? 무슨 바람이 불어서? 어디 가서 선공을 내세우는건 할 짓이 아니라면서?"

"어차피 비전을 전수하는 것도 아니지 않느냐? 중간중간에 소일거리 정도는 되겠지."

"으음... 나는 다양하게 익히느니 한 우물에만 집중하는게 좋다고 생각하는데..."

"나도 그리 생각한다. 하지만 그건 우리 사정이 아니지. 분명 어떤 선공이라도 상관없다고 말한 것은 저 아이 쪽이다. 그리고 만일 다 소화할 수 있다면 꽤 재미있을 것 같지 않느냐?"


고민하고 있는 채주선과는 달리 주여령은 대번에 고개를 끄덕였다.


"철련천타(鐵鍊千打)... 배움은 어려울 수록 가치가 있는 법..."

"그렇긴 하지... 좋아. 단순히 가르치기만 하는 건 재미 없기도 하고. 그러면 각자 시간날때 조금씩 가르치기로 하자. 그리고... 우리가 일을 다 끝내고 마지막 가르침이 되는 그날, 누가 더 잘 가르쳤는지 확인해보는거야. 어때?"

"오호... 그거 좋은 생각이로구나. 잘 가르친다는 것은 상당한 연륜이 필요한 일이지. 너희 같은 애송이들이 잘 해낼 수 있을까?"

"헹. 지금까지 제자 한둘 가르친 적이 없을까봐? 가르칠 것도 없어. 선공이라는 건 말이야. 힘으로 때려 박아 넣는거야."


주먹을 불끈 쥐면서 말하는 채주선의 손은 얼핏 보기에는 평범한 여인의 손 같아 보였지만 자세히 보면 아지랑이가 어른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대충 그녀가 어떻게 선공을 가르칠지 알아차린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고, 그 뒤를 이어 주여령이 팔짱을 끼면서 말했다.


"쯧... 야만... 그렇게 익혀서야 제대로 활용하기나 할까... 선공은 자연스럽게, 무의식중에 사용할 수 있도록 익히는 것이 정석...

그러니 무슨 수를 써서라도 본능에 새겨두기만 하면 돼. 굳이 가르치고 배우고 있다는 것을 상대방이 알아차릴 필요도 없을 정도로 말이지..."


끝에 가서는 지금까지의 띄엄띄엄한 말투가 아니라 한번에 연결된 말투와 함께 입가를 올리면서 위험한 미소를 짓는 주여령을 보고 나는 차라리 유라설이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도 이미 엎어진 물이다. 거기에 단 하나의 선공도 기억할 수 없는 내 입장에서 봤을 때 각각 다른 종류의 세 선공을 익힐 수 있다는 것은 꽤 매력적인 제안이기도 하다.


"좋습니다. 말한 대로 정식 사제관계는 아니니 구배지례까지는 안 하겠지만 얼마가 될지 모르는 시간 동안 잘 부탁드리죠. 임시 스승님들."


여기에 얼마나 머물게 될지는 얼떨결에 얻은 세 스승들에게 달려 있겠지만 선뜻 선공을 가르치겠다고 하는 걸 보니 그리 짧은 시간은 아닐 것 같았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앞서 잠시 묻어두었던 의문점이 다시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결국 저 세 사람은... 이 구천회옥에 왜 이렇게 머물러 있는 거지?


아무리 사류문이 중견 문파라고 해도 이 세 스승들을 여기 잡아둔다는 것은 어림도 없는 소리다. 솔직히 말해서 이렇게 대화를 나누고 힘의 편린을 보기 전까지는 탈출은 무리가 없을 정도라고 생각했지만 정정하겠다.


세 사람 중 한명만 진심을 내도 탈출은 커녕 시간은 좀 걸리고 피곤하겠지만 혼자서도 사류문을 멸문시킬 수 있을 정도로 보였다.


결국 이들이 여기 있는 것은 자신의 의지로 있다는 것이었고, 뭔가 말못할 목적이 있는 것이 분명해 보였다.


하지만 또 그렇다고 순진하게 그걸 물어볼 정도로 바보는 아니다. 현재 상황은 그리 나쁘지 않아 보였지만 각자에게는 건드리지 말아야 할 부분이 있다.


특히 서로 눈치를 보느라 그 일을 전혀 진행하지 못하고 있는 모양일 정도로 비밀스러운 일인 것 같은데 처신을 잘못하면 상황이 급변하는 건 한순간일 것이다.


"적당한 곳에 자리 잡고 쉬도록 해. 물은 썩어 넘칠만큼 있고, 선공을 익혔으니 먹을건 그리 필요하지 않겠지만 원한다면 물고기나 버섯같이 먹을만한 것도 꽤 많으니까 알아서 먹도록 하고."


나는 유라설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공동은 넓다 못해 자리가 넘쳐나는 지경이었기에 나 하나가 자리 잡을 곳이 부족하지는 않았다.


세 스승들은 서로 합의된 것인지는 몰라도 각자 적절히 멀리 떨어진 위치에 자리하고 있었지만 나도 그 사이를 가늠해보고는 최대한 멀리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았다.


그 이후로는 별일이 없었다. 세 스승들은 나를 가르치기 위한 것인지, 아니면 지금까지 하지 못했던 각자의 볼일을 보기 위한 준비를 하기 위해서인지는 몰라도 거처에 처박혀 두문불출하고 있었다.


나도 물론 내 나름대로 공동 생활에 적응하고 익숙해지기 위해서 시간을 보내고 있기는 했다.


<잠자리에는 마른 이끼를 깔아둘 것을 추천드립니다.>


나도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기에 이게 조언이라고 할 수 있는가 싶은 아사의 목소리에 대한 의문은 뒤로 한 채 잠자리를 정리했다.


그리고 공동의 생태나 상황을 파악하는 등 그리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은 아니었지만 스승들이 먼저 접근해오기 전 까지 시간을 때우기에는 충분했다.


애초에 내가 먼저 말을 걸 수도 없는 일이기에 기다리는 수 밖에는 없었지만 그래도 지루하지 않을 정도의 시간이 지나 가장 먼저 말을 건 것은 유라설이있다.


처음 봤을 때부터 그러하듯, 호쾌하게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면서 다가온 유라설이 손을 들며 말했다.


"어때? 지낼만 하지?"

"충분히. 안 그래도 심심하려고 하던 차인데 이제 준비가 다 된건가?"

"준비랄 것도 없어. 무슨 절세의 비전을 가르치는 것도 아니고, 준비가 필요할 정도는 아니지. 공제자(共弟者)."

"공제자?"

"세 사람 모두의 제자니까 공제자지."

"그 무슨... 그러면 일인전승 제자는 개인적인 제자니까 사제자야? 이름 짓는게... 가명까지 지었는데 그냥 이름으로 불러."


어이없다는 듯이 내가 말했지만 유라설은 어림도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임시라고는 해도 가르치는 자와 가르침을 받는자의 관게는 확실히 해야지. 일단 내가 가르친 선공을 제대로 사용해내면 이름을 불러주지."

"... 마음대로 하쇼. 어찌 제자... 아니, 공제자가 스승의 말에 토 달겠소?"

"어째 비꼬는 것 같은데."

"아니, 이래도 뭐라 그러고 저래도 뭐라 그러면 어쩌라고?"


이럴때는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는 법이다. 거기에 적당한 논리까지 섞어주면 효과는 더 크고.


"흠... 목소리 높일 처지가 아닐 텐데. 뭐, 좋아. 힘이 남아 도는건 스승으로써 나쁠게 없지. 그러면 일단 그 남아 도는 힘부터 빼볼까?"


하지만 유라설은 과연 회귀했다는 말이 거짓은 아닌지 흥분하지 않고 가볍게 입장차를 이용해 내 말을 받아 넘겼고, 나는 그런 그녀를 보고 순간적으로 아차 싶어 혀를 내둘렀다.


셋 다 그랬지만 겉모습만 보고 판단할 일이 아니다. 나는 기본적으로 경험을 잔뜩 머금은 무림의 노고수들을 상대하고 있는 것이다.


조금이라도 빈틈을 보였다가는 쉽게 파먹히고 만다. 거기에 일단 임시라고는 하지만 스승과 제자라는 위치상 내가 강하게 나가봤자 좋을 것도 없을 것이다.


"걱정 마. 시작은 상냥하게 해 줄테니까. 어디 보자... 적당한게 있으려나."


싱긋 미소지은 유라설은 고개를 두리번거리더니 고개를 위로 들었고, 나도 그녀가 무엇을 찾는지 궁금했기에 같이 시선을 돌리다가 그 시선이 멈춘 곳에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정도면 되려나?"


확실한지는 모르겠지만 유라설의 시선이 멈춘 것은 성인 몸통 크기는 되어 보이는 거대한 석순이었다.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원뿔 모양으로 자라나는 석순의 특성상 지면과 맞닿은 부분의 굵기가 천년 묵은 고목 정도는 되어 보이는, 어쨌든 무식하게 큰 석순이었다.


그리고 그 석순으로 다가가는 유라설을 보면서 내 머릿속은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보아하니 수행을 도와줄 목적으로 저걸 고른 것 같았다.


그렇다면 할 수 있는건 몇가지로 제한된다. 가장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거라면 저 석순을 사람삼아 수련하는 것이다. 흔히들 목인형을 사용하고는 하지만 석순을 사용한다면 배로 힘들 것이다.


'석순이 석인형이 될때까지 두드려라. 그런거라면 차라리 낫겠지만...'


내가 그렇게 생각하면서 석순을 때려패는 상상을 하고 있을 무렵 유라설은 가만히 석순에게 다가가더니 가볍게 발을 뒤로 해 석순을 발끝으로 찼다.


아니, 그것은 발차기라고도 할 수 없을 수준의 움직이었다. 그저 발끝으로 석순의 아랫부분을 툭 건드린 느낌이었지만 나는 그 순간 대지를 타고 퍼져나가는 진동을 느꼈다.


그리고 살짝 뛰어올라 손을 뻗은 유라설이 석순의 끝을 붙잡자 거대한 석순이 마치 뽑혀나오기라도 하듯 그대로 뚝 부러져 버렸다.


"음. 딱 적당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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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스승의 원수가 나였다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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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비정기 연재입니다. 24.09.10 13 0 -
6 6화. 첫번째 수련 24.09.14 11 0 13쪽
» 5화. 세명의 스승 24.09.13 17 0 13쪽
4 4화. 귀환자, 회귀자, 환생자 24.09.12 23 0 12쪽
3 3화. 중재자 24.09.11 24 0 12쪽
2 2화. 구천회옥(舊千回獄) 24.09.10 36 1 14쪽
1 1화. 부활 24.09.10 53 0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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