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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돌빼미
작품등록일 :
2016.08.05 15:38
최근연재일 :
2017.12.23 2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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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0.28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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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쪽

3부 표류하는 군도 - 재회 (12)

DUMMY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 꿈에서조차 들을 수 없었던 그 목소리가 자신의 머릿속에서 들려오자 윤성의 눈에서는 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제멋대로 눈물이 흘러나왔고, 그의 뇌는 자동 적으로 진아와의 과거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자신이 지키고 싶었던 첫 번째 사람. 함께하고 싶었던 사람. 그리고 지키지 못했던 사람.


진아와의 첫 만남서부터 그녀가 윤성을 구해내고 목숨을 잃었던 그 순간까지의 기억이 순식간에 펼쳐졌고, 윤성은 그 기억 속에서 진아가 목숨을 잃는 장면을 다시 한번 더 목격하자 머리를 쥐어뜯으면서 절규하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아아!”


베헤모스의 근처에서 윤성이 부화장의 코어를 파괴하는 순간을 바라보려던 레이첼과 메리는 코어가 모습을 드러낸 이후에 갑자기 윤성이 바닥에 쓰러져 버렸고, 그 뒤를 이어 처절한 윤성의 절규가 들려오자 망설일 틈 따윈 없다는 듯이 윤성을 향해 뛰쳐나갔다. 하지만 베헤모스의 거대한 꼬리가 그녀들의 앞을 막아섰고, 꼬리의 털들이 움직이면서 당혹스러워하는 그녀들의 몸을 속박해버렸다.


“무, 무슨 짓이야?!”

“뭐 하는 거야?! 베헤모스!”


생각지도 못했던 베헤모스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면서 레이첼과 메리는 베헤모스에게 자신들을 풀어줄 것과 갑자기 이런 행동을 하는 이유를 물었다. 인제 와서 아담의 명령대로 베헤모스가 행동할 것이라곤 생각지 않았다. 애초에 아담의 분신인 레기온을 죽인 것만 봐도 그가 아담의 명령을 듣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 수 있었다.


그렇기에 레이첼과 메리는 베헤모스에 대해 경계심을 풀었던 상태였다. 부화장까지 자신들을 옮겨주고, 어머니인 부화장의 죽음에 고통스러워하고, 슬퍼하는 모습을 진실 되게 보였었고, 자신들이 위기에 빠진 순간에 영웅처럼 나타나서 구해줬던 행동들이 그녀들로 하여금 베헤모스를 더는 괴물로 보지 않게끔 만든 것이었다. 하지만 베헤모스는 윤성이 부화장에게 뭔가 공격을 당한 것 같이 보이는 지금. 그녀들의 신뢰를 배신했다.


“이 지저분한 걸 당장 풀지 못해!”

“베헤모스! 윤성이···. 윤성이 위험하다고!”


털로 이루어진 촉수 속에서 필사적으로 발버둥을 치고 있는 레이첼과 메리. 하지만 베헤모스는 여전히 고개를 건물 바깥으로 내밀고, 눈과 귀를 양손으로 막고 있었기에 그녀들의 항의를 들을 수조차 없었다. 그저 이 순간이 빨리 끝나기만을 기도하듯이 쉴새 없이 입으로 뭔가를 중얼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한편, 머릿속으로 파고 들어오는 목소리가 안겨 주는 과거의 추억에 사로잡혀 있던 윤성의 귀에 레이첼과 메리의 외침이 들려왔고, 가까스로 과거의 추억에서 벗어난 윤성은 자신의 앞에 진아와 똑같은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부화장의 코어를 바라보며 이를 갈았다.


“···빌어먹을. 이것도 아담이 쳐놓은 함정이었냐?”


진아에 대한 추억을 떨쳐내려는 듯이 세차게 머리를 이리저리 흔든 윤성은 붉은 눈과 몸 주변을 휘몰아치는 냉기를 통해 자신의 고통스러운 과거를 드러나게 한 아담의 계략과 그 원인을 제공한 부화장의 코어에 어느 정도의 분노와 증오를 품고 있는지 여실히 보여주었다.


「함정은 아니에요···.」


또다시 윤성의 머릿속에 진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에 윤성은 더는 아담의 잔인한 계략에 속지 않겠다는 듯이 분노의 포효를 터트리면서 양손을 들어 자신의 귀를 찢어버리기 시작했다.


“끄아아아아!”


비명에 가까운 포효를 따라 윤성의 양쪽 귀가 얼굴에서 찢겨 나갔고, 또다시 붉은 피가 그의 얼굴과 몸을 적셔댔다. 하지만 윤성은 여기서 멈추지 않겠다는 듯이 손가락을 집어넣어서 귀 안쪽을 후벼 파기 시작했고, 그의 손가락을 따라 청각을 이루는 기관들이 길게 딸려 나왔다. 윤성은 어느 정도 그 기관들이 몸 바깥으로 나오자 이를 악물고 그것들을 뜯어내 버렸다.


적막이 다가왔다. 양쪽 귀를 뜯어내고, 그 안쪽의 기관들마저 끌어내 뜯어 버린. 이루 말할 수 없는 엄청난 고통이 윤성을 강습해왔고, 윤성은 처절한 비명을 내질렀다. 하지만 윤성 자신은 그 비명을 들을 수 없었다. 귀에서 흘러나오는 피의 감촉만을 느낄 수 있을 뿐. 그는 적막의 세계로 완전히 들어가 버린 상태였다.


‘이제···. 이제는···.’


하지만 마음속의 말은 여전히 들을 수 있었다. 양쪽 귀에서 느껴지는 고통 때문인지, 진아의 목소리 때문에 떠오른 과거의 악몽이 심장에 주는 고통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윤성은 눈물을 흘려대고 있었다. 그 눈물 때문에 흐릿한 시야 사이로 아직 진아의 모습이 보였다. 여전히 자애롭고, 아름다운 그녀의 모습을 한. 부화장의 코어를 바라보자 겨우 불길을 살려놓았던 분노와 증오가 식어가는 것을 느꼈다.


이에 윤성은 곧바로 양쪽 눈에 손가락을 쑤셔 넣기 시작했다. 스스로는 들을 수 없는 처절한 비명이 다시금 내뿜어져 나왔고, 그 비명이 점점 커지면서 윤성의 양쪽 눈이 본래 있어야 할 곳에서 벗어나 바깥으로 튀어나왔다. 그리고 양쪽 귀를 뜯어낼 때와 마찬가지로 윤성의 양손에는 붉은색의 눈알이 들려있었고, 윤성은 얼굴이 쪼개질 것만 같은 고통 속에서 가까스로 의지를 되찾아 그 눈알들을 터트려버렸다.


“하아···. 하아···. 하아···.”


윤성의 입은 비명과 포효를 더는 뿜어대지 않았다. 그거 주인이 들을 수 없는 거친 숨소리만을 내뿜고 있었다. 그리고 양쪽 눈까지 뽑아내어 적막뿐만 아니라 어둠까지 얻어낸 윤성은 만족스럽다는 듯이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이젠···. 이젠 더 이상 휘둘리지 않겠지···.’


시각과 청력을 잃어버렸지만, 아직 후각이 남아있었기에 윤성은 부화장의 위치를 정확하게 알 수 있었다. 아니 솔직히 후각으로 그녀의 위치를 잡을 필요까진 없었다. 부화장의 코어는 움직일 수 없으니 자신이 처음 본 그 자리에 그대로 있을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귀를 뜯어내는 과정에서 균형감각도 같이 잃어버렸기에 그가 부화장의 코어에 도달하기 위해선 후각에 의존해야만 했다.


‘어서···. 어서···!’


서둘러야만 했다. 자신의 육체를 이루는 저주스러운 능력이 눈과 귀를 회복시키기 전에 부화장의 코어를 파괴해야만 했다. 감히 그녀의 모습으로 나타나 자신을 홀리려고 한 증오스러운 코어를 철저하게 그리고 잔인하게 파괴해야만 했다. 눈과 귀에서 느껴지는 고통을 광기로 잊겠다는 듯이 윤성은 소름이 끼치는 웃음소리를 내뱉으면서 휘청거리는 몸으로 천천히 부화장의 코어를 향해 다가갔다.


「여전히 자신의 몸을 소중히 생각하지 않는군요···.」


또다시 들려오는 진아의 목소리. 그 목소리를 들은 윤성은 광기의 웃음소리가 끊긴 채로 제자리에 멈춰 서버렸고, 급격히 불안에 빠진 모습을 보이며 머릿속을 헤집고 들어오는 진아의 목소리를 어떻게 막을 것인지 필사적으로 생각했다.


「소용없어요. 이건 텔레파시니까. 난 당신의 마음속에 말을 걸고 있는 거예요.」

‘그렇다면···. 그렇다면···!’

「그만둬요. 자신의 심장까지 뽑아낼 생각인가요?」

‘네 녀석이 상관할 일이···!’

「어떻게 상관하지 않을 수가 있나요?! 내가 사랑했던 사람이 자해하는 상황인데!」


마치 예전의 그녀를 떠올리게 하는 듯한 강한 마음이 느껴지는 울림이 윤성의 머리와 심장을 강타했다. 그 때문에 더는 행동에 나서지 못한 채 머뭇거리던 윤성은 생각했다. 아담이 정말로 잘 만들어놨다고, 예전의 그녀처럼 너무나 잘 만들어놓았다고. 하지만 윤성의 그런 생각을 비집고 다시 진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그래요···. 아주 완벽하게 날 재생시켜 놓았죠···. 당신이 날 보면 그렇게 스스로 죽음으로 걸어가게끔···. 아주 잘 만들어놨어요!」


그 울림은 멈추지 않았다.


「당신이 내 앞에서 귀를 뜯고, 눈을 뽑아내는 걸 보면서 내 마음이 찢어지게끔! 그렇게 만들어놨어요! 예전처럼! 당신이 죽는 걸 볼 수 없었던 예전처럼!」


이에 윤성은 보이지 않는 그녀의 모습을 쫓아 고개를 움직였다. 마치 그녀를 바라보려는 것처럼. 그녀의 냄새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려 그녀와 눈을 마주치려 했다. 아무것도 없는 피를 쏟는 구멍을 통해서 그녀와 눈을 마주쳐 말하려 했다.


‘정말···. 정말 당신인가요?’


잠시 후에 진아의 대답이 들려왔다.


「그래요. ···나예요.」

‘어떻게···. 어떻게 당신이···.’


살아있느냐고. 그렇게 묻고 싶었지만, 윤성은 마음속으로도 그 말을 쉽사리 꺼낼 수 없었다. 먹먹해서. 너무나 마음이 먹먹해서 그녀에게 말을 걸 수가 없었다. 그러자 진아가 완성되지도 못한 윤성의 질문에 대답을 해주었다.


「검은 성벽에서 당신이 빠져나간 후에···. 그는 지하 탑의 잔해 속에서 날 꺼냈어요. 그는 내 기억을 추출했고, 시체가 되어버린 내 육체를 이용해서 이 부화장을 만들어냈어요. 그리고 부화장의 코어에 날 집어넣었죠. 그가 원하는 대로 괴물들을 낳게끔 날 다시 만들어냈어요.」

‘어째서···?’

「그는 날 배신자라고 불렀어요. 그의 지시를 어기고, 그의 첫 번째 마기를 죽게 한 원흉이라며, 날 죄인이라고 했죠. 하지만 자신은 관대한 신이니까. 내게 새로운 생명을 주고, 새로운 사명을 맡긴 거라고 했어요.」

‘그게 말이 돼요?! 이런···. 이런 게···!’

「그래요. 그는 자신이 선한 존재라고 포장해댔지만, 당신과 난 그 진실을 알죠. 그는 자신을 배신한 죄인에게 벌을 주는 것이에요. 기가스들을 태어나게 하면서 극심한 고통을 받게끔 해놓고 제가 고통받는 모습을 즐기려는 의도였을 거에요. 그리고 또 다른 이유는···. 그 악마가 무슨 생각을 한 것이었는지는 그때는 몰랐었지만···.」

‘뭐, 뭔가 다른 이유라도 있었던 거에요?’

「당신이요. 아마 그 악마는 당신이 나에게 도달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날 부화장으로 만들어놓은 거예요. 당신이 날 죽일 수 없을 거로 여기고, 보호책을 만들어놓은 거겠죠. ···그리고 당신이 나와 재회하면서 스스로를 죽음으로 몰아놓길 바란 거겠죠. 아니면 또다시 고통받게 만들려는 의도였을지도요.」


진아의 말을 들은 윤성은 아담을 향한 더욱 깊은 증오를 심장에 새기면서 몸을 떨었다. 어떻게, 어떻게 이렇게까지 잔인할 수 있는지. 당장 그 악마의 심장을 뜯어내 어떤 피가 흐르는지 확인해보고 싶을 지경이었다.


‘당장에···. 당장에 그 녀석을···!’

「그를 향한 분노를 불태우기 전에. 당신이 해줄 일이 하나 있어요.」


진아가 하려는 부탁이 무엇인지 윤성은 알 수 있었다. 그녀가 강렬히 원하는 소망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안돼요. 난···. 난··· 못해요. 그럴 수 없어요···.’

「해야만 해요. 당신이 날 죽여줘야만 해요.」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요! 내가···. 내가 어떻게 당신을 죽일 수 있겠어요! 내가 어떻게···!’

「···알아요. 이 일로 당신에게 얼마나 힘들지···. 제가 하는 부탁이 얼마나 이기적인지도 잘 알고 있어요.」

‘죽으려고 하지 마요···. 분명히···. 분명히 당신이 살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있을 거에요!’

「당신도 알잖아요. 그런 방법은 있을 수 없어요.」

‘말도 안 돼! 언제나···. 언제나 방법은 있는 법이야! 우리···. 우리가 아직 찾지 못했을 뿐이에요! 내가 반드시 찾아낼게요! 그 악마···. 그래! 그 악마를 붙잡으면 그 방법을 알려줄지도!’

「···정말? 그렇게 생각해요?」


필사적으로 진아를 되돌리려 하는 윤성의 소망을 짓밟는 것처럼 진아는 차갑게 물었다. 윤성 역시 말도 안 되는 방법이라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그 악마가 순순히 그 방법을 알려주거나, 그것을 실행할 일은 없었다. 그는 분명히 대가를 요구할 것이다. 모든 소설이나 영화에서 그랬듯이 악마와 거래를 하는 데에는 그에 상응하는 대가가 필요한 법이었으니까.


“제발···. 제발···. 당신을 죽이라는 말은 하지 말아줘요···.”


윤성은 이제까지 와는 다르게 무심코 입을 열어 말했고, 이제는 자신이 하는 말을 자신의 귀를 통해 들을 수 있었다. 그의 귀가 다 복구된 것이었다. 하지만 윤성에겐 그런 사실이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그저 진아가 죽음을 바라지 않기만을 바랐다. 간절히. 너무나 간절히 말이다. 하지만 그의 이런 갈망은 이루어지지 않는 꿈에 불과했다.


「해주세요···. 이 고통에서 날 해방해 주세요···. 날 자유롭게 해주세요···.」


윤성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맹렬하게. 그녀의 부탁을 들어줄 수 없다는 마음을 완강하게 표현하기 위해 맹렬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부탁해요···. 당신이 해줬으면 좋겠어요···. 당신의 손으로···. 나에게 영원한 자유와 평온을 주세요···.」

“안돼···. 안돼···. 그럴 순 없어요···.”

「난 이미 그때 죽은 사람이에요···. 악마에 의해서 영혼이 시체에 붙어있는 것뿐이에요···. 이기적인 부탁이란 건 알아요···. 당신이 얼마나 고통스러울지도 잘 알아요···. 하지만 당신이 내 부탁을 들어줬으면 좋겠어요···.」


진아는 잠시 뜸을 들인 후에 말을 이었다.


「내 마지막 소원이에요···. 과거에 당신을 사랑했고···. 당신을 위해 희생했던 여자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주세요.」


그녀의 확고한 마음과 의지. 그리고 깊은 소망에 윤성은 결국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그녀를 향해 천천히 발을 움직였다. 한 발짝씩. 한 발짝씩. 그녀를 향해 움직였다. 한 발짝씩 몸을 내밀 때마다 그의 심장이 찢기고, 터져나갈 것만 같은 고통이 엄습해왔다. 아직 복구되지 않은 그의 눈구멍 속에서 눈물처럼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제껏 맛보지 못했던 너무나 큰 고통에 윤성은 바닥에 쓰러졌다가 일어서길 반복하면서 천천히, 아주 천천히 진아를 향해 다가갔다.


외면하고만 싶었지만, 외면할 수 없는 그 순간이 다가왔다. 윤성의 바로 코앞에 진아가 있었다. 차마 손을 올리지 못하고, 피눈물만 흘려대며 슬퍼하고, 좌절에 빠진 윤성에게 진아가 말을 걸었다.


「미안해요···. 이런 이기적인 부탁을 해서···. 미안해요···. 당신에게 큰 상처를 줘서···. 미안해요···. 당신을 힘들게 해서···. 미안해요···. 미안해요···.」


진아는 유일하게 움직일 수 있는 부위인 얼굴을 움직여 윤성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가져다 대었다. 찐득한 감촉만이 전해졌지만, 윤성은 그 입술을 떠나보내지 않겠다는 듯이. 이 감촉을 영원히 기억하겠다는 듯이 필사적으로 그녀의 입술을 훑었다.


영원히 이 순간이 멈췄으면 싶은 윤성의 소망과는 다르게 진아는 그의 입술에서 벗어나려 했고, 윤성은 무의식적으로 그녀의 얼굴을 잡았다. 그러자 진아는 깊은 슬픔 속에 자유와 안식. 그리고 생의 마지막에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다는 행복을 담은 목소리로 윤성에게 말했다.


「···이제 보내주세요.」

“크으윽···. 으어어어어···으아아아!”


윤성은 슬픔과 절망으로 울부짖으면서도 그녀의 얼굴을 쥐고 있는 손을 놓지 않았다. 그녀가 간절히 원하는 소망을 들어줄 시간이었다. 악마에게 농락당하고 고통받은 그녀의 영혼을 본래 있어야 할 곳으로 돌려 보내줄 시간이었다.


「사랑했어요. 윤성씨.」


진아의 유언이 될 마지막 말. 그 말을 신호로 윤성은 순식간에 그녀의 목을 손으로 베어버렸다. 최후의 순간에 그녀가 고통받지 않도록. 고통으로만 얼룩져있는 그녀의 삶의 마지막에 고통을 안겨주지 않기 위해서 온 힘을 다해 그녀의 목을 베었다.


더는 진아의 목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오직 자신이 내뱉는 슬픔과 절망만이 귓가에 맴돌 뿐이었다. 깊고 깊은 그 슬픔과 절망 속에서 윤성은 손을 움직여 자신이 떨어뜨린 진아의 머리를 찾았다. 그리고 행여나 부서질까 조심히 그녀의 머리를 품 안에 끌어안았다.


차츰 눈이 복구되고, 어둠이 걷히면서 윤성은 진아의 얼굴을 보았다. 더없이 행복함이 가득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는 떠나갔었다. 예전처럼 아름다웠던 그대로. 윤성의 심장을 두근대게 했던 그 미소를 지은 채로 진아는 떠났다.


“으아아아아아아!”


윤성은 절규했다. 슬픔과 절망 속에서 절규했다. 어째서. 어째서 자신의 눈을 뽑아버렸던 것인지 깊이 후회됐다. 어째서 그녀의 마지막 순간을 보지 못했던 것인지 후회가 됐다. 그녀를 만났는데. 그리워하던 그녀를 만나게 되었는데. 어째서 자신은 그것을 순순히 받아들이지 못했는지 스스로에 대한 경멸에 고통스러워했다.


그렇게 그는 오랜 시간을 절규했다. 자신의 소중했던, 지키지 못했던 사람을 자신의 손으로 끊어버린 운명을 저주하면서 절규했다. 부디 그녀가 평온을 찾았기를 바라면서 절규했다. 마치 이 세상이 끝날 때까지 이러고 있겠다는 듯이 그의 절규는 계속되고 있었다. 품에 안은 진아의 얼굴에서 흐르는 피가 굳어버리는 그 순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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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4 3부 표류하는 군도 - epilogue 17.12.23 336 5 13쪽
243 3부 표류하는 군도 - 가라앉는 섬 (8) 17.12.21 225 2 15쪽
242 3부 표류하는 군도 - 가라앉는 섬 (7) 17.12.19 190 4 14쪽
241 3부 표류하는 군도 - 가라앉는 섬 (6) 17.12.16 179 2 15쪽
240 3부 표류하는 군도 - 가라앉는 섬 (5) 17.12.14 209 2 13쪽
239 3부 표류하는 군도 - 가라앉는 섬 (4) 17.12.12 203 3 13쪽
238 3부 표류하는 군도 - 가라앉는 섬 (3) 17.12.09 220 2 12쪽
237 3부 표류하는 군도 - 가라앉는 섬 (2) 17.12.08 219 3 13쪽
236 3부 표류하는 군도 - 가라앉는 섬 (1) 17.12.05 174 2 13쪽
235 3부 표류하는 군도 - 치유되지 않는 상처 (13) 17.12.02 196 2 18쪽
234 3부 표류하는 군도 - 치유되지 않는 상처 (12) 17.12.01 226 3 16쪽
233 3부 표류하는 군도 - 치유되지 않는 상처 (11) 17.11.28 209 3 12쪽
232 3부 표류하는 군도 - 치유되지 않는 상처 (10) 17.11.21 186 2 17쪽
231 3부 표류하는 군도 - 치유되지 않는 상처 (9) 17.11.18 205 3 14쪽
230 3부 표류하는 군도 - 치유되지 않는 상처 (8) 17.11.16 216 2 16쪽
229 3부 표류하는 군도 - 치유되지 않는 상처 (7) 17.11.14 214 2 15쪽
228 3부 표류하는 군도 - 치유되지 않는 상처 (6) 17.11.13 223 3 15쪽
227 3부 표류하는 군도 - 치유되지 않는 상처 (5) 17.11.09 231 2 15쪽
226 3부 표류하는 군도 - 치유되지 않는 상처 (4) 17.11.07 208 4 13쪽
225 3부 표류하는 군도 - 치유되지 않는 상처 (3) 17.11.04 217 2 13쪽
224 3부 표류하는 군도 - 치유되지 않는 상처 (2) 17.11.02 216 3 13쪽
223 3부 표류하는 군도 - 치유되지 않는 상처 (1) 17.11.01 237 2 15쪽
» 3부 표류하는 군도 - 재회 (12) 17.10.28 253 3 17쪽
221 3부 표류하는 군도 - 재회 (11) 17.10.26 202 2 14쪽
220 3부 표류하는 군도 - 재회 (10) 17.10.24 220 3 14쪽
219 3부 표류하는 군도 - 재회 (9) 17.10.21 237 3 15쪽
218 3부 표류하는 군도 - 재회 (8) 17.10.19 245 2 13쪽
217 3부 표류하는 군도 - 재회 (7) 17.10.17 235 3 15쪽
216 3부 표류하는 군도 - 재회 (6) 17.10.14 240 3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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