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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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마내기
작품등록일 :
2016.03.15 00:05
최근연재일 :
2016.04.10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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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3.15 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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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쪽

감금-5

DUMMY

또다시, 헤아릴 수 없는 시간이 흘렀다.

그녀가 그에게 쏘아붙인 이후로 그녀는 더 이상 오지 않았다. 그는 전보다 견디기 수월하다고 생각하려 애썼다. 천화의 속셈이라면 잘 알았다. 그녀의 관심은 오직 천랑비급일 뿐이었다. 그것을 가지고 무슨 일을 벌일지는 몰랐다. 그렇기에 더더욱 내줄 수 없었다.

그는 비급의 기초를 생각했다.

천랑비급을 익히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 그리고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 꺾이지 않는 의지였다. 그것은 불길 속에서 춤추는 것이나 다름없는 수련과정을 버티는 데에도 중요했지만 그 고유한 검기를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에도 필수적이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상대가 어떠한 기술과 계략으로 접근해도 막아낸다. 상대가 틈을 찾아 덤빈다면 그것을 내어주고서라도 본심을 지켜, 최종적으로 지친 상대에게 승리한다.

‘내가 비급을 알려주더라도, 소저는 절대로 그것을 익힐 수 없을 거요.’

잠깐이었지만, 그는 고소하다고 생각했다.

‘마찬가지로 소저의 편이라면, 그 누구도 익힐 수 없을 거요. 소저의 곁에 있는 사람이라면 그 기본조차 참지 못할 테니까. 마교는 물론이거니와 소저에겐 그런 사람들밖에 없을 테니까.’

몰살의 밤, 그 직전까지도 자신의 곁에는 그런 사람들이 많았다. 그의 부모님이 그러했고, 그를 따르던 사람들까지도. 그들은 자신을 어리석을 정도로 선한 도련님이라 불렀다.

그들이 보고 싶었다.

몰살의 밤, 마인들이 남아 있는 사람들까지도 살해할 때 가까스로 도망친 사람들이 있었다. 마인들 다수가 바로 그들을 추격했으니 큰 기대는 할 수 없었지만 혹, 살아있을지도 몰랐다.

그 중에는 희와 령이도 있었다. 본가는 아니었지만, 그를 가족처럼 따르던 아이들이었다. 비급을 완전히 익히지는 못했지만 그가 사랑하는 마지막 사람들이었다. 혹여 그들이 자신의 탈출 계획을 세우고 있지는 않나 생각한 적이, 부끄럽지만 있었다. 그러나 안 될 일이었다. 복수에 눈이 멀었을 때를 생각하면, 그건 어리석은 짓이었다. 가문의 유력자들이 모두 죽은 지금은 천화 한 사람도 당해낼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들은 그를 위해서라도 숨어 지내야 했다. 그들마저 잃으면 더는 버틸 수 없을지도 몰랐다.

‘구해줘.’

그러나 시시 때때로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령아, 희야.’

그러면 안 되는 줄 알면서도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 그들이 보고 싶었다. 그 애들의 웃음을 보고 싶었다. 목소리를 듣고 싶었다........

백일몽을 꾸던 그는 애써 현실로 되돌아왔다. 장님이 될 것 같은 어두운 공간. 점차 풀려가는 근육. 망가지는 몸 상태. 절망적인 현실.

그러나 생각만은 자유롭다.

그는 텅 빈 돌벽 안에서 고심했다. 그리고 어떤 결심을 했다.

“문을.......열어 주시오.”

그는 간신히 목소리를 끄집어냈다.

“천랑비급을 말해주겠소. 전수해주겠단 말이오. 그러니 문을.......제발 문을 열어주시오.”


그녀가 온 것은 한 시간도 되지 않아서였다.

철창문 앞에 그녀가 섰다. 이번에는 제대로 불을 비춰주고 있었다. 그의 눈을 보호하기 위해서인지, 등잔불보다도 작은 옅은 불빛이 비춰졌다. 쓸데없이 세심한 준비다. 그렇지만 어둠에 익숙한 그의 눈은 그녀의 신형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금을 탈 때도 언뜻 보긴 했지만 그 악녀는 여전히, 아름다웠다. 그가 그녀에 대해 몰랐다면 오랜 암흑 속에서 간신히 본 그녀를 선녀라고 생각했을 것이었다.

“의외인데.”

그녀가 담담하면서도 꼬집는 듯한 말투로 말했다.

“.......”

“죽어도 말하지 않겠다고 하지 않았느냐.”

“생각이 바뀌었소.”

그는 조심스럽게 밖을 살폈다. 그녀 말고는 아무도 없는 듯 했다. 그는 그녀가 비급을 아무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래. 다 되었다. 그게 무슨 소용이겠느냐. 비급은 어떻게 전수해줄 생각이냐.”

그녀가 그렇게 말하자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가까이 오시오.”

“내가 들어가겠다.”

삐걱 소리와 함께 철문이 열렸다. 영원히 열릴 것 같지 않았던 문이었다. 열릴 수 있긴 한 건지 모를 철창.

그가 두근대는 가슴을 감추지 못할 때쯤 그녀가 들어오자 문이 닫혔다.

그녀를 그렇게 가까이에서 본 것은 오랜만이었다. 가느다란 턱선, 동그란 눈, 보얀 피부에 어려 보이는 얼굴. 의식하지 않아도 그녀에게서 짙은 향이 났다. 그는 그녀가 누구인지 전혀 몰랐다면 어땠을까, 다시 한 번 상상했다.

“보여주거라.”

그녀가 말하자 그가 답했다.

“잠깐 기다리시오.”

그는 극천법의 준비 동작을 취했다.


극천법의 초식에는 여러 변형단계가 있다. 주로 맹호와 같은 공격을 모조리 파훼하는 방어술이지만, 공격에 효과적인 것도 여럿 있었다. 태생이 검을 주로 하는 검술이긴 했지만 그 중에서도 응용하면 맨손으로도 효과적인 파괴력을 능히 구현할 수 있는 초식이 있었다.

기를 손끝으로 집약시키고, 주위의 기운을 안정시키며, 처음의 몇 초식과 연계하여 파괴력을 상승시킨다.

그 후로는 단순했다. 그는 있는 힘껏 손을 그녀의 눈으로 내질렀다.

손끝에는 이빨로 다듬어 둔, 날카로운 손톱이 있었다.


손이 닿는 느낌은 없었다. 느껴지는 것이라고는 그의 손목을 쥔 그녀의 손. 그리고 독향.

“내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아무리 힘을 주어도 그 손을 뿌리칠 수가 없었다. 힘을 주느라 진땀이 흘렀고, 손이 부들부들 떨리었다.

“너를 본 순간부터 알았다. 이토록 정직한 표정에, 정직한 암습이라. 이게 내게 통할 거라고 생각했느냐. 정말이라면 순진하기 짝이 없구나.”

순간 그는 그녀에게 침을 뱉었다.

그녀는 번개처럼 얼굴을 가렸지만 침이 옷을 적시는 것은 피하지 못했다.

“.......오히려 이게 진짜인 것처럼 느껴지는구나. 귀한 옷인데.”

“이곳에 온 후로 처음으로 기분이 상쾌하오.”

그것만으로도 반은 성공한 것 같았다. 천화가 벌레 씹은 것 같은 어조로 말했다.

“좋겠구나. 내 기분이 몹시 더럽다. 그러니 너는 더더욱 좋겠구나.”

그녀는 그의 손목을 놓았다. 얼얼한 팔을 추스르기도 전에, 그 손으로 그의 목을 잡아 넘어뜨렸다.

“하아.”

그녀가 신음소리처럼 내뱉었다. 그녀가 무표정하게 전력으로 목을 졸라대는 통에 그는 숨조차 쉬기 어려웠다.

“이런다고 달라질 건 없지. 왜 이렇게 화가 났는지 모르겠구나.”

그녀가 목에서 손을 떼었다. 그는 단 공기를 필사적으로 들이마셨다.

“오랜만에 이성을 잃었어. 참 대단한 아이로구나. 칭찬해주마.”

“소저에게 칭찬을.......들으려고 한 일이 아니오.”

“그래. 네 진정을 완벽하게 알겠구나.”

그는 바닥에 누워 일어나지 못했다. 오랜 시간 갇혀 있던 것도 있겠지만, 반 이상 폐해진 무공으로 무리하게 기술을 쓴 것이 문제였을 것이다. 정상적인 몸이라면 충분히 성공할 수 있었을 텐데, 그것이 아쉬웠다.

“나오기 싫다면 강요할 수 없지. 그렇게 원한다면 내 네 소원을 들어주마. 이 곳이 네 집이고 네 무덤이다. 소원을 들어주었으니 앞으로는 그렇게 어설픈 수를 쓰지 말거라. 내 기분까지 더러워지니 말이다.”

그녀는 쓰러져있는 그를 두고 다시 나가버렸다. 처음 열렸던 문이 다시 열리고, 곧바로 닫혀 잠겨버렸다.

‘빌어먹을.’

그는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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