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erior Strugg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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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13.01.31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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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1.10 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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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2.06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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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매칭 (2)

DUMMY

어느 정도 상황이 정리되자 크레베스가 헛기침으로 주의를 끌고 A반 모두를 둘러보며 말했다.

“여러분의 생각도 이해는 됩니다. 저도 어릴 땐 그렇게 생각했으니까요. 하지만 지금은 다른 세상입니다. 엠펠로니아의 침공. 그리고 드래곤의 로베른 공습. 앞으로 어떤 재앙이 닥칠지 모르는 게 바로 현실입니다. 이런 상황에 아직도 신분을 운운해서 과연 로베른을, 그리고 인류를 지키는 검과 방패가 될 수 있겠습니까?”

소렌의 분노와 크레베스의 진중함이 뒤섞여 분위기가 숙연해진다. 에럴드를 위시한 모두가 대역죄인처럼 고개를 푹 숙이고 크레베스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있다. 소렌 역시 검집에 손을 얹고 얌전히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여기서 이야기를 제대로 듣지 않는 건 나뿐인가? 나는 서역인을 지킨다는 것에 어떤 숭고한 것을 느낄 수도 없었고 크레베스의 말도 별로 와 닿지 않았다. 나는 아직 무림의, 천의검문의 사람이라는 생각이 더 강해서일까? 어쩌면 이건 멜븐이 아닌 도군으로서의 삶을 택한 이상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왜 제가 폰테일 양 뿐만 아니라 도군까지도 당신들의 거울로 삼았는지 생각해보고 또한 명심하세요. 또한 폰테일 양이 나설 필요도 없이, 앞으로 신분을 운운하는 자는 가문을 따지지 않고 무조건 하이스쿨에서 쫓아내도록 하겠습니다.”

단호한 경고를 던진 크레베스가 자리를 떠나고 나와 소렌, 그리고 A반만이 수련장에 남았다. 크레베스가 자리를 떠나자 수련장은 약간 어수선한 분위기가 된다. 다들 소렌과 나를 힐끔힐끔 쳐다볼 뿐이었다. 안타깝군. 사과란 것을 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으니 다들 서로 눈치만 보고 있다. 어쩌면 사과를 해야 한다는 사실 자체를 깨닫지 못했을 수도 있지.


그때 에럴드가 내 쪽을 바라보고는 머뭇거리면서 다가와 얼굴을 붉힌다. 그러기를 잠시. 다른 이들의 눈치를 보던 에럴드는 성큼성큼 걸어와 내게 악수를 청해왔다. 개중에는 가장 나은 녀석이군. 첫 인상과는 달리 근본적으로 틀려먹은 놈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냥 평범한 귀족처럼 행동했을 뿐이겠지.

“미안하군. 지금까지 고작 신분에 얽매여 너를 업신여긴 걸 사과한다. 앞으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 그리고 폰테일 양께도 사과드립니다.”

“괜찮아. 난 그런 일은 별로 상관하지 않으니까. 서로 편하게 지내자고.”

나는 손을 내저으며 에럴드의 사과를 받아들였다. 어차피 에럴드는 내 안중에도 없는 녀석이고. 저런 녀석이 뭐라고 하든 내 실력은 변하지 않는다. 반면 소렌은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았지만 독설을 내뱉지 않는 것으로 보아, 에럴드의 사과를 받아들이기는 한 것 같다.

에럴드는 그걸 모르는지 소렌이 대답도 하지 않자 안절부절 못하고 소렌의 눈치만 살피고 있었다. 그나저나 고작 몇 마디에 이렇게 쉽게 감화되는 것도 참 신기한 일이다. 아직 어린 소년소녀들이라 그런 걸까?

“에럴드, 매칭 연습은 언제부터 해야 하는 거지?”

소렌의 질문에 에럴드는 다행이라는 듯 작게나마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대답이 나오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매칭은 4주 후에 치러지며 총 4주간 치러집니다. A반은 그중 첫째 주에 매칭이 이루어지니 앞으로 4주가 남았다고 보면 됩니다. 그리고 제 생각에는....”

에럴드가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도군이 남자들과 대련을 하고 폰테일 양이 여자들과 대련을 하는 게 좋다고 봅니다. 성비도 그리 차이가 많지 않고 무엇보다 실제 매칭도 남자는 남자와, 여자는 여자와 대련을 치르니까요.”

“흠, 그렇다면 대련 상대의 수는 나와 도군 중 누가 더 많지?”

“예. 그건 남자가.....”

청산유수로 대답하려던 에럴드가 순간 흠칫 놀라며 침묵한다. 아예 이해할 수 없는 질문에 당황한 거겠지. 소렌이 귀찮은 걸 싫어한다면 숫자를 조금 줄여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지 않을까? 그때 어디선가 헐레벌떡 뛰어오는 소리가 들리더니 한 소녀가 엉망이 된 드레스를 정리하는 동시에 에럴드의 앞을 가로막으며 화사하게 웃으며 말했다.

“남자가 더 적어요. 에럴드 너는 멍청하게 그것도 모르니? 그렇게 멍청하니까 혼나지.”

“끼어들지 마, 르네. A반의 반장은 나야.”

“A반에 반장이 어딨어. 네가 스스로 자처하는 거잖아.”

여자 치고는 상당히 큰 키에 치렁치렁한 드레스를 입고 여기저기에는 장신구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실용성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없는 드레스군. 단정하고 움직이지 편한 옷을 입은 소렌과 무척 대조되는 옷이었다.

르네라는 소녀는 연신 에럴드를 쪼아대더니 나와 소렌의 시선을 느끼고는 돌연 기품 있는 미소를 지으며 드레스를 살짝 들어 올리며 인사를 건넸다.

“두 분 모두 안녕하신가요? 그리고 지각해서 죄송해요. 제가 가문의 행사 때문에 늦지만 않았어도 저 멍청한 에럴드를 막을 수 있었을 텐데요. 부디 쟤를 용서해 주시겠어요?”

“저리 가서 놀아! 난 지금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단 말이다.”

에럴드가 발끈하며 끼어들려 했지만 르네도 지지 않고 언성을 높였다.

“문제아 주제에! 아르네한테 네가 무슨 소리를 했는지 다 들었거든? 너야말로 저기 가서 속 좁은 사람들하고 같이 평민 욕이나 하지 그래? 나는 절대 신분 가지고 치사하게 굴지 않으니까!”

티격태격하는 에럴드와 르네를 바라보니 여태까지 있던 일이 다 장난이었던 것 같군. 이걸로 소렌의 기분이 조금 풀렸으면 좋겠다. 나는 무심코 소렌을 돌아보았고 그러다 우린 서로 눈이 마주쳤다. 소렌의 푸른 눈을 보니 내 검은 눈이 푸른빛에 물드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소렌은 반대편으로 고개를 훽 돌려버린다. 아직 대련에서 진 게 마음에 남아있는 걸까?

“저기, 폰테일 님. 여자가 더 많은데 괜찮으시겠어요?”

에럴드의 입을 확 틀어막으며 르네가 소렌에게 물었다. 소렌은 무성의한 듯 딱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많은 쪽이 좋아. 신경 쓰지 않아도 돼.”

이 귀찮은 일이 좋다니, 설마 이런 걸로 나한테 경쟁의식을 불태우고 있는 건 아니겠지? 난 결코 천재 같은 게 아니라 소렌이 저런 식으로 나오면 조금 부담스럽다. 그 대련은 천의결 없이 싸웠다면 무조건 졌을 승부였는데 말야. 소렌이 나를 인정할수록 점점 죄의식마저 느껴진다. 다음에 다시 대련을 치른다면 천의결 없이 겨룰 생각인데 그때 과연 나는 소렌을 이길 수 있을까?


나는 그날부터 하루에 몇 명씩과 대련을 치렀다. 하이스쿨에서 검만 가르치는 건 아니기에 본래 하이스쿨 학생들이 쓰는 무기는 여러 종류였고 마법을 배우는 이들까지 치면 그 종류는 정말로 다양하다. 그러나 귀족가의 자제들이 대부분인 A반은 남녀를 불문하고 전부 검을 쓰고 있다. 나로서는 그 점이 조금 아쉬웠다. 마법이란 것을 어떻게 검으로 파훼할지 고민해보는 것도 꽤 흥미로운 일이었으니까.

대련은 정말로 무난하게 이어졌고 나는 당연히 연승가도를 달렸다. 예상하던 일이기에 기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불쾌하지도 않았다. 다만 지루할 뿐. 그나마 검과 방패를 함께 사용하는 이들과 대련하는 셋째 날이 되니 조금 덜 지루했다. 오히려 약간 궁리를 하기도 했으니까.

“하아압!”

물론 고전했다는 건 아니다. 나는 방패를 앞세워 돌진하는 소년을 보며 급기야 식상함마저 느꼈다. 앞의 두 사람이 깨지는 걸 보면서 이 방식이 통하지 않는다는 걸 못 배운 건가? 별로 빠르지 않은 돌격은 그냥 피해버리면 그만인 것을.

수비만 일관하며 지루함을 느낀 나는 꽤 대담한 도전을 감행하기로 했다. 이대로 공격을 피하는 대신 이 차징(Charging)이라는 기술을 정면에서 깨버리기로 한 것이다.

빈틈을 찾기 위해 몇 번 정도 정면으로 공격을 버텨내니 나는 이 소년의 방패가 미묘하게 오른쪽으로 균형이 흐트러져 있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알아내는 데는 조금 오래 걸렸지만 알아챈 이상 결과가 나오는 건 금방이었다.

나는 제자리에 서서 천천히 숨을 고른 다음, 한순간 숨을 멈추고 방패의 오른쪽을 찔렀다. 쾅 소리와 함께 균형을 잃고 소년이 주춤한다. 이어서 검영연파의 구결을 되새기며 연달아 방패를 때리자 아예 방패를 놓친 소년은 이어진 내 공격에 얻어맞고 바닥을 굴렀다. 허무하군. 그렇게 연이어 일곱 번이나 차징을 파훼한 뒤에야 오늘의 대련이 끝이 났다.


나는 에럴드가 준비해 준 물수건으로 땀과 먼지를 대충 닦아내고 몸을 풀었다. 차징을 파훼하는 것처럼 가뭄에 콩 나듯 소소한 재미를 느낄 수는 있었지만 전체적으로는 너무 지루했다.

소렌과 극한의 대련을 펼친 다음이라 그런지는 몰라도 나는 이들이 과연 수련이란 걸 하는지조차 의심스러웠다. 게다가 평소하곤 달리 목검을 쓰다 보니 이게 대련인지 놀이인지도 헷갈릴 지경이다. 차라리 그 시간에 내공이나 더 쌓고 검의를 궁리하는 게 더 나았을까?

그러다 나는 문득 내 자신이 꽤 건방진 생각을 한다는 것을 자각했다. 소렌에게 이길 자신도 없는 주제에 권태라니. 이따위로 자만하기 위해 다시 무공을 익힌 건 아니잖아. 소렌과 함께 수련하면서 얻은 성취만큼은 아니더라도 A반과의 대련에서 아주 얻는 게 없는 게 아니고.

“전생에서는 내가 못났다면 지금은 주변이 못나서 변변치 않은 짓만 거듭하는 건가?”

기숙사로 돌아가는 길에 나도 모르게 내뱉은 혼잣말은 그야말로 개소리다. 하이스쿨에 들어오지 못한 비운의 천재들이 듣는다면 내 사지를 찢어발겨도 할 말이 없을 테지. 나는 갑자기 몰려오는 부끄러움에 짜증이 밀려와 혼자서 머리를 마구 헝클었다.

그 따위 생각이나 하고 있는 걸 보면 알게 모르게 많이 지쳤던 모양이다. 빨리 방으로 돌아가서 쉬고 싶다. 뜨끈한 물로 몸을 씻고 나면 졸음이 올 테고 한숨 자고나면 나는 다시 내일을 시작할 수 있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기숙사로의 걸음을 재촉했다.




감상이나 비평은 언제나 환영합니다.


작가의말

금요일까지 2편씩 올려서 비축분 전부 올리겠습니다.

그 이후로는 연재가 조금 늦어질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노력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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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2. 새로운 삶 (6) 13.02.05 7,661 136 10쪽
11 2. 새로운 삶 (5) 13.02.05 7,768 136 13쪽
10 2. 새로운 삶 (4) +4 13.02.04 8,818 208 13쪽
9 2. 새로운 삶 (3) +8 13.02.03 9,909 230 10쪽
8 2. 새로운 삶 (2) +2 13.02.03 8,916 147 12쪽
7 2. 새로운 삶 (1) +11 13.02.02 12,543 227 11쪽
6 1. 천하제일의 둔재 (6) +13 13.02.01 11,727 217 12쪽
5 1. 천하제일의 둔재 (5) +15 13.02.01 8,774 131 10쪽
4 1. 천하제일의 둔재 (4) +17 13.02.01 8,633 127 11쪽
3 1. 천하제일의 둔재 (3) +6 13.01.31 9,560 133 17쪽
2 1. 천하제일의 둔재 (2) +4 13.01.31 11,371 147 14쪽
1 1. 천하제일의 둔재 (1) +12 13.01.31 18,719 303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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