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마법사의 소꿉친구로 살아가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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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필레
작품등록일 :
2024.09.17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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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0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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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8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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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백의 검 (1)

DUMMY

일주일 남짓한 시간 동안은 특별한 일 없이 평온한 날들이 지속됐다.


뭐, 엄밀히 말하면 다음날 아린느랑 같이 양들 씻기다가 경미한 사건사고들이 좀 발생하긴 했는데···

그건 차치하고. 기회가 되면 나중에 따로 이야기할 날이 있겠지.


그리고 뭐 어쨌든 결국 양들을 한 마리도 빠짐없이 다 찾아서 데려왔으면 된 거 아니야?


그 사이에 우리 섬에는 에가라스 왕국의 사절단이 곧 도착할 예정이라는 이야기가 만연하게 돌기 시작했다.


삼 왕국 중 하나인 에가라스의 사절단이 이곳에 오는 이유에 대한 소문은 무성한데 사실을 확인해줄 수 있는 사람은 없으니...


추론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점점 걷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퍼져나간다.


누군가는 에가라스 왕국이 우리 섬과 지속적인 교류를 하고 싶어서 공주가 왕가를 대표해서 직접 찾아오는 거라고 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우리와 군신의 관계를 맺기 위함이라고 하고...


이번에 대륙에서 벌어질 전쟁 때문에 오는 거라는 말도 있고......


섬 어디서든 사람 두 명만 모였다 하면 하는 얘기가 사절단 얘기뿐이니 나처럼 별로 관심이 없는 사람들에게도 들릴 수 밖에.


솔직하게 말하면 들려오는 추측들 중에서 신빙성 있게 느껴지는 건 하나도 없다.


하긴, 우리 섬 같이 작은 곳과 에가라스처럼 거대한 왕국이 무엇 때문에 관계를 맺겠는가?


작은 도시 국가도 아니고 삼 왕국 중 하나라고 불리는 에가라스다.


대륙에 기반을 하고 있지 않은 섬나라고 해도 그 역사와 위상은 튈레리나 보르덴 왕국 못지 않은 대륙의 강자.


그 왕국 공주가 엄청난 미인이라던데... 그것 또한 내 알 바는 아니고.


나에게는 그저 요즘 따라 이상하게 시간이 촉박하다는 사실 외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


가을은 쏜살같이 지나가고 있고 그 다음 계절을 기다리는 지금 나에게는 겨울을 따뜻하게 보낼 준비를 하는 게 가장 급선무니까.


아린느도 겨울이 되기 전에 해야 할 일들을 다 마무리해 놓는다고 거의 하루 종일 수도원에 틀어박혀 있어서 얼굴은 아침이랑 저녁때 아니면 보기 힘들다.


옆에 또 있다가 없으니까 허전한 기분이 드는 것 같기도 한데 이렇게 평화로울 때를 즐겨둬야 한다.


또 언제 새로운 폭풍이 불지 모르니.


그리고 오늘은 때마침 집에 손님이 찾아오는 날이거든.


한 달에 두어 번 정도 우리 집을 찾아오는 아주 괴팍한 손님이다.


나이는 사십 대 중반 정도의 남자로 이름은 케네스라고 한다. 섬 북쪽의 폐쇄된 항구라 불리는 곳에서 혼자 살고 있다는 거칠고 무뚝뚝한 사내.


어릴 때부터 봐 왔던 사람이 아니면 절대 길 가다가 눈을 마주치고 싶지 않을 법한 부류의 남자다.


이렇게 말하면 그 아저씨는 코웃음을 지으면서, '흥 내 인상이 뭐가 어떻다고 그러냐 이 녀석아'라고 말을 하겠지만.


그 쪽은 바다가 사계절 내내 유난히 차갑고 연안에 부딪히는 파도 또한 난폭해서 어부들도 배를 잘 안 끌고 가는 곳이다.


그런 이유 때문에 그 주변에는 아무도 살지 않는데 케네스 아저씨는 어떻게 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물고기도 잡고 농사도 지으면서 잘만 사는 거 같다.


아, 그리고 특징이 하나 더 있다면 팔이 하나 없다는 것 정도.


팔을 어쩌다 잃게 됐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이 또한 그저 추측들만 무성할 뿐.


예전에 결투를 하다 다쳤다는 얘기도 있고 광산에서 금맥을 찾다가 팔이 껴서 자기 손으로 직접 잘라냈다는 얘기도 있고···


나는 개인적으로 결투를 하다 다쳤다는 설을 믿는 편이다. 왜냐하면 이 아저씨는 분명 왕년에 검사로 이름을 꽤 날렸을 것 같거든.




요즘은 눈을 뜨면 서늘한 가을 아침 공기 때문에 곧바로 몸을 일으키기가 더더욱 힘들다.


조금이라도 따뜻한 이불 속에 더 들어가 있고 싶고 거기에 창문 사이로 아침 바람까지 스며오는 날이면 더더욱.


평화롭고 조용한 계절이 곧 끝나가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이른 아침에 눈을 뜨면 옆 방에서 아린느의 이불이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아마 쟤도 잠이 덜 깬 상태에서 침대 속에서 비비적거리고 있는 거겠지.


어릴 때는 같은 침대에서 자는 날들이 많았는데 요즘은 어쩐지 같은 침대에서 잠을 자는 건 좀 어색하다.


뭐, 다른 이유는 아니고. 둘 다 커져서 침대가 작게 느껴지는 탓 아니겠어?


어쨌든 침대에서 나오길 격하게 거부하는 내 몸을 겨우 이끌고 계단을 내려와 거실로 가자 케네스 아저씨와 여사님은 이미 같이 아침을 먹고 있다.


나이를 먹으면 아침잠도 없어진다고 하던데, 정말 그런가 보다.


“이제 일어났냐 마르셀.”


“아 하하··· 벌써 오셨어요 아저씨?”


“이 녀석... 해가 중천에 떴는데 이제 일어나는 건 좀 너무하지 않냐.”


“아저씨··· 밖에 해 아직 뜨지도 않았는데요.”


“그건 마음먹기에 다른 거고.”


“네?”


"섬의 동쪽에서 보면 해는 이미 떴겠지."


이른 아침부터 이건 도대체 무슨 순 억지란 말인가.


“여하튼 마르셀. 너도 앉아서 얼른 아침 먹어라.”


“넵 알겠습니다.”


아저씨 옆에 앉자 여사님이 따뜻한 계란 후라이와 버터를 바른 빵을 가져다 주었다.


“너 요즘 수련은 잘 하고 있냐 마르셀.”


아저씨의 말에 나는 순간 움찔했지만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하며 계란 노란자를 숟갈로 터트렸다.

뜨끈한 계란 노른자가 가득 담긴 숟갈을 입에 넣은 다음 천천히 삼키고 대답을 한다.


“그럼요 아저씨. 매일같이 하는 걸요. 하루도 빠짐없이.”


“오 그래? 그렇단 말이지.”


사실 거짓말이다. 왜냐하면 지난 일주일 동안 연습은커녕 검 한번 들어본 적이 없거든.


게으르게 살았냐고 묻는다면 그건 그거대로 억울하다.


나도 논 건 아니야. 양들도 씻겨야 했고 커튼도 빨아야 했고 울타리도 손봐야 했고 헛간 지붕도 고쳐야 했다고.


그래. 내가 나쁜 게 절대로 아니다. 검술을 게을리 할 수 밖에 없을 정도로 나를 굴리는 이 세상이 잘못된 거지.


“지금 아침 먹고 나가서 확인해보면 바로 알 수 있을 텐데 너 그 말에 자신 있냐.”


“아 절 어떻게 보시는 거예요 아저씨. 당연히 연습했죠.”


생각해보면 오늘 아침에 내 몸이 침대에서 나오길 거부한 건 단순히 날씨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눈을 살짝 올려 떠서 앞을 쳐다보니 맞은편에서 여사님이 한 손으로 턱을 괸 채 흥미롭다는 듯 나를 바라보고 있다.


“그래? 난 본 적이 없는 거 같은데.”


“아 엄마 안 볼 때 혼자 연습했지.”


“아 그래?”


저렇게 쳐다보는 걸 보면 진짜 내 엄마가 아니라 아린느 엄마라고 해도 믿을 만큼 둘이 비슷하단 말이야.


“그러면 빨리 먹어.”


“왜··· 왜요?”


“아침 먹고 나가서 나가서 대련 한판 조져야지.”


조지긴 뭘 조져. 항상 조져지는 건 난데.


갑자기 방금 전까지 맛있던 계란이 입 안에서 쓰게 느껴진다.


“아 오늘은 조금 힘들 거 같아요. 제가 오늘 조금 바쁜 일들이 있어서···”


“바쁜 일?”


“제가 오늘 할 일이···”


막상 생각해보니 할 일이 없다.


일주일 동안 소처럼 부지런히 일했더니 더 이상 해야 할 일이 없는 것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어제 좀 덜 하고 오늘 남겨둘걸!


괜히 근면 성실함이 몸에 박혀있는 바람에 또...


“아 맞다. 아린느! 저 아린느 수도원 데려다 주러 가야 해요.”


“아린느 오늘 수도원 안 간다고 하던데?”


“그··· 래?”


“오늘 안 간다고 어제 저녁 먹으면서 말했잖니 마르셀.”


정말 누구 엄마인지 헷갈릴 만큼 도움이 안 되네.


“잘 됐네. 밥 다 먹었지? 안 먹었어도 이제 따라와.”


먼저 일어나는 아저씨를 따라 나는 참담한 심정으로 빵을 집어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



새하얀 아침 안개가 자욱한 들판은 풀잎 사이사이에 맺힌 이슬 때문에 꽤 미끄러웠다.


발목을 스치는 물기로 인해 바지 밑단은 이미 다 젖어버렸고 나는 그 습한 공기를 들이마시며 자세를 가다듬었다.


검을 잡은 순간은 언제나 진지해야만 한다. 그 어떤 순간이라도 검을 잡은 순간부터는 웃음기 싹 빼고 오로지 검에 몸을 맡긴다.


어릴 때부터 아저씨에게 검술을 배우면서 수천 번은 들은 말이다.


검은 생명을 빼앗는 물건이다. 그 어떤 순간에도 진지하지 않아선 안 된다.


놀이나 유흥을 위해서 이 검의 손잡이를 집어드는 일은 절대로 없어야 한다는 말이다.


연습용 목검의 손잡이를 양 손으로 잡고 호흡을 가다듬고 있자 저 멀리서 정체를 알 수 없는 굉음이 들려왔다.


부우우우욱!


멧돼지가 나무라도 들이받은 듯한 소리와 함께 나무들 사이에서 아저씨가 한 손에 통나무 하나를 들고 들판을 가로질러 온다. 그 상태로 나를 향해.


“아저씨··· 이건 좀 아니잖아요.”


케네스 아저씨가 이해하지 못했다는 듯 어깨를 으쓱거리면서 나를 향해 다가온다.


“오··· 오지 마요···”


나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키에 덩치도 멧돼지 세 마리는 한 손으로 이길 수 있을 거 같은 거구의 사나이.


그런 그가 통나무를 들고 다가오는 모습은 아무리 오랫동안 알던 사이라 해도 무섭기 그지없다.


“아니긴 뭐가 아니야.”


“아니 무슨 나무 하나를 통째로 뽑아 와요··· 그냥 간단히 대련한다면서.”


“대련도 실전처럼 해야 하는 거야. 너 실제로 싸울 때도 규칙 따져가면서 할래?”


통나무를 한 손으로 무슨 가벼운 나무 막대기 잡듯 서 있는 상대를 보고 나는 한숨을 푹 쉬었다.


오늘도 몸이 성하긴 힘들겠구나.


쿵!


아저씨가 사전 예고도 없이 달려오면서 통나무를 내가 서 있는 곳을 향해 내려찍었다.


가까스로 피하긴 했지만 저거 땅이 파인걸 봐서··· 잘못 맞았으면 오늘 수도원 양지바른 곳에 묻혔을 듯싶다.


“뭐하냐! 동작 봐라! 반격 안 하고!”


"아니, 무슨 말도 안 하고...!"


"실전에서 적이, 나 이제 공격한다 하고 말하고 시작하는 줄 알아!"


다시 한번 통나무가 내 두개골을 노리며 허공을 찍어 내린다.


쿠웅!


저 무거운 걸 무기랍시고 들고 있는데도 스피드나 정확도마저 무시무시하다. 그저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괴물 그 자체.


그의 공격을 옆으로 피하면서 검을 내찌르자 통나무가 바람을 가르는 소리를 섬뜩하게 내며 내 공격을 막아냈다.


우우우웅!


겨우 한 합을 겨루었는데 통나무가 내 보잘것없는 목검에 부딪히는 충격에 손이 저릿저릿하고 팔까지 얼얼하다.


“마르셀 너 연습 안 했구나?”


“아... 아니거든요?”


“아니긴. 몸은 굼뜨고 반격은 형편없는데. 동작 봐라 동작!”


사이드 스텝을 밟으면서 검의 손잡이 쪽으로 통나무를 찌르자 이번에도 아저씨는 가볍게 막아낸다.


“그래도 이번 공격은 조금 쓸만하군.”


저 통나무를 휘두르면서 숨 하나 안 차고 말까지 하는 걸 보면 싸울 의지가 급격하게 사라지는 기분이 든다.


그런 식으로 수십 합을 주고받으니 동쪽 하늘에서 해가 점점 차오르고 시야를 제한했던 짙은 조운도 차츰 희미한 형태로 사라지기 시작했다.


“헉··· 헉···”


당연히 먼저 지쳐야 하는 건 상대 쪽이지만 이대로 갔다간 내가 먼저 나가 떨어질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아무리 강한 적에게도 약점은 있다. 그걸 찾아내느냐 못 찾아내느냐는 오로지 나에게 달린 것일 뿐.


이 또한 아저씨에게 질리도록 들은 말이다.


분명 상대한테도 약점이 있을 텐데··· 뭐가 있지?


그 순간 내 눈에 들어온 건 햇빛을 받아 반짝거리는 이슬방울들이었다.


저 무거운 통나무를 들고 하체까지 완벽하게 방어할 수 있을까?


자세를 낮춰서 아저씨의 하단을 향해 공격하자 이전보다 바람 가르는 소리가 조금 둔탁해지면서 통나무가 내 검을 가까스로 막아냈다.


쿵!


거기서 몸을 한번 더 숙여서 종아리를 베는 공격을 취하니 상대의 스텝이 살짝 꼬이면서 공격과 수비의 흐름에 틈이 생긴다.


그러면 됐다 이제. 이번에는 아예 발을 노리면···!


내 예상대로 상대의 하체가 휘청거리면서 딱 공격하기 좋은 공간이 만들어졌다.


저기를 찌르면 내 승리다.


부우우우웅


그 순간 내 머리 위로 날라오는 묵직한 무언가 때문에 내 자세가 흐트러진다.


뭐... 뭐야...!


아저씨가 자기 무기를 나한테 던져버린 것이다. 무기라고 말하기도 민망한 거대한 통나무이긴 하지만.


자칫하면 맞고 기절할 수도 있을 정도의 육중한 통나무를 가까스로 피하면서 뒤로 거리를 벌리자 순간적으로 상대도 뒤로 물러난다.


잠시나마 승산이 있었다는 아쉬움이 남긴 하지만 그래도 이제는 내가 압도적으로 유리하다.


“아저씨. 이번 대련은 제가 이긴 거 같은데요?”


“왜?”


“그야 당연히 저는 무기가 있고 아저씨는 무기가 없···”


지이이잉


예리하다 못해 한겨울의 한풍처럼 서늘한 검날이 검집을 벗어나며 들려오는 소리가 들판에 울려 퍼진다.


마치 손에 닿기만 해도 동상이 걸릴 정도로 차가운 한기를 지닌 얼음으로 공기를 가르는 듯하다.


“방심한 순간 지는 거다 마르셀.”


“정말 진짜··· 이러기에요?”


“기회가 있을 때 찔렀어야지.”


아저씨가 잡고 있는 물건은 칼날부터 손잡이까지 온전히 새하얀 순백의 검.


이 세상의 물건이라고 도저히 느껴지지 않는 그 검의 끝이 내 심장을 향해 겨눠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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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그저 평범한 나날들 (3) 24.09.17 6 0 27쪽
3 그저 평범한 나날들 (2) 24.09.17 6 0 14쪽
2 그저 평범한 나날들 (1) 24.09.17 7 0 14쪽
1 Prologue. 내 소꿉친구 아린느 24.09.17 13 0 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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