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마법사의 소꿉친구로 살아가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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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필레
작품등록일 :
2024.09.17 20:18
최근연재일 :
2024.09.20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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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7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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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평범한 나날들 (1)

DUMMY

그래 그럼 그렇지. 우리 아린느님께서 '그저 간단한 일'을 시켰을 리가 없었지.


아린느의 사무실에 들어온지 벌써 두 시간은 훌쩍 지났지만 여전히 나는 중노동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렇지. 이 책들은 저쪽에다가 올려놓고··· 아니 아니 그쪽 말고 저쪽이라니까?”


이미 내 눈썹 위까지 가득 쌓여 앞조차 잘 보이지 않는 책 더미 너머로 아린느가 미간을 찌푸린 채 비어있는 책장을 가리켰다.


“이 아이들까지는 역사책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아까 옮겼던 걔네들 옆에 놓아야지 마르셀. 아니 아니 거기 말고 이쪽!”


“하아···”


나도 모르게 터져 나오는 한숨을 내쉬면서 아린느를 향해 고개를 저었다.


“어이··· 아까는 분명 간단한 부탁이라며···”


“마르셀이 들어 준다며?"


저 말에는 직접 말하지는 않았지만 분명 이러한 뜻이 들어가 있을 것이다. 뭐, 내가 억지로 시켰니? 아니면, 누가 칼 들고 협박했어?”


그래. 간단한 부탁일 리가 없었지.


우리 아린느님께서 부탁한 거였는데 말이야.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안일했던 것 같다.


그래도 두 시간 정도 책들을 정리하다 보니 이제는 대충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된 것 같다.


그나저나 얘는 이렇게 많은 책들 사이에서 어떻게 일을 한 거야?


정리는 확실히 아린느의 강점은 아니다. 그건 내가 평생 같이 살아온 입장에서 보장할 수 있지.


그녀의 방에 들어가면 보이는 항상 널브러져 있는 책들과 이리저리 아무렇게나 놓여진 옷가지들까지.


아린느 덕분에 확실히 사라진게 하나 있다면 그건 분명 여자에 대한 환상이겠지.


생긴 거만 보면 호숫가에 사는 요정 같아서 가지런하고 정말이지 한 치의 불결도 용납하지 않을 것 같은 모습이지만 글쎄···


사람은 생긴 것만으로는 판단하면 안 된다는 걸 나는 아린느를 통해서 너무 어린 나이에 배운 것 같다.


아무리 그래도 집에서 새는 바가지가 수도원에서 와서도 이렇게 펑펑 새고 있을지는 몰랐다.


다른 걸 떠나서 이 정도로 어지럽혀 놓고 있으면 일이 되긴 하는 건가···?


어쩌면 이 난장판 속에서도 용케 필요한 것들 것 항상 찾아내는 거 보면 머리가 너무 좋아서 정리가 필요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미 다 어디에 있는지 기억하고 있는데 굳이 정리를 할 이유가 없겠지.


그래, 나 같은 범인이 어떻게 알겠어 저 큰 뜻을.




“그래도 좀 많이 정리한 거 같네. 마르셀도 옆에서 도와주느라 고생했어.”


“네? 도와줬다고?”


이건 또 무슨 소리야. 일은 내가 다 한 거 같은데.


“마르셀이 한 건 책들 분류하고 운반한 거 밖에 없잖아?”


“아니 책들 분류하고 운반까지 했으면 그냥 내가 다 한 거 아니야?”


이 녀석, 정말 어이없어 아주.


어느 먼 이국의 잘 나가는 상회의 주인 마냥 안락의자에 앉아 책상에 두 발을 걸치고 있는 그녀는 얄밉게도 땀 한 방울 안 난 채로 생생했다.


두건 아래로 빠져 나온 은빛 머리카락 몇 가닥만이 평소와 조금 다를 뿐.

지난 두 시간 동안 그녀가 그 어떤 육체적인 기여도 하지 않았다는 점은 여실하다.


아린느가 영악한 미소와 함께 순진무구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저 두 개가 어떻게 한번에 나오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녀는 가능하다.


“마르셀은 참 좋겠다.”


도대체 뭐가···?


“나 같은 천사랑 친구여서.”


요즘 천사는 기준치가 좀 많이 느슨해졌나 보지?

아니면 천계에서 뽑을 때 지원자가 적어서 입결이 낮아졌나?


물론 아린느가 착할 때도 종종 있긴 하다. 음 그러니까 어떨 때냐면...


먼저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이나 동물들을 못 지나친다. 어떻게든 도움을 주려고 하는 게 우리 아린느니까.


그래서 항상 주머니에는 건빵 같은 간식거리들을 가지고 다닌다. 본인은 자기가 먹으려고 하는 거라고는 하지만 지나가다가 만나는 아이들이나 들짐승들에게 주기 위해서라는 걸 나는 알고 있다.


물론, 그녀답게도 그 계획했던 도움이 항상 좋은 방향으로 성립하지 않을 때도 있긴 하지.


그리고 그 뒷처리는 대부분 우리 둘이 같이 하는 편이고.


그리고 정말 중요한 상황이 오면 무척 의리가 있는 편이다.


예전에 둘이 참치를 잡으러 바다에 나갔다가 배가 가라앉을 뻔 했을 때도 죽어도 같이 죽지 혼자서는 못 도망간다고 펑펑 울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런 일화들을 생각하면 분명 가끔은 얄밉지만 대부분은 착한 녀석이지.




“아 드디어 끝났다. 이거면 된 거지?”


“어 나머지는 얼추 내가 마무리하면 될 거 같은데? 일 하느라 고생했으니까 이제 그러면 슬슬···”


“잠깐만.”


방의 구석 한 쪽에 남겨진 책 몇 권이 내 눈에 거슬린다.

정리를 하면 끝까지 다 해야지 저 책들만 저렇게 놔두면 무슨 의미야.


아린느와 달리 나는 이런 지저분한 상태는 참을 수가 없다.

이래봬도 유리아 여사님의 친아들이어서 그런지 정리가 안 된 방은 도저히 지나칠 수가 없는 것이다.


아마 두 시간 전의 이 방을 유리아 여사님이 보셨다면 기함을 하고 쓰러지셨을지도 모른다.


마침 아린느의 방 한 쪽을 차지하고 있는 커다란 책장 중 가장 높은 층이 비어 있었다.


얘네들을 저기다가 올려놓으면 딱이겠네.


“마르셀 우리 이렇게 고생했는데 시원한 음료수라도 마시고 가야 하지 않겠어? 예를 들어 맥주라든지. 마침 아까 말했던 수도원에서 갓 만든 맥주가··· 야 너 뭐해!”


“이거만 마무리하고. 너 어차피 저기 위까지 키 안 닿잖아.”


“아니 나머지는 내가 한다니깐? 야···!”


나는 아린느의 다급한 목소리를 무시한 채 구석에 놓인 책들을 집어 들었다.


검은색 혹은 갈색 가죽 표지로 엮여 있던 다른 책들과 다르게 이 책들의 표지는 파란색, 초록색 등의 화려한 색들을 사용해 눈에 확 띈다.


거기다 크기도 작고 두께도 얇은데 무슨 고급 양피지로라도 만들어졌는지 보기보다 훨씬 무겁다.


그래도 온갖 집안일로 단련된 나한테 이 정도쯤이야 가뿐하지.


“야 마르셀! 그거 당장 내려놓으라니까!”


내 곁으로 다가온 아린느가 황급히 손을 내뻗으면서 책들을 낚아채려고 했다.


“야 가만히 있어! 너 그러다 다쳐···. 어?”


“아니 너는 왜 시키지도 않은 일을 하고 그래··· 어?!”


그녀의 손가락 끝이 책을 들고 있던 내 팔목을 치면서 책 몇 권이 바닥으로 우수수 떨어졌다.


“꺅!”


후두두둑!


그리고 그 순간 나를 막아보겠답시고 까치발까지 올리고 있던 아린느가 균형을 잃고 내게 쓰러지듯 무너졌다.


“야! 너 조심··· 어어··· 어?”


“꺄악! 마르셀!”


“어? 어!”


쿵! 후두두둑······ 퍽!


“아야!”


아린느를 품으로 안으면서 넘어져서 그녀가 다치는 건 막았는데...

선반에서 떨어진 책이 그녀의 머리에 내리 꽂히는 것 까지는 막지 못한 것 같다.


“우으으으으···끄으으”


아까 그녀의 머리에서 나던 꽃 향기가 다시 내 코를 간지럽힌다. 내 가슴팍에 머리를 묻은 아린느가 정체불명의 신음소리를 내뱉었다.


“아린느, 괜찮아?”


“······”


“야? 너 괜찮아? 혹시 죽은 거···”


“마르세에에에엘···”


마침내 그녀의 분노에 찬 나지막한 목소리가 살결을 타고 머리까지 진동처럼 울려온다.


“내가··· 분명··· 그 책들은 가만히 두랬지···”


“아니 일단 괜찮냐고···”


“왜 시키지도 않은 일을 해서! 일을 만들어! 도대체!”


“나는 그냥 책들이 남아있길래···”


“너는 진짜! 못살아 정말! 아··· 아야··· 으··· 혹 날 거 같아. 잠깐만 책들은?”


자기 머리를 이리저리 만지면서 살피던 그녀가 그제서야 생각난 듯 떨어진 책들을 살폈다.


선반에서 떨어진 책들은 총 두 권이었다.

한 권은 푸른 가죽 표지에 알 수 없는 문자들이 적혀 있는 마법서.


나머지 한 권은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은 새하얀 표지로 방 안에 있는 책들 중에 가장 얇아 보였다.


흰색 표지의 책이 열린 채 바닥에 떨어져 있는 걸 보니 저 책이 아린느의 뒤통수를 찍은 모양이다.


그래도 푸른 표지의 책 보다는 얇아 보이니 저걸 잘됐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안됐다고 해야 하나 나도 잘 모르겠다.


“그래도 다행이다. 어디 구겨진 곳은 없네.”


아린느가 하얀색 책의 페이지를 이리저리 넘겨보면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이거 망가졌으면 수도원장님께 진짜 밤새 혼났을 텐데. 역시 사람은 평소에 공덕을 쌓아놔야···”


평소에 쌓은 공덕이라.

우리 아린느님 께서 평소에 쌓은 공덕을 한번 따져보자.


아니 따져볼 필요도 없겠다.


평소에 쌓은 공덕 운운하는걸 보면 확실히 머리를 잘못 맞긴 했나 보네.


그런데 이상하다. 저 하얀색 책은 왜 안에 아무것도 안 써있지?


“야 그건 빈 공책 같은 거냐? 그러기엔 너무 비싸 보이는데.”

“네?”


책의 페이지를 이리저리 넘겨보던 아린느가 나를 보면서 눈썹을 치켜 올렸다.


“갑자기 무슨 소리시죠 마르셀씨?”


저 샐쭉한 태도를 보아하니 방금 머리 맞은 거 때문에 삐졌나?

그녀가 들고 있던 책을 내 얼굴 앞에 들이밀었다.


“여기 이렇게 글씨들과 가계도가 빽빽하게 쓰여져 있는데 도대체 무슨 말씀이신지요?”

“글씨? 가계도?”


나한테는 하나도 안 보이는데?

그저 깨끗한 흰 종이들 밖에 있을 뿐 글씨 하나 보이지 않는다.


“엥?”


“흠?”


그래도 지금까지 같이 먹은 밥이 몇 그릇이라고 이럴 때는 또 확실하지.

서로 장난을 칠 때랑 진지할 때랑은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으니깐 말이야.


“마르셀··· 너 설마 이게 안 보여?”


“아린느··· 너 혹시 뭐가 보여?”


누군가에게는 아무것도 안 보이고 누군가에게는 무언가가 보이는 책.


보여야 하는 게 안 보이는 거랑 안 보여야 하는 게 보이는 것 중에는 뭐가 더 문제일까?


“공부를 안 하다 보니깐 아예 까막눈이 돼 버린 거야?”


“뭐라는 거야 너 도대체.”


“아무리 그래도 글씨같이 생긴 까만 건 보여야지. 난 멍청한 남자는 별론데.”


“너야말로 방금 머리를 책에 맞아서 이상한 게 보이는 거 아니야?”


“장난하니.”


“그러면 뭐라고 써 있는데?”


“이 책에?”


“그러면 내 얼굴에 써 있겠냐.”


“어휴. 하나도 재미없어 마르셀. 아저씨 농담좀 자제해. 제발”


“너 재미 있으라고 한 거 아니거든? 그리고 한나는 내가 이런 얘기하면 엄청 웃기다고 깔깔··· 아!”


“아이고 미안. 손에서 책을 놓쳤어. 괜찮아?”


아린느가 전혀 미안해하지 않는 표정으로 콧등을 문지르는 나를 바라봤다.


“너 방금 일부러 그랬지.”


“어머 그게 무슨 소리니 마르셀. 방금 봤잖아. 손 미끌어진거. 그러니깐 조심하지 그랬어. 그래 안 그래?”


“됐고. 무슨 책인데 나한테는 안 보이고 너한테만 보이냐?”


“흠 이 책 말이지.”


아린느가 책을 다시 집어들며 페이지를 건성건성 넘겨보았다.


“이 책은 수도원장님이 필사는 아직 하지 말고 가지고 있다가 심심하면 한번 읽어보라고 주신 건데 일이 많아서 제대로 보질 못했네. 어디 보자··· 족보네 이건.”

“족보?”

“튈레리 왕국의 왕가의 역사를 담은 족보.”


튈레리 왕국이라.


그곳은 나도 들어본 적 있다.


우리가 사는 아랑 섬은 지극히 작은 곳이고 대부분의 생명체는 바다 너머의 대륙 테르헨에서 살아간다.


그리고 그 대륙의 중원에 자리 잡은 인간이 건립한 위대한 왕국 튈레리 왕국.


삼 왕국뿐만 아니라 엘프들의 영토, 그리고 드워프 부족들의 권역 중에서도 가장 비옥하고 광활한 영토를 가졌다 하여 대륙의 맹주라고 불리는 곳.


아니 그렇게 불렸었던 곳.


“이 위대한 인간들의 왕국의 번영과 영광은 수 세기 동안 지속되었다. 하지만 제 아무리 환히 빛나는 달도 그 찬란한 월광이 시간에 따라 사그라지는 법. 이 또한 자명한 세상의 이치이며 튈레리 왕국 또한 이 운명을 피해가지는 못 하는 것처럼 보였다.”


사뭇 진지하게 책을 읽어 내려가는 아린느의 모습은 언제 봐도 새롭다.


막힘 하나 없이 맑은 목소리로 노래하듯 낭독하는 저 모습은 평소랑 정말 너무 달라.


“그렇게 쇠락하는 한때 위대했던 왕국을 다시 일으켜 세운 건 다름아닌 달빛의 가문이니 그들은 과거의 영광을 지녔던 서쪽의 곰 세르안 가문을 왕좌에서 끌어내리고 왕국의 새로운 주인이 되었다. 태양력 857년의 일이다. 새로운 왕가의 이름을 우리는 루나라크라고 부른···”


지이이이잉


그 순간 지금껏 한번도 들어본 적 없는 공명이 방, 아니 수도원 전체에 퍼져나갔다.


“이 무슨··· 꺄악!”


생각을 하고 움직인 건 아니었다.


본능적으로 나는 아린느를 들어 안고 방을 뛰쳐나갔다.


방금 분명 천장이 흔들렸어.


위에서 미세하게 떨어지는 석회가루들과 이지러지는 듯한 지반.


무언가 거대한 힘에 의해서 이 곳 전체가 흔들리고 있다.


설마, 지진인가?


이 섬에서 자주 일어나는 일도 아니고 이렇게 강한 진동을 느껴본 적은 없지만 지진의 가능성을 배제할 순 없다.


아니면 거대한 파도가 다가오고 있나?


일단 안전한 곳으로 가야 해.


최선은 아무것도 없는 밖으로 나가는 거지만 그게 안 된다면 지하실이라도.


“마르셀!”


“가만히 있어 아린느.”


“마르셀 씨. 갑자기 이 무슨 박력있는···”


“지금 장난칠 때 아니야.”


올라왔던 계단을 따라 밖으로 나가는 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


위험에 처했다는 긴장감 때문인지 가물가물했던 과거의 기억들이 방금 전 있었던 일들처럼 선명해진다.


일단 방을 뛰쳐나왔다.


왼쪽? 아니면 오른쪽?


그래. 분명 이쪽으로 가면 분명 수도원 지하실로 가는 비상 계단이 있었지.


예전에 수도원에 심부름 도와주러 왔다가 가본 기억이 있어.


나는 아린느의 얼굴을 한쪽 팔로 가린 다음 그녀를 꼭 안은 채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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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저 평범한 나날들 (1) 24.09.17 7 0 14쪽
1 Prologue. 내 소꿉친구 아린느 24.09.17 10 0 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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