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스승의 원수가 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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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서기
작품등록일 :
2024.09.10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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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4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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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1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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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중재자

DUMMY

3화. 중재자


주여령의 짧은 단어에 유라설이 곧바로 되물었다.


"중재? 뭐를? 누구를?"


하지만 그런 유라설의 물음에 대답하는 이는 없었고, 대신 조금 생각에 잠긴 듯했던 채주선이 호오 하는 감탄사를 내뱉었다.


"괜찮은 생각이로구나. 그래. 언제까지 여기 처박혀 있을 수는 없지. 우리도 서로 각자 볼일을 해결해야지 않겠느냐?"

"그게 중재랑 무슨 상관..."


유라설이 되묻다가 뭔가가 떠오른 것인지 잠시 입을 다물었고, 뭔가를 깨달은 것인지 눈가를 가볍게 찌푸렸다. 아무래도 깨달은 사실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자각? 우리가 우연히 여기에 집결된 이후... 서로가 서로의 상황을 관찰하느라 목적 미달성 중. 중심에서 누군가 제어를 한다면 각자 행동 가능할 것으로 추정..."

"쳇. 그렇기는 하겠지만 결국 이 소년 눈치나 보자는 거 아냐? 마음에 안 드는데."

"쯧쯧. 꼭 그렇게 나쁘게 생각할 필요는 없지 않느냐? 눈치를 보자는 게 아니라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두자고 하는 것이니라. 보아하니 선각자이기는 해도 우리에 비하면 배분이 낮아 보이는데 이런 아이 앞에서 드잡이질을 할 수는 없지 않겠느냐?"


세 여인이 각자 그렇게 한마디씩 했고, 주여령의 제안과 채주선의 설득에 결국 유라설도 여전히 떨떠름한 표정을 짓고 있기는 했지만 결국 동의하는 듯 했다.


문제는 그렇게 멋대로 정하는 세 사람의 결정이 내 의사와는 전혀 관계없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일단 타인에게 뭔가를 요구하기 전에 상황 설명부터 좀 해주시면 안되겠습니까?"


세 사람의 말을 들으면서 생각에 잠겨 있던 나는 더 이상 늦었다가는 계속 말려들겠다는 생각에 빠르게 빈틈을 파고들며 말했고, 그제서야 모두의 시선이 내게 집중되었다.


각자 특색이 있기는 하지만 객관적으로 봤을 때는 분명히 아름다운 미인들이었고, 기억의 일부를 잃어버린 내가 느끼기에도 이런 미인들을 동시에 세명이나 한 자리에서 만난 적은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긴장을 하기에는 나 또한 나름대로 무림에서 풍파를 꽤나 겪은 몸... 이라고 생각한다. 세 여인의 시선에도 내가 약간은 덤덤한 표정으로 대답을 기다리고 있자 유라설이 머리를 긁적였다.


"겉보기에는 소년같아 보이는데 귀염성이 전혀 없네. 그래도 선각자라 이건가?"

"후후. 우리가 할말은 아니지 않느냐? 우리 셋 또한 그저 겉으로 보기에는 그래 보이니 말이다."


채주선이 유라설의 말에 피식 웃으면서 대꾸했다. 그녀의 말도 일리가 있는 것이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세 사람도 입만 다물고 가만히 있으면 그저 20대 여인들로 보일 뿐이었다.


"돌출... 한명만 유독 과유불급."

"... 지금 시비 거는 것이더냐?"


물론 겉으로 보기에 연배가 비슷해 보이는 유라설과 주여령과는 달리 채주선은 조금... 아니, 과하게 많이 어려보이기는 했다.


10대 초중반 정도로 보였으니 주여령의 말도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그 말이 아무래도 채주선의 역린을 건드린 것인지 단숨에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어이구. 잘 하는 짓이다. 조금 전에 중재니 뭐니 하더니. 부끄러움이라고는 없나봐?"


그리고 유라설이 비꼬듯 하는 말에 두 사람이 삽시간에 기세를 가라앉히며 침묵에 빠졌다.


"크흠. 효과는 확실한 것 같구나."

"탁월. 역시 내 제안..."


보아하니 평소에도 이런 식으로 자주 말다툼이나 싸움을 벌이는 모양이었다. 어찌 보면 세 사람 다 성격이나 행동이 극과 극이니 자주 부딪힐 만도 하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묘한 공동생활이 유지되고 있다는 것은 서로가 서로를 이기지 못할 정도로 비등비등한 무력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 되기도 한다.


"일단 여기 구천회옥에 대해서는 알고 있어?"


주여령과 채주선이 조용해지자 유라설이 그런 두 사람을 비웃듯 한번 피식 웃고는 말을 걸어왔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는 부분까지는 알고 있습니다."

"야야. 말 편하게 해. 너도 선각자이니 나이도 먹을 만큼 먹었을테고, 겉으로 보기에는 다 비슷해 보이니까. 사실 선각자들끼리 나이 구분하는 것도 웃기잖아."


유라설이 손을 휘휘 저으면서 편하게 말하라는 듯 했고, 내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채주선이 발끈했다.


"어허. 엄연히 무림의 법도가 있거늘 어찌 그런..."

"에휴. 나왔다 저 꼰대 소괴. 마음대로 해. 너희 두 사람에게만 존대말 쓰면서 어렵게 대하면 되겠다. 그치?"

"가만히 있는 나는 왜 끌여들여... 물귀신. 나는 아무렇게나 해도 상관없어... 존중은 말에서 나오는 것이 아냐. 행위일체.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


주여령은 존댓말이니 뭐니는 애초에 신경도 쓰고 있지 않는 것 같아 보였고, 이제 어떻게 할거냐는 듯 유라설이 승리자의 미소를 지었다.


그러자 채주선이 입술을 깨물면서 작은 몸을 부들부들 떨었지만 여기에 있어서는 양보할 생각이 없는지 화를 풀듯 가볍게 발울 구르며 내게 손가락질했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양보 못한다. 존경심이라는 것은 보여주지 않으면 자신도 잃어버리는 법. 너. 말조심하도록 하거라."

"그러죠. 채주선 님이라고 부르면 되겠습니까?"

"또 그렇게까지 딱딱하게 할 필요까지는 없느니라. 그냥 주선이라고 부르거라."


가벼운 소요가 있기는 했지만 사실 내 입장에서는 존대든 뭐든 별로 중요한 건 아니다. 굳이 따지자면 주여령과 비슷한 입장이었기 때문이었다.


다만 주여령이 능동적이라면 나는 수동적일 뿐, 상대가 원한다면 굳이 해주지 못할 것도 없다. 어쨌든 이 부분까지 정리가 되자 비로소 본 내용에 들어갈 수 있었다.


"구천회옥에 대해 알고 있다면 이야기는 쉽지. 여기는 선각자들로 의심되는 사람들을 잡아다가 가두는 곳. 그렇다면 우리 선각자들이 여기에 있는 이유도 알겠지?"


유라설이 싱긋 웃으면서 말하는데 그 모습에는 뭔가를 시험하는 듯한 표정이 어려 있었다. 물론 기도 안차는 이야기다. 애초에 구천회옥은 그 이름이나 목적만 들어보면 뭔가 있어 보이지만 실상은 속빈 강정일 뿐이다.


"모르겠는데. 설마 세 사람이 잡혀왔다는 말을 나보고 믿으라는 건 아니겠지? 그렇다면 이미 사류문은 천하를 지배하고도 남았겠지."


그리고 그런 내 말에 주여령이 혀를 차며 유라설에게 손가락질을 했다.


"쯧... 헛수고. 상대를 바보로 아는 거야?"

"시끄러워. 닥치고 있을 거면 계속 닥치고 있어. 후후. 그래도 제대로 봤는데? 애초에 구천회옥은 황실에서 회진멸사(回眞滅事) 이후 선각자들이 무림을 어지럽히지 못하도록 그들을 잡아 가두기 위해 만든 감옥이지.

하지만 그런게 될리가 없잖아? 애초에 선각자들을 구분하는 방법 같은 것도 알려져 있지 않고, 혹여 선각자들을 가둔다고 한들 그들은 모두 선공의 고수들이야. 이런 감옥에 갇혀 있을 정도로 얼간이는 없다고."


유라설이 어깨를 으쓱하면서 한 말에 채주선이 혀를 차면서 거들었다.


"쯧쯧. 나라에서 일 하는 것들 꼬라지... 흠흠. 행정처리가 다 그렇지 않겠느냐? 결국 구천회옥은 선각자들을 잡아 가둔다는 명목하에 죄 없는 사람들을 누명 씌워서 가두거나 아니면 그냥 대충 잡아 가둬도 문제 없겠다 싶은 사람들 가두면서 할당량이나 채우는 곳이 되고 말았느니라."

"속 빈 강정..."


주여령이 마지막으로 한 말이 가장 확실하고 정확했다. 회진멸사는 간단히 말해 황실에서 자신이 현 황제의 어머니, 그러니까 태후의 환생자라고 우기던 한 선각자에게 크게 뒷통수를 맞은 사건이다.


그 이후 황제는 크게 분노하여 무림의 모든 선각자들을 잡아들이라는 명을 내렸지만 아무리 황군이 강하다고 한들 무슨 수로 시간과 공간을 비트는 선각자들을 모조리 잡아들이겠는가?


결국 감옥이나 만들고 일처리를 완료했다고 던져둔 전형적인 탁상행정의 결과물이 바로 구천회옥이었다.


"나도 들어본 적은 있지. 쳇. 설마 내가 걸려들 줄이야."

"후후후. 뭐 듣기로는 과거에도 이런 적이 몇번 있었다고 하더라고. 결과는 당연히 짐작가능하겠지?"

"쉽게 탈출했겠지. 애초에 경비도 없고 여기가 무슨 극한 오지도 아닌데 초기가 가장 위험한 회귀자라고 해도 이 정도야 금새 빠져나가겠지."

"경비가 없지는 않지. 아무리 그래도 입구 쪽에는 경비가 있고... 지금 네 수준이라면 그 경비도 처리하기 힘들어. 이해하겠어?"


유라설의 말에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가 그저 평범한 감옥이었다면 모르겠지만 구천회옥이라면 확실히 지금 내 상태로는 멀쩡히 빠져나가기는 힘들다. 사류문이 엄청난 거대문파는 아니지만 그래도 황제가 구천회옥을 맡길만한 문파다.


결코 만만히 볼 문파는 아닌 것이다. 물론 내가 그렇다고 눈 앞의 세 사람도 잡아둘 수 있다는 건 아니다.


"보아하니 그쪽 셋은 마음만 먹으면 여기 정도를 나가기는 눈 깜빡이는 것 보다 쉬워 보이는데... 그런데도 이렇게 불편한 동거까지 하면서 머무르고 있다는 건 각자 다른 이유가 있다는 거겠지."

"단서를 너무 많이 줬나? 정답이야. 사실 구천회옥은 여기 태산의 지하 일부일 뿐이니까."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지만 구천회옥은 중원오악의 하나인 태산의 지하 아래쪽에 넓게 자리하고 있다. 하지만 유라설의 말대로 구천회옥은 태산의 지하 표층 일부일 뿐이다.


태산의 지하에는 구천회옥을 지나 더 깊은 단애비혈(斷崖比穴)이라는 험난하고 복잡한 동굴이 펼쳐져 있는데 그 끝은 아무도 모른다고 전해져오고 있었다.


"상황은 알겠어. 확실히 여기가 구천회옥이라면 나도 당장 나가기는 힘들겠지. 아마 그대로 나갔다가는 귀찮은 일이 생겼을 테고... 말려줘서 감사해."


내가 주여령을 향해 고개를 꾸벅 숙이자 그녀는 고개를 절래절래 저었다.


"필요하기 때문에 그랬을 뿐..."

"중재자라. 사실 내가 중재가 될까 싶은데."


싸움 말리는 건 별로 취미도 없을 뿐더러 이런 무서운 여인들을 말릴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그건 걱정할 필요 없느니라. 완벽히 중재는 안될지언정 네 존재만으로도 확실히 제어는 될 테니. 거기에 둘 뿐이면 몰라도 셋이라면 서로가 서로에게 견제도 되겠지."


그 부분은 조금 전 상황만 봐도 확실히 그러해 보였기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덧붙였다.


"그러면 세 사람이 여기에 머무르면서 목적을 달성하는 동안 나도 여기에 머무르기만 하면 된다는 말이지? 머무르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된다면 내가 특별히 중재를 위해서 할것도 없을 테고."

"그러면 되느니라. 어차피 하려고 해도 할 수 있는건 제한되어 있을 테니."

"충분... 그 외에는 자유시간."

"상황파악이 빠르네. 이래서 선각자들과 이야기하는게 편하단 말이지. 자, 그러면 우리 할 이야기는 다 한 것 같은데. 네 이야기를 좀 들어볼까? 이름이 뭐지?"


세 여인이 모두 고개를 끄덕이고, 유라설이 상황을 정리하듯 손바닥을 부딪히면서 주변을 환기시키자 세 여인의 눈이 단숨에 내게 집중되었다.


순서대로라면 그게 맞다. 그리고 나도 기억을 잃었다고 한들 내 이름까지 잊어버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막상 이름을 말하려고 하니 묘한 불길함에 사로잡혔다.


명확한 근거도, 합당한 이유도 없이 그저 불길함이 몸을 순간적으로 파고들어왔지만 내 생각은 그리 길지 않았다. 이름에는 생각보다 많은 정보가 담겨 있다.


잘만하면 내 과거를 찾는데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우비랑(宇飛狼)."


동공은 물소리 때문에 결코 고요한 곳이 아니었지만 그 모든 것을 재쳐두고서라도 우비랑이라는 이름은 날카롭게 주변을 파고드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세 여인의 표정이 삽시간에 무섭게 돌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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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비정기 연재입니다. 24.09.10 14 0 -
6 6화. 첫번째 수련 24.09.14 11 0 13쪽
5 5화. 세명의 스승 24.09.13 18 0 13쪽
4 4화. 귀환자, 회귀자, 환생자 24.09.12 24 0 12쪽
» 3화. 중재자 24.09.11 25 0 12쪽
2 2화. 구천회옥(舊千回獄) 24.09.10 36 1 14쪽
1 1화. 부활 24.09.10 54 0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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