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탬피드
다음날 유실과 함께 길드 게시판에서 의뢰서를 찾아보았다. 모든 의뢰서에는 길드에서 정한 수용 가능 최소 조건이 나와 있는데, 모험가 등급에 따라 받을 수 있는 의뢰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늘부터는 내 등급과 상관없이 훈련관으로서 의탁생인 유실을 성장시키기 위해 그에 맞는 의뢰를 받아야 했다.
게시판에서 의뢰서를 찾고 있는 도중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여 패트릭, 잘 지냈나?”
“오 제이드 오랜만이야.”
기사 같은 갑옷을 입은 이 친구의 이름은 제이드, 모드릭에서 몇 명 안 되는 은등급 모험가로 한 파티의 리더이다. 과거 일시적으로 같이 의뢰를 수행한 적이 있다.
“응? 그쪽은 파티원? 네가 누군가하고 파티를 맺다니 신기하네.”
“아, 이쪽은 유실 내 의탁생이다.”
“안녕 귀엽게 생긴 꼬마 아가씨. 내 이름은 제이드, 이 겉으로만 차가운 녀석의 친구지.”
“안녕하세요. 제이드씨”
“근데 네가 의탁생? 너 금등급인데 훈련 의뢰도 받았었나? 아니면 이 애는 네 여동생?”
“난 동생이 없어. 그리고 얘는 이래 보여도 남자다. 의탁은 헤린이 길드 권한으로 시키더라. 그놈의 인력 부족이라는 핑곗거리는 맨날 들이민다. 휴우...”
제이드와 이야기를 나누던 중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후후 금등급도 마냥 좋은 건 아니구나.”
“메이린, 오랜만이야.”
메이린은 제이드 파티 소속 마도사로 동등급 모험가 중에서도 최상위 실력자이다. 그나저나 그녀의 복장은 항상 노출이 너무 심하다. 그녀의 말로는 기동성이 좋다고 하나 내게는 눈 둘 곳이 곤란할 따름이다.
“이 꼬마 친구가 의탁생? 흐음, 재미있어 보이네.”
“어 유실이야.”
“만나서 반가워 유실, 난 메이린이라고 해.”
“안녕하세요.”
“유실, 너 좋은 훈련관을 만났구나. 패트릭은 겉으로는 냉담하지만 실제로는 다정하게 이것저것 잘 챙겨준다고?”
“네 패트릭님은 정말 좋은 분이세요.”
“흐응 그렇단 말이지?”
그녀는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나와 유실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내 손을 붙잡고 옆으로 밀착했다.
“근데 패트릭 요즘 나한테 너무 차가운 거 아니야?”
이 녀석 거리감이 이상하다. 의도적으로 팔에 그것의 감촉을 닿게 하는 것 같달까, 전생 현생 합쳐서 동정인 나에겐 너무 강한 자극이다. 달라붙는 메이린을 밀어내고 말했다.
“어이어이 너무 가깝다고?”
“에에 너무해, 지난번에는 그렇게 정열적으로 내 이름을 불렀으면서.”
“네? 패트릭님 그게 무슨 소리인가요?”
“이봐, 같이 마물 토벌할 때 연계를 위해 소리친 거를 이상하게 말하지 말라고! 유실도 오해하잖아.”
메이린이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은 이유가 있다. 날 좋아해서 그런 것이 결코 아니다. 이 녀석은 제이드를 좋아한다.
‘저번에 상담도 해줬었지, 연애 경험이 없는 나의 조언이 도움이 될 리가 없겠지만...’
아마 이 행동 역시 밀당일 것이다. 제이드의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데는 실패한 모양이지만 말이다.
그때 제이드의 파티 소속인듯한 모험가가 길드 건물 입구에서 말했다.
“제이드, 메이린 이제 가자고, 다들 기다리고 있어.”
“알겠어, 금방 갈게.”
“패트릭, 유실 그럼 가볼게. 다음에 또 봐.”
“안녕, 귀여운 소년과 둔감남”
제이드의 파티는 벌써 의뢰를 받은 것 같았다. 제이드와 메이린이 길드에서 나간 후 유실이 쭈뼛거리며 물었다.
“저어... 패트릭님은 메이린씨 같은 사람이 취향인가요?”
“응? 그럴 리가, 저렇게 음험한 녀석은 절대 사양이야. 근데 이런 질문을 하는 거 보니까 너 저 녀석한테 반했냐?”
“절대 아니에요!”
“크흐흐 짜식 남자구만, 하긴 그런 훌륭한 몸매의 여자는 남자의 로망이지. 그래도 메이린은 따로 좋아하는 녀석이 있다고? 포기하는 게 좋아.”
그러자 유실이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런 거 아닌데, 패트릭님은 바보...”
유실은 어째선지 토라진 듯했으나 이만 시답잖은 이야기는 끝내고 의뢰서를 골랐다. 사실 유실의 성장을 위해 이번에 받을 의뢰를 마음속으로 미리 정해 두었다.
‘모블의 4~6 계층에 나오는 고블린 토벌 의뢰, 이거다.’
이 의뢰로 정한 이유는 유실의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서이다.
유실은 지난번의 일로 인해 아마도 고블린을 두려워할 것이다. 그러나 그 상태로 계속 지내면 언제까지고 성장할 수 없다. 가혹한 이야기지만 그가 스스로 극복할 수 있게 만들어야 했다.
“유실, 이 의뢰를 받을 거다.”
유실에게 의뢰서를 보여주며 말했다.
“모블에 다시 가서 고블린을 토벌할 거다. 그런 일을 겪어서 무서울 수도 있지만 내가 같이 간다. 모험가로서 성장하고 싶으면 극복해야 해.”
“네! 패트릭님하고 같이 가면 분명 괜찮아요.”
유실의 대답에 씩 웃으며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좋은 대답이다.”
의뢰를 받은 후 무구점으로 갔다. 유실은 그동안 돈이 없었기도 했지만 신인이라 무구의 중요성을 잘 모르는 듯했다.
무구점에 들어가자 드워프로 보이는 점주가 인사를 건넸다.
“어서 옵셔.”
“안녕하세요. 이 친구의 무구를 맞추려고 하는데요.”
점주는 유실을 훑어보고 말했다.
“흠, 자네 주로 단검을 사용하지?”
“네, 어떻게 아셨어요?”
“내가 무구점만 수십 년을 해왔는데 손님이 사용하는 주무기 정도는 바로 알아보지.”
“대단하세요!”
점주는 유실의 칭찬에 기분이 좋은 듯 씩 웃으며 말했다.
“그러면 최근에 아이언스네이크의 가죽과 이빨이 소재로 들어와서 그걸로 만든 장비품이 있는데 입어보겠나?”
“네!”
아이언스네이크는 5급 마물로 피부가 강철보다 단단하다. 그 가죽으로 만든 의복이면 어지간한 강철 갑옷의 경도를 상회할 것이다. 게다가 가벼워서 움직이기도 매우 편하다.
또한, 그 이빨로 제작된 단검은 강철 이상의 경도는 물론 마력 소비 효율도 뛰어나다.
유실은 점주가 건넨 장비를 착용했다.
“유실 잘 어울린다고, 이제야 좀 모험가다워졌구나.”
“헤헤, 감사합니다.”
“점주님 이걸로 주세요.”
“음 원래는 단검까지 해서 8만록인데, 5만록에 줄게.”
“네에? 5만록이요?! 5만록이면 빵이 이만오천개... 헉, 패트릭님 이렇게 비싼 건 받을 수 없어요.”
“그 돌멩이 같은 빵으로 계산하는 것은 그만둬. 그리고 어차피 길드에 청구할 거니까. 흐흐흐”
‘헤린 날 이용한 대가는 비싸다고?’
그리고 아이언스네이크의 무구로 5만록이면 싼값이다. 나중에 길드에서 돌려받을 것이라고 생각한 나는 흔쾌히 금액을 지불했다.
유실의 무구를 구매한 뒤 그와 함께 모블로 향했다. 하지만 모블의 입구와 가까워질수록 유실의 상태가 점점 나빠졌다.
유실은 두려운지 몸을 계속 떨었다. 그 모습이 안쓰러워 그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유실 너무 두려워하지 마. 난 금등급 모험가라고? 내가 반드시 널 지켜줄 테니까.”
“네 패트릭님, 무척 의지하고 있으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면 갈수록 유실의 걷는 속도가 느려졌다. 그의 작은 두 다리가 힘없이 떨리고 있었다.
유실의 모습을 보고 문득 자신이 잿빛 2각 늑대를 처음으로 토벌했던 때가 생각났다. 당시에 난 그 개체를 충분히 토벌할 수 있었음에도 두려움에 몸이 움직이지 않아 파티원에게 신세를 졌다.
이렇듯 트라우마라는 것은 때때로 고위 마물보다 무서운 법이다.
“유실 거기 잠깐 멈춰봐.”
“네...”
“너 무리하고 있지?”
“죄, 죄송해요. 저 무서워서, 너무 무서워서...”
유실은 눈물을 흘리며 연신 사과했다. 그의 그런 모습을 보고 마음이 아팠지만 한편으로는 이대로 모블로 향해도 괜찮을지 고민했다.
‘이대로 가는 것이 진정 유실을 위한 길인가?’
유실을 진정시키기 위해 울고 있는 그를 안아주면서 말했다.
“무서운 거 이해해, 도저히 무리라서 못할 것 같으면 포기해도 괜찮아. 같이 돌아가자. 하지만, 네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도전하고자 한다면 난 전력으로 널 도와줄게. 네가 판단해.”
그러자 유실은 울음을 그치고 말했다.
“가겠습니다! 포기하지 않을 거예요.”
유실의 근성 넘치는 대답에 미소를 지으며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좋은 대답이야, 그거면 돼.”
그러나 유실은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바닥에 주저앉아 일어나지 못했다.
“어, 어라? 다리가 왜...”
이대로는 모블에 도착하는 것조차 어려울 것으로 생각되어 유실을 도수운반법(공주님 안기)으로 들어 올렸다.
“으에?”
“좋아, 이대로 가자!”
유실을 들어 올린 채 모블로 향했다. 어째선지 유실의 얼굴이 살짝 달아올라 있었다. 트라우마로 인한 공포심이 강해서 그런 것일까.
모블 입구에 도착하자 유실에게 물었다.
“유실 이제 걸을 수 있겠어?”
“네”
유실을 내려놓고 말했다.
“무리는 안 시킬 거야. 네가 정 힘들면 3층보다 아래로는 내려가지 않을게.”
“아뇨, 반드시 의뢰를 성공하겠습니다.”
유실은 결단력 있게 대답하고는 얼굴에 살짝 홍조를 띤 채로 작은 목소리로 이어서 말했다.
“그러니까 만약, 만약 성공해서 돌아온다면 부탁 한 가지를 들어주실 수 있나요?”
“뭐 내가 가능한 거라면 얼마든지.”
“감사합니다.”
이때 유실은 기뻐 보였다. 후에 나는 그 이유를 좀 더 빨리 깨달아야 했었다고 생각했다.
모블에 들어가기 전에 유실에게 물었다.
“너 [마력강화]는 사용할 줄 알아?”
“[마력강화]? 그게 뭔가요?”
“흐음 뭐 신인이면 모를 수도 있나, 그러면 이번 의뢰를 끝내고 가르쳐 줄게.”
‘뭐 고블린 정도는 일반인도 사냥이 가능하니까 괜찮겠지.’
“[마력감지]”
유실과 함께 모블의 1층으로 진입했다. 그는 신인치고 실력이 좋았다. 최하급인 슬라임 정도는 단검으로 단숨에 핵을 찔러 쉽게 토벌했다.
“유실 제법 실력이 좋은데? 이 정도면 고블린은 문제 없이 토벌할 수 있을 거야.”
“헤헤, 그런가요?”
“음 그렇고말고. 그리고 잠깐 멈춰봐.”
“중급 공간마법 [방음결계], [마력엄폐], 방어마법 [실드배리어]”
“삼, 삼중영창?! 패트릭님 대단해요!”
유실에게 [마력감응]을 시키기 위해 삼중으로 술식을 영창하고 쓰러뜨린 슬라임의 핵을 유실에게 건네주었다.
“유실 눈을 감고 이 핵을 손에 쥐면서 집중해 봐 오감이 아닌 무언가가 느껴질 거야.”
“음... 빛 같은 게 느껴져요.”
“그것을 마력이라고 해. 네가 느낀 건 슬라임 핵에 남아있는 잔존마력이지. 네 몸에도 그와 비슷한 것이 느껴질 거야.”
“에에? 제 몸에서 그 빛이 흐르고 있어요.”
“그 빛의 흐름은 실제로 네 몸속에 있는 마력의 흐름이야.”
“신기하네요.”
처음 느껴본 마력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는 유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잘했어. 이걸로 [마력감응]의 첫단계는 성공했네. 나머지는 미궁에서 나가면 알려줄게.”
“네!”
유실은 웃으며 힘차게 대답했다. 이것으로 그의 긴장이 조금 풀렸을 것이다.
그 후 유실과 함께 계층을 내려가 4층 입구에 도달했다.
“유실 각오는 되어 있겠지?”
“네!”
유실은 다시 힘차게 대답했다. 두려움을 극복한 것일까, 그는 더 이상 떨지 않았다.
4층에 도착하니, 코볼트를 먼저 발견했다. 슬라임, 혼래빗은 9급 마물이지만 코볼트, 고블린은 8급 마물이다. 적어도 슬라임보다는 강하다는 것이다.
“유실, 할 수 있겠어?”
“네 맡겨주세요.”
유실은 빠른 속도로 코볼트에게 달려들어 일격에 목을 베어냈다.
사실 코볼트는 같은 8급인 고블린보다도 강하다. 그런 코볼트를 일격에 해치운 그의 실력이라면 고블린 5마리가 일제히 달려들어도 지지 않을 것이다.
코볼트를 사냥하고 4층 심부로 가니 고블린을 발견했다. 유실은 아까처럼 두려움에 사로잡히진 않았으나 잔뜩 긴장한 듯했다.
“유실, 넌 분명 할 수 있어, 자신감을 가져!”
유실은 내 말에 대답 대신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러곤 고블린에게 달려들어 코볼트처럼 목을 베어 일격에 쓰러뜨렸다.
“패트릭님 저 해냈어요!”
“성공 축하한다.”
유실은 트라우마를 완전히 극복했다. 그의 대견한 모습에 웃으며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그때 [마력감지]에 무언가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이건 뭐지? 5층에서 올라온 것 같은데, 홉고블린?’
위화감에 [마력감지]를 5층 입구까지 넓혔다. 그러자 다수의 변이된 마물을 발견했다. 그곳에는 저층에 있어서는 안 될 중위 마물들이 잔뜩 있었다.
감지한 마물은 홉고블린이 20마리, 고블린나이트와 고블린메이지가 각각 2마리, 고블린제너럴이 1마리로 1개 고블린 군단이었다.
‘스탬피드!!!’
스탬피드란 미궁 내에서 다수의 변이된 마물이 저층으로 올라오거나 미궁 밖으로 범람하는 현상을 말한다.
마물들은 우리가 있는 쪽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다급히 유실에게 외쳤다.
“유실 전방에 스탬피드다! 고블린 군단이야!”
“!!... 큰일이잖아요! 이곳이라면 마물이 미궁 밖으로 나와 민가에 피해를 입힐 거예요.”
스탬피드가 벌어진 이곳은 미궁의 저층 즉, 지금 모블에 있는 우리가 후퇴하면 마물들이 미궁 밖으로 범람하여 민가를 공격할 것이 분명했다.
“유실 미궁에서 빨리 나가! 저층 스탬피드는 나 혼자서 충분히 막을 수 있어!”
“싫어요. 혼자서 도망치고 싶지 않아요.”
“너 죽을 수도 있다고!”
“각오한 바에요. 절대로 혼자서는 도망가지 않겠어요!”
유실은 결의를 다진 눈빛을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과거에 자신을 보는 것 같아서 그를 더 이상 설득할 수 없었다.
게다가 최근 이렇게 근성 넘치는 신인을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일까, 보여주고 싶었다. 훈련관으로서 그리고 금등급 모험가로서 자신의 힘을.
부연설명
스탬피드의 원인
미궁 내 한 계층의 마물들이 변이를 계속하여 변이체가 일정량 이상 늘어나게 되는 것이 원인이다.
이번에 패트릭이 발견한 고블린제너럴은 보통의 고블린에서 변이를 3번이나 했을 것이다.
마물등급
홉고블린 = 7급
고블린나이트 = 고블린메이지 = 6급
고블린제너럴 = 5급
고블린커맨더 = 4급
- 작가의말
세계관을 짜는 것이 생각보다 어렵더군요.
재밌게 읽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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