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나니로 다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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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금문
작품등록일 :
2024.09.15 20:20
최근연재일 :
2024.09.17 2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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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7 2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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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면치레

DUMMY

‘하지만 굳이 그럴 이유가 있을까.’


아무리 무시 당한다한들 이금천은 금화상단의 적통 중 하나다.

건실한 첫째가 있으니 가문을 이을 수야 없겠지만, 그래도 평생 먹고 사는데 걱정은 없을 터.


‘겨우 그 정도가 아니지.’


금화상단의 부(富) 중 극히 일부만 잇더라도 호의호식하며 온갖 사치란 사치는 다 부리며 살 수 있다.

가문의 연줄이 있으니 권력자나 무림인에게 핍박 받는 일도 없을테고.

상단이 위치한 사천 밖에서야 온갖 고수들의 위협을 받겠지만, 밖으로 나가지만 않는다면 안전 그 자체다.

사천성의 성주가 이미 금화상단의 사람 아니던가.


호의호식 수준이 아니라, 대낮에 저잣거리를 거니는 민간인을 아무 이유없이 때려죽여도 덮어버릴 수 있을 정도의 권력과 부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 특별한 권리들을 무슨 이유로 포기한단 말인가.

그러니 분명 지나친 억측일 터였다.


“···이, 이놈이!”


이경옥이 닫힌 문을 쏘아봤다.

그 기세에 곁을 지키던 무사들이 당장이라도 뛰쳐나갈 것처럼 손을 들썩거렸다.

그것만 보아도 이금천이 무슨 취급을 받는지 눈에 선했다.

가주에게 함부로 대한 사람이지만, 동시에 가주의 자식이다.

그런 이에게 대놓고 적개심이라니.

자신이야 외부인이니 그럴 수 있다손 치더라도 이건 도가 지나쳤다.


하지만 이 꼴을 보고있자니, 방금 전까지 머릿속을 휘젓던 억측들이 정녕 사실이 아닌가 의심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이금천이 바보가 아니라면 자신에 대한 취급이 어떠한지 모를 리가 없을 터.

그럼에도 이 상황을 더 악화시키고 있다는 건 천치나 병신이 아니라면 설명할 수 없다.

허나 직접 마주한 이금천은 그렇게 모자라 보이지 않았다.


‘무슨 꿍꿍이가 있군.’


호록.

다 식은 찻잔을 들어 입매를 가렸다.

버릇이었다.

표정을 감추는데는 언제나 이게 제격이었다.


“못난 꼴을 보였군.”


찻소리에 정신을 차린 이경옥이 마음에도 없는 사과를 해왔다.

적당히 고개를 끄덕인 뒤 밖을 턱짓했다.


“파혼에 동의하나.”

“저런 놈을 지금껏 참아준 아미파에 감사드리네. 마음고생이 심하셨을 장로님들께 심심한 사과를 전하고 싶네.”


금화상단의 가주쯤 되면 말로만 사과할 수는 없다.

그리고 기실 사과할 일까지도 아니었다.

그저 상대가 마음에 들지않아 파혼한 것 뿐이지 않던가.

그것도 불문에 속한 아미파의 직계제자가 아닌, 속가제자와의 혼사 이야기였다.

그러니 이건 사과를 빙자한 뇌물을 주고 싶다는 뜻이었다.

이번 일로 아미파와 금화상단의 관계가 깨지지 않기를 바라는, 동시에 다른 유력가문과 세가들에게 그 관계를 보이기 위한 뇌물.


‘귀찮은 짓을.’


사내가 인상을 찌푸렸다.

장로님들이나 그분들의 제자 대신 사내가 온 이유는 간단했다.

아미파는 이번 일로 금화상단과의 관계를 정리하고 싶어했다.

그런데 그깟 돈 몇 푼에 구설수에 오를수야 없는 일 아니겠는가.


“사과라니, 괜찮네. 나야말로 미안하지. 이런 안 좋은 소식을 전하게 되다니. 이번 일로 우리 사이가 깨지지 않았으면 좋겠군.”


아미파가 아니라 사내 본인을 지칭했다.

뇌물을 받더라도 그건 자신과 금화상단 간의 문제지, 아미파는 엮이지 않았다고 선을 그은 것이다.

문제가 생겼을 때 다른 이들에게 할 변명을 만들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이경옥도 호락호락하지는 않았다.

어린아이의 재롱을 보듯 허허 웃으며 간단히 동의했다.


“당연하지. 아미파가 자랑하는 최강의 고수 중 하나와 닿은 연을 내 어찌 함부로 끊을 수 있겠나? 괜한 일로 마음고생이 심했을 자네에게도 작은 보답을 하고 싶군.”

“됐네!”


가문 이야기가 나오자 사내가 인상을 와락 찌푸렸다.

아미파는 물론이요 자신의 가문과도 엮이게 할 수 없었다.

어디까지나 개인과 개인 간의 관계로 끝내야한다. 그래도 탈이 생기는 게 무림이었다.

탁! 거칠게 찻잔을 내려놓으며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이경옥이 그 등을 향해 속삭였다.

모기소리처럼 작았지만, 고수인 사내에게는 천둥소리처럼 크게 들렸다.

무엇보다 그 내용이 마음을 뒤흔들었다.


“며칠 전 지부대인께서 보약을 하나 보내주셨네. 중풍(中風)에 좋은 영단이라더군.”

“···효과는 확실한가?”

“그럼! 내 누구 안전이라고 거짓을 고하겠나? 어서 앉게. 서서 할 이야기는 아니지 않은가.”


이경옥이 부드럽게 손짓하자 사내가 마지못해 자리에 앉았다.


“···영단이라면.”

”당가에서 나온 물건은 아닐세. 아, 그렇게 쳐다봐도 출처는 말할 수 없네. 지부대인께도 사정이 있으시지 않겠나.”

“그건 그렇지.”

”우리야 약효만 확실하면 되는 것 아니겠나? 당가에서 이미 확인을 마쳤네. 한시진 전에.”

”그래서.”


어쩐지 저리 무시하는 둘째를 살리려는 것치고는 과한 초대다 싶었다.

사천당가의 명약단주라니.

그 늙은이는 돈만 주면 어디든 가는 전귀지만, 그 실력만큼이나 욕심도 엄청났다.

내방하는 대가로 못해도 저택 한 채 값은 뜯어냈을 터.

그리 싫어하는 둘째를 살리겠다고 부르기에는 너무 과한 손님이었다.


‘영단을 확인하려고.’


당가의 명약단주가 보증했다면 약효는 확실하다.


“내게 주겠다는 선물이 그 영단인가?”

“당연히 아니지. 자네에게 주고 싶은 보답은 술일세. 내 좋은 명주를 하나 구해놨다네.”


사내가 인상을 찌푸리자 이경옥이 실실 웃으며 품에서 통 하나를 꺼내 탁자 위에 놓았다.

붉은 나무로 만든 둥근 통 안에는 자그마한 영단이 고급스러운 비단에 곱게 싸여 있었다.

이경옥이 영단을 슥 밀어 사내의 앞에 놓더니 슬쩍 눈짓했다.

무언의 재촉에도 말없이 약통만 보고 있던 사내가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받아도 되겠나?”

“···.”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이경옥이 약통을 들어 사내의 손에 억지로 쥐켜줬다.

그제야 사내가 입을 열었다. 선물을 받았으면, 아니 돈을 받았으면 돈값을 해야하는 법이다.


“아미파는 자네 가문과 연을 끊고 싶어하네.”

”우리가 큰 잘못을 한 모양이군. 아니면 달리 섭섭하신 일이라도?”

“둘 다 아닐세. 자세한 건 말 할 수 없지만, 음!”


손 안의 약통을 만지작거리던 사내가 이경옥을 쳐다봤다.

그 잠깐 사이에 얼굴이 시커멓게 죽어있었다.

비밀을 엄수해 달라던 장로들의 부탁을 대놓고 어기고 있는 자신의 모습에 환멸감을 느낀 탓이다.

하지만 한 번 열린 입은 멈추지 않았다.


“···장문인께서 편찮으시네.”

“이런!! 어찌 그런 일이? 큰일이구만! 내 당장 최고의 의원과 약재를 선별해서 복호사로 보내겠네!”

“그러지 말게. 장문인께서는 이번 일을 크게 만들고 싶어하지 않으셔.”


아미파쯤 되면 적이 없다.

척을 지기에는 너무 강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구파일방이라는 이름으로 묶인 정파세력 전체의 구심점과 같은 존재들 중 하나이기에 아미파를 공격하는 건 정파 전체를 공격하는 것과 같았다.

하지만 그렇게 강한 아미파도 내부의 우환까지 어찌할 수는 없었다.

거기다 같은 구파일방.

아미파와 비슷한 힘을 가진 그들 또한 정파 전체로 보았을 때는 내부의 우환 중 하나인 셈이었다.


“아. 내가 실언을 했군.”


이경옥이 실실 웃으며 사내에게 눈짓했다.


“그럼 의원 대신 약재를 보내겠네.”

“말하지 않았는가. 아미파는 지금 외부 일에 개입할 시기가 아닐세. 자네 선물이라도 받을 수 없어.”

”그럼 시주라고 하세.”

“똑같은!”

“···.”


그가 다시 한 번 거절하려는데 이경옥이 말없이 눈짓했다. 손 안에 든 약통에 눈길이 닿아 있었다.


“그 약 말이야. 내 알아보니 다룰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더군. 당가 정도는 되어야 제대로 약효를 뽑아낼 수 있는 모양일세.”

”···.”

“영단만 턱하니 건내는 건 도리가 아니지. 내가 훌륭한 의원도 보내주겠네.”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었다.

힘이 탁 풀린 사내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고맙네.”

”그럼 시주는?”

“자네가 그 지극한 마음으로 부처님께 공양하겠다는 것까지 내 어찌 막겠는가?”

“허허, 역시 자네야.”


포기하니 편했다. 이경옥을 따라 피식 웃던 사내가 빈 찻잔을 툭하고 쳤다.


“한 잔 더 주게.”

”차는 그만 마시세. 좋은 술을 구해뒀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게 좋겠군.”


이경옥을 따라 자리에서 일어나는 사내의 손에는 이미 약통이 보이지 않았다.

혹시나 잃어버릴까 품에 소중히 감춘 탓이다.


***


“개판이군.”


상단전을 닫은 뒤 운기를 멈췄다.

한식경 동안 영혼과 연결된 상단전을 통해 내부를 관조했다.

덕분에 이 몸뚱이, 이제는 내것이 된 이금천의 상태를 대충이나마 파악할 수 있었다.


‘알 수 없는 독으로 인한 중독, 전염병, 극도의 체력저하, 성병까지.’


온갖 것들이 몸에 그득하다.

사기가 얼마나 많이 쌓였는지 상단을 여는 순간 시커멓게 썩어들어가는 하단전부터 눈에 들어왔을 정도였다.

어쩐지 그 노의원이 그리 자신하더라니.


‘명약단주라.’


노의원의 정체는 사천당가의 명약단주.

사람을 죽이는 독약으로 유명한 당가이지만, 동시에 사람을 살리는 약 또한 쉴새없이 개발하는 곳이 바로 당가다.

당연히 이름난 의원을 여럿 배출했는데, 그런 의원들을 가르치고 관리하는 최고직이 바로 명약단주였다.

내가 활동하던 시기와 동일한지는 모르겠지만, 대대로 명약단주는 당가의 핵심인사 중 하나였다.


‘골치 아픈 인간이랑 엮였어.’


그는 상단과 중단이 열린 내 몸을 훌륭한 재목이라 평했지만, 그건 낚시다.

하단전이 열리지 않은 상태에서 상단과 중단 중 하나만 열려도 수명이 줄어든다.

길어야 십년, 재수 없으면 삼년 안에 사망하는 경우도 부지기수인데 나는 하나도 아니고 둘 다 열려있다.

몸에 쌓인 사기와 질병은 아무것도 아닌 수준으로 위험한 상태.

그런데도 재능 어쩌구 평한 것은 이 몸뚱이로 실험을 하고 싶은 탓이겠지.


‘어찌 도망치지.’


노의원과 가주.

두 사람 다 위험하다.

하지만 그중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노의원이다.

가주는 이금천을 신경도 쓰지 않는 기색이었다. 그러니 내가 위험해져도 돕지 않을 확률이 높다.

설령 마음이 변해 돕고자 해도 소용없다.

금화상단이 아무리 대단해도 돈으로는 당가의 개입을 막을 수 없으니까.

내가 실종되더라도 그게 당가의 소행인지 파악조차 불가능할 터.


‘골치 아프군. 일단은. 병부터 제거하자.’


도망칠 체력이야 잘 먹고 잘 쉬면 나을테지만, 그걸 위해서라도 몸을 갉아먹는 병들을 우선 제거해야한다.

중독도 위험하지만, 그건 노의원이 손을 쓴 것이니 내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다. 허나 당장 죽지는 않을 것이다.

훌륭한 실험체를 마구 죽일 정도로 멍청한 사람 같지는 않았으니까.


‘떠넘기자.’


문을 열고 나가자 앞을 지키던 하인이 놀라서 쳐다봤다.

내가 밖으로 나갈 채비를 다하고 나온 탓이다.


“도련님? 어, 어디를 가시려고 그러십니까?”

“기루.”

“···예?”


죽다살아나자마자 기루부터 찾는다는 말에 하인이 아연실색한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그러거나 말거나 바깥을 턱짓했다.


“안내해라. 홍루로 갈 것이다.”


난 여기 지리를 모른다.

안내인이 필요했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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