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나니로 다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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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금문
작품등록일 :
2024.09.15 20:20
최근연재일 :
2024.09.17 2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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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6 2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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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혼

DUMMY

”일어나셨다!”


다급한 목소리에 눈을 떴다.

웅성거리며 시끄럽던 이들이 일제히 내 눈치를 살폈다.

그제야 다시 태어났다는 걸 확신할 수 있었다.


‘또.’


지겨운 일이다.

자결이라도 할까 고민하고 있는데, 문이 벌컥 열리며 중년의 여인이 뛰쳐들어왔다.


“금천아!”

“···.”


이 몸의 어미인 모양이다.


‘피곤하군. 무슨 사고를 친거지.’


화려한 방과 이 난리에도 차분하게 내 몸을 살피고 있는 다섯 명의 의원.

전부 자세가 올곧고 눈에도 정광이 흐르는 걸 보아, 무공을 익힌 이들이다.

무공을 배운 의원이라면 중원에서는 하나뿐이다.


‘사천당가.’


당가의 사람을 다섯이나 부를 수 있을 정도면 분명 대단한 가문일 터.


“···허.”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자결을 생각했으면서, 이 와중에도 주변 상황부터 살피다니.

아무래도 미련이 남기는 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그조차 내려놓고 싶었다.


“금천아!?”


중년의 여인이 내 어깨를 붙잡고 흔들었다.

그 손길이 얼마나 억센지 없던 병도 생기겠다 싶었다.

어미는 어미지만 어미가 아니다.

꾸며낸 표정을 보니 확실하다.


“얘가 대체 왜 이러는 겁니까? 이 어미를 못 알아보지 않습니까?”


내 몸을 살피던 의원 중 가장 나이든 노인이 웃으며 그녀를 달랬다.


”부인 진정하십시오. 방금 깨어나서 아직 정신이 들지 않은 탓입니다. 금세 괜찮아질 것입니다. 이공자.”

“예.”

”불편한 곳은 없습니까.”

”예, 없습니다.”


노의원이 눈을 가늘게 떴다.

익숙한 표정이다.

무언가 감추고 있는 이들이 흔히 보이는 얼굴.


‘웃기는 일이군.’


분명 이 몸뚱이가 여기 누워있던 이유와 연관되어 있을 터.

이 여인도 그렇고, 이 노의원도 그렇고, 꿍꿍이가 너무 많다.

벌써 머리가 아파온다.


‘또 귀찮은 놈으로 태어난 모양이구나.’


옷매무새를 가다듬은 다음 노의원과 여인에게 고개를 숙였다.

아, 여인이 아니라 일단은 이 몸의 어머니일테지.


“소자는 괜찮습니다. 허나 정신이 산만하여 잠시 혼자 있고 싶습니다. 어머니.”

“···어머니?”

”왜 그러십니까? 제가 무언가 실수라도?”

“아, 아니다. 그래, 방금 일어났으니 정신이 없을 법도 하지, 내 나가 있으마.”


그녀가 급히 자리를 피했다.

그 당황스러운 뒷모습을 보자 다시 확신할 수 있었다.

이번 생도 귀찮은 일이 가득할 느낌이다.


“허허.”


혼자 남은 노의원이 수염을 쓰다듬으며 웃었다.

가만히 그를 보다가 손을 쑥 내밀었다.

진맥이 끝나야 나갈 기세라 어쩔 수 없었다.


“마저 살펴주십시오.”

“그러지.”


말투가 변했다.

굳이 지적하지 않았다.

갈고리 같은 손가락이 내 손목을 움켜쥐었다.

기세는 억세 보였지만, 실제로는 굉장히 부드럽고 조심스러운 손길이었다.

말없이 진맥을 이어가는 노의원에게 물었다.


“제 맥은 어떻습니까.”

“아주 좋네.”

“어디서 오셨는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내 성은 당씨라네.”

”그렇군요. 어쩐지 독수가 익숙하시다 했습니다.”


노의원의 손가락이 내 손목을 움켜쥐었다.

지금까지의 부드러운 손길이 아니었다.

꾸드득.

뼈가 으스러질 것처럼 뒤틀렸지만 다행히도 통증은 익숙하였다.

하지만 이 몸은 내 정신과 달리 이런 강도 높은 통증을 처음 겪는 모양이었다.

어깨가 떨리고 허리가 저절로 굽어졌다.


“아픕니다.”

”허허, 사람이 죽다 살아나면 혼이 바뀐다는 이야기를 듣기는 했다만, 그게 진짜일 줄은 몰랐군.”

“그렇습니까. 제 덕분에 견문을 넓히셨다니 저도 기쁩니다.”

“누구냐.”

”저 여인의 아들입니다.”

”허허허.”


노의원이 손을 놓아줬다.

시뻘건 손자국이 피부 위에 얼룩처럼 늘러붙어 있었다.

얼룩은 순식간에 색을 바꿨다. 붉은색에서 보라색으로.

그러자 지독하던 통증이 삽시간에 가라앉았다.


‘신기하군.’


몇십년 전 치과진료를 받았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사랑니를 뺄 때도 이렇게 마취를 했었다.

생살을 찢고 이를 드러내도 아프지 않다. 마치 죽은 살을 만지는 것처럼 불쾌한 감각이 느껴졌다.


“어떤가. 견딜만한가?”

“감사합니다.”

“내가 무엇을 한 줄 알고?”

“덕분에 통증이 많이 줄었습니다.”


노의원이 웃었다.


“병 주고 약을 줬는데도 감사하다고 하는가?”

”살려주셨으니 그걸로 족합니다.”

”살고 싶은가?”

“별로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허허.”


계속 웃기만 하던 노인이 입술을 달싹였다.


-자네 어머니를 조심하게.


이 몸의 경지가 얕아 전음을 할 수 없으니 입을 열어 답했다.

사실 나는 전생에도 전음은 하지 못했다.

전음입밀은 일갑자의 내공이 필요한 공부다.


“알고 있습니다.”

-허허, 이거 참.


입맛을 다시던 노의원이 눈을 빛냈다.

늙은이의 눈빛이 아니었다.

형형하게 빛나는 것이 꼭 밤길에 마주친 호랑이 같았다.

실제로 빛이 나고 있으니 그리 틀리지도 않은 터였다.


-탐이 나는구나. ···아이야.

“예.”

-내 제자가 될 생각은 없느냐.

“죄송하지만 제가 너무나 한미하여 실망만 끼쳐드릴까 저어됩니다.”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 건 아니고? 누가 뭐라해도 지금 너를 이렇게 만든 건 나이니 말이야.

“과분한 말씀입니다.”

”허허허.”


노의원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자네 아버지가 찾을게야. 사람이 온 모양이더군.”

“어디서 왔는지 여쭤도 되겠습니까.”

“복호사에서 왔다더군.”


복호사는 구파일방의 한축인 아미파의 본산이다.

노의원이 짖궃게 웃었다.


“무슨 뜻인지는 자네가 더 잘 알겠지. 그런데도 내 제안을 거부할텐가? 아무도 자네를 돕지 않을 터인데? 당연히 팽 당한 나도 자네를 도울 생각이 없네. 아주 적극적으로 방해할 생각이야!”

“육성으로 말씀하셔도 괜찮으십니까?”

“내공으로 소리를 막았다. 그러니 걱정하지 말고 답해 보거라. 내 제자가 되겠느냐?”

“싫습니다. 이미 모신 스승이 따로 계십니다.”

”···그럴 리가 없는데?”


노의원이 손을 홱 뻗었다.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엄청난 속도였다.

삽시간에 내 몸을 몇백번이나 두드리더니 연신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단전이 닫혀 있는데, 흐음. 중단과 상단만 여는 무공이 있었던가?”


중단전과 상단전만 여는 무공은 없다.

내 하단전이 닫힌 이유는, 이 몸이 무공을 익힌 적이 없어서일테지.

내가 말한 스승은 전생의 스승님이다.


“흐음, 스승이라. 거짓말은 아닌 것 같은데.”


노의원이 손뼉을 짝 쳤다.


“그 스승이라는 작자가 누구인지 모르겠지만, 상관없다. 나를 모시거라. 그럼 내 너를 살려줄 터이니.”

“됐습니다.”

“끄응. 이 모자란 놈아. 하단전이 막혀 있다. 상단과 중단이 열려 있는 것은 네놈이 타고난 육신이 특별한 것이지 익힌 무공 덕분이 아니란 말이야! 그런데도 그 재능을 썩힐 생각이더냐?”

“예.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답답한 놈 같으니!”


노의원이 역정을 내더니 문을 열고 나가버렸다.


“···.”


손목을 매만지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방 한 켠에 위치한 동경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익숙하지만 익숙하지 않은 얼굴이다.

이미 한 번 겪었던 감정이지만, 그래도 참 괴상한 감각이다.

눈에는 익었지만 정신은 처음 겪으니 이런 일이 발생한다.


‘뭐하면서 살지.’


잘은 모르겠지만, 일단은 이 집부터 나가야겠다. 귀찮은 일이 벌어질 것이 뻔하니.


‘뭐라고 핑계를 댈까.’


집을 나갈 방법을 궁리하느라 일다경쯤 썼을까.

하인이 안으로 들어와 나를 불렀다.

이 몸뚱이의 친아버지인 이경옥의 호출이었다.

다친 자식에 대한 배려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이 꼴을 보니 내 입으로 나간다고 해도 곱게 나가게 해줄 것 같지 않았다.


‘가출해야겠군.’


깽판이라도 쳐야겠다.

그럼 나갈 때도 붙잡지 않겠지.


***


사천성(四川省)에 위치한 금화상단(金化商團)은 대륙 4대 상단에 속할만큼 거대했다.

다루는 물자와 인력은 물론이요, 조정과도 연이 닿아있어 여러 특혜를 받을만큼 그 위세 또한 대단했다.

당연히 그 성장을 두려워한 이들에게 무수히 많은 공격을 받아았지만, 이를 전부 극복하며 지금의 지위를 공고히 했다.


그 모든 일을, 금화상단을 만들고 여기까지 성장시키는 모든 일들을 해낸 창업주 이만종에 대한 평가 또한 대단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딱 하나 안 좋은 평이 있었으니, 그 아들이자 후계자인 이경옥에 대해 세간이 보낼 수밖에 없는 불신의 시선이 그것이었다.


현 금화상단의 대방인 이경옥.

아버지 이만종이 주변의 힘을 끌어모아 상단을 발전시키는 것에 집중했다면, 이경옥은 현재의 위치를 지키는 것에만 몰두했고 그건 이경옥이 사설무력집단을 운용하며 동시에 자신 또한 무공을 갈고닦는 이유가 되었다.

상인보다는 무인에 더 걸맞는 사람이었다.

아버지인 이만종과는 그 성장방식도 목표로 하는 것도 달랐던 탓이다.

하지만 주변에서는 그건 핑계일뿐, 그가 진정 원하는 건 상단의 발전이 아닌, 개인의 무공성취라는 평이 자자했다.


허나 이경옥은 그런 평가 따위 신경쓰지 않았다.

세간의 평을 신경써야할만큼 낮은 지위가 아니었으며, 무엇보다 본인이 그런 것에 둔감한 탓이다.

그는 고령의 아버지에게 문안인사를 올리는 것보다, 그 시간에 새벽수련을 하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할만큼 독특한 인사였다.


아버지에게도 그 정도이니 자식에게는 오죽할까.

그는 자식이 아파 몸져 누워있어도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첫째가 천연두(天然痘)를 앓고 쓰러졌을 때도, 무공 수련을 게을리한 그놈 탓이라며 일축했다는 일화는 유명했다.


그런 사람이니 자식들의 혼사 문제에 대해서도 소 닭 보듯 행동하는 건,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파혼하자?”


이제 사십줄에 들어섰을 중년의 사내 이경옥은 무공과 영약으로 단련된 거구의 육신을 자랑했다.

무식할 정도로 두꺼운 근육이 연신 꿈틀거리며 위협했지만, 이경옥 앞에 마주앉은 사내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호록.

그저 차를 홀짝이며 고개만 까딱일 뿐이었다.


“···.”

“···이!”


그 건방진 모습에 이경옥을 호위하던 이들이 위협적인 기세를 내뿜었다.

제 주인을 경시하니 마치 자기가 모욕을 당한 것처럼 느낀 탓이다.

분명 성실하고 충성스러운 모습이었지만, 상대가 나빴다.


“됐다.”


이경옥이 얼른 손을 들어 만류했다.

그가 직접 불만을 토로하는 것이야 별 상관없지만, 그 밑의 사람들이 나서는 것까지 봐줄만큼 속 좋은 인사가 아니었다.

충성스러운 수하들을 겨우 이깟 일로 잃고 싶지 않았다.

모자란 자식의 혼사 문제보다 믿을 수 있는 수하가 더 중한 법이다.


“아미파의 뜻이 그렇다면 당연히 따라야지.”


이경옥이 탁자 위의 서신을 집어들자, 지금껏 한마디도 없이 차만 홀짝이던 사내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미안하네.”


전혀 미안한 표정이 아니었다.

오히려 이경옥을 질책하는 것에 더 가까운 얼굴이었다.

일방적인 파혼 통보를 하는 이가 보이기에는 너무나 무례한 태도.

하지만 이경옥도 그에 관해서는 뭐라 할 말이 없었다.

방금 파혼 당한 자식 놈이 너무나 못난 꼴을 지속적으로 보여온 탓이었다.


‘멍청한 놈!’


둘째를 생각하자 열이 확 올라왔다.


“실례하겠습니다.”


그때 문이 열리며 문제의 둘째놈이 안으로 들어왔다.

그 꼴을 보자 없던 화병이 도지는 것 같았다.

축 쳐진 어깨와 헝클어진 앞머리, 땀으로 번질거리는 얼굴과 옷까지.

뭐하나 마음에 드는 꼴이 없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마음에 들지 않은 건 다 죽어가는 병자의 눈이었다.


‘가문 망신은 다 시키는구나.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기에 저런 모자란 놈이 내 자식으로, ···허어.’


이경옥이 치솟아 오르는 화를 가라앉히며 사내를 턱짓했다.


“아미파에서 파혼을 선언하셨다. 뭐라 할 말은 없더냐?”


그건 질책이었다.

너 때문에 가문과 아비가 망신을 당했는데 뭐라도 변명이라도 해보라는 질책.

그 모습에 사내가 인상을 찌푸렸다.

아무리 못나도 어찌되었든 친자식이다. 외인이 보는 곳에서 이토록 무시하다니.

돈을 주고 부리는 아랫사람에게도 이렇게 함부로 대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자기 자식에게 이러다니.


‘이러니 밖에서 기를 못 펴지. 쯧쯧. 파혼하기를 잘했군.’


본산을 내려올 때까지만 해도 내심 마음이 편치 못했었다.

아무리 그래도 이들은 무인이 아니라 상단이다.

비무에 졌기로서니 바로 파혼이라니?

허나 지금 보니 장로님들의 판단이 정확했다.

비단 망나니로 이름 높은 둘째만 문제가 아니었다.


‘이경옥.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를 않는구나.’


사내가 찻잔을 들어 입매를 가리는데, 주변을 살피던 이금천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예.”

”뭐라?”

“할 말이 없습니다.”

“···.”

”그럼 이제 돌아가도 되겠습니까? 소자가 몸이 아파서.”

“이놈!!! 어디서 배워먹은 말버릇이더냐!”

“아버지 자식 아닙니까. 아버지에게 배웠겠지요.”


사내가 풉하고 차를 뱉었다.

찻물을 뒤집어 쓴 이경옥이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조용히 다가온 이금천이 소매에서 손수건 하나를 꺼내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닦으십시오. 그럼 저는 몸이 아파서 이만 가보겠습니다.”


덜컹하고 문이 닫혔다.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른 이경옥이 어깨를 덜덜 떨었지만, 사내는 그보다는 밖으로 나간 이금천이 더 신경쓰였다.


‘이상하군. 그토록 대가 약하던 녀석이 어찌 저리?’


고민하던 사내가 눈을 반짝였다.


‘설마 일부러?’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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