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경백 가문의 데릴사위가 되었다

무료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퓨전

새글

가회
작품등록일 :
2024.09.15 14:49
최근연재일 :
2024.09.19 17:12
연재수 :
8 회
조회수 :
1,367
추천수 :
26
글자수 :
53,263

작성
24.09.15 14:51
조회
284
추천
3
글자
13쪽

나를 이기면 된다

DUMMY

#001화. 나를 이기면 된다


뒷골목에서 양아치로 17년.

좆같이 구는 놈을 패고 보니 귀족 자제였다.


그래서 서쪽 변경에서 죄수병으로 복무하길 3년.

복무 중에 개죽음을 강요한 지휘관을 죽여서 변경백 성의 감옥에서 썩길 또 10년.


더럽게 꼬인 인생.

좆같은 걸 참지 못하는 성격 탓에 욱하면 들이받았다.


상대가 누구 건 신경 쓰지 않고.


“그리고 다 이겼다. 심지어 살아남았구나. 그건 그대가 천부적인 재능과 운을 가졌다는 이야기야. 그렇지 않은가?”


성의 감옥에 갇힌 내게 찾아온 여인이 말했다.


“그대는 여기서 죽긴 아까워 보이는구나. 나와 함께 나가자.”

“그럼 뭐가 달라집니까?”

“부귀, 영화, 명예, 아무것도 보장할 수 없겠구나. 그런 것을 약속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


여인의 말마따나 변경백 성은 불타고 있었다. 그녀가 오지 않았다면 난 이대로 타 죽었을 것이다.


죄수병으로 끌려오면서 듣기론 지난 수백 년간 침범을 허용한 적이 없는 요새라던데.


무슨 일이 터져도 단단히 터진 모양이었다.


“약속할 수 있는 건 폼나는 죽음 정도겠구나.”


그녀는 심드렁하게 말했다.


갈 거면 가고 말 거면 말라는 듯이.


그건 이미 죽음을 각오한 자의 목소리였다.


내가 패 죽인 놈들과는 질적으로 다른 느낌.


적어도 거짓말을 할 사람은 아닌 것처럼 보였다.


폼나는 죽음.


‘뭐, 나쁘지 않네.’


좆같으면 들이받고, 꼬우면 맞서 싸웠던 이유가 뭐였나.


가만히 당하고만 있으면 폼이 안 나서 그랬다.


그래.


여기서 무너지는 성의 잔해에 깔려 죽는 것보단 폼나게 죽는 게 낫겠지.


“까짓거 갑시다.”


나는 그녀의 손을 잡고 감옥을 나섰다.


그리고 본 것은.


끊임없이 번쩍이는 마법과 검기의 여파.


그리고 지평선을 가득 채운 종말의 군대.


그오오오오!


그들이 내뱉는 울음소리가 공간을 가득 채웠다.


“그··· 다시 감옥에 가고 싶은데요.”

“유감스럽게도 번복은 어렵겠구나.”


여인이 무너지는 변경백 성을 보며 말했다. 감옥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으며-


세상이 멸망하고 있었다.


* * *


여인과 함께 감옥을 나선 지도 5년이 지났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

나는 한때 변경백령이었던 전선을 지키는 결사대로 활동했다.


결사대는 절반쯤 남았다. 패색이 완연한 상황이었다.


그때쯤, 나는 여인에게 전우애나 충성심 이상의 감정을 지니고 있었다.


그걸 뭐라 형언하기엔 상황이 좋지 않았기에 입을 꾹 다물고 있었지만, 아마 그녀도 나와 같은 생각이었으리라.


그래서 맹세했다. 당신을 지키겠다고.


“왜?”

“당신은 왜 이미 멸망해 버린 세상을 지키려고 하십니까?”

“간단하다. 누군가는 그래야 하니까.”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녀가 단지 그 이유만으로 세상을 지키고 있다면. 단지 그래야한다는 이유만으로 그녀를 지킬 사람도 필요하지 않나.

언제나 앞서가는 그녀의 등을 보며 나는 그런 생각을 했었다.


이후로 나는 맹세를 지키기 위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선을 넘나들었으나―


끝내 맹세를 지키진 못했다.


수백 명에 이르던 결사대가 모두 죽고 둘만이 남은 순간.


“카일, 그대에게 궁금한게 있다. 죽을 때가 된 기분은 어떠한가?”


피투성이가 된 여인이 물었다.

그녀는 내 품에 안긴 채로 눈을 반쯤 감고 있었다.


흠.


그러는 당신도 다 죽어가지 않냐고 묻고 싶었지만, 초인적인 인내심을 발휘해 참아냈다.


우리는 모두 패배자였으므로.


황실이 사라지고, 서부 전선의 상징이던 대방벽이 무너졌다.


귀족과 천민의 구분이 무의미해진 시대.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존중받을 가치가 있는 사람이었다.


서부의 마지막 수호자.

제국의 마지막 소드마스터.

인류의 마지막 등불.


아리아 폰 클라이스트.


그녀는 온갖 ‘마지막’이라는 칭호를 다 떠안은 위인이다.


아마 하루하루가 힘겨웠을 것이다.


자신이 죽으면 세상이 끝난다는 중압감에 짓눌렸을 테니.


그걸 알지만, 말을 곱게 하는 건 힘들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이 순간이 지독하게 답답했다.


“좆같군요.”

“······.”


폼나게 죽을 수 있다고.

아리아, 당신이 그렇게 말했지 않나.


물론 마물로 가득한 전장에서 죽는 것도 나쁘진 않다.


심지어 전장 곳곳에 남은 자연재해와 같은 흔적들은 그녀와 내가 남긴 검흔(劍痕)이다.


1만을 넘어 10만 단위의 마물을 학살했다.


지금 우리가 마물에 쫓기지 않고 잠시간의 평온을 누리는 것도, 방금 전까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마물들을 학살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역사에 남을 위업.


물론 역사를 기록할 사람이 남아 있다면 말이다.


서부 전선은 무너졌다.


비단 서쪽뿐만이 아니다.


인류가 억제하고 있던 모든 마경이 동시다발적으로 범람했다.


이미 대륙의 대부분이 황폐해졌다.


이런 상황에서도 황실은 내전을 벌이다 자멸했다.


일련의 상황엔 모종의 배후가 있다.


아리아는 그렇게 추측하는 듯했으나, 바꿀 수 있는 건 없었다.


세상은 이미 멸망했다.


그럼에도 당신을 지키고 싶었는데.


나는 한숨을 삼키며 입을 열었다.


“폼이 안 나요. 변경백 각하를 지켜내고 비장하게 유언을 남겨야 하는데. 이리 다 죽어가시니.”

“이런··· 그대에게 한 약속을 어기고 말았구나. 미안하다.”


아리아가 힘겨운 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5분 전까지 언덕을 무너뜨리는 검격을 쏟아내던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쇠약한 웃음이다.


“대신··· 쿨럭―”


그녀가 목이 막히는지 답답한 기침을 토해냈다.


“괜찮으십니까?”


아리아의 목을 받쳐 들며 물었다.


역류한 핏덩어리가 숨통을 막은 건가.


나는 그녀의 입에 손을 집어넣어 핏덩어리를 끄집어냈다.


“허억···!”


숨통이 트이는지 밭은 숨을 뱉어낸다.


“...고맙다.”


그녀가 조금 기운을 차린 목소리로 말했다.


“또 궁금한 게 있구나.”


죽음의 그림자를 떨쳐낸 건 아니다.

하지만 그녀의 목소리엔 장난기가 서려 있었다.


“뭡니까?”

“흐음······.”


내 반문에 그녀는 말꼬리를 늘이며 하늘을 바라봤다.


마치 별을 찾으려는 것처럼.


하지만 잿빛에 먹혀버린 하늘에는 더 이상 별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대는 삶에서 돌이키고 싶은 순간이 있는가?”


돌이키고 싶은 순간이라.

너무, 너무나 많았다.


“말로 하다간 날이 다 샐 겁니다.”

“재밌는 농담이구나.”


내 대답에 아리아가 웃음을 터트렸다.


별이 뜨지 않는 세상에는 태양도 떠오르지 않았으니까.


“그래도 굳이 말하자면···.”

“말하자면?”

“성질대로 하기 전에 고민이라도 한번 해봤어야 하나. 그런 후회가 있습니다.”


조금만 더 신중했으면 최소한 죄수병이 되진 않았을 텐데.


“뭐 그래도 후회가 크진 않아요. 인생이 망가지지 않았으면 당신을 만난 일도 없었을 테니.”

“···그대의 성격이면 고민 해봤어도 결과는 똑같지 않았겠는가?”


아리아가 고개를 갸웃하며 반문했다.


“뭐요?”

“아하하하, 농담이란다.”


내 반문에 아리아가 웃으며 답했다.


아무리 봐도 진담이었던 거 같지만 더 따지고 들진 않았다.


“나도 많다. 아주 많지.”


아리아가 별이 뜨지 않는 하늘 대신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망할 혈육들에게 가문을 맡기는 게 아니었어. 내가 변경백이 되었어야 했다.”


그 말을 시작으로 아리아는 방언이 터진 사람처럼 하소연을 쏟아냈다.


그녀의 아버지, 전대 변경백의 죽음이 문제다.


제국이 그렇게 병신같이 무너지는 걸 막아야 한다.


인간의 땅에 숨어든 사도들의 준동을 사전에 차단했어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대를 조금만 더 일찍 만났더라면 좋았을 텐데.”


아리아가 약간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


잠깐 말문이 막힌 사이.


그녀가 내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뭐하는 겁니까?”

“만약에 모든 걸 돌이킬 기회를 얻게 된다면 말이다만.”


그녀는 내 질문에 답하는 대신 자기 할 말만 했다.


“···건국시조 얘기하시는 겁니까?”


그래서 나도 말을 끊어먹으며 물었다.


“그래.”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제국민 아니,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모를 수가 없는 이야기다.


마경을 대륙 끝으로 몰아넣고, 세상을 종횡무진하며 인류의 제국을 건설한 초대 황제.


그가 시간을 되돌리는 기적을 경험한 회귀자라는 전설.


“그거 그냥 애들 동화 아닙니까?”


내 질문에 아리아가 피식 웃었다.


“맞아, 동화같은 일이지. 그렇지만···”


아리아가 말을 끊고 나를 바라봤다.

그녀의 눈동자엔 복잡한 감정이 서려 있었다.


만에 하나. 아주 만에 하나라면 말이야.


“나를 찾아다오.”

“제가 왜요?”


나는 괜히 삐딱하게 대답했다. 순순히 대답하면, 어쩐지 그녀가 물거품처럼 사그라들 것 같아서.


하지만 아리아는 망설임 없이 말을 이어갔다.


“어린 시절의 나는 마물을 죽이고 검을 수련하는 일 외엔 관심이 없었다.”


참으로 맹목적이었지.

그녀가 꿈꾸는 소녀같은 표정으로 살벌한 이야기를 내뱉었다.


“지금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아리아는 내게 제대로 된 검술을 가르친 스승이기도 하다. 그녀가 가진 검에 대한 집착을 나만큼 잘 아는 사람도 없을 거다.


마물이나 마족과 싸울 때도 방식도 마찬가지다. 나 역시 광천사처럼 싸우는 편이지만, 아리아는 그와 궤를 전혀 달리하는 무엇을 가지고 있었다.


그건 마경으로부터 인류를 수호하는 클라이스트에게 내려오는 축복이자 저주라고. 그녀는 말했었다.


“그땐 더 했지. 마스터가 되기 전엔 혈통의 속박에서 벗어날 수 없었으니까.”

“지금보다 더 미쳤으면··· 말이나 통합니까?”


내가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그건 벽하고 대화하는 수준 아닌가?

당신이 직접 돌아간다면 모를까, 내가 뭘 어떻게 할 수 있는데.


“걱정 말거라. 방법이 다 있으니까.”


아리아가 고개를 저으며 단호하게 말했다.


“심지어 간단하지. 날 이기면 된다.”

“...이기라고요?”

“검으로, 싸워서. 한 20년 전이면 날 밟기에 충분하지 않겠나?”


아리아가 답지 않게 발랄한 말투로 이야기했다.


“그게 대체 무슨 소립니까? 소드마스터도 아닌 제가 어떻게······.”

“누구는 뭐 날 때부터 소드마스터였던 줄 아는가? 그리고 그대는 지금 그 상태로도 마스터급 마족들하고 잘 싸우지 않나.”


아리아가 내 가슴을 쿡쿡 찌르며 말했다.


무리한 운용으로 금이 가버린 코어에서 아픔이 느껴졌다. 조금만 부상이 얕았다면, 벽을 넘을 수도 있었을 텐데.


하지만 그래봤자 기울어버린 전황을 뒤집을 순 없었을 거다.


그녀의 말대로 이 절망적인 상황을 뒤엎으려면 기적이 아닌 한 불가능 할 테니까.


“그래서 이기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어떻게 되는 것이냐고?”


아리아가 약간 잠긴 목소리로 내 물음에 답했다.


“비밀이야.”


그녀가 입술에 기다란 검지 손가락을 올리며 말했다.


“너무 늦어버렸으니까. 이제 와서 청하기엔.”

“...그래도 말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내가 그리 따지고 드는데-


저편에서부터 굉음이 들려왔다.


“이런, 마물이 또 몰려오는군.”

“······.”


아리아가 기다렸다는 듯 어깨를 으쓱하며 말을 끊었다.


문제라면, 그녀의 말에 거짓은 섞이지 않았다는 것.


저 멀리 지평선에서부터 군대가 몰려든다. 일견 새까만 파도와도 같은.


빌어먹을 새끼들.

진군을 막은 지 반나절도 안 지난 것 같은데.


아리아도 나도, 더 이상 버틸 수 없다.


하지만 아리아는 개의치 않고 일어나, 검을 들었다.


그리고 마물의 군세를 향해 겨눴다.


“오너라.”


그녀가 담담하게 내뱉었다.


딴청 피우며 대답을 피하던 모습은 감쪽같이 사라졌다.


더 이상 지킬 것이 남지 않은 세상에서도, 아리아는 수호자였다.


그리고 그 상태로.

···아리아의 숨이 멎었다.

선 채로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하, 마지막까지.”


당신을 지키겠다고 맹세한 나보다 앞서 떠나는군.


물어본 건 대답도 안 하고.


“하하...”


덧없는 웃음이 흘러나온다.

싱겁게 웃지 말라며 타박하는 사람이 더는 없다.


정말로 당신이 떠났구나.


나는 그 사실을 절감하며 검을 쥐었다.


얼마 후, 마물의 군세가 몰려왔다.


그것들을 향해 검을 휘두르고 또 휘둘렀다. 마물을 베고, 마족을 베고. 노도처럼 밀려드는 놈들을 생을 불태워 갈랐다.


마물의 틈바구니에 끼여, 내가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모를 순간에.


“아리아.”


이젠 죽어버린 그녀를 불렀다.


“사실 거짓말을 했습니다. 이것도 충분히 폼나는 죽음이에요.”


당신은 약속을 지켰습니다.

모든 걸 실패했지만, 그래도 끝까지 처절하게 부딪쳤으니까.


다만 당신을 구하지 못한 게 사무치도록 후회될 뿐.


부디 기적이 있기를.


* * *


근데요.


“오래도록 기다려왔어. 너 같은 사람을.”

“······.”

“혼인하자.”


이런다는 말은 없었잖아요.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변경백 가문의 데릴사위가 되었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8 소드마스터 NEW 15시간 전 67 2 13쪽
7 대답 24.09.18 109 2 13쪽
6 착한 흑마법사는 죽은 흑마법사 뿐(2) 24.09.17 132 4 15쪽
5 착한 흑마법사는 죽은 흑마법사 뿐 24.09.16 162 4 17쪽
4 나를 이기면 된다(4) 24.09.15 193 4 13쪽
3 나를 이기면 된다(3) 24.09.15 208 4 15쪽
2 나를 이기면 된다(2) 24.09.15 212 3 18쪽
» 나를 이기면 된다 24.09.15 285 3 1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