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빌런의 이계 탈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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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희소
작품등록일 :
2024.09.16 17:52
최근연재일 :
2024.09.18 2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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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8 2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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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기는 이유

DUMMY

사방으로 튄 검은 혈들을 보며 유한은 연신 헛구역질했다.


‘냄새 한번 더럽게 독하네···.’


마치 썩은 사랑니를 수십 년 이상 방치해야 날 것 같은 냄새.


간신히 진정시킨 그는 바닥에서 입을 벌린 채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이를 향해 걸어갔다.


“너···너!”


유한은 그녀에 대해선 아는 게 없다. 하지만 지금 왜 저런 표정을 짓는지 정도는 알 수 있었다.


‘나도 놀랐으니까···.’


점점 강해지는 불길한 기운에 자신도 모르게 발걸음을 이동했다. 그건 마치 무언가에 홀린 듯 강제적이었다.


이내 눈에 들어온 것은 전에 봤던 괴물과 유사한 녀석.

놈이 달려오는 것을 보자 자연스레 손이 검으로 향했다.


자신을 지키겠다는 단순한 본능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녀석이 코앞까지 다가오자 급격히 가슴이 떨렸다.


그건 두려움의 떨림이 아니었다.

기다려왔던 순간이 다가와 떨리는 듯한 간질거림.


유한은 녀석을 베고 싶었다.


왜 그런 기분을 느꼈는지는 설명할 수 없었다.


‘이상해.’


분명 처음 이 비현실적인 괴물과 마주했을 때와는 확연한 차이가 있었다.


가루화가 진행 중인 녀석의 잘린 목을 보며 베어 낸 순간을 상기시키던 유한은 이내 손가락으로 아일라를 가리켰다.


“그거, 도와줄까요?”


“피, 필요 없어!”


얼굴이 붉어진 아일라.


마귀만큼이나 업신여기던 이방인에게 구해진 것도 모자라 마귀의 타액에 갇혀 꼼짝 못 하는 자신을 내려다보게 만드는 꼴이라니. 그녀 입장에서 이보다 더 큰 수치심은 없었다.


그러나 온몸에 힘을 주어 움직여도 몸은 움직이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격한 소리를 내며 발버둥 치다 결국 가까스로 남아있던 소량의 힘까지 전부 소모되었다.


‘진짜 미치겠네.’


그러던 그때.


“아일라 님!”


익숙한 음성.


그녀는 가까이서 목소리가 들리기 전까지 누군가 다가오고 있었다는 것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


‘참, 어지간히도 생체력이 부족한가 보군.’


“누가 오고 있어. 허튼짓, 허튼 말 하지 말고 가만히 있는 게 좋을 거야.”


유한의 눈을 마주치지 않은 채 말하는 그녀. 그렇게 잠시 후 숲속을 뚫고 한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아, 아일라 님!”


한눈에 봐도 나이가 들어 보이는 백발의 소자 수염을 가진 노인. 아일라가 입고 있는 갑옷과는 상반되는 회색빛의 낡은 갑옷을 입고 있었다. 아일라와 죽어있는 용병들의 시체를 둘러 보던 노인의 시선이 유한을 마주했다.


“네 이놈! 넌 누구냐!”


눈이 커지며 다짜고짜 유한 쪽으로 달려가 자신의 검을 들이밀었다.


유한은 아일라를 쳐다보았다.


“아효다, 검을 거둬.”


“네?”


“내가 설명할 테니 일단 와서 이것부터···. 빨리."


그녀의 말에도 계속 미간의 주름을 숨기지 않던 노인은 빠르게 굳어 버린 마귀의 타액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괘, 괜찮으십니까?”


아일라는 몇 번 팔과 목을 돌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노인은 죽은 용병들에게로 달려가고 싶었지만 유한 때문에 섣불리 움직이지 못하고 연신 유한 쪽으로 눈길을 돌렸는데, 아일라 역시 그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눈치채고 있었다.


“녀석은 이방인이야.”


이미 유한의 얼굴을 본 이상 둘러대는 건 의미가 없어 보였다.


무엇보다 아일라는 이곳으로 날아오며 생각했다.


‘측근에게는 숨기지 말자.’


그러는 게 유한을 감시하는 게 수월할 거라는 판단에서였다.


대신 그가 쥬라스의 생체력과 아티팩트를 흡수한 것 같다는 말은 끝까지 숨긴 채.


“이, 이방인이라면···?”


표정이 더 구겨졌다.


“그래. 외세. 그러니까 이계에서 온 듯하더군.”


“당장 베어버리겠습니다.”


"아니···"


"걱정하지 마십쇼. 제가 한 번에···"


“하지 말라고.”


노인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에테르 님의 명령이야. 본인이 다시 명령할 때까지 녀석을 이 지역에서 살 수 있게끔 도와주라는.”


“···무슨 그런··· 대체 왜 그래야 하는 겁니까? 이방인인데요.”


“그건··· 나도 잘 모르겠어. 하지만 녀석이 가진 이능력에 관심이 있으신 것 같아.”


“이능력이요···?”


“나중에 자세히 말하는 걸로 하고 일단 검을 거둬. 녀석이 해를 끼칠 일은 없을 테니까.”


“······.”


“어서!”


노인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검을 거뒀다.


그 모습을 본 아일라는 머릿속이 복잡한 지 한 손으로 머리를 긁더니 쓰러진 용병들을 향해 턱짓했다.


“일단은 어떻게···가능하겠어?”


아효다는 경계를 늦추지 않은 채 천천히 걸어가 용병들의 상태를 확인하고는 고개를 저었다.


“이미 죽었습니다. 남은 몇 개의 내장을 제외하고는 남은 내장도 거의 없고요.”


“흠.”


아일라는 이상 하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마귀가 결계를 뚫고 들어오는 일은 흔하지 않은 일이다. 평범한 마력으로는 생체력 덩어리인 결계를 뚫기 어려울뿐더러, 만약 결계를 뚫을 정도의 마력이 근처로 다가온다면 용병들이 결계를 뚫기 전 사냥하는 게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결계 안에서 경계를 서던 젊은 용병들도 결계 안으로 마귀가 급습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의문이 있었지만 일단 그녀한테는 먼저 해결해야 할 숙제들이 있었다.


어느새 죽은 마귀의 가루화는 끝난 듯 보였다. 그 자리에 멀쩡히 남아있는 건 마귀의 뼈뿐이었는데,


“챙겨서 유가족들에게 주도록 해.”


그녀는 마귀의 마골(魔骨)을 가리켰다.


명령에 아효다는 주머니에서 동그란 원형의 물체를 꺼내더니 마골이 있는 쪽으로 다가갔다. 물체를 가까이 가져가자 이내 자홍빛을 내뿜으며 목표를 감싸더니 흡수하듯 빨아들였다.


“용병대에 이야기해서 장례를 치르도록 하지.”


“안 그래도 아일라 님의 생체력이 약해지는 것을 느끼고 오는 도중 용병대에 지원 요청해둔 상황입니다. 곧 이곳으로 올 겁니다.”


“느리군. 빠져서는.”


그녀의 표정이 굳자 아효다는 괜스레 헛기침했다.


“아효다, 넌 여기서 용병대와 시신 처리를 하고 와. 나는 녀석과 가 있도록 하지.”


“간다니 어딜···”


“오늘 정제소(精製所) 쉬는 날 이던가?”


“네 그렇습니다만···.”


“그럼, 거기로 가 있지.”


아일라가 원래 지내는 곳은 잦은 용병들의 방문으로 인해 항상 붐비는 곳이었다. 반면에 아효다의 집은 이 지역의 외곽 중에서도 외곽에 있었고 쉬는 날에는 용병들의 방문도 드물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일라는 그곳에 필요한 물건이 있었다.


“녀석도 함께 말입니까?”


유한을 가리키는 아효다.


“옆에서 계속 감시하라는 것도 명령이라서 말이야. 집에 아무도 없어?”


“마르코 말고는 아무도···”


“그 녀석은 괜찮아. 그리고 있잖아···”


아효다의 어깨를 잡는 그녀의 손에는 상당한 힘이 들어가 있었다.


“다른 용병에겐 이방인에 대한 것은 비밀이야. 이유는 말 안 해도 알겠지?”


아효다는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먼저 가 있지. 따라와.”


아일라는 유한을 보며 손짓했고 잠시 눈치를 살피던 그는 뒤를 따랐다.


그 모습을 본 아효다는 다른 용병들이 올 때까지 한동안 그 자리에서 멍하니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 * *



다행히 이동하는 동안 마주친 이는 없었지만, 지형이 험해 걷는 게 쉽지 않았다. 그렇게 몇 분여를 더 이동하자 나무로 된 오두막이 모습을 드러냈고 유한은 눈을 의심했다. 비현실적인 세계에서 보는 익숙한 건물에 의아해서였다. 하지만 문을 열고 들어가자,


‘그러면 그렇지.’


전과 같은 어색한 풍경이 그를 맞이했다.


내부는 방으로 통하는 것처럼 보이는 문이 몇 개 존재했고 사방에는 신원을 알 수 없는 뼈들로 가득했다. 그리고 구석에는 크고 긴 식탁과 작은 식탁, 그리고 수납장으로 추정되는 것들이 존재했다. 별것 없으면서 또 별것이 있는 그런 느낌의 내부.


멍하니 내부를 둘러보던 유한을 뒤로하고 아일라는 누군가를 찾는 듯 보였다.


“마르코! 마르코!”


이내 문을 열고 한 남자가 나왔다.


“아일라! 아니, 아일라 님!”


아일라보다 나이가 들어 보이는 남자는 옆에 같이 온 이가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급하게 존칭을 사용했다. 이윽고 말없이 유한을 위아래로 훑기 시작했다.


“그렇게 보지 말고 앉아 봐. 내가 설명해 줄 테니까.”


“······.”


“앉으라고. 아효다도 곧 올 거니까 우선···”


“···!”


그때, 아일라는 그 자리에서 휘청거리며 한쪽 무릎을 꿇었다.


“아일라님!”


남자는 빠르게 다가와 아일라를 부축했다.


“생체력을 다 사용해서 그래. 그거 지금 가능할까?”


힘없는 물음에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 * *



바닥에 누워있는 아일라. 남자는 아일라의 몸 위로 연신 양 손바닥을 펼친 채 초록색의 빛을 쏘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아효다 역시 오두막으로 도착했고, 한참 동안 지속되던 정적은 곧 유한의 정체를 설명하는 것으로 사라졌다.


그녀는 한 가지 추측을 제외하고는 지금까지의 일을 있는 그대로 전했다.


에테르와 쥬라스를 쫓는 과정에서 유한을 발견했고 알고 보니 그는 외세에서 온 이방인이었다. 어떻게 아틀란티스어를 사용하고 이해하는지는 아직 확실하게 알 수 없지만, 특별한 이능력 때문으로 추정되며 어떻게 외세에서 이곳으로 오게 됐는지, 정확히 어떤 능력이 있는지는 아직 불명확하다.


“그게 말이 됩니까?!”


일련의 말들을 들은 아효다는 크게 소리를 질렀다.


“대체 그 능력이 정확히 뭡니까?”


아효다의 말에 아일라는 자신도 모른다는 듯 어깨를 들썩였다.


“그런 것 때문에 이방인을요?”


“에테르 님의 명령이야. ”


“그거야 그렇지만···.”


차마 측근들에게조차 말하지 못한 한 가지.

아일라는 에테르가 유한을 지켜보려고 한 진짜 이유를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것만큼은 측근인 아효다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왜 그런지는 이어지는 그의 말로 인해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쥬라스는 어떻게 됐습니까. 잡았어요?”


“그래. 즉시 처형시켰어.”


“네?!”


순간 아효다와 마르코 두 사람이 동시에 소리를 내었다.


“저, 정말입니까? 정말 그 지독한 악인 놈을 죽였어요?”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자 연신 구겨져 있던 아효다의 표정이 밝아졌다.


“하! 미친 새끼··· 꼴 좋군! 죽는 걸 직접 봐야 했는데 말이죠.”


그 말을 들은 유한은 괜스레 몸을 움찔했다.


아일라는 그런 유한을 보며 강한 눈빛을 보냈다.


“믿고 있었어요. 에테르 님이니까요.”


아틀란티스에 조금이라도 해가 되는 존재라는 의심이 들면 상대가 누구든 가차 없이 도려내는 것이 그의 방식이라는 걸 아효다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살려 둘 가치가 있는 자라면 하염없이 지키는 게 그의 방식이기도 했다.


“다행히 마귀의 증표는 보이지 않네요.”


아효다가 유한을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당연하지. 마귀가 아니니까.”


“그래서 얼마나 이곳에 있어야 합니까?”


“오래 있을 것 같지는 않아. 에테르 님이 곧 명령을 내리실 거야. 우리는 그냥 지켜보는 수밖에.”


다행히 에테르라는 이름의 무게로 인해 더 이상의 반발은 하지 않는 듯 보였다.


하지만.


‘문제는 마르코야.’


아일라는 단순한 성격의 아효다보다 마르코의 반응이 더 걱정되었다.


“이름이 어떻게 돼요?”


하지만 그것은 기우인 듯 경계는커녕 오히려 유한에게 먼저 물음을 던지는 그.


“네?”


“이름이요. 이름.”


“한유한입니다.”


“환류환···? 육 발 고동 두꺼비의 똥으로 만든 환?”


‘아차.’


“아뇨. 그냥 유한이라고 합니다. 유.한.”


이름을 듣자, 마르코와 아효다는 동시에 똑같은 말을 했다.


“거참, 특이한 이름이네.”


속마음을 숨긴 채 유한은 해탈한 웃음을 지었다.


“어쨌든 그렇게 됐어. 다 뜻이 있어서 그런 거니까 추가 명령이 있을 때까지 다른 초인들에게는 비밀로 해.”


“그렇지만···.”


그녀의 말을 듣던 두 사람은 일제히 유한을 바라봤다. 이내 아일라의 시선 역시 유한에게로 향했다.


“그거 말이야.”


그녀의 손가락이 입고 있는 옷을 가리켰다.


“네?”


유한이 입고 있는 얇은 니트는 마귀의 혈과 흙으로 물들어있었다.


“더러운데.”


“아, 그러네요.”


“벗어.”


“네?”


“벗으라고.”


“이걸 왜···.”


아일라는 이마를 감싸 쥐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여기 사람들 다 그렇게 안 입어. 그 복장이면 눈에 띄기 십상이라고.”


그녀는 마르코와 유한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두 사람 체형이 비슷한 거 같은데? 그리고 아효다, 너 예전에 쓰던 거 있지? 그것도 가져 와.”


아효다의 가게는 여러 잡다한 물건들이 많았다. 그건 아일라가 유한을 이곳에 데려온 또 다른 이유이기도 했다.


“한 번에 현지화를 시켜주지.”


옅은 미소가 흘러나오는 그녀의 얼굴을 보며 유한은 불안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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