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혼환령검(鬼魂幻靈劍) - 귀혼검법(鬼魂劍法) <08>
자객은 자신의 정체가 생판 모르는 자(者)에 의해 간파 당하자 적이 놀랐다.
그리고는 격전중이라는 것도 잠시 잊은 채 동작을 멈추고 묻기에 이르렀다.
“누군데 나를 아는가?”
위현룡은 자신이 인면피구를 쓰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는 급히 그것을 한 손으로 떼어내 본 모습을 드러냈다.
“단대인! 접니다! 청성파에 위현룡입니다.”
인면피구가 바닥에 떨어지면서 낯익은 얼굴을 발견한 단중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리고는 기쁨에 가득 찬 음성으로 외쳤다.
“현룡이가 아니냐!!”
“단대인! 이게 얼마만 입니까!!”
단중은 반가움에 몸을 떨면서 위현룡의 손을 덥석 잡아 쥐었다.
“이런데서 너를 만나게 되다니 실로 꿈만 같구나!!”
“저 역시 단대인을 이런데서 만났다는 것이 믿어지지가 않습니다.”
위현룡의 두 눈가에는 눈물까지 그렁그렁 맺히고 있었다.
그러나 곁에 있던 홍후인의 얼굴은 살기로 가득 덮이고만 있었다.
[이놈....단중....]
지하밀성에서 자신을 죽음으로 몰고 간 세 명중 한 명인 단중임을 알아본 홍후인의 속은 살심(殺心)으로 활활 타올랐다.
[단중!! 이놈!! 죽여 없애버릴 것이다!!]
순간 위현룡의 검이 부르르 떨기 시작했다.
귀혼심법은 아직도 운행되고 있는 중이었으므로 홍후인이 그의 검을 조종하기란 어렵지 않았다.
단중과의 해후에 정신 팔려 있는 위현룡은 이런 기미를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위현룡의 검과 단중과의 거리는 지척(咫尺)이었기에, 홍후인의 능력으로 일초식만 빠르게 내지른다면 단중의 사혈(死穴)쯤은 가볍게 관통시킬 수가 있는 것이었다.
더군다나 단중은 위현룡을 완전히 믿고 있는 탓에 모든 경계를 풀고 있었으므로 이 상황에서 암살이란 손쉬운 일거리에 불과했다.
[내가 이 날을 얼마나 고대해왔던가!! 원수놈들을 처치하지 않고는 절대 편하게 눈을 감지 못할 것이다!! 단중! 이놈! 죽어라!!]
홍후인은 온갖 저주를 퍼부으면서 위현룡의 검을 꽉 움켜쥔 채 부들거리고 있었다.
그런데....참으로 이상했다.
마음속으로는 몇 천 번도 찔러 죽일 수 있을 것 같은데 행동이 전혀 따라주지 않고 있는 것이었다.
홍후인은 살심을 잃지 않으려고 부단하게 노력했으나 몸은 목석처럼 굳어져만 갔다.
그리고 근래에 위현룡이 저렇게 기뻐하는 모습을 본적 없었다는 생각만이 계속해서 마음 한구석을 맴돌고 있었다.
어떻게 해서 단중과 저렇게 친밀한 관계가 되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만약 여기서 단중을 제거해버리게 되면 위현룡의 상심이 커지고 자신을 원망할 것이라는 괴로운 걱정이 먼저 떠올랐다. 그렇지만 이 절호의 기회를 놓친다는것 또한 도저히 있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빌어먹을....]
심한 갈등을 하던 홍후인은 아쉽지만 위현룡과의 정(情)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반쯤 자포자기를 해버렸다. 그러나 분풀이는 해야겠다는 듯, 그의 입에서는 계속해서 독살스런 저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좋다...이번은 그냥 넘어간다. 그러나 단중 네놈은 내 손에 반드시 죽을 것이다!]
그 동안 위현룡과 동행하면서 조금씩 동화되기 시작한 홍후인의 성품은 많이 변해 있었다. 홍후인도 자신이 많이 나약해졌음을 인식하고는 있었지만 대놓고 인정하고 싶지는 않았다. 자신이 무림에서 얼마나 대단한 존재였는데 겨우 이런 무림 초출의 영향 아래 놓인단 말인가.
[이번만 넘어가 주는 거다. 다음번에 기회가 생기면 어림없을 것이다!]
이런 굳은 결심을 가슴속에 끊임없이 새기던 한 홍후인은 슬그머니 눈길을 돌리면서 위현룡에게 말했다.
[이런데서 호들갑떨기에는 이목(耳目)이 두렵지 않느냐!]
그의 말에 정신이 번쩍 난 위현룡은 낮고 빠른 목소리로 말했다.
“단대인! 이곳은 왕래가 빈번한 곳이니 다른 곳으로 이동해야겠습니다!”
“오냐! 네 말이 옳구나!”
단중도 상황파악을 잠시 못한 불찰을 깨닫고는 급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 곳의 내부는 제가 잘 알고 있으니 저를 따라오십시오!”
위현룡이 먼저 바람처럼 몸을 날려 방향을 잡자 그 뒤를 단중이 따라 경공을 전개했다.
두 사람이 떠난 자리에는 스산한 바람과 적막으로 채워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무렵 한 사람의 모습이 유령처럼 솟아났다.
-흑대협.
그는 처음에 위현룡이 자객이 숨어있을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던 높은 탑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하마터면 저 녀석에게 들킬 뻔했군.”
개방 총타의 방비를 책임지고 있던 그도 단중의 침입을 목도하고는 이곳까지 미행하던 참이었다. 중도에 위현룡이 끼어 들어서 짜증나긴 했지만 그 대신 자객과 위현룡이 내통을 하고 있다는 뜻밖의 수확을 거두지 않았는가.
처음부터 위현룡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흑대협이었다.
“단대인이라....더군다나 그 녀석이 청성파 출신이라니...”
그들의 대화를 유심히 듣고 있었던 흑대협은 자객의 정체가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하다가 이내 날카로운 눈빛을 빛냈다.
“음...아무래도 마교의 잔당이라는 생각밖에는 안 드는군....그렇다면...설마 구출을 위해서?”
얼굴이 굳어진 흑대협은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의 신형(身形)은 연기처럼 한순간에 사라져갔다.
** **
위현룡과 단중이 도착한 곳은 조금 전 서막붕과 회합을 갖던 근처였다.
이미 이 근처에 인적이 매우 드물다는 것을 경험했기에 망설임 없이 단중을 이곳으로 인도한 것이었다.
“이 곳이면 안심하셔도 됩니다.”
위현룡은 근처에 못쓰는 목재를 주워 와서 단중이 편히 앉을 수 있게 고쳐 세웠다.
“고맙구나.”
급조한 의자였지만 그런대로 괜찮았는지 걸터앉은 단중이 이내 안도의 한숨을 깊게 쉬었다.
그의 얼굴에는 피로한 기색이 가득해 보였고 내력도 거의 고갈 상태인 것 같았다.
또한 한쪽다리에는 붕대가 감겨져 있었는데 간헐적으로 출혈이 있는지 붕대주위가 붉게 번져있었다.
“상처가 깊으신 것 같습니다. 안정을 취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위현룡이 근심어린 얼굴로 상처부위를 살피고 있자 단중이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근래에 수면은커녕 제대로 운기조식도 못했단다. 더군다나 정신적으로 초조해 있는 터라 버티는 것이 매우 힘겹구나.“
위현룡은 단중의 다리에 묶여 있는 붕대를 조심스럽게 풀어서 상처의 깊이를 살핀 다음 품속의 약병을 꺼내 들고 간단한 응급조치를 취했다.
잠시 그런 위현룡을 지긋이 바라보던 단중이 천천히 물었다.
“그런데 너는 어째서 이곳에 있는 것이냐?”
“이 곳은 개방 총타입니다.”
위현룡의 대답이 끝나자마자 단중이 즉각 반응했다.
“그 무슨 소리냐? 이곳이 무슨 개방이란 말이냐?”
보아하니 단중은 근래 개방에 대한 정보를 접하지 못한 것이 분명했다.
위현룡은 금성문과 개방 방주 예강을 언급하면서 그의 의문을 해소해주었다.
다 듣고 난 단중은 장탄식을 했다.
“어쩐지...이제야 대충 알 것 같구나....역시 금성문이 뒤를 봐주고 있었던 것이었어...”
위현룡은 이어서 자신이 개방에 들어오게 된 경위와 신분을 언급했고, 연이어 청성파에서 일어났던, 장문인에 관한 불미스런 일들을 막 설명하려 했다.
비록 억울한 누명을 쓰고 도피중이긴 했었으나 단중만큼은 자신의 편에 서서 믿어 주리라 여겨 그것에 대한 조언을 구해보자 했던 것이었다.
그러나 단중은 위현룡의 과거지사(過去之事)가 나올 것으로 알고 대화를 중간에 무 자르듯 끊어 버렸다. 그리고 재빨리 입을 말했다.
“현룡아! 우선 급한 일이 있으니 개인적인 대화는 다음에 하도록 하자꾸나. 난 지금 교주님의 여식인 소교주를 찾고 있다! 이곳에 감금되어 계시다고 들었는데 혹시 네가 아는 것이냐?“
그의 말에 위현룡은 깜짝 놀라면서 반문했다.
“그 여인이 정말 교주님의 여식이었단 말입니까?”
[음...교주한테 여식이 있는 줄 전혀 몰랐는데.....당시 주위에 있던 마교 인사들에게 내가 슬쩍 교주의 신상에 대해 물어본 적이 있었는데 그 누구도 교주의 처(妻)만 언급할 뿐 여식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았었다. 거 참 이상하군...]
홍후인도 의외라는 듯한 반응을 내보이고 있었다.
“그래! 네가 알고 있구나! 어디에 감금되어 계시느냐?”
위현룡의 어깨를 움켜쥔 단중의 손아귀에 거친 힘이 잔뜩 들어갔다.
매우 당황한 위현룡은 약간 뒷걸음질을 치면서 말했다.
“확실히 알지는 못하지만 대략 어디인지는 인식하고 있습니다.”
초반에 그들을 구출할 요량으로 개방 방주의 하수인노릇을 한 것이었으나 차마 그들을 사로잡는데 일조 했다는 말은 꺼낼 수가 없었다.
위현룡은 왠지 못할 짓을 했다는 생각 때문에 소교주라던 그 여인에게 미안한 마음을 금치 못했다.
“상태는 어떠하시냐?”
“부상자가 몇 명 생겼지만 소교주는 양호한 편입니다.”
그제야 단중은 안도하면서 놀란 마음을 진정하였다.
“제가 장로의 신분이니 그들을 구출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위현룡은 이런 말로 단중을 더욱 안심시켰다.
“고맙구나. 이런 넓은 곳에서 어떻게 해야 하나 앞이 막막했는데 이렇게 네 도움을 얻다니 정말 다행이 아닐 수 없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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