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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붉은고리
작품등록일 :
2024.09.18 08:49
최근연재일 :
2024.09.19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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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 바눔 비리디스

DUMMY

소년은 황급히 눈을 돌렸다. 다리는 이제 정말 한계에 도달한 듯했다. 힘이 전혀 들어가지 않았다. 안타깝게도 소년은 그 자리에 서서 석상처럼 굳은 채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저벅 저벅


그 남성이 소년에게 천천히 다가가기 시작했다.


크르르르르르


남성이 등을 돌리고 소년에게 걸어가자 남성의 등을 본 늑대들이 참지 못하고 그에게 달려들었다.


그러자 그가 들고 있던 창이 그의 손을 벗어나 공중에 저절로 뜨더니 가볍게 그의 몸 주변을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의 오른쪽 손을 얼굴 앞까지 들어 올리더니 검지와 중지를 붙인 후 그 두 손가락을 세웠다. 마치 '인'을 맺고 있는 듯한 자세였다. 푸른 기운이 남성에게서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늑대들과 남자 사이의 거리가 10미터정도가 되었을 때 창이 남성의 주변을 도는 것을 멈추고 늑대들을 향해 날아갔다.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소년의 귀를 먹먹하게 만들었다.


쇄애애애애액


날아가던 창이 정확히 첫 번째 늑대의 머리를 꿰뚫었다. 이후 부드럽게 곡선을 그리며 날아간 창은 직선으로 내리그어지더니 두 번째 늑대의 복부를 깔끔하게 반으로 갈랐고, 복부를 가르면서 생긴 원심력을 활용하여 세 번째, 네 번째 늑대들의 숨통도 빠르게 끊어냈다.


순식간에 네 마리의 늑대가 즉사했다.


임무를 완수한 창이 그에게로 날아갔다. 남성이 인을 맺은듯한 손을 가볍게 털더니 날아오는 창을 손으로 잡았다. 그의 정리되지 않은 짙은 갈색 머리카락이 거칠게 휘날렸다.


빠른 속도로 늑대를 처리한 창에는 핏물이 가득했다. 이를 본 남성은 굳은 얼굴로 바닥을 향해 창을 가볍게 휘둘렀다.


촤아악


핏물이 바닥에 흩뿌려졌다.


소년은 멍한 눈빛으로 이 모습을 바라보았다.


저벅


그가 다시 소년에게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멍하게 그를 바라보던 소년이 그가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겁에 질린듯 눈을 질끈 감았다. 표정은 여전히 무표정이었지만...공포를 느끼고 있는 것은 확실해 보였다.


마침내 거구의 남성이 소년의 앞까지 도달했다.


이제 그와 소년 사이의 거리는 40cm도 체 되지 않았다. 그의 손이 소년의 머리를 향해 뻗어 나가기 시작했다.


소년의 심장이 마구 뛰기 시작하였다.


소년은 세상이 잠시 멈춘 듯한 기분마저 느꼈다.


그러나


포옥


소년의 예상과는 달리 거구의 남성의 손은 소년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고 있었다. 소년이 눈을 살짝 떴다. 그의 얼굴이 보였다.


눈매가 날카롭고 눈가에 붉은 화상자국이 있었지만 입가에는 인자한 웃음이 걸려있었다.


그가 처음으로 말을 꺼냈다.


"얘야, 여기가 어딘 줄 알고 돌아다니고 있는 게냐?"


그의 목소리는 부드럽고 따뜻했다.


소년이 멍하니 그를 바라보고 있자 그는 인자한 웃음을 흘리며 말을 이어갔다.


"뭐냐, 공통어를 구사할 줄 아는 고블린은 처음 본 게냐?"


그가 끌끌 거리며 웃었다.


"이곳은 인간아이에게는 너무 위험한 곳인데 너는 어찌 이곳에서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고 있던 게냐? 부모는 어디에 있지?"


"아...그..."


소년의 목구멍이 막힌듯 말이 나오지 않았다.


"이틀전 숲의 남동쪽 해안 근처에서 거대한 폭발음이 들리던데 혹시 그와 관련이 있는 게냐?"


소년은 자신이 깨어났을 때 보았던 풍경들을 떠올렸다. 각종 잔해들이 바다에 떠다니는 모습이 기억났다. 하지만 그 모습과 남자가 말한 '폭발음'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소년이 알 리가 없었다.


소년은 들리지도 않는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모르겠어요..."


남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돌아갈 곳은 있는 게냐?"


소년이 바닥을 보며 말했다.


"...아니요"


순간 남자의 눈에 안타까움이 스쳐 지나갔다. 그가 한결 더 부드러워진 목소리로 말했다.


"역시 그랬나... 그럼, 이렇게 된 것도 인연인데 통성명부터 해보자꾸나."


그가 오른쪽 무릎을 꿇고 앉아 소년과 눈높이를 맞추었다. 그의 갈색 눈동자가 소년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내 이름은 '바눔 비리디스'다. 비리디스 부족의 족장을 맡고 있다. 잘 부탁하마."


바눔이 손을 뻗어 악수를 청했다.


이제 완전히 눈을 뜬 소년이 그를 정확하게 바라보며 그의 손을 맞잡았다.


"네 이름은 뭐냐?"


잠시 고민하던 소년은 이내 모른다는 듯이 고개를 저으며 작게 말했다.


"모르겠어요..."


바눔이 작은 탄식을 내뱉었다.


그때


쿵 쿵 쿵


지금까지 들어본 발소리 중 가장 큰 발소리가 숲에 울려퍼졌다. 발소리는 점점 더 커졌고 곧 그 발소리의 원인이 나무사이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엄청난 크기의 생명체였다.


그 모습을 본 바눔의 입가가 굳었다. 그는 즉시 공격태세를 취하며 중얼거렸다.


"음...돌연변이 알두스인가..."


바눔이 '알두스'라고 언급한 그 생명체는 약 30미터 정도 되어 보이는 거대한 덩치의 거인이었다.


괴물의 눈알은 소년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은 굉장히 특이한 생김새를 가지고 있었다. 전신이 붉은 털로 뒤덮여 있었고 두쌍의 팔을 가지고 있었다. 손가락은 6개였으나 발가락은 3개뿐이었는데 발꿈치가 없어서 3개의 발가락이 꽃처럼 퍼져있는 형태의 발을 가지고 있었다. 얼굴상단부에는 7개의 눈이 오밀조밀하게 달려있었고 하단부에는 두개의 입이 나란히 놓여있었다. 복부에도 커다란 입이 달려있었는데 그 안에 수백개의 이빨이 번뜩이며 자리잡고 있었다.


소년을 바라보며 다가오던 괴물이 바눔의 기척을 느끼고 6개의 눈알을 굴려 그를 응시했다. 나머지 하나의 눈알은 여전히 소년을 응시하고 있었다.


바눔과 알두스 모두 꿈쩍도 하지 않고 그 자리에 서서 서로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일촉즉발의 상황 속에서 긴장감이 맴돌았다.


바눔이 선제공격을 하기 위해 창을 고쳐 쥐는 그 순간


알두스가 더 빨리 움직였다.


아니- 알두스가 먼저 물러섰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알두스가 눈을 감더니 바눔에게 인사하듯 고개를 까딱였다. 그러더니 천천히 몸을 돌려 왔던 길로 되돌아 갔다.


창을 고쳐 쥐었던 바눔이 김빠진 표정을 지으며 창대를 바닥에 툭툭 쳤다.


소년은 다소 얼빠진 표정을 지으며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이 바눔을 쳐다보았다.


"뭐...놈도 목숨은 아까웠던게지."


가볍게 몸을 턴 바눔이 소년에게 다시 말하기 시작했다.


"잠시 소란이 있었다만..."


말끝을 흐리며 바눔이 물었다.


"이름을 모른다는 것은 기억을 잃었다는 뜻이겠지?"


소년이 고개를 끄덕였다.


바눔이 잠시 고민하더니 입을 열었다.


"그럼 우리 부족의 촌락에서 잠시 지내보는 건 어떠냐?"


생각지도 못한 제안에 소년의 사고가 잠시 얼어붙었다. 그러나 이내 정신을 차린 소년의 두뇌가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몇 초 후 빠르게 판단을 끝낸 소년이 입을 열었다.


"좋아요..."


여전히 기어들어가는 목소리였지만 용케 알아들은 바눔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럼 나와 함께 가자꾸나. 이제부터 나의 명예를 걸고 너를 안전하게 지켜주마."


바눔이 바닥에 쭈그려 앉아 소년에게 등을 보였다. 업히라는 의미였다. 바눔의 행동을 빠르게 이해한 소년이 그의 등에 몸을 맡겼다. 바눔이 힘차게 일어섰다.


"눈을 잠시 감는 것이 좋을게다."


그 말을 들은 소년이 눈을 감았다. 잠시 후 몸이 갑자기 붕뜨는 듯한 느낌이 들더니 엄청난 세기의 바람이 소년의 얼굴을 강타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궁금했던 소년은 조심스럽게 눈을 떴다.


"...와"


바눔이 하늘을 날고 있었다... 더 정확히는 그가 하늘을 걷고 있었다. 시원한 바람이 소년의 흑발을 흔들었다.


"어떠냐. 멋지지 않니?"


이어서 바눔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정말 진귀한 장면을, 소년은 지금 바라보고 있었다.


끝이 안 보일 정도로 높게 솟아있던 나무들이 소년의 발아래에 빽빽하게 깔려있었고 손을 뻗으면 구름이 닿을 것만 같이 하늘과 가까웠다. 수로가 있던 절벽 너머로 광활한 숲이 펼쳐져 있었다. 시야가 닿는 모든 곳이 나무로만 이루어진, 소름이 끼칠 정도로 거대한 숲이었다.


"...네...무척이나 아름다워요"


소년의 눈이 처음으로 밝게 빛나고 있었다.


바눔이 하늘을 달린지 10분정도 지났을까, 저 멀리 나무 사이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는 게 보였다. 바눔이 상기된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곧 도착하겠구나. 조금 긴장되는군"


바눔이 끌끌거리며 웃었다. 조금씩 빽빽한 나뭇잎 사이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소년이 다급하게 물었다.


"주의사항...! 혹시 그런 게 있을까요...?"


바눔이 너털웃음을 치며 말했다.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단다. 인간아이에게 모질게 구는 어른은 적어도 우리 부족 안에는 없... 음..."


그의 밝은 표정이 잠시 어두워졌다.


"한 명이 조금 걸리긴 하지만... 음! 아마 걱정할 정도는 아닐게다."


그 말을 들은 소년의 얼굴이 조금 어두워졌다. 두 눈은 아래를 바라보았고 계속 굳어있던 입꼬리가 처음으로 움직였다. 소년은 몰랐겠지만, 그것이 소년이 기억을 잃은 이후 처음 짓는 표정이었다.


"아..."


소년이 근심가득한 신음을 냈다.


그러던 사이 어느새 나뭇가지를 지난 바눔의 발이 바닥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들의 앞에 촌락의 입구가 보이기 시작했다. 업혀있던 소년이 바닥으로 폴짝 뛰어내렸다.


소년의 눈 앞에는 작은 성벽이라고 불러도 될 정도로 거대한 통나무 울타리가 굳건하게 서 있었다. 중간에 양쪽으로 열리는 거대한 나무 문이 달려있었다.


소년의 입이 작게 벌어졌다.


'이 정도일 줄은 몰랐는데...'


그 모습을 보던 바눔이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어떠냐, 우리 촌락 최고의 방어시스템이!"


...이미 그것은 촌락의 형태가 아니였다. 작은 도시에서도 볼 수 없는, 숲의 자원으로 부족이 만들 수 있는, 최고의 방어체계 그 자체였다.


"엄청나네요..."


그 말을 들은 바눔이 웃으며 문을 향해 걸어갔다.


나무로 만들어진 성벽... 아니 울타리를 멍하니 바라보던 소년이 멀어지는 바눔을 보고 정신을 차렸다. 정신을 차린 소년이 재빨리 바눔을 따라갔다.


나무 문 앞에는 두 명의 고블린 전사가 서 있었다. 한 명은 오른쪽 허리에 검을 차고 있었고, 다른 한 명은 장창을 왼손에 쥐고 있었다. 두 명의 전사 모두 방어장비는 착용하고 있지 않았다.


두 전사가 바눔을 보더니 동시에 크게 소리쳤다.


"족장님!! 다녀오셨습니까!!"


바눔이 웃으며 답했다.


"그래 더운 날씨에 수고가 많네. 별 일 없었지?"


군기가 바짝 오른 두 전사가 대답했다.


"걱정 감사합니다! 오늘 하루 동안 지겨울 정도로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바눔이 답했다.


"그래 그래"


바눔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리고... 사실 오늘은 특별한 손님이 한 명 있다네"


바눔이 옆으로 살짝 나왔다. 그의 거대한 체구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던 소년의 모습이 완전히 드러났다. 왜소한 체격과 작은 키를 가진 흑발의 인간아이가 긴장한듯 눈을 내리깔고 서 있었다.


예상치 못한 정체에 당황한 두 전사가 잠시 얼어붙었다. 그러나 이내 언제 그랬냐는 듯이 환하게 웃음 짓기 시작했다. 칼을 차고 있던 전사가 흥분한 목소리로 물었다.


"족장님! 이 아이는 누굽니까?"


소년을 바라보던 바눔이 두 전사에게로 시선을 옮긴 후 말하기 시작했다.


"이 아이는 숲을 떠돌고 있던 아이라네. 늑대에게 쫓기고 있던 녀석을 내가 구해줬다네. 갈 곳이 없다길래 이곳으로 데리고 왔다네"


그 말을 들은 전사가 의문을 품었다.


"인간아이가 이 빌어먹을 정도로 위험한 숲에서 떠돌고 있었다는 게 정말 사실입니까? 대체 어떻게... 아! 혹시 이틀전 그 폭발음과 관련이 있는 겁니까?"


바눔이 전사를 진정시키며 말했다.


"사실 나도 정확한 사실은 잘 모른다네. 애초에 이 소년은 기억을 전부 잃어서 자신의 이름조차 기억해 내지 못한다네. 그래서 나도 그렇게 추측만 하고 있을 뿐이지 정확한건 아무도 모른다네"


이야기를 듣던 전사의 표정에 잠시 안타까움이 스쳐 지나갔다.


"그런 거였습니까..."


안타깝게 소년을 바라보던 전사가 고개를 돌리더니 문쪽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잠시 손을 탁탁 털더니 문고리를 잡고 힘껏 당겼다. 문이 끼이익 소리를 내며 열리기 시작했다. 전사가 웃으며 소년에게 말했다.


"우리 부족에 온 걸 환영한단다!"


문이 열리며 그 사이로 밝은 햇빛이 새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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