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착 쩌는 남주들에게서 벗어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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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e0922
그림/삽화
흐이언
작품등록일 :
2024.09.22 02:54
최근연재일 :
2024.09.22 0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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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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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22 0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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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쓴 소설에 속에 빙의했다.

DUMMY

나는 그날, 내가 그토록 기다리던 소설작가의 꿈이 이루어졌었다.


나뭇잎이 갈색으로 물들여지고, 거리를 걸으면 나뭇잎이 바스락 거리는 소리와, 기분 좋은 선선한 바람까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날씨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직업을 얻게 되었다.


세상을 다 가진 듯 기뻐서 가슴이 벅차올랐고, 그동안 노력했던 일들이 머릿속에서 스쳐지나갔다.


기쁨을 만끽하며 한 걸음 한 걸음 소중히 내딛던 그때, 주변이 소란스러워졌다.


"조심해!"


하지만 이미 늦어버린 경고였다.


부아앙—! 우웅—!


요란한 소리가 귓가를 때리며 몸이 순간 굳어졌다. 가까스로 정신을 잡고 고개를 돌리자, 눈 앞에 오토바이가 아슬아슬하게 다가오고 있었다. 주마등처럼 지나가는 장면들이 떠올랐다.


정말 열심히, 죽을 힘을 다해 노력했다. 마침내 노력의 결실을 맺는 순간이었다. 힘들게 이뤄낸 성과를 눈 앞에 두고, 문득 돌아가신 부모님이 생각났다.


나는 눈을 질끔 감았다.


쾅!


너무 갑작스러워 믿겨지지 않는 죽음.

나는 그렇게 죽었다.


* * *


다시 눈을 떴을 땐, 내가 아는 소설 속이었다. 나의 꿈을 이루어지게 해준. 아니, 해주었던 내가 가장 아끼는 소설. 나는 그 사실에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깊은 절망감이 몰려왔다.


요즘 로판 소설 트렌드는 분명 여주도, 조연도 아닌 '그저 스쳐가는 엑스트라'에 빙의하는 소설들이었다.


하지만 나는 거울을 본 순간 한 눈에 알아맞힐 수 있었다. 하늘하늘하고 윤기나는 핑크색 반곱슬 머리카락과, 동그랗고 예쁘게 큰 눈, 매끄러운 콧대.


맞다.


내가 그토록 잔인하게 굴린, 발란데 백작가의 차녀인 '셀리아로'.

이 소설의 여자 주인공이었다.


나는 무심코 거울에 손을 뻗어 거울 속의 나를 더듬더듬 만지다, 다시 손을 돌려 실제 얼굴을 더듬거렸다.


과연 '왕국의 제일 미녀'라는 설정이 전혀 아깝지 않은 아름다운 외모였다. 하지만 내가 상상했던 얼굴보다는 조금 더 어려 보였다. 아직 소설이 시작되지 않은 걸까?


'그렇다면 다행이야.'


나는 소설의 원작자인 만큼, 앞으로 이리저리 굴려지다 질투에 눈이 먼 악녀 '셀라'에게 가족들이 무참히 살해 당하고 혼자 남겨지며 '집착 쩌는 남자 주인공들'이 셀리아로를 가지고 경쟁하며 집착하고, 감금, 협박, 불안감 조성··· ···등등 이리저리 굴려지는 운명에서 벗어날 방법을 알고 있었다. 나는 손을 말아 쥐고 굳게 결심했다.


아카데미로 가자!


소설 속 셀리아로는 너무나 뛰어나서 '할덴 아카데미'에 다닐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나는 셀리아가 아니지 않은가!


'할덴 아카데미'는 니로스 제국의 수도인 할덴에 위치한 곳으로, 현재 셀리아로가 살고 있는 왕국인 살론과 살론을 압박하는 니로스 제국, 이웃 나라인 브렌 제국까지 세 나라의 귀족 자제들이 기초 학문을 배우고 친분을 쌓기 위해서 다니는 명성 높은 학교였다. 그만큼 보안도 철저했고, 아카데미에선 절대로 범죄가 일어날 수 없었다.


시녀에게 아카데미에 대해 물어보니 마침 아카데미 모집 시즌이었다. 셀리아로의 아버지는 셀리아로를 아주 많이 사랑했으니, 아카데미에 다니고 싶다는 부탁을 들어주지 않을 리 없었다.


* * *


아, 가기 싫다··· ···.


아카데미로 가기 전 비는 시간동안 백작가 영애의 삶을 누려서인가, 정말이지 아카데미에 가고 싶은 마음이 전혀 들지 않았다.


겨울 내내 농땡이를 피우거나 내가 만든 세계는 어떨까 궁금해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앞으로의 일들을 구상하며 시간을 보냈고, 결국 쉬지 않고 달려야 간신히 도착할 수 있을 정도로 촉박한 날짜가 되었을 때 비로소 몸이 움직여졌다.


셀리아로의 친언니 헬리스가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며 남은 한 손으론 셀리아로의 손을 꼬옥 잡았다.


"리아··· ··· 안 가면 안 돼? 우리 똑똑한 리아가 배울 게 뭐가있어··· ··· 응?"


3개월 동안 매일같이 셀리아로의 방에 들락거리며 아카데미에 가지 않아도 되는 103가지의 이유를 하나하나 알려주었던 헬리스가 마지막 날까지 설득했다. 덕분에 오랜만에 가족의 따스함을 느껴보았던 그녀는 따듯하게 미소지었다.


이미 정이 들어버린 가족들도 함께 살릴 계획도 추가했다.


내가 언니 살려줄게.


그녀는 헬리스의 손을 맞잡고 걱정하지 말라고 잘 타일렀다.


"헬리스 언니, 브리온 오라버니 잘있어! 아버지, 어머니도요!"

"그래, 꼭 편지 하고, 잘 다녀와! "

"응, 언니 꼭 편지 할게!"


3개월 동안 정이 들어버렸는지 괜히 울컥하고 발걸음이 무거웠다. 손을 흔들고 있는 가족들과 멀어지며 씁쓸히 미소지었다.


마차에 올라탄 나는 마차 벽에 기대어서 눈을 감았다. 빙의 후 아카데미에 가기까지 시간이 좀 있었기 때문에,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지 구체적으로 계획까지 맞춘 뒤였다.


'집착 쩌는 남자주인공들'은 총 3명이었다. 빌어먹을 나의 하렘 취향을 반영한 탓이다. 그저 잘생긴 3명의 남자가 한 여자를 두고 집착하며 서로 기싸움 하는 꼴이 보고싶었을 뿐이었다.


그 중 두명은 고귀한 신분으로 자라나 선행학습을 빠르게 시작해 아카데미에서 배울 것들을 모두 다 익혀 아카데미에 다닐 이유가 없었고, 나머지 한명은 아카데미를 무조건 다닐 텐데, 그는 마법부를 다닐 것이고 나는 일반부를 다닐 것이었기에 마주칠 확률은 극히 드물었다. 그도 그럴 것이, 마법부와 일반부는 애초에 건물부터 달랐고, 기숙사 또한 달랐다.


그러니 분명 마주칠 일이 없어야 했는데··· ···.


* * *


달그락 달그락.


눈을 감고 아카데미 생각에 빠져있던 셀리아로는 갑자기 마차가 심하게 덜컹거리는 탓에 미간을 구기고 똑바로 앉았다.


계속해서 덜컹거리던 마차가 어느 순간 움직임을 멈췄다. 마차를 몰던 젊은 마부가 당황한 듯 말했다.


"마차가 돌에 걸려 바퀴가··· 마을까지 걸어서 가야 할 것 같은데··· 정말 죄송합니다, 아가씨···."


솔직히 짜증이 났지만, 안절부절 하며 식은 땀까지 흘리면서 덜덜 떠는 마부를 보고 있으니 화를 내기엔 양심이 찔렸다.


아마 오늘의 소식이 가족에게 전해진다면 이 마부는 쫓겨나겠지.


'후우···'


마음속으로 한숨을 한 번 쉰 셀리아로는 마차에서 내려서 마부와 함께 길을 따라 걸었다.


얼마 걷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마부가 어딘가를 손으로 가리켰다. 그곳엔 고급스러운 검은색 마차 한 대가 길을 지나가고 있었다. 귀족끼리 마차를 얻어 타는 행위는 마차의 탑승객에게 무례이자 동행을 청한 가문의 명예가 훼손될 수 있다는 것을 모르는 어린 마부가 말했다.


"아가씨 조금만 기다리세요! 제가 동행이 가능한 지 여쭤보고 올게요!"


셀리아로가 뭐라 말하기도 전에 이미 그곳으로 뛰어가버린 마부를 본 셀리아로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가려진 마차의 문장이 나무에서 점차 드러났다.


'황가 문장이잖아··· ···!!'


마부가 해맑은 표정으로 뛰어 돌아와 엄지를 척 세우며 말했다.


"아가씨 다행이에요! 엄청 귀한 분 같아 보였는데, 동행이 가능하다고 하시네요!"


마부가 어서 가자며 재촉해댄 탓에 끌려가듯 마차에 탑승했다.


'황태자가 아닐 수 있잖아.'


셀리아로는 본인을 다독였다.


마차에 탑승하자 반대편에 팔짱을 끼고 창문을 보며 앉아있는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화려하고 찬란하게 빛나는 금발에, 날카롭지만 그마저도 아름다운 눈과 화려한 붉은 눈동자, 그리고 그것들과 금상첨화의 조화를 이루는 하관.


그녀는 그 남자를 잘 알고 있었다. '집착 쩌는 남자 주인공들'중 재력, 싸가지, 검술 분야에서 과연 1등인 황태자 '트레드만 니로스'였다.


와··· ···.


그녀는 절로 감탄이 나오는 마치 한 점의 그림 같은 모습에 넋을 읽고 그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도 셀리아로를 잠시 쳐다보는 듯 했지만 다시 눈을 돌려 창문을 쳐다보았다. 고요한 정적이 흘렀다.


"··· ···."

"··· ···."


'아, 맞다. 감사 인사.'


그녀는 아직도 감사 인사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황급히 입을 열었다.


"마을까지만 동행하겠습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 ···."


셀리아로의 감사 인사를 듣고 눈썹이 잠깐 꿈틀거린 트레드만은 한참 동안 창문을 바라보다 대뜸 '하!' 하며 입을 열었다.


"정말 식상하군, 영애. 감히 나의 관심을 받으려고 이런 무례를 범하다니."


'네?'


한순간에 식상한 영애가 된 셀리아로는 아주 당황스러워 표정이 일그러지만 트레드만은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신분과 외모에 반해 수작을 거는 영애가 한 둘이 아니었다. 그리고 마침 어제도 똑같은 수작을 걸어 마차에 탑승해 '운명'을 운운하며 하루 종일 조잘거린 영애 덕에 아주 피곤한 하루를 보낸 참이었다.


트레드만은 전혀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한 가식적인 영애에게 일침을 가했다.


"영애, '아주 우연히' 황태자가 지나가던 길에, '아주 우연히' 바퀴에 돌이 박혀 멈추었고, '아주 우연히' 귀족 간의 예의도 모르는 어린 마부가 '아주 우연히' 마차를 몰고 있었으니, '우린 운명이다' 같은 소리는 하지 않길 바래. 다신 '아주 우연히' 같은 일은 없었으면 좋겠군."


셀리아로는 억울했다. 정말 '아주 우연히' 일어난 일이었다. 만약 그녀가 이런 일이 벌어질 줄 알았다면 '아주 우연히' 일어날 일을 막으려 부단히 애썼을 것이다.


하지만 확신에 가득 찬 표정을 하고 있는 저 트레드만이 믿어줄 일 없었기 때문에 입을 다물고 '아주 우연히'를 가장하는 영애로 남기로 했다. 또, 가만 생각해보니 잘 된 일이었다.


'오히려 좋아.'


'집착 쩌는 남자 주인공들'인 트레드만이 셀리아로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은 희소식이었다. 오히려 트레드만은 셀리아로에게 불쾌감을 느끼는 것 같았다.


식상한 영애가 되어 트레드만과 한 발 멀어진 기분이 들어 좋아진 셀리아로는 웃으며 어서 마을에 도착하기만을 기다렸다.


본인의 말을 듣고 기분 좋은 듯 헤실헤실 웃는 셀리아로를 이상한 눈빛으로 바라보던 트레드만을 그녀는 애써 무시했다.


잠시 뒤, 마을에 도착한 셀리아로는 대충 감사 인사를 한 후 다른 마차로 갈아타고 다시 아카데미로 향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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