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마법사의 소꿉친구로 살아가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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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필레
작품등록일 :
2024.09.17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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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0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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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9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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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백의 검 (2)

DUMMY

지금 내 가슴을 향해 겨눠진 저 검이 바로 케네스 아저씨의 주무기. '눈의 길'이라는 이름을 지닌 검이다.


양손 검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짧고, 한손 검이라고 하기에는 살짝 더 긴, 그 중간 어딘가에 있어서 양손으로도 한손으로도 사용할 수 있는 검.


어릴 때부터 봐온 물건이지만 볼 때마다 신묘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물론 언뜻 보면 검 전체가 대리석으로 조각한 것처럼 새하얗다는 점 외에는 평범해 보이는 물건이지만 검에 대해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은 절대로 그렇게 생각할 수 없다.


따로 검날을 갈아도 되지 않을 정도로 항상 날카로우며 검의 손잡이부터 날의 끝까지 항상 한기를 서리고 있는 듯이 차갑다.


근처에 가기만 해도 마치 검 자체가 마력을 품은 듯한 느낌이 든다.


이 세상 물건이 아닌 것 같이 느껴질 정도로 정도로 이질적으로 생겼지만 어릴 때부터 아저씨와 함께 봐온 터라 너무나도 익숙한 녀석.


어릴 때 아저씨한테 검을 배울 때는 나중에 꼭 저 검을 휘둘러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서늘하면서도 아름답고 매섭지만 매혹적인 물건.


이름까지 있는 검이니 분명 한때는 이름을 날렸을 명검일 것이다.


나야 유명한 검들을 본 적도 없고 잘 알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웬만한 경력이 있으니까 검 주제에 이름도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누가 지어주었는지는 모르지만 그 이름답게 저 검을 보고 있으면 외로운 한겨울이 생각난다. 발자국 하나 없이 눈에 새하얗게 덮여버린 길.


“그래도 이건 반칙이죠 아저씨.”


“반칙? 대련에 반칙이 어디 있어.”


“에이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 실전에서도 적한테 그렇게 얘기할 거냐?”


참나. 기가 막혀서.


“그러면 적어도 저도 대련용 목검 말고 다른 무기를 주셔야지···”


이미 알고 있다. 다 핑계라는 걸. 그래도 어떡하겠어 억지라도 부려보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인걸.


다 이긴 승부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어이없이 끝나버리니까 더더욱 분한 마음이 든다. 아저씨가 나를 바라보며 한쪽 눈썹을 치켜 올렸다.


“임마. 그건 네가 챙겼어야지. 지금 적한테 무기까지 달라는 거냐? 너랑 나는 지금 전쟁터에서 싸우는 적이야 적.”


에이 그냥 항복하고 끝낼까? 여기서 더 해 봤자 얻어맞기만 하는 거 말고 더 있겠어?


아니, 항복은 할 수 없다. 솔직히 그러고 싶은 마음이긴 한데 이대로 돌아서면 왠지 아쉽다.


방금 전에 거의 이길 뻔했던 손맛이 아직 남아서인지 여기서 그만두면 하루 종일 생각날 것만 같은 기분이야.


어쩌지?


툭!


그 순간 정확히 내 발 밑에 투박한 한손검 하나가 떨어진다.


“아저씨 오랜만이에요.”


“일어났냐 아린느.”


“그럼요. 둘이서 무식하게 통나무랑 나무 막대기 들고 싸우는 거 방에서 보고 있었는걸요.”


어느새 다가온 아린느가 나를 향해 손을 흔들더니 저만치 떨어진 곳에 주저앉는다.


“야 나는 통나무 들고 안 싸웠거든?”


“통나무나 목검이나 다 같은 거 아니겠어?”


뭐 둘 다 나무이긴 하니까 틀린 말은 아닌데··· 그런데 이상하다. 아린느가 다가오는 기척을 전혀 못 느꼈는데?


아린느가 던진 검을 줍자 아저씨가 고개를 끄덕인다. 마치 다시 대련을 이어갈 수 있어서 만족스럽다는 듯.


“마르셀. 무기가 왔으니 이제 다시 싸울 수 있겠지?”


검집에서 검을 뽑자 검날이 아침 햇살에 반짝이며 내 얼굴을 비춘다. 눈의 길처럼 특별하진 않아도 평범하게 쓸만한 검이다.


뭔가 오늘만큼은 지고 싶지 않다. 아저씨와의 수년 간의 대련에서 이겨본 적은 없지만 오늘은 왠지 이길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이 든다.


검을 바로잡고 아저씨를 향해 칼 끝을 겨누자 아저씨가 입꼬리를 치켜 올린다.


“저도 오늘은 안 봐드려요.”


“그래 그래야지. 그러면 지금부터 한번 제대로 놀아보자 마르셀.”


“후우”


나는 다시 한번 검을 들어올려서 아저씨를 향해 달려들었다.



#



“아 거기··· 거기도! 살살!”


“아! 뭘 이렇게 엄살을 부려! 작작 가만히 있어라?”


짝!


“아! 너 정말···!”


아침 대련 중에 멍이 든 곳에 약을 발라주던 아린느가 내 등짝을 손바닥으로 내리친 것이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그러니깐 누가 그렇게 무모하게 덤벼들래?”


오전의 대련은 결론부터 얘기하면··· 나의 패배로 끝났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졌지만 잘 싸웠다고 말하고 싶다. 절대로 정신 승리를 하려는 게 아니라 정말 가능성을 제시했다고 나는 생각한다.


저녁을 다 먹고 나랑 아린느는 내 방에 있다. 나는 침대에 엎드려 누워있고 아린느는 옆에 앉아 각종 허브로 만든 연고를 내 등에 발라주는 중이다.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아린느의 약들은 꽤 쓸만하다. 웬만한 멍도 저 약들을 바르면 밤새 사라질 정도이니 효능 자체는 훌륭한 셈이다.


물론 저 약이 탄생하기까지 수많은 임상 실험이 있었다는 사실은 비밀 아닌 비밀. 물론 그 대상은 나였고.


“거기··· 아니 아니 거기. 멍 얼마나 들었어?”


“아 별로 안 커. 그러니깐 말 좀 그만하고 가만히 있어!”


아린느가 집중해서 약을 바르는 사이 나는 잠시 그녀의 얼굴을 살폈다. 아까부터 물어보고 싶은 게 있었는데 차마 내 입으로 말하기는 조금 민망하네.


“아린느.”


“왜. 뭐.”


“그런데 오늘 대련 솔직히 좀 괜찮지 않았냐.”


“괜찮긴 뭐가 괜찮아. 마지막에 나가떨어졌으면서.”


“결과를 보지 말고 과정을 보라고. 아저씨가 통나무로 공격할 때 반격한 건 좀 멋있지 않았어?”


내 등을 문지르던 아린느가 손을 갑자기 멈추면서 생각에 잠긴 듯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거 말고. 마지막에.”


“응? 마지막에 뭐?”


“마지막 검법. 그거 뭐였어?”


“아 그거.”


“처음 보는 거였는데.”


아린느의 말에 나도 모르게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다시 시간을 거슬러 오늘 아침으로 돌아가보자.


대련이 네 시간이 넘어갔을 때 즈음 냉초했던 아침 공기에도 불구하고 이미 옷은 땀으로 다 젖어 버렸고 온몸에서는 새하얀 김이 온천 안에 들어간 것 마냥 분유하고 있었다.


팔 근육은 부들부들 떨리고 이미 시야의 초점은 흐려져 정신을 놓았다간 쓰러질 것만 같다.


여기서 더 해도 승산은 없다. 이미 진 거야.


하지만 포기하고 싶지는 않다. 적어도 오늘은 무기력하게 지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


그래서 다시 한번 검을 고쳐 잡는다. 지금까지 수백 번, 수천 번 그래왔듯. 지지 않기 위해.


하지만 지금부터의 검법은 여태껏 해왔던 거랑은 조금 다를 것이다. 최후의 일격이자 마지막 승부수. 내 모든 걸 담은 공격이다.


검을 양 손으로 잡은 다음 머리 위로 최대한 높게 들어올려 하이 가드 자세를 취한 다음 아저씨를 향해 돌진하면서 검을 마지막 순간에 옆으로 틀어서 내리친다.


챙!


두 검이 맞부딪히면서 푸른 불꽃이 이리저리 흩날린다. 강한 진동이 어깨까지 파동처럼 치닫는다. 주변 공기가 이지러지며 굉음을 내뿜는다.


검 날은 그 끝에서 유려하게 방향을 바꾸며 다시 공격을 재개한다.


여기서부터 나 혼자서 수많은 밤 동안 홀로 연마했던 검법을 펼친다.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았던 나만의 공격.


챙! 쾅! 챙!


처음 보는 연계에 아저씨도 당황한 듯 공격을 막아내는 속도가 평소와 달리 둔탁하고 끊기는 기분이 든다. 마치 아까 통나무를 들고 있을 때 다리를 공격했던 것처럼.


나는 속도를 높여서 더 빠르게 공격을 가세했다. 거대한 바위와 바위 사이에 검을 끼워 넣고 홈을 파듯 보이지 않는 상대의 틈을 조금씩 만들어서 그곳을 집요하게 늘어지는 것이다.


독수리가 날개를 바짝 몸에 붙이면서 전속력으로 먹이를 향해 내리꽂듯이 나 또한 양 팔을 몸에 밀착시키고 달려든다.


검의 궤적이 다시 한번 허공에서 방향을 바꾸면서 상대가 예측하지 못했던 측면으로 공격한다.


검 끝에 맺힌 물방울이 흩날리면서 잠시 흐릿한 무지개가 된다. 검날을 상대를 향해 다시 한번 내려찍는다.


아까와 비슷하게 다시 한번 빈틈이 보이기 시작한다. 나는 분위기를 몰아서 내 온 힘을 쏟아낸다. 여기서 옆으로 틀고 등을 돌려서 다시 어깨를 노리면!


쿵!


둔탁한 소리와 함께 나는 고꾸라진다. 세상이 왜 이렇게 어지럽지?


“마르셀! 마르셀!”


저 멀리서 아린느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잠시 정신을 잃었던 걸까?


눈을 떠보니 보이는 건 초록색뿐이다. 입에서는 나는 쓰디쓴 흙 맛.


“아저씨! 그렇게 세게 하면 어떡해요! 그러다가 우리··· 아니 마르셀이 다쳤으면!”


등이 얼얼한 거 보니 아저씨가 칼자루 끝으로 내 등을 찍은 거 같다. 뭐지 나 진짜 기절한 건가?


“아니 그게··· 그럴 수 밖에 없었던···”


“괜찮아 마르셀?”


나를 향해 다가오는 아린느의 목소리에 나는 고개를 들다가 다시 잔디밭에 파묻었다.


“괜찮냐고. 말을 해봐!”


“야··· 말 시키지 마. 부끄러우니까.”


“너··· 우냐?”


“울긴 뭘 울어!”


“아저씨 얘 우는 거 같은데요?”


귓가에서 들려오는 아린느의 웃음소리를 덮기 위해 나는 얼굴을 잔디 사이로 더 깊게 파묻었다.



#



“그건 그렇고. 마르셀 기분은 좋겠네?”


기분이 좋다고 해야 하나. 고개를 들어올려 침대 옆 탁상을 바라보니 그곳에 놓인 검이 눈에 들어온다.


손잡이부터 검집까지 새하얀 순백의 검. 케네스 아저씨의 검··· 이 이제 아니라 내 검이 되어버렸다.


“너 저 검 어릴 때부터 짝사랑해왔잖아.”


“짝사랑은 무슨. 변태냐 내가. 검을 짝사랑하게.”


말은 그렇게 해도 아직 조금 얼떨떨하다. 사실 조금이 아니라 아주 많이. 아린느 말대로 아저씨한테 검술을 배울 때부터 보았던 저 검이 정말 내 것이 되다니.


내 나이가 더 어렸더라면 정말 오늘 밤 잠도 못 자고 뛸 듯이 기뻐했을지도 모른다.


내가 저런 과분한 물건을 받아도 되는 걸까? 평생 이 섬에서 살면서 실전에서 검을 쓸 일이 한번도 없을 나에게?


대련이 끝나고 한참 동안 아무 말 없던 아저씨가 내게 준 걸 얼떨결에 받아버린 것이다. 검을 주면서 한 말은 본인한테는 이제 더 이상 안 맞으니 내가 쓰는 게 좋겠다는 말과 함께.


“뭐 이 말은 네 자존감에 무리가 갈 거 같아서 안 말하려고 했는데 내 생각에는 아저씨도 마지막에 조금 놀랐던 것 같아.”


연고를 다 바른 아린느가 내게 웃옷을 건네며 말했다.


“놀랐다고?”


“마지막 검법을 막으면서 조금, 아니 많이 당황한 기색이셨거든.”


“정말?”


“그런데 마르셀 지금 혹시 움직일 수 있어?”


“움직일 수야 있지.”


“그러면 한번 따라와 봐.”


아린느가 나를 데리고 간 곳은 아까 아저씨와 대련을 했던 들판이었다.


아까와 달리 밤하늘이 내려앉은 들판은 보름달에 가까운 달빛에 비춰져 불빛이 따로 없어도 청명했다.


“여긴 또 왜?”


“거기 서서 검 한번 뽑아 봐.”


“갑자기?”


“확인해보고 싶은 게 있어서.”


아린느의 말대로 눈의 길을 뽑자 맑은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공기를 가르는 듯한 소리는 묵직하면서도 들고 있으면 안정감을 주는 느낌. 검이 울고 있는 것이다.


두 손으로 검을 움켜잡자 평생 사용했던 물건 마냥 익숙함이 나를 감싼다. 마치 내게 맞춰서 제작된 것처럼 편안한 건 착각이겠지.


“아까 마지막 검법 다시 한번 해봐 처음부터.”


나는 아저씨와의 대련 상황을 떠올리면서 똑같이 검법을 펼쳤다. 분명 같은 동작인데 이전에 들었던 검에게는 미안하지만 차원이 다른 부드러움이 느껴진다.


이게 온전히 검이 바뀌어서인지 아니면 지금까지 혼자 연습했던 검법을 비로소 실전에서 사용해 보았기 때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물 흐르듯 매끄럽다.


“방금 그 세 동작 다시 한번 해봐.”


마지막에 아저씨한테 막혔던 공격 직전의 동작을 재현하자 아린느가 이번에는 그 다음 동작까지 연계해서 해보라고 지시한다.


“한번만 더. 그리고 가만히 멈춰봐.”


자세를 멈추고 있자 옆으로 다가온 아린느가 내 오른쪽 옆구리에 손을 대더니 힘을 세게 주면서 누른다.


아린느의 손바닥에서 느껴지는 온기가 내 몸을 타고 뒤통수까지 전해졌다. 우리의 얼굴이 나뭇잎 하나의 거리까지 가까워지며 서로를 바라봤다.


아린느의 속눈썹 하나하나 셀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 찰나에 그녀가 한 발자국 떨어지며 내 팔을 가리켰다.


“마르셀. 지금 이 동작 말이야. 살짝 너무 위로 가 있지 않아?”


“그래?”


“이러면 여기서 갑자기 틈이 생기는데 한번 힘을 살짝 빼고 팔을 아래로 내려보는 건 어때?”


그 말을 듣고 보니 아까 대련 때 마지막에 아저씨한테 등을 찍힌 기억이 스쳐갔다.


공격 사이에 빈 틈이 보였기 때문에 당한 거겠지?


“그러면 한번 다시 처음부터 해볼 테니까 뒤로 가 있어봐.”


검법을 처음부터 펼치면서 이번에는 아린느가 지적한 부분을 다시 하자 이전보다 훨씬 유연하게 연계가 되는 기분이 들었다.


왠지 실전에서 이 검법을 펼치면 웬만한 상대에게는 지지 않을 것 같다. 물론 이 또한 자만이겠지만 적어도 이 순간만큼은 아저씨도 이길 수 있을 거 같아.


“그래. 내 생각에는 이게 맞는 거 같아.”


“나도 이게 훨씬 나은 거 같은데?”


“처음부터 다시 해볼래?”


“응. 알겠어.”


달빛만이 존재하는 어둑한 들판에서 검이 공기를 가르는 소리만이 가득했다.


아린느의 머리카락이 달빛을 받아 미려하게 빛나고 있었고 멀리서 보이는 바다의 수평선은 잠에 든 듯 고요하게 일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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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그저 평범한 나날들 (3) 24.09.17 5 0 27쪽
3 그저 평범한 나날들 (2) 24.09.17 6 0 14쪽
2 그저 평범한 나날들 (1) 24.09.17 7 0 14쪽
1 Prologue. 내 소꿉친구 아린느 24.09.17 10 0 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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