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만남

그날은 늘 있는 평범한 하루였다. 아침에 여관에서 눈을 뜨면 그곳에서 주는 20록(한화 약 2천원)짜리 식사를 마친 후 길드 건물로 향했다. 길드 게시판에서 의뢰서를 찾아보았지만 약초 채집이나 6급 이하 마물 토벌 의뢰밖에 없었다.
‘어쩔 수 없군. 지난번 2급 마물 토벌 이후 금전적 여유도 있으니 이 의뢰들은 신인들한테 맡기고 미궁이나 가봐야겠다.’
미궁, 그것은 이 세계의 신비로 누가 만들었는지, 왜 생겨나는지 아무도 모른다. 미궁은 각 계층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미궁별로 층수나 환경적 특징이 모두 다르다.
미궁에는 층별로 다른 마물들이 출몰하여 미궁에 진입한 생명체를 공격한다. 미궁속으로 진입한 사람이 각 층의 마물들을 토벌하고 최하층까지 도달해 주인격인 마물까지 쓰러뜨리면 그 미궁은 소멸된다. 이것을 답파라고 한다.
모드릭 인근에는 여러 미궁이 있지만 오늘 향한 곳은 35호 미궁 모블, 중급 미궁이며 1~3층은 슬라임과 혼래빗, 4~6층은 고블린과 코볼트가 나온다. 그 외에도 모블의 6층에는 발광마도구의 원료가 되는 발광석이 있어 가끔 채굴하러 가곤 한다.
모블의 내부로 진입해 [마력감지]를 사용하고 걷다 보니 슬라임을 발견했다.
최약이라고 불리는 마물이지만 신인한테는 토벌하기 꽤나 어려운 녀석이다. 슬라임은 공격해오는 촉수를 자르고 몸통을 베어도 금방 재생한다. 사실상 내부에 핵을 파괴하기 전까지는 불사다.
“하급 적마법 [화구]”
그럼에도 최약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간단하다. 하급 적마법 [화구]만으로 몸 전체가 증발하여 핵만 남는다. 물론 그 상태로 두면 재생하지만 슬라임의 핵은 유리처럼 간단히 파괴된다.
게다가 일반적인 슬라임은 겉에서 핵의 위치가 육안으로 보여 검으로도 몸통과 핵을 같이 베면 쉽게 토벌된다.
슬라임과 혼래빗을 사냥하며 아래 계층으로 내려갔다. 그렇게 3층에서 마물 토벌을 끝내고 4층 진입구로 향하던 중 갑자기 비명소리가 들렸다.
“끄아악”
급하게 내 쪽으로 달려 나오는 3명, 아 지난주에 새로 모험가가 된 신인 파티이다. 겁에 질렸는지 내가 있는 것도 못 보고 지나쳐 출구 방향으로 뛰어갔다.
‘근데 저 파티 4명 아니었나?... 설마!’
황급히 그곳으로 가보니 복부에 상처를 입은 채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수인족 소녀와 피 묻은 도끼를 든 홉고블린이 보였다. 홉에게 공격당한 듯한 그 소녀는 눈물을 흘리며 떨고 있었다. 그때 홉이 그 소녀를 공격하려 했다.
‘홉고블린이면 검으로 충분하겠군’
“[마력강화]”
홉이 도끼를 내려치기 전 강화한 검으로 재빨리 목을 베었다. 뒤를 돌아보니 소녀는 긴장이 풀렸는지 그만 기절해 버렸다.
소녀에게 다가가 입고 있던 상의를 일부분만 걷어올리고 복부의 상처를 확인했다. 자상의 지혈이 제 때에 이루어지지 않아 계속 피가 흐르고 있었다.
‘이거 지금 치료 안 하면 과다출혈로 사망하겠는데? 주특기는 아니지만 별수 없군.’
“중급 회복마법 [힐]”
소녀에게 회복마법을 걸고 가지고 다니던 붕대로 상처를 싸매주었다.
‘응급처치는 했으니 이제 치료원에만 데려다주면 되겠군. 그나저나 3층에서 홉고블린이 출몰할 줄이야.’
아마도 이 홉고블린은 4층의 고블린이 변이한 후 3층으로 올라온 것으로 추정된다. 변이한 마물은 다른 마물과는 다르게 계층을 오갈 수 있다.
‘신인 녀석들 운이 없었네. 변이는 정말 드물게 발생하는 일인데 하필이면 거기에 휘말리다니... 그 파티 미궁 탐험은 이번이 처음인 걸로 아는데 모험가 관두는 거 아닌지 몰라.’
상위 모험가로서 소녀를 포함한 그 신인들이 관두지 않았으면 했다. 이유는 현재 모드릭의 모험가 길드가 만성적인 인력 부족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길드 입장에서는 신인들이 큰 역할을 맡고 있는 셈인데, 그들이 길드에 주기적으로 들어오는 의뢰를 계속 해결해 주고 있어서 그렇다.
특히 약초 채집, 조사, 청소, 하급 마물 토벌 등 해결하기 쉬워서 경험이 적은 신인들이 수행하기 좋은 의뢰가 주기적으로 들어온다.
하지만 최근 그런 의뢰의 해결 보수가 적어진 데다 마물 토벌은 기피하려는 신인들의 태도가 더해져 모험가를 그만두고 다른 일자리를 찾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하아, 이걸로 그 신인 파티도 모험가를 계속한다고 한들 마물 토벌은 안 하겠네.’
마물의 등급은 1~9급으로 나뉘는데, 금등급은 보통 2~5급의 마물 토벌 의뢰를 수행한다. 하지만 길드의 인력 부족으로 인해 최근에는 금등급인 나도 가끔씩 9급인 슬라임 토벌 의뢰까지 수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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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마법을 사용해 모드릭으로 전이한 뒤 소녀를 회복시키기 위해 곧바로 치료원으로 향했다.
“이봐 핀 손님이다.”
이 치료원의 주인은 핀, 과거 모험가로 같은 파티에서 활동하던 친구다. 지금은 결혼해서 치료원을 차렸다.
“오랜만이야. 응? 그 친구 제법 심하게 다친 거 같은데? 어서 여기 눕혀”
“응급처치는 해놨으니 문제없을 거다.”
“정말이네. 이 흉터의 크기를 봐선 까딱하면 죽었을 거야.”
소녀의 자상 부위를 진찰하고 큰 문제가 없음을 확인한 핀은 내게 말했다.
“몇 번 말하지만 네가 하는 건 응급처치가 아니라 치료 그 자체다. 이번에도 겉에 흉터를 빼곤 완치되어 있어. 난 흉터만 지우면 되겠는데?”
“이번에도 흉터는 못 지웠군. 역시 난 회복마법은 미숙하네.”
“그거 기만이야 이 자식아. 마도사이면서 회복술사만큼 회복마법이 뛰어나다니, 너무 질투 나잖아.”
“됐고, 돈이나 받아. 그리고 어려 보이지만 그 녀석도 여자니까 흉터는 제대로 지워. 나중에 치료 똑바로 못했다고 위자료 청구된다.”
“응 뭔 소리야? 패트릭 이 친구는... 벌써 갔네.”
핀의 치료원에 500록을 놔두고 길드로 향했다. 모험가를 관뒀지만 핀은 일류 회복술사다. 그 정도 흉터는 흔적조차 없이 말끔히 사라질 것이다.
길드 건물로 들어가니 헤린이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패트릭씨.”
“어. 오늘은 오후 근무인가 보네.”
“네 남.편.의 일을 도와주느라고요.”
“으흠! 그렇구나.”
난 헤린이 껄끄럽다. 과거에 좀 가슴 아픈 경험을 해본 이후로 이 여자를 대하기가 어렵다.
“부길드장은 2층에 있나?”
“네 올라가시면 왼쪽 사무실에 있을 겁니다.”
2층으로 올라가 좌측 사무실 문을 열어보니 부길드장 밴이 머리를 싸매며 펜을 굴리고 있었다. 그는 근심이 많은지 내가 온 것 조차도 눈치채지 못했다.
“끄응 길드 예산이... 이번에 의회에서 국가지원금을 뺏어갔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
“밴 잘 지냈나?”
“음? 패트릭 언제 왔어? 것보다 노크 좀 하고 들어와, 기본 매너다 매너.”
“잘 지내는 것 같네.”
밴한테 오늘 미궁에서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했다.
“그놈들 아무리 무서워도 그렇지 동료를 버리고 도망가다니, 네가 아니었음 그 신인은 죽었을 거다.”
“그래, 그러니까 신인 교육 좀 잘 시켜줘, 안 그래도 인력 부족이잖아.”
“그러고 싶으나 지금 너무 바빠서 여유가 없다. 예산이 부족해서 매일 돈과 씨름하고, 의뢰 주는 귀족 놈들 비위 맞추고, 맨날 놀러 다니는 길드장 놈 뒤처리까지 하고 있다. 몸이 2개였으면 좋겠어. 신혼인 헤린이 휴가 낸다는 것도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빌고 있는데... 휴우”
“그걸 어떻게든 하는 게 네 일이잖아. 바쁘면 사람이라도 구해.”
“사람 구하는 건 어려운 게 아니다, 길드에서 일하고 싶은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지. 다만 인건비가 없다. 그리고 채용한다고 한들 헤린의 절반 아니 3할도 못할 가능성이 높아.”
“그 친구 얘긴 좀 그만하고 다른 방법이라도 찾아봐. 이대론 악순환이 계속될 거라고?”
“생각은 많이 한다만은... 그나저나 아직 헤린하고 사이가 어려운가 보군, 금등급 모험가란 사람이 원하는 여자 뺏겼다고 뒤끝이 너무 긴 거 아닌가?”
“그 얘긴 하지 않기로 했잖아.”
“... 미안하다.”
밴은 내게 미안했는지 화제를 돌렸다.
“근데 네가 구한 그 신인 백랑족 아니냐?”
“확실히 머리, 귀, 꼬리가 은색이었던 거 같은데...”
“흐음 분명 이름이 유실이라고 했나? 그 친구 외견은 그래도 성별은 남자다. 나이도 19세, 거의 성인이지. 백랑족은 원래 외견이 어려 보인다고 하더라.”
“확실히 그 나이대의 외모가 아니군. 겉모습은 거의 14세로 보였으니 말이야, 응? 그 얼굴로 남자라고?... 세상은 넓고 이종족은 많구나.”
모험가는 19세부터 할 수 있다. 나 또한 그 나이부터 시작했다. 다만 이 세계의 성인 기준은 20세로 미성년자는 단독으로 마물 토벌 의뢰를 받을 수 없다. 오직 성인 파티에 소속된 경우에 한해 파티 단위로만 토벌 의뢰를 받는 것이 가능하다.
밴과 이야기를 마치고 길드 건물을 나서니 해가 지고 있었다. 식당이라고 갈까 하다가 혼자 외식하는 것은 좋아하지 않기에 여관으로 돌아왔다.
여관에서 판매하는 5록짜리 딱딱한 빵 하나를 사서 방으로 돌아왔다. 겉이 단단해서 사 가는 사람이 없지만 먹어보면 의외로 맛있다. 빵을 베어 물으려는 찰나에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네 들어오세요.”
모블에서 구해주었던 소녀, 아니 소년인 유실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저 모험가인 패트릭 에번스님이시죠?”
“그렇다만.”
“전 유실이라고 합니다. 오늘 구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그래, 나도 네가 살아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상처는 다 아물었나?”
“네 상처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핀의 솜씨는 일류니까.”
방 테이블 위에 컵을 2잔 놓고 홍차를 끓였다.
“여기 앉아. 홍차 마시지?”
“네 감사합니다.”
홍차를 컵에 따르고 따끔하게 혼낼 생각으로 유실에게 말했다.
“너네 파티 미궁 탐험은 처음이었나?”
“네 그렇습니다.”
“보아하니 홉고블린이 다가올 때까지 눈치채지 못한 것 같은데?”
유실의 표정이 점점 어두워졌다.
“네 맞습니다.”
“[마력감지]를 해야 할 전위는 뭐 했어?”
“그게 다들 1~3층까지는 약한 마물만 나온다고 하니 전위를 맡은 분이 그러면 감지할 필요가 없다고 해서...”
“이봐, 아무리 약한 마물이라도 기습당하면 사람은 죽을 수도 있다고!”
“죄송합니다.”
어리게 보이는 소년이 눈물을 글썽이는 모습에 무섭게 훈계하려던 마음이 사라졌다. 오늘 죽을 고비도 넘겼는데 강하게 혼낼 필요는 없겠지. 이미 많은 것을 깨달았으리라 생각했다.
“난 말이지 지금은 금등급이지만 19세에 처음으로 모험가를 시작할 땐 석등급이었어. 마물을 무서워하는 평범한 신인이였지. 매일 약초 채집만 했어.”
“네? 모드릭 유일의 금등급인 패트릭님이요?”
“나도 처음에는 겁쟁이였다. 근데 그건 지금도 그럴지 모르지.”
차를 한 모금 마시고 유실에게 과거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모험가가 되고 난 후 1개월 즈음 지났을까, 하루는 약초 채집을 하다가 마물을 만났다. 잿빛 2각 늑대였다.”
“잿빛 2각 늑대면 그 위험종인 3급 마물?!”
“잘 알고 있는 걸 보니 모험가로서 기본은 됐네. 아무튼 죽기 직전이었던 그때 날 구해준 사람이 있었다. 은등급 모험가였던 폴릭, 그가 날 구해주었지.”
“그랬군요. 오늘의 저하고 똑같네요. 근데 폴릭씨라면...”
“어, 미궁에서 실종된 모험가지. 그가 속했던 파티의 얘기에 따르면 전위였던 폴릭은 실력을 과신해서 평상시보다 [마력감지]의 반경을 줄였어. 마력을 많이 소비하면 피곤하니까 그랬던 거 같아. 그 때문에 대형 공간마법진을 발견하지 못했다. 중앙의 마석으로 발동되는 방식이었는데 마법진의 반경이 상당히 넓었다고 해. 그런 경우에는 중앙의 마석을 감지하지 못하면 마법진을 감지할 수 없거든.”
“설마?!”
“그래 마법진이 발동해서 그를 딴 곳으로 보내버렸다. 아마 미궁 심부로 떨어졌을 거야. 그 뒤로 아직까지 돌아오지 못했지.”
“그래도 혹시 찾아보면...”
유실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그 뒤로도 탐색대를 몇 번이나 보냈었지만 그를 발견하지 못했다. 그 후로 10년, 아마 죽었을 거야.”
얘기를 듣던 유실은 눈물을 훌쩍이기 시작했다.
“왜 울어?... 울라고 한 이야기는 아닌데...”
“그렇지만, 은인인 사람이 그렇게 되었으니 패트릭님의 마음이 아플 거 같아서요.”
‘이 친구 마음씨가 곱네. 성격이 착하구나.’
무심결에 유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 녀석 생각보다 귀엽네. 아니 신인 데리고 내가 지금 뭘 하는 건지...’
“유실 그러니까 알겠지, 미궁에서는 겁쟁이가 되어야 한다. 아무리 강하더라도, 그 초인이라는 백금등급 모험가라도 언제든 죽을 수 있어. 그러니 신중하고 또 신중하게 가야지. 전위가 [마력감지]조차 안 하는 파티라니... 내일 만나서 너하고 같이 교육 좀 시켜야겠구나.”
“네? 괜찮아요. 저 파티 나갔거든요. 저를 버리고 도망간 사람들과 같은 파티에 있고 싶지 않아서요.”
“하하하 잘했다. 확실히, 다시는 같이 모험하고 싶지 않겠어.”
유실하고 대화를 나눈 이후에 빗 찻잔을 치웠다.
“잘 마셨습니다.”
“언제든 오면 차 한잔 정도는 내줄게.”
“감사합니다.”
“그러면 밤이고 늦었으니 돌아가 봐.”
“저, 그게...”
부연설명
사람 = 인족 = 인간, 수인, 아인 등
이 세계의 인족 평균수명 = 120년
건강을 유지하고 특별히 장수하면 150년
모험가 등급
석 < 구리 < 철 < 동 < 은 < 금 < 백금
-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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