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혼환령검(鬼魂幻靈劍) - 기이(奇異)한 인연 <07>
양측의 분위기는 점차 특이하게 변하고 또 변해왔다.
방금까지만 해도 점창파 장문인 앞에서 두려움을 나타내던 자들이 단번에 자심감을 회복했다.
이는 지금 들어온 네 사람이 마교에서 상당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고 절정의 고수라는 예측을 쉽게 할 수 있게 해주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들이 점창 장문인의 무용에 정면으로 맞설 용기를 냈겠는가.
점창파 장문인의 얼굴에는 당혹감이 가득 드러났다. 일시에 일이 커져 버린 것을 걱정하는 눈치였다.
그때 점창파 장문인이 비굴하지 않게 정중히 읍을 하더니 말했다.
“고대협과 철혈삼마(鐵血三魔)아니십니까.”
그들은 자리를 향해 움직이다 말고 슬쩍 뒤를 돌아보고 있었다.
“점창파 장문인이군.”
고대협이라는 자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한번 쳐다보며 내뱉었다.
“실로 오랜만에 뵙습니다. 그간 무고하셨습니까?”
위현룡은 상대가 마교에서 도대체 어떤 위치이기에 점창파 장문인이 저렇게 황송하게 대하는지 무척 궁금했다.
“무고하지 않으면 어쩔 텐가?”
“허허허, 여전히 고대협께서는 성격이 시원시원하십니다.”
가는 말은 고왔는데 돌아오는 말은 매우 불손하기 그지없었다.
위현룡이 자신도 모르게 인상을 찡그렸으나 점창파 장문인은 내색조차 않고 그저 미소만 짓고 있었다.
“근데 당신은 아직도 남마교(南摩敎) 밑에서 빌어먹고 살고 있는가?”
“아닙니다. 오래 전에 이미 관계를 끊었습니다.”
“오랜 기간 붙어 있던 삶을 단번에 끊어트릴 수 있는 것은 아니지. 또한 끊었다고 모든 게 사라지는 것도 아닐 것이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대화상으로는 서로 안면도 있었고 어떤 인연들도 얽혀 있는 것 같긴 했다.
그러나 주고받는 대화가 한쪽이 물이었다면 다른 쪽은 불이었다.
위현룡은 고대협이라는 사람의 언변에서 은근히 증오와 살기마저 감지되자 의아함과 분노가 동시에 치밀었다.
보아하니 마교 내에서도 서열이 꽤 오른 자들 같은데 일파의 장을 보고도 약간의 예의조차 갖추지 않는 안하무인이다.
(어떻게 마교인사들이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교주 허석문과 단중이 얼마나 예(禮)를 알고 협(俠)을 중요시하는지 위현룡은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마교 사람들은 모두 교주와 같을 것이라고 막연하게 상상해 왔는데, 당면한 일은 위현룡의 상상을 무참히 깨 버리고도 남았다.
장문인은 상대의 반응을 예상이라도 한 듯 전혀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말을 이었다.
“오래 전 북마교(北摩敎)에 폐를 끼친 이래로 저희 점창파는 조용하게 지내왔습니다. 오늘도 이 지역을 지나던 길에 요기나 할까 하고 들린 것 뿐이옵니다. 부디 분쟁을 조장하지 마시고 저희들을 보내 주십시오.“
그러자 고대협이라는 사람이 거만하고 비웃는 눈초리로 그를 내려다보았다.
“누가 분쟁을 조장을 한다는 것인가? 너희들도 무림인 아니더냐? 무림에서는 말보다 검이 우선이고 이성보다는 힘이 정의임을 잘 알지 아느냐?
난 주점 안에서 일어난 소란을 무림의 법칙에 맡겨 놓으려는 것 뿐이다.“
영락없는 궤변이 고대협의 입에서 당연하게 흘러나왔다.
고대협은 비쩍 마르고 키가 컸으며 검붉은 얼굴에는 광대뼈가 보기 흉하게 툭 튀어나온 자였다. 나이는 대충 사십 대 중반 정도로 추정이 되었는데 특이하게 눈동자만큼은 어린아이의 것처럼 맑고 투명해 보였다.
그리고 그의 신장에 맞게 길게 드리운 장삼은 그럴 듯 했지만 과장스럽게 걸고 있는 커다란 목걸이들은 왠지 무속인같은 느낌마저 들게 했다.
위현룡은 눈길을 돌려 곁에 장승처럼 서 있는 세 사람을 주시했다. 아까 장문인이 언급했던 것처럼 그들은 철혈삼마라고 했다.
이름 때문인지는 몰라도 그들의 얼굴에는 창백함이 가득했고 뭔지 모를 섬뜩한 기운마저 돌고 있었다.
고대협이라는 사람이 계속 나불대고 있었는데도 철혈삼마는 단 한마디도 안했다.
(연배는 비슷비슷한 것 같은데도 고대협이 저들보다는 서열이 높은 모양이군.)
이런 막연한 추측을 하고 있는데 네 명의 사람들은 더 이상의 언쟁이 귀찮다는 듯 곧바로 탁자 주위에 앉아 점소이에게 주문을 하고 있었다.
“흐흐흐. 들었느냐 이 조무래기들아...”
천군만마를 얻은 마교인들의 눈빛에는 진한 살기가 가득했다.
위현룡은 피치 못할 싸움이 전개될 조짐이 보이자 두말 않고 공력을 끌어올렸다.
청성파의 제자로써 죽을지언정 이런 부랑아들에게 머리를 숙이고 싶지 않았던 것이었다.
역시 점창파 사람들도 위현룡과 같은 생각이었던 것일까. 그들도 비장한 모습으로 검을 들고 대항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적의 수는 너무 많았고 움직이면서 싸우기는 주점 안은 너무 좁았다.
(매우 불리한 싸움이 되겠구나.)
위현룡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등 뒤에서 날카로운 소리로 비웃음을 내고 있는 자가 있었다.
“정말 가관이로군.”
순간 모든 사람의 이목이 막 자리에서 일어나는 죽립을 쓴 사람에게 집중되었다.
눈앞의 살벌한 광경에도 태연자약하고 움직임이 여유롭기 그지없었다.
“넌 또 뭐야!!”
이미 살기등등한 마교인 하나가 버럭 소리를 지르자 죽립인이 죽립을 슬쩍 위로 올렸다.
또렷한 눈매와 검은 피부를 가진 이십대 후반정도로 추정되는 미장부의 모습이 드러나자마자 마교인들이 기겁해서 뒤로 몇 발자국씩이나 물러났다.
“주...주대협...아니십니까...”
점소이가 날라 온 음식을 막 먹으려던 고대협과 철혈삼마가 순간 고개를 돌렸다.
“마교 내에서 명성 높으신 고대협과 철혈삼마께서 앞장서서 마교의 명성에 먹칠을 하시니 소인이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그의 입에서는 날카로운 비아냥거림이 흘러나왔다.
“하하하, 먹칠? 먹칠은 내가 아니라 교주께서 하시는 것이겠지.”
그 소리를 들은 죽립인의 입술이 분노로 실룩거렸으나 꾹 참는 듯했다.
“교주께서 이제껏 북마교의 여러 인사들을 보살피고 가까이 하지 않았다면 당신들은 어떻게 되었겠소?“
“흥! 미친놈. 우리가 어린애도 아니고 그따위 사탕발림에 넘어갈 것으로 보이느냐?”
고대협의 외침에 곁에 있던 철혈삼마의 얼굴에도 조소가 흘렀다.
“그런 식으로 노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내면서 불협화음을 일으킨다면 고대협께 득이 될 것은 아무 것도 없을 것이오.“
죽립인의 나직하나 은근한 협박이 깔린 말에 고대협이 목에 핏대를 세우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주유천! 네 놈이 교주의 신임을 발판으로 서열 좀 올랐다고 기고만장이구나. 그러나 마교 인사들 중 너는 피라미에 불과할 뿐이다.“
“그럼 피라미보다 못한 고대협은 무엇이오?”
“뭐라!”
지지않고 응수하는 주유천의 대꾸에 고대협이란 자의 얼굴이 경직되었다.
동시에 그의 신형주위로 엄청난 기가 방출되었다..
그때 주점 안에 있던 사람들은 숨이 막히는 듯한 무형의 힘을 느끼며 전율했다.
(대단하다...점창파 장문인보다 강하면 강했지 절대 하수가 아니다!)
위현룡은 속으로 매우 놀라면서 비로소 마교인들이 왜 고대협이란 사람을 믿고 움직였는지 또한 어째서 점창 장문인이 그리 공손했는지도 이해가 되었다.
고대협은 자신의 공력을 주유천에게 드러내면서 암암리에 경고를 한 터였다.
그러나 일파 장문인을 능가하는 그의 무공 앞에서도 주유천은 별 감흥이 없는 듯했다.
“쯧쯧쯧, 교주를 믿고 겁없이 날뛰는 꼴이 불쌍하기까지 하구나!! 이번엔 그냥 넘어가 주겠지만 다른 곳에서 또 다시 맞부딪친다면 각오해야 할 것이다.“
한번 더 경고를 한 고대협은 이어 철혈삼마를 돌아보면서 말했다.
“갑시다. 오늘은 영 재수가 없는 날이군.”
그들이 주점 밖으로 나가 버리자 마교인들도 눈치를 보면서 하나하나 빠져나갔다.
원군이 철수했으니 남을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단 반각만에 주점 안은 텅 비어 버렸고 바빴던 점소이들은 허탈한 듯 멍하니 서 있었다.
“정말 감사하오. 주대협.”
점창파 장문인이 주유천에게 인사를 하고 있었다.
“이 곳은 마교가 자리잡은 지역입니다. 이런 곳에 장문인께서 자주 출몰하시면 저들에게 어떤 봉변을 당할지 장담 할 수 없습니다.“
“명심하겠소.”
그때 위현룡이 끼어 들면서 항변하듯 말했다.
“마교에서 어떻게 저런 놈들을 등용할 수 있단 말입니까!”
분기탱천한 위현룡의 말에 주유천이 고개를 돌리면서 냉랭하게 대꾸했다.
“마교에 대해 함부로 말하지 마시오. 세상에 티없이 맑은 연못은 존재하지 않는 법이오.”
주유천이 이 한마디만 남긴 채 밖으로 휑하니 나가 버렸지만 위현룡은 그의 음성에서 답답한 심정을 읽어 낼 수 있었다.
점창파 장문인은 묵묵히 사라져가는 주유천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위현룡에게 자리에 권했다.
“폭풍은 지나갔으니 살 사람은 살아야하지 않겠소?”
그는 점소이에게 음식을 다시 주문하고 있었다.
방금 전 일어난 섬뜩한 분위기를 까맣게 잊은 듯 장문인의 특유한 넉살과 여유로움이 보였다.
처음 대면했을 때의 어색한 분위기는 간 곳 없고 위현룡과 그들은 더욱 가까운 느낌으로 말을 주고받게 되었다.
“청성파가 명성이 높다더니 자네를 보니까 더욱 실감이 가는군 그래.”
점창파 장문인은 편하게 자네라는 호칭을 쓰고 있었다.
왠지 황송한 위현룡은 고개를 살짝 숙이면서 물었다.
“장문인의 위명을 소인이 모르고 있습니다. 알려주시면 마음에 깊게 새기겠습니다.”
사실 위현룡이 아무리 속가제자였다 할지라도 무림에 유명인사 몇 명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점창파 장문인은 그 유명인사안에 유감스럽게 끼어있지 못했기에 송구한 마음마저 들었던 것이다.
점창파 장문인은 그의 속마음을 꿰뚫어 본 듯 말했다.
“점창파가 그렇게 유명한 문파는 아니라서 자네가 잘 모를걸세. 내 이름은 곽문유라고 하지.”
“아...곽장문인이시군요.”
역시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이름이라서 위현룡은 딱히 덧붙일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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