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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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마내기
작품등록일 :
2016.03.15 00:05
최근연재일 :
2016.04.10 07:30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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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6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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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3.15 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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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쪽

감금-9

DUMMY

그는 예전의 몸을 회복하려고 애썼다. 한 치의 빛도 없었을 때는 절망뿐이었지만 이제는 달랐다.

은향의 빛이 다하였을 때, 그는 심한 무력감을 느꼈었다. 다시는 암흑 속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끝인가 싶었다. 그러나 그가 하루를 마치고 잠이 들었을 때, 그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은향이 동굴 벽마다 가득 빛을 발하고 있었다.

얼마나 밝은지 눈에 익숙하기까지 시간이 며칠이나 걸렸다. 잠이 들 때면 은향을 구석으로 밀어 옷으로 덮어 놓아야 잠을 잘 수 있을 정도였다. 햇빛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겠지만, 그에게는 정면에서 바라보기 어려운 섬광과도 같은 빛이었다.

아무리 기를 써도 무공을 되찾을 방법은 묘연했다. 간단한 운기는 충분히 배웠었지만, 이건 절정고수가 몸의 혈을 대부분 막아버린 것 같았다. 그래도 막힌 혈은 기의 운용에 관한 것일 뿐, 요컨대 그가 순수하게 체력과 신체를 단련하는 데에는 전혀 지장이 없었다.


천화가 다시 온 것이 약 한달 쯤 뒤. 그가 운동에 매진하고 있을 때였다.

그녀는 이번에도 금을 가지고 왔다. 뻔한 것 같아 잠자코 기다렸지만 그녀는 앉지 않았다.

대신 철창 문을 열고, 금을 가지고 들어왔다.

“이번엔 그 못난 연주를 들려주지 않을 작정이오?”

그가 묻자 그녀는 조용히 금을 내밀었다.

“금을 타거라.”

반사적으로 대답이 나왔다.

“싫소.”

짝.

뺨이 얼얼했다. 그는 놀란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타거라.”

“싫소.”

짝. 짝.

가공할 속도였다. 뺨이 부어오르는 것 같았다.

“금을 타겠느냐, 맞겠느냐.”

그는 증오를 담은 눈으로 그녀를 보려 애썼지만 힘든 일이었다.

사실 예전부터 금을 다시 만지고 싶기는 했다. 그 때의 그 금이었다. 섬세한 손길이 닿은 금이다. 소리도 완벽하지만, 그 모양도 무척이나 신경을 썼다. 너무 화려하지도 않으면서 어여쁘기 그지없는, 아무에게나 쉽게 자신을 허락하지 않을 것 같은 금. 꼭 그녀를 닮은 것 같은 금이었다.

그는 금을 연주했다.

어머니께 자주 들려 들었던 곡이었다. 특별한 내용은 없었다. 정자에 앉아 편하게 담소를 나눌 때. 주변의 풀벌레 소리와 시냇물 소리가 한데 어우러지도록 다듬은 단순한 곡이었다. 가끔 홀로 그 곡을 탈 때면, 어린 시절의 그 때로 되돌아가는 느낌이 들었었다. 그리고 그건 지금도 그러했다.

실수할 리가 없는 곡이기에, 눈을 감고 자신도 음의 세계로 빠져 들어가려는 찰나. 그는 그녀의 얼굴을 보고 경악을 감추지 못했다.

그녀는, 울고 있었다.

우는 것도 눈물이 조금 나오는 정도가 아니었다. 눈물이 폭포수처럼 옷소매를 적시고 있었다.

그가 연주를 멈추자 그녀는 성난 듯 말했다.

“왜 더 하지 않느냐?”

“.......소저. 괜찮소?”

“나는 보지 마라. 보지 말라고 했다.”

그렇게 말하며 더 심하게 울고 있는 그녀를 보니 마음을 추스를 수가 없었다. 울고 있는 여인이 그녀만 아니었다면 당장에 위로해주었을 것이었다. 무슨 일이든 간에.

“이런 연주로.......어떤 일이 있었기에.”

“나는 보지 말라고 하지 않았느냐.”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숫제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엉엉 울기 시작했다. 측은하면서도 접근할 마음이 들지 않았다.

“계속해라. 계속. 명령이다. 안 그러면 죽여 버리겠다. 진짜다.”

그는 나지막이 탄식하며 그녀의 얼굴을 보았다. 얼굴을 가득 덮은 손과 흐르는 물기 때문에 눈이 보이지 않았다.

그는 다시 연주했다.

역시 어머니를 생각하며 만든 곡이었다. 조금이라도 떨어져 있는 시간을 아파하는 마음. 그러면서도 어머니를 사모하는 마음. 그것을 주제로 처음부터 끝까지 구슬프게 그리는 곡이었다.

그런 곡을 연주한 것은, 앞에서 울고 있는 그녀 탓이 컸다. 그녀는 더욱 거세게 울기 시작하더니, 연주가 끝날 때쯤 눈물을 그치었다.

연주가 끝나자 정적이 흘렀다.

간신히 마음을 추스른 듯한 그녀가 충혈된 눈으로 말했다.

“내가 바보 같아 보이느냐.”

그는 솔직하게 말했다.

“그런 생각 한 적 없소.”

“내가 고작 이런 연주 가지고 눈물이나 흘리는 나약한 계집아이로 보이느냔 말이다.”

“아니오.”

그녀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거짓말쟁이.......”

그는 ‘누가 누구에게 하는 말이오.’라고 되쏘고 싶었지만, 차마 말을 꺼내지 못했다.

“좋은 연주를 들려주었으니 보답을 해야겠지.”

그는 그녀의 입에서 어떤 말이 나올지 생각하며 기다렸다.

“선물이다. 이 금. 네게 주겠다.”

“.......어째서.”

“선물이라 하지 않았느냐. 앞으로 언제든 금을 연주해도 좋다. 나는 다시 네게서 이것을 받지 않을 테니. 이것은 네 것이다. 망가뜨려도 좋다.”

그는 금과 그녀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녀의 원망과는 별개로, 그것은 받아선 안 되는 물건이었다.

“받지 않겠소.”

“또 싫다는 것이냐.”

그녀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너는 또, 또. 항상. 내가 주는 것마다 싫다고 하지. 그래. 그리도 내가 원망스럽더냐. 아직도 나를 죽이고 싶겠지. 그럼 그러거라. 내 것은 손도 대지 말거라.”

“그런 이유가 아니오.”

그는 그녀의 눈을 보며 말했다.

“.......소중한 것이라 하지 않았소. 소중한 이에게 받았다고 하지 않았소.”

그녀는 그의 말에 대답하지 못했다.

“소저에 대한 분노와도, 소저가 어떤 사람인가와도. 또 내가 이것을 받고 싶은 것과도 별개요. 그런 것은.......이렇게 주면 안 되는 것이오. 소저는 이것을 그렇게 쉽게 포기하면 안 되는 것이오.”

그녀는 말을 더듬거렸다.

“나는 그저, 주고 싶었을 뿐이다.”

그는 ‘비급 때문이오?’라고 물을 뻔했다. 대신 이렇게 말했다.

“소저가 무엇을 원하는지, 이 금에 어떤 마음을 갖고 있는지 나는 모르오. 그러나 소저에게 이 금을 준 이가 누구든, 소저가 그에 대해 애틋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소저가 지금도 그를 사모한다면. 그렇다면 이것은 누구에게도 주어서는 안 되는 보물이오. 세상의 모든 비급을 합쳐도 견줄 수 없는, 소저에게 가장 귀중한 보물이오. 나는 그런 것을 받을 수 없소.”

그는 자신에게 있어서 절대 잃을 수 없던 사람들을 생각했다. 지금은, 다시 보려고 해도 볼 수 없는.

“.......뚫린 입이라고 잘도 지껄이는구나. 죄수 주제에. 포로 주제에. 네가 나에 대해 무엇을 안단 말이냐. 무슨 자격으로 그따위 말을 할 수 있느냐.”

그는 휘청이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직감했다. 그 금을 그녀에게 준 이는 이미 살아있지 않거나, 다시는 만날 수 없는 곳으로 떠나간 게 분명했다.

그녀는 뒤돌아서, 그에게 얼굴을 보여주지 않으며 말했다.

“그럼 빌려주겠다. 주는 것이 아니다. 아까 한 말은 잊어버려라. 나는 네게 빌려주는 것이다. 그 금에 흠집 하나라도 난다면 네 손가락을 잘라버리겠다. 내가 다시 받고 싶으면, 네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든 뺏어가 버릴 것이다.”

“오히려 그게 낫소. 그렇다면 안심하고 받을 수 있소.”

그녀는 대답하지 않고 감옥을 빠져나갔다.

그는 그녀의 향취가 남아 있는 금을 바라보았다.

어떤, 사연이 묻어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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