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착 쩌는 남주들에게서 벗어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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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e0922
그림/삽화
흐이언
작품등록일 :
2024.09.22 02:54
최근연재일 :
2024.09.22 02:58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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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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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05

작성
24.09.22 0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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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역시, 나를 좋아했던 거야

DUMMY

"펠라드?"


'헉'


나는 황급히 입을 막았다. 하지만 무심코 이름을 말해버린 탓에 펠라드의 눈이 가늘어졌다.


펠라드는 '바다 같이 푸른 눈'이라고 했는데 눈을 가늘게 뜨니 꼭, 호수 같았다. 그의 눈을 보고 있자니 호수, 강, 바다를 넘나드는 기분이었다.


또한 은근히 미소를 머금고 있는 그의 입술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지 예측하는 데 더 어려움을 주었다.


"··· ···."

"··· ···."


정원에서와 마찬가지로 아무 말 없이 펠라드를 올려다 보고 있자, 그가 저벅저벅 내게 다가왔다.


'설마 이거 벽쿵?'


마치 순정 만화에서만 보던 '벽쿵'느낌에 눈을 질끈 감았다.


서서히 가까워지는 발소리에 점점 더 긴장되고 떨렸다. 간신히 부여잡았던 심장이 요동쳤다.


셀리아로의 앞에 도착한 그는 연분홍색 머리카락 옆으로 팔을 쭉 뻗었다. 심장이 더욱 심하게 떨렸다.


'벌써 나한테 반했나? 어떡하지? 도망칠까?'


이런 저런 생각들이 계속해서 나의 머릿속을 맴돌았다. 떨림이 최고로 극에 달한 순간—.


달칵-.


'어?'


나의 속으로 비명 비슷한 것이 흘러나왔다. 어느샌가 저도 모르게 기대고 있던 문이 몸 뒤로 닫혔다. 덕분에 나의 몸이 뒤로 넘어갔다.




빠르게 왼손으로 내 허리를 감싸 안아 나의 몸을 지탱한 그는 내가 당황한 사이 나의 가면을 들어 올렸다.


질끈 감은 눈을 천천히 뜬 나의 하늘색 눈동자와 펠라드의 푸른색 눈동자가 마주쳤다.


무심코 팔을 뻗어버린 나의 손도 펠라드의 얼굴을 가면에서 드러냈다.


가면을 쓰고 있었을 때도 잘생겼었지만, 가면을 벗으니 장인이 미의 기준에 맞춰 한 땀 한 땀 조각한 걸작을 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주변에선 선선한 바람이 불어왔다. 덕분에 펠라드의 머리카락이 바람 결을 따라 날렸다.


왼손에 힘을 주어 나를 일으켜세운 그가 손가락을 한 번 휘익 돌렸다. 내 손에 있던 자신의 가면을 마법으로 가져간 것이다.


그의 오른손엔 아직 나의 가면이 들려있었다.


나의 가면을 가만히 바라보던 그가 갑자기 씨익 웃더니 손가락을 휘둘렀다.


푸른색 불빛이 번쩍였다.


설마 지금··· ···.


'내 가면을 가지고 도망친 거야?'


펠라드, 너 그런 이미지 아니잖아!


한순간에 가면 무도회의 테라스에서 가면이 없어져 버린 나는 굉장히 황당했다. 다른 누구도 아닌 펠라드가, 그 고상한 척하던 펠라드가!


넋이 나가버린 나는 한동안 그가 사라진 자리를 멍하니 쳐다보다, '허허'하고 허탈하게 웃었다.


몸을 돌려 그가 닫아버린 테라스의 문을 다시 열곤, 최대한 구석진 곳으로만 걸어 무도회장의 출입구로 갔다.


걷는 내내 박히는 시선은 내가 온전히 감당해야 했다.


부끄러움에 얼굴이 벌게진 나는 지금 당장 순간이동 마법을 배워 이 공간을 벗어나고 싶었다.


중간에 잠깐 황태자와 눈이 마주쳤지만, 다행히 알아보진 못한 듯 했다.


* * *


황태자 트레드만은, 가면 무도회장에서 홀로 가면을 쓰고 있지 않은 셀리아로를 '당연히' 알아보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런 풍성한 반곱슬에 벚꽃을 품은 듯한 머리카락은 솔직히 말해서 꽤 매력적이라 기억하고 있었다.


'역시, 나를 좋아했던 거야.'


나와 눈이 마주치니 얼굴이 벌게졌지 않나.


전엔 뻔한 작업이나 거는 식상한 여자라고 생각했는데, 저의 관심을 한 번이라도 얻으려 가면 무도회에서 가면을 쓰지 않은 그녀는 굉장히 참신했다. 실제로 그의 시선은 꽤 오랫동안 셀리아로에게 머물렀다.


나의 관심을 얻는 계획은 성공했군.


트레드만은 마음속으로 그녀에게 박수를 짝짝 쳐주었다.


아까 테라스에 들어간 것도, 나를 보고 부끄러워서 피한 것이 아닌가?


정말이지, 본인의 마음을 하나도 숨기지 못하다니. 짝사랑에 수줍어하는 순진한 영애같았다.


가면을 쓰고 있어도 숨길 수 없는 훌륭한 외모에 취한 그는 금색 머리카락을 쓸어 올렸다. 주변에서 그를 연모하는 영애들의 눈길이 쏟아졌다.


그러곤 일부러 가장 수줍어 보이는 영애를 향해 싱긋 웃어주었다. 갑자기 황태자의 미소 공격을 받은 영애는 귀가 빨개져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 * *


셀리아로는 풀썩 침대에 누워 종이를 펼쳤다.


니로스의 역사 : D

브렌의 역사 : E

살론의 역사 : C

성학 : E

음악 : C


구깃구깃한 종이에 적힌 점수는 정말이지 익숙해지지 않는 점수였다.


일반부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앞으로 있을 7일간의 휴식시간에 보충수업을 빠짐없이 참여해야 했다.


수업을 듣는 것이 귀찮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황태자가 무도회장에 있었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렸다.


황태자가 일반부에 다닌다면 내가 일반부에 다니는 건 곤란했다.


그리고 생각해보니, 어차피 마탑과 제국 간의 전쟁은 내가 남자 주인공들의 눈에 띄지 않는다면 발발되지 않을 터였다.


그러면 마법부를 졸업해, 마탑의 보호 아래에서 월급이나 받으며 사는 것도 나쁘지 않아보였다.


물론 펠라드가 조금 신경 쓰이긴 했다.


소설의 원작자인 내가 예측하지도 못할 행동을 한 것뿐만 아니라, 아름다운 셀리아로의 얼굴을 가까이에서 오랫동안 보지 않았나.


반해버리기라도 했으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을 하다가,


음···.


반했다면 가면 무도회장에서 가면을 들고 토끼진 않았을 거란 생각에 그냥 마법부에 다니기로 했다.


생각보다 빨리 무도회장을 빠져나온 탓에 시간은 아직 신시를 지나지 않았다.


잠시 뒹굴거리던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도서관으로 향했다.


* * *


다행히 도서관은 불이 들어와 있었고, 다들 무도회장에 간 탓에 사람의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더 안쪽으로 들어갔다.


'난 진짜 셀리아로는 아니지만······.'


명색이 여자 주인공인데, 마법부에서도 일반부 입학 시험과 똑같은 성적이 나온다면 굉장히 낯부끄러울 터였다.


나는 사다리에 올라가 [마법의 기초], [마법과 이해]따위의 책들을 차례로 뽑아 안아들었다.


꽤 많은 책을 안은 나는 만족하고 사다리에서 내리려 발을 딛었다.


책들의 무게 때문에 중심을 못 잡은 몸이 흔들거렸다.


나는 더 이상 휘청거리지 않으려 사다리를 꼭 쥐었다. 하지만 그게 악영향을 끼쳐 사다리가 내 몸 쪽으로 기울었다.


'헉'


심장이 '쿵'하고 내려앉았다.


책을 손에서 놓쳐버려 책이 후두둑 떨어졌다.


사다리는 점점 기울었고, 점점 바닥에 가까워졌다. 꽤 높은 높이였기에 공포가 엄습했다.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기분이었다.


눈을 질끔 감고 끝내 사다리까지 손에서 놓쳐버렸을 땐, 눈이 허예지며 또 이렇게 죽나 하는 생각이 물밀듯이 쏟아졌다. 그래서였나, 그 목소리가 그리 반가웠던 것은.


"조심해!"


반가운 경고와 함께 몸이 두둥실 떠올랐다.


그리고 천천히 몸이 내려앉았다.


"휴우—."


살았다는 안도감에 깊은 숨이 쉬어졌다.


고개를 돌려 확인한 곳에는 한껏 뾰로통한 표정의 소녀가 허리에 손을 올린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연한 보라빛의 머리카락이 은은히 빛났고, 날카롭게 올라간 매력적인 눈매는 성난 고양이 같았다. 오른쪽 눈 아래에 찍힌 점은, 그녀의 매력을 한 층 더 극대화 해주었다.


셀라.


이 소설의 악녀이자, 셀리아로의 가족들을 무참히 죽인 장본인이 지금 내 눈 앞에 있다.


감사한다고 말 해야 하는데, 입은 열리지 않고 달싹였다.


셀라는 잠시 나를 쏘아보는 듯 싶더니, '흥'하고 몸을 돌려 사라져버렸다.


그 모습은 마치··· ···.


'고양이 같아.'


미친 소리인 건 알지만, 솔직히 좀 귀여웠다. 아직 성인이 되지 않아 젖살이 빠지지 않은 볼 때문에 내 나이보다 더 어려보였다.


아니면 생명의 은인에게 느끼는 은연중 호감인가?


나는 바닥에 널부러져있는 책들을 주워 챙겼다.


'정말 어쩌면 셀라와 친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마법으로 나를 구해준 것을 보면, 일단은 나에게 부정적인 감정은 없어 보였다.


셀라가 셀리아로를 괴롭히게 된 이유에는 이름이 비슷하다는 것도 컸지만, 아카데미의 마법부에서 만난 펠라드를 좋아한 것이 결정적인 이유였다.


이름도 비슷한 여자가 자신이 좋아하는 남자의 관심을 받는다는 것은 악녀가 되기엔 충분한 조건이었다.


펠라드는 그런 그녀를 이용해 셀리아로가 혼자가 되게 만들고, 계속 곁에 머물며 신뢰를 얻었다.


바보 같은 셀라는 펠라드에게 이용하는 줄도 모르고 마법으로 패악질을 부리다, 마탑의 제지를 먹고, 나중에는 마법을 금지당해 마력을 추출당했다.


마력이 없어진 셀라는 마지막 발악으로 있는 돈 없는 돈 끌어모아 셀리아로의 가족을 살해하라는 의뢰를 하고 본인도 본인의 손에 죽는다.


그렇게 셀리아로는 완벽하게 고립되고, 펠라드는 본인이 셀라를 처리한 척하며 셀리아로를의 손을 꼬옥 잡고 사랑의 맹세를 한다.


펠라드도 참 사이코야··· ···.


아무튼 나는 그렇게 되지 않을 거다.


펠라드가 나를 좋아하지 않으면 되는 거고, 나도 마법부에 들어갈 거니까 친분을 쌓으면 셀라의 호감을 얻을 수 있을 터다.


나는 꺼냈던 책들을 들고 책상에 앉아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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