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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5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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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5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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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이기면 된다(4)

DUMMY

#004화. 나를 이기면 된다(4)


펠릭스가 갑자기 대가리를 박는다.


쟤 왜 저러는 거지?


내 의문은 빠르게 풀렸다.


녀석의 퉁퉁부은 얼굴. 그리고 그 뒤에 무표정하게 서있는 알베르.


아.


‘저 엘프 영감님한테 처맞았군.’


명문가의 기사가 오만하게 굴다가 대련에서 패배한 것이니. 그럴만도 하다.


게다가 내가 기억하는 알베르는 무척이나 폭력적인 사람이었다. 자신은 아니라고 했지만.


― 난 폭력을 싫어한다네.

― 네?

― 진심일세. 그저 말로 교화하려면 너무 긴 시간이 필요할 뿐이지. 헌데 인간 같은 단명종은 그 전에 죽어버리더군.

― ······.

― 그러니까 내가 폭력을 쓰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야.

― 어, 음, 넵.


회귀 전에 그와 했던 대화를 떠올린 내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펠릭스를 바라봤다.


잔뜩 쫄아있는 모습. 하지만 만족스럽진 않다.


저건 내가 아니라, 알베르의 힘과 위세에 움츠러든 거니까.


이번 생엔 반으로 쪼개줄 수도 없게 되었으니 알베르가 아닌 날보면 쫄게 해야지. 그런 다짐을 하며 그의 어깨를 짚었다.


“뭐 괜찮습니다. 살다보면 제 돌아가신 양친이 천민이었다고 모욕하고 그럴수도 있지. 안 그래요?”

“그, 그게.”

“괜찮아요, 괜찮아.”


내가 펠릭스의 어깨를 꾹 누르며 말했다.


“컥···.”


그의 입에서 비명소리가 흘러나왔지만 가볍게 무시하며 고개를 들었다.


시야에 들어온 건 무심한 표정의 아리아.


그녀의 붉은 눈동자는 잔잔하게 가라앉아있었다.


저게 청혼한 사람의 눈빛이 맞나? 아리아가 평온해보이자, 괜히 더 찔리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눈을 조금 더 바라보자, 저 평정은 그저 가장된 것일 뿐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아리아의 붉은 눈동자엔 온갖 복잡한 감정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기대감과 호기심. 그리고 옅은 불안과 부끄러움.


하지만 그 모든 것을 초월하는 확신이 그녀에게서 보였다.


그건 아마 내가 필요하다는 확신.


회귀 전, 그녀를 처음 만났던 순간이 떠올랐다.


함께 가자고 손을 내밀던 아리아의 모습이 지금의 아리아에게 겹쳐보인다.


그리고 나는 그 겹침 속에서 다름을 찾아냈다.


그녀는 멸망하는 세상을 지키는 소드마스터가 아니라, 번듯한 세상 속을 살아가는 귀족이었다.


나는 기회를 얻은 것이다. 미래를 바꿀 기회를. 그로서 그녀를 바꿀 기회를.


‘그 대가로 내가 아는 당신은 영원히 볼 수 없게 되겠지.’


설령 그렇다고해도 나아가야지.


나는 상념을 지우며 입을 열었다.


“그래서 패배자분들이 어쩐 일로···?”


최대한 얕보이지 않는 쪽으로.


“뭐!”


평정심을 가장하고 있던 아리아가 순간 소리를 뺵 내지렀다.


옛날엔 이 정도 도발론 눈도 깜짝 안 했는데. 과거로 돌아왔더니 가성비가 제법 좋아졌다.


“진정하시지요. 틀린 말은 아니지 않습니까.”


알베르가 아리아를 바라보며 태평하게 말했다.


말리는 건지 놀리는 건지 분간이 되지 않는 행동.


“자네도 지나치게 무례하게 굴지는 말고.”


알베르가 투명한 눈동자로 나를 응시하며 말했다.


그와 눈을 마주하는 순간 몸이 움찔, 하고 떨렸다.


알베르가 뿜어낸 가공할 기세가 나를 짓누른 것이다. 마치 포식자 앞에 선 피식자가 된 듯한 기분이었다.


그가 도달한 경지를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지만, 썩 기분이 좋진 않았다.


그래서 억지로 허리를 곧게 펴고 그를 마주봤다. 자존심을 세우기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알베르는 싸가지없는 젊은이를 좋아하는 괴상스런 취향의 소유자. 내가 굽히지 않으면 오히려 흡족해 할 것이다.


‘저 영감은 결사대가 결성되기 한참 전에도 클라이스트 가문의 2인자였으니까. 잘 보여두면 분명 도움이 되겠지.’


그의 비극적 죽음을 막기 위해서도 친분을 쌓아둘 필요가 있고 말이다.


“요즘 보기 드문 단명종이로군.”


알베르가 재밌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회귀 전에도 눈에 독기 그득한 나를 보며 저리 말했던 것 같은데.

역시 늙어빠진 장생종이라 그런지 하는 말이 죄 비슷했다.


“우리가 찾아온 이유는 간단하다네. 우선 하나 묻지. 자네, 클라이스트 가문의 기사가 될 생각 있나?”


클라이스트의 기사.


그 이야기를 듣자 회귀 전의 추억이 문득 떠올랐다.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벌판. 아리아는 그곳에서 내게 검 한 자루를 내어주며 말했었다.


― 자, 그대는 이 순간부터 클라이스트의 기사다. 세상이 멸망한 관계로 특권은 모두 소멸했네. 허니 의무만 충실히 이행하도록하게.


-.......


의무만을 짊어지고 사는 삶. 그리 나쁜 경험은 아니었다. 나는 클라이스트에서 평생 느껴보지 못한 책임감과 소속감을 느끼게 되었으니까.


게다가 클라이스트 가문은 기사들의 가문. 그 우두머리에 선 변경백 역시 한 명의 기사다.


그러니 내 대답은 정해져 있었다.


“예, 기사가 되고 싶습니다.”


내 대답에 알베르가 아주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좋다. 다만, 간단한 검증 과정이 있을 것이다.”


알베르가 그리 말하며 손가락 두 개를 펼쳤다.


그가 말하길, 검증 과정이란 2명의 정식 기사와 함께 임무를 수행해내는 것. 함께 임무에 나간 동료들의 평가로 당락이 결정된다고 했다.


“한 명은 나다.”


아리아가 카일을 살벌하게 쏘아보며 말했다. 마치 왜 그때 대답을 안 했냐는 듯이.


과거에도 아리아는 때로 이렇게 치기어린 면모를 보였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만 자극해도 반응이 나오는게 확실히 더 재밌어지긴 했다.


“그럼 나머지 하나는 제가 정해도 되겠습니까?”


내가 아리아와 알베르를 돌아보며 물었다.


“자네가 아는 기사가 있나? 뭐 마음대로 하도록.”


알베르가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장생종 특유의 방만함에 가까운 너그러움이다.


나는 곧바로 펠릭스의 어깨를 짚으며 말했다.


“그럼 여기 펠릭스 경과 함께 가도 되겠습니까?”

“······.”


내 말에 펠릭스의 눈동자가 몹시 바쁘게 굴러갔다.


적당히 머리 처박고 치울려고 한 것 같은데. 그렇겐 안 되지.


내가 저 새끼 때문에 한 고생이 얼만데. 고쳐쓰던가. 못 쓰게 만들던가. 하나는 해야한다.


“괜찮군. 그러도록하게. 내 펠릭스와 잠시 대화를 나눠보니 카일 자네에 대한 존경심이 퍽 각별하던데.”


알베르가 그것 참 좋은 생각이라는 듯, 느물거리며 말했다.


그의 말 한 마디로 임무에 나갈 인원이 확정되었다.


그러나―


[자네는 내 조만간 따로 찾겠네.]


느물거리둔 목소리와는 전혀 다른, 날카롭고 차가운 엘프의 음성이 귓전에 닿았다.


바람을 타고 흘러드는 목소리. 아마 알베르가 정령술을 통해 나만 들을 수 있는 소리를 흘리고 있는 것일 텐데.


‘···역시 무의식 중에 반격기를 쓴 탓인가.’


그 기술은 본래 알베르에게서 비롯된 것. 그러니까 그가 관심을 가지는 것도 당연하겠지.


용건을 전혀 드러내지 않는 것도 알베르다운 태도였다.


그는 물렁거리는 것처럼 보여도, 인간의 마음을 쉬이 꿰뚫어보는 오래된 엘프니까.


하지만 나는 그를 안다. 그는 나를 모르고.


나는 잠시 숨을 꾹 참으며 정신을 집중했다.


머리에 찌릿한 두통이 올라옴과 동시에, 알베르가 세상에 퍼트린 바람의 흔적이 보이기 시작했다.


회귀 전 드높은 경지에 이르며 각성한 능력. 세상을 읽는 눈이다.


읽음이란 본디 통찰. 통찰은 단지 보는 것에서 멈추지 않는다.


나는 그의 정령술에 조금이나마 간섭하기 시작했다.


주도권을 빼앗거나, 기술을 파훼하거나. 그런 복잡한 짓을 할 생각은 없다. 아직 알베르를 상대로 그런 걸 할 수도 없고.


[좋습니다. 곧 찾아뵙지요.]


그저 답을 전달할 뿐.


[···.]


아마 일방적으로 통보할 생각이었는데, 답신이 돌아와 당황했겠지.


여태까지는 그저 재밌는 변수를 관찰하는 늙은이의 눈빛이었는데. 지금은 나를 불가해한 것으로 보는 듯했다.


그리고 삶에 신물을 느끼는 장생종이 가장 즐거워하는 순간은 결국 불가해를 마주했을 때.


나는 아군으로 또 적으로. 아주 많은 장생종들을 마주했기에 그 사실을 확실히 알고 있었다.


나와 알베르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서로를 마주보고 있을 때.


“그대는... 비범한 사람이군.”


아리아가 나를 쳐다보면 말했다.


“알베르 단장의 눈. 평범한 사람은 그렇게 오래 쳐다볼 수가 없어. 저 속에서 몰아치는 세찬 폭풍에 휩쓸려 버리니까.”


“그렇습니까?”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모른 척했다.


알베르가 기선제압을 하려고 들때나 상대와 눈을 오래 마주친다는건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다.


아리아는 내 태연한 반응에 짤막한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 나오겠다면, 알겠네. 대신 임무가 끝나면 대답해야 할 것이야. 내 물음에.”


···자기가 싫냐고. 그렇게 물어봤었던가.


대답하기 퍽 곤란한 물음이었다. 그래도 시간을 번게 다행인가.


“알겠습니다.”


나는 아리아를 향해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곧 보지.”


아리아는 그 말을 끝으로 몸을 돌려 장내를 빠져나갔다. 그녀를 시작으로 알베르 역시 바람결처럼 흩어졌고.


“······.”


펠릭스는 화를 내는 건지 우는 건지 모를 표정으로 나를 노려보다가 엉거주춤 사라졌다.


* * *


“단장님께선 어찌 생각하십니까?”


아리아가 허깨비처럼 빠르게 사라지는 알베르를 향해 물었다.


“무얼 말입니까?”


그녀의 질문에 잠시 걸음을 멈춘 알베르가 반문했다.


“그자... 카일이 저를 싫어하는 것 같덥니까?”

“······.”


알베르가 순간 침묵했다.


그쪽으론 전혀 생각을 해보지 않았다.


아마 그가 자신의 관심을 지나치게 많이 끈 탓일 거라고. 알베르는 생각했다.


일족의 기술을 쓰고, 자신의 정령술에 간섭하는 자. 아리아와 변경백을 제외하면 알베르를 이토록 놀라게 한 이는 거의 없었다.


하지만 그게 이유의 전부는 아니다.


그가 생각하기에, 카일이 사람이라면 아리아를 싫어할 리가 없었다.


“걱정마십시오, 아가씨.”


만약 놈이 아리아가 싫다고 말한다면 머리에 문제가 생긴 것일 터. 다소간의 대화를 통해 교정하면 된다.


“···도움이 아주 많이 되는 답입니다.”


아리아가 알베르의 단호한 반응에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그러다가 문득, 검을 뽑아 투명한 단면에 자신의 얼굴을 비춰보는 아리아.


“흐음, 역시 예쁜데. 그렇죠?”


뭐 임무에 나가서 차차 이야기를 나눠보면 되겠지.

아리아 자신이라고 해도 처음 만난 남자가 청혼했으면 일단 팔다리부터 잘라놓고 봤을 것이다.


‘그래도 싫다고 한다면···?’


솔직히 그러진 않았으면 좋겠다.


그녀의 아버지나 알베르를 제외하면 따를 자가 없을 정도로 정교하게 완성된 검술.

본 적 없을 정도로 지독한 집념.


뭐 그런 것들이 마음에 든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 꺾이지 않을 것 같은 푸른 눈.

아리아는 그 눈을 다시 보고 싶었다.


* * *


아리아를 상대로 승리하고.

그 직후 쓰러졌다고 다시 깨어나고.


온갖 지랄을 벌인지도 벌써 일주일.


아리아는 그동안 몇 차례 나를 찾아왔고, 의미 없는 대화만 나누다가 돌아갔다.


그리고 나는 임무에 앞서 동료애를 다지기 위해 종종 펠릭스 경과 심도깊은 대화를 나눴다.


그 방식은 회귀 전 알베르의 것을 기준으로 뒀는데. 역시 아주 효과가 좋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가던 중. 대망의 기사 서임을 위한 임무가 하달되었다.


“임무는 간단하다. 제17요새에서 오러를 사용할줄 아는 변종 오크 무리가 발견된 상황이고, 우리는 요새의 병력들과 함께 그것들을 소탕. 혹여 존재할지도 모르는 배후를 파악하면 돼.”


아리아가 명령서를 펼치며 말했다.


“흐음···.”


나는 그걸 바라보며 턱을 문질렀다.


오러를 사용하는 변종 오크는 상당히 까다로운 존재다.


그들 각각이 강력한 것도 문제지만. 마물 중에서 유독 아인(亞人)에 가까운 오크는, 가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변종을 배출하기 때문이다.


아마 기사들을 추가로 파견해 변종 오크를 미리 소탕하는 것역시 그 일환이겠지.


헌데 배후가 있으면 파악한다라. 나는 오히려 그쪽이 더 신경쓰였다.


뭔가 생각날 듯 말 듯. 그런 기분.


“물.”


나는 펠릭스를 향해 손을 내밀며 말했다. 목을 좀 축이면 기억이 떠오를 것도 같았기에.


“···?”


펠릭스는 당혹스러운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역시 덜 맞았나?


놈은 잠시 고민하는 기색을 내보이다 주섬주섬 제 수통을 꺼내서 내게 내밀었다.


나는 물을 벌컥벌컥 들이켜며 회귀 전을 회상했다.


-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로, 가문은 엉망진창이 되었다. 중앙에서 활동하던 흑마법사 조직, 검은 별이 본격적으로 본가의 영역에 진출했고. 거기다가 내분까지······.


그래, 검은 별. 그런 이름이었지.

변종 오크를 양산하거나 혹은 조종할 수 있는 이들은 크게 두 부류다.


마경의 고위 마족이거나, 흑마법사거나.


그런데 왠지 모르게 이번엔 흑마법사 놈들이 엮여있을 것이란 예감이 들었다.


“바로 출발하지.”


아리아가 나와 펠릭스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렇게 말을 타고 두 시간 여를 달려 도착한 제17요새.


타탁, 타닥···

···화르르르륵!


그곳은 무너진 채로 불타오르고 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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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소드마스터 NEW 15시간 전 67 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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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착한 흑마법사는 죽은 흑마법사 뿐 24.09.16 162 4 17쪽
» 나를 이기면 된다(4) 24.09.15 193 4 13쪽
3 나를 이기면 된다(3) 24.09.15 208 4 15쪽
2 나를 이기면 된다(2) 24.09.15 212 3 18쪽
1 나를 이기면 된다 24.09.15 284 3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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