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먼 연대기 (윙클리드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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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정(魔井)
작품등록일 :
2016.06.20 01:12
최근연재일 :
2016.12.05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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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1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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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친구 2

DUMMY

게이트를 통과하거나 워프를 겪는 일은 여행에 아무리 익숙해도 몸에 무리가 가는 법이다. 그래서 자고 나서 뒤늦게 일종의 후유증이 나타난 것일 수도 있었다.


몸이 불편하니 기분도 가라앉고 식욕도 떨어졌다. 야식을 괜히 많이 먹은 모양이었다.


어젯밤 사라에게 입력시켜둔 아침 룸서비스도 그대로 돌려보냈다. 평소 아침으로 즐기는 과일 쥬스와 오트밀 쿠키, 오믈렛에 잼을 바른 파이였음에도 도저히 배가 고프지 않았던 것이었다.


햇빛은 쨍쨍 모래알은 반짝. 광합성 흉내를 내도 기분이 영 좋아 지지 않았다.


심지어 역에 가는 내내 가로등이나 가로수에 한 번씩 부딪히기도 했다! 부은 눈이 아직 가라앉지 않았고 축 늘어진 몸도 가누기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사라를 데려올 걸. 여성 형이라도 명색이 안드로이드니 나를 부축할 힘은 충분할 텐데. 괜히 두고 왔나?’


어차피 짐을 가지러 다시 호텔에 갈 생각으로 사라를 두고 온 결정이 잠시 후회됐다. 사실 업무상 대부분의 절차는 이미 끝난 상태로 시림 씨와의 만남은 하루로 족했다.

마무리 단계인데다 예매했던 열차표도 한 장이었다.


사라는 안드로이드지만 1인 좌석이 더 필요하니 따로 표를 사야했고, 어제는 굳이 그 정도로 표를 살만큼 절실하지는 않았다.


난 어제의 나에게 잔뜩 짜증을 내며 우여곡절 끝에 열차에 올라 좌석에 앉았다.

도르륵 거리는 소리를 내며 음료판매카트가 지나갔다.



“커피 있습니다. 홍차, 미숫가루도 있어요.”



카페인. 카페인이 필요했다.



“샷 추가한 원두커피 한잔이요. 얼을 띄워 주세요.”



난 차가운 커피를 큰 컵으로 한 잔 사 마셨다.


악마의 유혹, 인간이 발견한 최고의 음료!

기분이 훨씬 나아졌다.


그래, 난 카페인 중독자였지. 하루라도 카페인이 안 들어가면 우울하고 머리 아프고 몸이 불편한.

눈의 붓기도 제법 가라앉아 열차가 출발할 때쯤에는 기분 좋게 끄덕이며 졸 수 있을 정도였다.


그렇게 잠시 자던 나는 갑자기 눈을 떴다.

입에서 소리 없이 침이 흘렀다거나 소매치기의 은근한 손길이 닿은 것은 아니었다.


바로 내 맞은편 좌석에서 나를 보는 시선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이 열차는 4인이 마주보는 좌석이었고, 구경꾼은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하게 생긴 사람이었다.


난 내가 깬 것을 알릴까 생각하면서 밑에서부터 시선을 올렸다.

갓 떨어진 낙엽색에 가까운 가죽신와 갈색계통의 편안한 캐쥬얼 옷이 보였다. 길고 하얀 오른손 약지에는 흑요석 반지가, 팔걸이에 얹은 왼손에는 녹차 캔이 있었다.


앉은키를 봐서는 보통 키고 성별은 남자였다.


'그래, 결심 했어! 이보시오, 난 댁의 시선이 불쾌하오!'


난 순식간에 고개를 들고 도전적인 눈빛으로 그의 얼굴을 봤다.

그자는 어깨까지 내려오는 부드럽게 웨이브진 갈색 머리에 약간 웃고 있는 입술과 지성적으로 솟은 코, 대리석 색의 하얀 피부를 가진 남자였다.

그자의 눈썹은 독수리의 눈매를 연상시켰고, 눈썹아래에는 달개비 색의 눈동자가 있었다.


남자의 두 눈은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저 시선은 너무 노골적이잖은가.


설마 내가 범죄의 표적이라도 된 것인가, 아니면 내가 남자에게도 인기 있는 얼굴이었던가!


오는 여자는 안막지만 남자는 사양이었다.



“죄송합니다만 저를 알고 계시는지요?”



불쾌감을 비치며 나는 비교적 공손하게 물었다. 질문에는 계속해서 나를 보고 있었냐는 뜻이 숨어 있었다.


나는 신사다. 저 남자와는 달리 처음 보는 사람에게 무례하게 굴 정도로 뻔뻔한 인간이 아니니까.



“물론. 아주 오래 전부터, 그대가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남자가 자세를 바꾸며 나에게 답했다. 기묘한 단어선택과 예의 없는 대답과는 달리 시비조가 없는 반말이었다.

어디선가 비슷한 경험을 했다는 기분이 들었다. 이런 느낌의 데자뷰 라니, 묘한 생각이 들었다.



“전 당신을 처음 봅니다만, 다른 사람과 착각하신 것은 아니신지요?”



“그럴 리가? 윙클리드 프란시아 발세르. 내 나이 530살이 넘도록 그런 말은 처음 듣는군.”


이자는 미쳤는가! 태어난 지 530년이 지났다면 이미 관속에 들어가 썩어 문드러질 나이가 아니던가?


내가 알기론 아직 어느 행성도 평균수명이 500년이 넘는 곳이 없다. 하물며 저렇게 팽팽한 피부를 지닌 내 또래로 보이는 젊은이 주제에.


갑자기 어제 본 뉴스가 생각났다.

사라의 사용설명서를 다시 읽는데 자극적인 소재의 뉴스가 나왔었다. 숙소가 있는 도시의 한 정신병동에서 젊은 남자 1명이 탈주했다는 내용이었다.

수배중인 탈주자의 이름과 얼굴사진이 병원 연락처와 같이 여러 번 나왔었다. 머리도 웨이브진 갈색이었고, 기분 탓인지 인상 역시 비슷해 보였다.


이런, 신고를 해야 하는구나. 여기는 위급 신고가 911이었던가 119이었던가. 내가 저 자의 정체를 알아챈 것을 눈치 채진 않아야 하는데.


내가 머릿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를 남자는 정색을 하고는 계속 말을 이었다.



“거짓말 같나? 그렇다면 내가 어찌 그대의 이름을 알까?”



말이 끝나는 그 순간, 그자의 뒤에 늘어진 그림자가 다른 곳을 삼키며 번져나갔다. 비정상적인 어둠을 띈 채로.

남자의 눈동자 색은 점점 짙어지며 창포 꽃 색으로 변해갔고 그 눈을 통해 언어의 형태를 갖춘 울림이 전해졌다.



『나를 그대들 인간과 비교하려 하지 말게.

나는 인간으로 치면 오랜 세월을 살아왔지. 수많은 아이들이 자라나 노인이 되어 죽어갔어. 물론 그 전에 죽는 자도 많았지만.

남자와 여자, 그들의 자식의 자식까지, 시간과 공간을 넘어 십여 세대가 내 생에서 거쳐 갔다. 행성과 행성을 넘어서 때와 장소를 불문하고, 인종과 신분의 높낮이를 떠나 직업의 귀천도 상관없지.

나는 공포로 안식으로 혹은 축복으로 인간들 앞에 나타나지.

검은색과 어두움과 두려움과 절망의 주제로도 표현되는, 생명이 있는 자라면 필연으로 겪게 되는 일.

모든 권세의 최고 위에 존재하는 자. 나는 거두어들이는 자, 인도하는 자, 또 다른 말로는 사신이라 불리네.』



갑자기 옅은 안개 속에 깊이와 넓이를 알 수 없는 호수가 나타났다.

남자는 검은 모자달린 망토와 옷을 입고 나뭇잎 모양의 녹색 배를 타고 있었다. 어둠과 길을 밝히고 과거에서 미래로 이어지는 노란 등불을 단 나무 지팡이도 있었다.

죽은 자의 마지막 말벗, 망자의 길 안내자.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과 동시에 어둠이 사라졌다.


남자의 눈동자 색은 원래의 달개비 색으로 돌아왔다. 내가 공포든 경악이든 어떤 감정을 비치더라도 상관없다는 표정을 한 그는 여전히 재미있는 것을 보는 얼굴이었다.



“그런데 옷이 예복이 아니잖아요. 지금 지팡이도 없는 것 같은데···.”



내 목소리가 맞는가? 나도 모르게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호, 내 다른 모습을 봤군. 여간한 능력자라도 보기 힘든데 말이야. 게다가 이렇게 약한 영능력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야. 독안이 맞기는 맞군.”



이자도 나를 알고 있었다! 옛 이야기에서 보건데 보통 사신이 상대방을 안다는 건 한 가지뿐이잖은가!



“제가 벌써 죽을 때가 됐나요?



보통 사신은 죽을 때가 되어야 찾아오는 법이니까. 아니면 근처에 누군가가 죽을 때라든지. 그래서 오늘 몸이 안 좋았구나.


난 아직 죽음을 생각한 적이 없는데. 닭살이 돋으면서 한기가 들었다.


아니 한기가 들면서 닭살이 돋았나? 내 머릿속 두되가 풀가동을 하는데 그는 명랑한 표정으로 계속 말을 이었다.



“설마? 그대의 수명은 아직 많이 남았어. 그리고 내 나이도 인간나이로 환산하면 댁 또래야. 그러니 말 놓으라고. 딱딱한 격식 따위는 집어치우자 구.”



사람을 겁줄 때는 언제고 이제는 안심하란다. 식은땀을 닦지도 못한 내가 노골적으로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남자는 말을 덧붙였다.



“에, 그러니까 내 이름은 블랜 본 드본산이고 흡혈족이야. 좀비 상태인 흡혈귀 따위와 다르다는 건 알지?”



당연히 모른다. 내가 슬쩍 고개를 젓자 매우 놀란 목소리로 블랜이 말을 계속했다.



“몰라? 그 중요한 걸? 반 시체상태에서 부활하여 피만 마시는 흡혈귀와는 달리 우리들은 피가 주식이 아니야. 부족한 영양분을 보충한다든가 음료의 일종으로 마실 뿐이지.

심지어 죽을 때까지 흡혈을 전혀 하지 않는 자도 있어. 우리들의 주거지엔 혈액 제공을 위해 사육되는 여러 종류의 동물 농장들과 가공공장들이 있고 사체는 고기로 팔려나가.

아, 그런 눈으로 보지 마. 내가 알기론 사람 농장은 없으니까.”



내 표정이 이상했던 모양이었다. 녹차를 한 모금 마신 사신은 계속해서 말을 했다.



“우리 중에는 취향에 따라 곤충의 즙이나 어류의 피를 마시는 자들도 있어. 물론 인간 피를 마시는 자도 있지만, 죽을 때까지 마시거나 하진 않아. 물배가 차거든. 거기다 피를 뺏긴 자가 우리 동족이 되거나 하지도 않지.”



“흡혈족은 그러니까 원래부터 존재하는 다른 종족이라 그 말인 거죠?”


작가의말

 사신은 여러 모습을 가지고 있지요. 전 사신을 본 적은 없습니다만, 서구적 모습을 좀 따왔습니다. 배경자체가 서구적 분위기라서요...


 이 이야기의 흡혈족은 뱀파이어나 스트로고이?와는 전혀 다른 종족이라는 설정입니다. 물론 동양 흡혈귀인 강시와도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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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사라센 - 성년 파티 3 16.07.05 166 1 10쪽
5 사라센 - 성년 파티 2 16.07.03 172 1 10쪽
4 사라센 - 성년 파티 1 16.07.01 188 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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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프롤로그 - 장례식과 손님들 2 16.06.28 323 2 9쪽
1 프롤로그 - 장례식과 손님들1 16.06.27 579 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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