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데미 필요악이 되겠다

무료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퓨전

새글

뤼필
작품등록일 :
2024.09.16 19:51
최근연재일 :
2024.09.23 20:20
연재수 :
7 회
조회수 :
85
추천수 :
12
글자수 :
51,795

작성
24.09.16 20:39
조회
21
추천
1
글자
12쪽

프롤로그

DUMMY

[게임을 클리어하셨습니다.]


화면에 떠오른 메시지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검은색 배경엔 하얀색 글자가 번뜩이고 있었다.

‘HIDDEN SHADE’.

그 외엔 아무것도 없다.


깜빡- 깜빡-


어둠에 파묻힌 방 안, 빛을 쏟아내는 모니터를 눈에 담으며 나는 한가지 생각밖에 떠올리지 못했다.

정말로, 이게 끝이라고?

비단 성의 없는 엔딩 크레딧만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이곳에 다다르기까지 셀 수 없이 바꿨던 플레이 스타일.


공략을 거듭하며 내 플레이는 점차 극단적으로 치달았다.

게임 속 세계를 그 지경으로 만들고 나서야 이곳에 도달할 수 있었다.

모든 걸 희생했는데, 그 끝에 보게 된 엔딩이 이 모양이라······.

개발자에게 직접 찾아가 묻고 싶었다.

대가리에 제정신이 박혀 있는 거냐고.


"······."


끼익-

의자에 등을 기댄 채 모니터 속 홀로 서 있는 인물을 쳐다보았다.

죽고 살아나기를 수백 수천 번 반복했다.

클리어만 할 수 있다면 시스템이 허용하는 한 모든 수단을 가리지 않았다.

그렇게 달려온 끝에 보게 된 결말이다.


화면에 비치는 주인공의 모습에선 인간성을 찾아볼 수 없었다.

언젠가 감탄을 자아내던 굽히지 않는 신념은 사라지고 남아 있는 건 이익의 무게에 따라 칼을 빼 드는 무감각한 살육자의 면모뿐.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변해버린 육신은 그 이변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었다.


“허.”


솔직히 뭣 같 아니, 까놓고 말해서 좆같다.

어디서부터 꼬인 걸까.

판매 사이트 최하단에서 이 게임을 발견했을 때?

그때부터 잘못된 걸까?


“그건 절대 아니지.”


10년 동안 꾸준히 접속했다.

자기개발 대신 쓰레기통에 처박아버린 시간이 아깝지 않냐고 묻는다면 나는 그 질문부터 바꿀 거다.

쓰레기통에 박은 게 아니라고.

내 인생에서 손에 꼽을 만큼 가치 있는 시간이었다고.


플레이 내내 즐거웠다.

과정 자체로 행복했다.

엔딩 하나 잘못됐다고 지금까지 내가 느낀 감정이 부정당하는 건 아니다.

내가 극도의 찝찝함을 느끼는 덴 다른 이유가 있었다.


"······정말 최선이었나."


개발자에게 던지는 질문이 아니었다.

나 자신에게 되묻는 물음.

정말 모든 걸 쏟아부었는지.

단 하나의 실수도 없었는지.


어쩌면 더 나은 선택지가 있었을 수 있다.

다른 공략의 형태가 존재했을지 모른다.

10년 동안 모든 걸 쏟아부었지만, 애초에 잘못된 방식으로 우물을 파고 있던 거라면.

그러면서 깨끗한 물이 나오길 바랐던 거였다면.


'진 엔딩이 따로 있는 건 아닐까?'


의문이 머릿속에 파문을 일으켰다.

한참을 뒤척거리다 늦게 잠든 밤.

잠에서 깨어난 건 알람 소리가 귀를 찌른 직후였다.


따르르르릉!


“아오, 대가리.”


간만에 술 마시고 잤더니 골이 울렸다.

응급실 실려 가면 개발자에게 의료비 청구해야지 같은 영양가 없는 생각을 하며 핸드폰을 들췄다.

알람 끄고 다시 자려 했는데 메모가 눈에 들어왔다.


[슈파맨]


정신이 확 깼다.


“오늘이었구나!”


최근에 이렇게 기운이 돋은 적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피로가 가셨다.

재깍 일어나 머리를 감았다.

옷까지 빼입고 나니 제법 봐줄 만했다.

하도 신어서 고무가 덜렁거리는 슬리퍼 대신 신발을 꾸겨 신고 밖으로 나왔다.

내리쬐는 햇살에도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간만에 설레네."


슈파맨.

부모 형제 없이 쓸쓸했던 어린 시절, 나와 함께 해준 창작물.

성인이 되고 줄곧 잊고 살았었는데 한 달 전 편의점에서 광고를 봤다.

영화 개봉 소식이었다.

완결 난 만화고 이미 열 번이 넘게 정주행했지만, 마음이 요동쳤다.


'20년 만에 나온 신작을 어떻게 참아?'


다 아는 내용이어도 상관없다.

추억 속 종이 질감으로 남아 있는 장면이 영상 매체로 재탄생하는 것.

살아 움직이는 슈파맨을 목도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볼 가치는 충분했으니까.


“간만에 휴가니까 영화 보고 겜 달리면 되겠네. 공략 루트를 다시 짤 필요가 있겠어. 처음부터 아예 다른 방식으로······.”


나름 알찬 일정을 머릿속에 채워 넣으며 걷고 있자니 동네 외곽이었다.

여기서 벗어나면 큰길이 나오고 사거리 두 번 건넌 다음 꺾어서 들어가면 영화관이라고 핸드폰이 알려줬다.

고개를 끄덕이고 콜롬버스의 심정으로 당차게 발을 내딛는데.


······참, 인생이란 게 이렇다.

일 년에 몇 없는 외출, 기뻐해 마지않는 특별한 날.

불행이란 새똥처럼 툭 하고 예고 없이 떨어져 내린다.

고개를 든 나는 눈동자를 움직였다.

눈앞의 상황을 이해하는 데 긴 시간은 필요하지 않았다.


트럭, 아이, 공.


참으로 좋지 않은 조합이다.

휘말리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들지 않을 정도로.

문득 세상이 느려지며 생각이 샘솟았다.

나는 슈파맨을 보러 가는 중이었다.

저 빌딩들 사이 어딘가에 위치해 있을 영화관.

미지의 씬들이 아른거렸다.


'보고 오는 길이라면 모르겠는데.'


그러면 정말 마음이 동했을지 모르겠다.

왜 그런 경우 있지 않은가?

마음속으론 하기 싫은데 분위기에 떠밀려 활동에 앞장서게 된다거나, 평소엔 겁쟁이인데 감정에 도취해 없던 용기가 솟구친다거나 하는 경우.


하지만, 나는 아직 뽕이 안 채워진 상태였다.

도움을 주기엔 동기가 심히 부족한 상태다 이 말이지.

내 목숨이 위태로워질 수 있는 일이잖아?

사고로 안 이어질 수도 있는 거고.


빠아아아앙─


그런데 왜.

나는 이미 뛰고 있는 걸까.

에휴 인생.


아이의 등을 향해 손을 뻗었을 때, 신비롭게도 눈앞에 생생하게 스치는 두 개의 장면이 있었다.

하나는 코찔찔이 시절 내 눈에 그리도 넓게 보일 수가 없던 슈파맨의 태평양 같은 등짝이었고.

다른 하나는 히든 셰이드의 시작 화면이었다.


세상에, 주마등이 단 두 개인데 하나는 슈퍼히어로물 등장씬이고 다른 하나는 컴퓨터 게임 시작 화면이라니······.

이건 누구에게도 공개 못 할 흑역사다.

아, 어차피 여기서 죽으면 말할 대상도 없나?

그러다가 세 번째 생각이 떠올랐다.

이번엔 순수한 의구심이었다.


왜 손이 아이 등에 통과되냐?


·

·

·


콰아아아앙──!


소음이 귀를 강타함과 동시에 이루 말할 수 없는 충격이 몸을 휩쓴다.

강력한 전류가 통한 듯 저릿함이 온몸을 훑고 지나간 직후 전신의 감각이 소멸했다.

알 수 없는 음성이 들려온 건 얼마 안 가서였다.


-<차원전이> 자격 요건 검토 절차가 완료되었습니다.


-급속 업데이트가 진행됩니다.


7%······


24%······


45%······


72%······


······99%


-업데이트가 완료되었습니다.


-결속 상태 이상 없음.


-전이가 시작됩니다.


무언가 보이지도, 만져지지도 않는 세상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들리지 않는 혼잣말을 되뇌는 것뿐이었다.


‘뭔··· 개소리··· 야···?’




* * *




물리법칙을 거스르는 급격한 쏠림.

우주 밖으로 튕겨 나간 것만 같은 강렬한 충격 이후, 나는 마치 허공에 붕 떠 있는 듯한 감각을 느끼고 있다.

죽음을 마주한 인간의 시간은 느리게 흐른다고 했던가.

내게도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곧바로 부정했다.

단순히 사고를 당한 직후 의식이 남아 있는 거라면 이런 느낌이 들 리 없기 때문이다.

어둠 속에 파묻혀 보이는 건 없지만, 지금도 생생히 느껴지는 감각은 있었다.


오감이 아니다.

가는 줄기가 심장 부근에서 수축했다가 늘어나는 느낌.

몇 차례 그러길 반복하던 중 돌연 열린 수문으로 쏟아지는 물줄기처럼 감각의 급수가 뻗어 나가기 시작했다.

몸이 새롭게 재구성이라도 되는 듯한 기분이었다.


이런 감각이 사고로 인해 일어날 리 만무하다.

확신을 가지고 의식을 가다듬는 찰나 섬광이 들이닥쳤다.

시야를 뒤덮는 흰색 빛깔.

차츰 여러 색채를 띠기 시작하더니 구색을 갖춰 나갔다.

그렇게 만들어진 것은 어떠한 형체.

아니, 무언가의 풍경이었다.


깜빡.


닫혔다가 열린 시야 속, 처음으로 눈에 들어온 건······ 하얀색 셔츠와 그 위에 걸쳐져 있는 치장.

그 모양새가 마치 교복처럼 보였다.

마지막 교문을 나선 후 쓰레기통에 처박았으니 교복을 다시 마주한 건 어언 10년 만이었다.


부스럭-


멍하니 내려보다가 전신을 감싸고 있는 감촉을 느꼈다.

그제야 상황이 인지되기 시작했다.

나, 교복을 입고 있다.

어째서······?

왜 진즉 내다 버린 교복을 입고 있는 거지?


“ΤÅΚυΜŦФæ Ŋ ФℑℒβοΒ.”


그때 싸늘한 음성이 귀에 박혀 들어왔다.

머릿속에서 이 일련의 단어를 인식하기도 전에 몸이 먼저 반응했다.

아래에서 위로.

고개를 든 나는 표정을 굳힐 수밖에 없었다.


“······.”


십여 명의 사람들이 주위를 둘러싸듯 앉아있었다.

사고가 마비된 가운데 지금 이 순간 가장 맹렬히 대두되는 감정은 거북함이었다.

공간을 장악한 냉혹한 공기.

차가움에 감응된 눈동자들은 오만과 권태로움에 가득 찬 채 모두 나를 향해 있다.

미간을 좁히며 그 모습을 둘러보다가 불현듯 시선을 멈췄다.


“···리드 윈 데헬란트.”


들린다.

생전 처음 듣는 언어가, 내가 알던 언어로.


“준비되었나?”


묵직한 목소리가 실내에 울려 퍼졌다.

그 물음이 나를 지목하고 있음을 본능적으로 알았으나 대답하지 않았다.

내 시선은 누군가의 눈동자에 메여 있었다.

상대 또한 시선을 피하지 않았기에 두 눈에 담긴 감정을 또렷이 읽을 수 있었다.

그건······ 형언할 수 없는 분노였다.


동시에 나는 그의 얼굴로부터 누군가를 떠올릴 수 있었다.

무의식 깊은 곳에서부터 태동하던 기시감이 현실로 들이닥친 순간.

소름 끼치는 감각이 전신을 훑으며 시야가 확장됐다.


"······!"


방금까지 흐릿하기만 하던 형체들이 뚜렷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주위를 둘러싼 좌중.

각각의 옷차림과 얼굴을 살피는 것만으로 누군지 알아볼 수 있었다.

마침내 군중을 한 바퀴 훑어본 내 시선이 돌아온 곳은 이제 확신을 담아 이름을 말할 수 있는 남학생과 여학생이 있는 자리.


이해했다.

그 순간, 헛웃음이 나왔다.


“안프리드.”


일순 공기가 무거워졌다.

내 웃음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아까부터 안프리드, 그러니까 '나'로 추정되는 이름을 불러대던 중년 남자의 얼굴이 싸늘하게 굳어 있었다.


“침묵은 긍정의 의미로 간주하겠다.”


나지막이 말한 그는 내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어딘가로 눈빛을 보냈다. 다시 한번 장내에 굵직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준비됐나?”


이번엔 나를 향한 물음이 아니었다. 사내의 시선 끝에 있는 여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아아, 물론입니다.”


단정한 흑단발에 어울리는 다부진 용모.

단번에 그녀의 정체를 알아챈 나는 조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 타이밍에······?’


이해할 수 없는 상황들이 뒤엉켜 사고의 회로를 틀어막고 있는 지금, 뇌는 오로지 시각에 반응해 기억을 불러일으킨다.

십 년간 수없이 반복했던 경험이 수면 위로 올라오며 머릿속에 파문이 일었다.


저 교수의 개입은 내가 최단 속도로 챕터를 클리어하기 위해 만들어 낸 방법이었다.

말주변이 없는 주인공 대신 화려한 언변으로 무결한 공략률을 달성시키는 최고의 지원군.

뿐만 아니라 챕터를 거듭해 나가며 쉴 새 없이 몰려드는 위협에 든든한 조력자가 되어준다.

그런 인물과 초반부터 관계의 초석을 다지는 최적의 공략 형태가 눈앞에 펼쳐진······.


'아니,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그보다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것들이 있었다.

먹구름이 개듯 기억의 장막이 걷히고 사고가 돌아가기 시작한다.

의문점은 명확했다.

최적의 공략 상태고 뭐고.

게임 속에서 줄기차게 보던 상황이 왜 말 그대로 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냐는 것.

그리고.


“그럼 모두 준비된 것으로 알고 지금부터 아슬론 아카데미 1학년생인 피해 학생 ‘알렌’의 요청에 따라 동급생인 가해 학생 ‘안프리드 윈 데헬란트’를 대상으로 한─”


어째서 내가 [1장, 악연 재판] 챕터의 빌런인 ‘안프리드 윈 데헬란트’인 것이며.


“학생 선도위원회를 개최하겠습니다.”


오늘이 왜 하필 다른 날도 아닌, 1장의 마지막 무대를 장식하는 최종 판결 날이냐는 것이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아카데미 필요악이 되겠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연재 시간 안내 24.09.19 8 0 -
7 등위재배정 심사 (1) NEW 6시간 전 1 0 22쪽
6 일단락 (2) 24.09.21 6 2 13쪽
5 일단락 (1) 24.09.20 11 2 14쪽
4 악연 재판 (3) +2 24.09.19 17 3 18쪽
3 악연 재판 (2) +1 24.09.18 14 2 20쪽
2 악연 재판 (1) 24.09.17 15 2 14쪽
» 프롤로그 24.09.16 22 1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