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혼환령검(鬼魂幻靈劍) - 귀혼검법(鬼魂劍法) <05>
서막붕은 깊은 한숨을 한번 쉬더니 갈증을 느낀 듯 찻잔을 들어 몇 모금 들이켰다.
위현룡은 그의 미간에 깊게 패인 주름을 보면서 어쩌면 이 사람은 깊은 성격 탓에 타인에게 함부로 심중을 드러내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위현룡도 탁자위에 놓인 자신의 찻잔을 집어서 몇 모금 마셨다.
처음에 의심을 품은 것은 사실이나 지금에 이르러서는 서막붕의 호의에 예의를 갖추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향긋한 액체가 목구멍을 타고 넘어갈 즈음에 서막붕은 빙그레 웃으면서 말을 계속했다.
“어찌되었든 예강은 전방주가 추대한 인물이요. 이는 엄연한 사실인지라 개방에서는 그 일로 분열이 되고 온갖 격렬한 고성이 오고 갔다오. 더군다나 예강은 개방에 들어오고 나서부터 아니 어쩌면 그 전부터, 상당한 개방 인사들을 포섭해두고 있었던 모양이오. 내부가 그렇게 썩어갈 때까지 까맣게 몰랐던 것은 우리의 책임이 크다고 생각되지만 깨달았을 때는 이미 모든 것이 늦은 상태였소. 금성문은 새외에서 재력이 막강한 문파인지라 인사들을 포섭하는데 막대한 자금을 아끼지 않았고, 적당한 양도 아닌 상당한 양의 자금이 흘러 들어오는 통에 많은 형제들이 유혹을 뿌리지지 못했소이다. 물론 예강의 감언이설에 넘어간 인사들도 있소. 전(前)방주의 유지는 아주 확실한 명분이니 말이오.“
“아...”
“솔직히 예강이 개방 방주가 될 것이라고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소. 당시 예강을 지지했던 사람들조차도 놀랐을 정도이니...개방 규율에는 설사 방주가 되었다고 해도 많은 개방 형제들이 반대를 하게 되면 재투표를 하게 되어 있소이다. 그때는 장로들뿐 아니라 하급서열에 있는 개방 형제들까지 모두 투표에 참여하게 되는 것이오. 지지율은 전체 투표의 7할만 이끌어내면 되니 쉬울 듯하나, 오히려 무지하고 고집스런 하급서열의 형제들을 설득하기는 그리 쉬운 일이 아닐 것이오. 더군다나 금성문의 자금이 아무리 막강하다 하더라도 이미 장로급에서 막대하게 소비한 자금을 모든 개방인들에게까지 확대하는 것은 무리가 따를 것이니...그런데 그때 예강은 구대문파와 개방의 위치를 교묘하게 비교하면서 개방이 구대문파위에 군림할 수 있다고 설득하고 다녔소.”
“중원에서 중립을 표방하며 어떠한 세력싸움에도 관여하지 않는 게 개방 아니었습니까?”
위현룡의 물음에 서막붕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소. 하여 우리는 씨도 안 먹힐 소리라고 단정지었지요. 그런데 개방은 알다시피 출신성분이 다양합니다. 이것은 매우 다양한 의견이 존재한다는 뜻이고 나쁜 뜻으로 보자면 힘을 한 곳으로 모으기 어렵다는 뜻도 되오. 중구난방인 개방 형제들은 그 동안 중립이라는 미명하에 알게 모르게 중원에서 괄시를 받고 있었소이다.”
그랬다. 개방 출신 거지들이 길거리에 널브러져 동냥이나 하고 있고 지나가던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아도 묵묵히 참았던 이유는 바로 목표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에 그것을 간파한 예강은 그들에게 중원에서 최고로 우뚝 서자며 진취적 사고를 고취시켰고, 단번에 지지를 끌어냈던 것이다.
서막붕의 설명은 계속 되었다.
“생각보다 예강의 교활한 언행이 잘 먹혀 들어갔소. 금성문의 막대한 자금을 끌어들여 어느 문파보다 장대한 개방 총타를 짓자 반신반의 하던 상당수의 형제들이 그의 편으로 돌아서 버렸으니 말이오. 아마 그들은 개방의 미래가 찬란하게 도래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을 것이오. 그리고 이는 예강의 재신임을 묻는 투표에 찬물을 끼얹는 결과를 초래했소이다.“
위현룡은 그제서야 예강이 어째서 개방 총타를 이토록 화려하고 웅장하게 만들었는지 이해가 되었다.
말(言)보다 행동이라는 말처럼, 개방 총타는 바로 그의 행동의 산물(産物)이었던 것이다.
자신이나 선배인 홍후인도 개방 총타를 처음 대했을 때 그 웅장함에 압도당하지 않았던가.
마을 저자거리나 어슬렁대던 하급 거지들의 눈이 돌아갔음은 따로 상상하지 않아도 뻔한 광경이었다.
위현룡은 잠시 생각하는 듯하다가 돌연 물었다.
“하지만 이곳 총타에 있는 몇 백명 남짓의 인원은 무엇입니까? 예강 방주가 그렇게 지지를 받았다면 어째서 이곳이 이렇게 썰렁하게 비어있단 말입니까?“
서막붕은 이미 그의 그런 질문을 기다리고 있었던 참이었다.
그렇기에 입가에 침이 마르기도 전에 또 다시 설명을 시작했다.
“그건 위장로가 잘 못 생각한 것이라오. 개방은 큰 방파이오. 단지 규합이 안 되었을 뿐이지 최하급 서열의 형제들까지 포함하면 일만명이 넘어서는 인원이오. 개방 방주로 떳떳하게 올라서려면 전체 중 7할의 개방 형제의 지지가 아닌 10할의 모든 지지를 받아야 하는 것이 아니겠소? 예강이 아무리 자금으로 회유를 한들 그것은 빈껍데기만 가져오는 것과 같소. 즉 앞으로 개방이 더 이상 나아지지 않는 다는 조짐이 보이는 즉시 예강은 언제든 내쳐질 것이란 말이오.”
“그럼 한편으로는 완전히 방주를 지지하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그렇소. 개방인들의 성정은 그렇게 호락호락한 게 아니오. 일단 두고 보자는 것이지요. 하지만 이대로는 안 되오. 난 개방의 전통이 이렇게 퇴색되어가는 것을 참을 수가 없소. 또한 어린 놈에게 개방이 이리저리 휘둘리는 것도 더는 못 보고 있겠소. 하여 개방을 진정으로 생각하는 지지자들을 확보하여 예강을 몰아낼 시도를 하기 시작했고, 점조직화된 지지자들이 암암리에 형제들을 설득하고 포섭하고 있소이다.”
서막붕의 입에서 점조직이라는 생소한 말이 튀어나왔기에 위현룡은 언뜻 이해를 하지 못했다.
이런 모략 같은 것에는 지식이 전무했던 위현룡인지라 흥미를 가지고 자세히 물어 보았다.
“점조직이라면 어떤 방식을 말하는 것입니까?”
“말 그대로요. 만약 예강의 최측근들이 개방 형제들에게 접근하여 편가르기를 시도한다면 십중팔구 부정적인 편견만 심어줄 것이오. 그러나 만약 예강의 사람이 아닌 자가, 즉 중립에 있는 자가 견해를 밝힌다면 오히려 더 큰 신용을 줄 수가 있겠지요. 예강을 지지하는 무리들은 이런 목적을 가지고 개방 밑바닥까지 잠입을 시도했고, 그 결과 이미 장로급은 8할에 가깝게 포섭이 되었고, 하급 서열의 형제들은 7할이나 끌어들인 상태라오. 지금도 예강의 명을 받든 많은 사람들이 개방 형제들과 어울리면서 갖은 설득과 회유를 시도하고 있소이다. 개방인들은 원체 의리를 중요시하는 성격들이라 분위기에 휩쓸려 예강 측으로 쉽게 옮겨 갈 것이오. 그렇기에 수수방관 할 수 없는 우리들은 비록 소수지만 예강과 같은 점조직 형식으로 맞불을 펴고 있는 중이오.“
“그렇다면 서장로님의 측근들도 예강의 수하들처럼 개방 형제들 속에 잠입해 있다는 말씀이시군요.”
위현룡의 말에 서막붕은 그렇다고 대답했다.
[개방이 어쩌다가 완전 개판이 되어버렸군.]
듣다 못한 홍후인이 혀를 끌끌 차면서 한마디 내뱉고 있었다..
홍후인의 음성을 듣지 못하는 서막붕은 자랑스러운 낯빛을 하고는 말했다.
“실은 마교로 운반하던 은자 5상자를 탈취한 것도 우리들의 계책이었소. 우리들은 현재 자금이 열세인지라 어쩔 수 없이 그것을 노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오. 자결을 행한 그 책임자는 우리와 뜻을 같이 하는 형제였고...그러나 그의 죽음은 절대로 헛된 것이 아니었소. 그의 살신성인(殺身成仁)은 우리들이 거사를 이루는데 큰 원동력이 되어 주었고, 사명감을 더욱 이끌어 주었소. 이는 우리 모두가 본받아야 할 정신이라고 생각되오.“
위현룡은 주위에 모여 있는 사람들의 눈빛에서 결연한 그 무엇인가를 보았다.
그것은 죽음을 넘어선 것이었으며 확고한 신념이자 개방의 정신이었다.
(예강이 방주가 되어 이끌면 개방이 침몰하는 난파선처럼 되어 버리는 것일까...아니면 반대로 이들이 개방을 이끌게 된다면 순풍에 돛단배처럼 순항할 수 있을까?)
아직까지는 어떤 확신도 가질 입장이 아니라고 그는 생각했다.
그러나 이 두 세력의 대립이야말로 개방을 침몰시키게 하는 거센 풍랑이 되고 암초가 될 수 있다는 것만은 분명해 보였다.
“이렇게 가다가는 개방의 전통이 퇴색되어 재물에 눈이 먼 소인배들만 남게 될 것이니 정말 큰일이 아닐 수 없소.“
서막붕은 진정으로 걱정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네게 은자 한 상자를 푼돈 내듯 하사한 것을 보면 예강이 쏟아 부운 자금이 어느 정도인지 대략 짐작은 가는구나. 그러나 아무리 재력있는 금성문이라 하더라도 이렇게 퍼내다 보면 바닥을 보이는 것은 시간 문제일텐데...]
홍후인의 말처럼 예강은 무리하는 경향이 있었다.
아무리 금맥을 발견하여 개발했다고는 하지만, 물(水)과는 다르게 금(金)은 펑펑 쏟아져 나오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홍후인은 장사꾼의 기질상 분명 개방을 이용하여 얻는 이득이 있을 것이라고 단정짓고 있었다.
위현룡은 왠지 표류하는 개방이 안 되었다는 심정이 들었다.
(만약 예강과 서막붕의 세력이 힘을 합친다면 개방은 무림의 하늘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헛된 것일까...이들의 세력다툼이 애꿎은 사람들에게 피바람을 안기는구나...)
그는 깊은 한숨을 내쉬다가 당당한 모습을 잃지 않고 있는 서막붕에게 물었다.
“하지만...그렇게 예강의 세력이 확대되었다면 이미 늦은 것이 아닙니까? 장로님께서 그런 식으로 자금을 확보하고 고군분투(孤軍奮鬪)를 하신다 한들 한번 넘어간 개방 형제들이 쉽게 돌아오리라는 보장이 없지 않습니까...“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오.”
미소를 띄운 서막붕은 갑자기 손짓을 하여 누군가에게 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맨 뒤에서 한 명이 무거워 보이는 목함(木函)을 두 손으로 받힌 채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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