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erior Strugg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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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13.01.31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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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2.03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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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새로운 삶 (3)

DUMMY

“너는 오리엔트 출신 아닌가? 아니면 그곳 사람과의 혼혈이겠지.”

무슨 소리야? 서역에서 오리엔트란 바로 무림을 지칭한다. 어떻게 보면 맞는 말이기는 한데 어째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블로펜은 상당히 헛다리를 짚고 있는 것 같았다.

“아스트리다처럼 평범한 사람은 모르겠지만 내 정도의 수준이라면 네 안에서 약동하는 응축된 마나를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오직 오리엔트에서만 마나를 응축해서 활용하지. 거기서는 그걸 내공이라고 부르던가? 게다가 네 이름. 도군이라는 이름 역시 오리엔트식 이름이지.”

꿈보다 해몽이라더니. 나는 엉겁결에 고개를 끄덕였고 블로펜은 짧게 깎은 턱수염을 쓰다듬더니 말했다.“오리엔트는 마나수련을 중시하는 곳이니 어린 나이에 어떻게 그 수준에 오르는 게 불가능한 건 아니지.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 왜 오리엔트 출신이 이곳에 있는지 사정을 들어보아야겠다.”

“.......알겠습니다. 말씀드리죠.”

일단 마음을 진정하기 위해 천의결을 운용하자 머리가 맑아지며 적당한 이야기가 떠오른다. 멜븐은 5살 즈음에 고아원에 왔으니 사실 그의 과거는 본인 외에는 아무도 모른다. 과연 내 이야기가 블로펜에게 통할지는 미지수지만 아무튼 해보는 수밖에.

“생각하신대로 저는 서역인인 어머니를 두고 있는 혼혈입니다. 아버지께선 세상을 등지고 은거하신 분들이라 이름은 밝힐 수 없지만 그분께 원한이 있는 자들이 계속해서 은거지를 찾아와서 결국 서역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어머니를 만나셨고요. 하지만 원한을 가진 자들은 여기까지 쫓아와서 아버지를 위협했고 결국 부모님은 저를 고아원에 맡기고 그들과의 은원을 해결하러 가셨습니다. 그리고.....”

나는 거짓말을 하는 와중에 정말로 아버지가 떠올라 가슴이 복받쳐 올랐다. 내가 죽은 걸 아신 아버지는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블로펜이 그런 나를 묵묵히 응시하다가 말했다.

“아무리 신변이 위험해도 엠펠로니아와 가까운 로베른에 아이를 맡긴다는 건 솔직히 믿기지 않는다. 하지만 네 마나를 보니 적어도 네가 엠펠로니아와 관련된 것 같지는 않구나.”

이러니저러니 해도 통한 건가? 블로펜은 서랍에서 서류를 한 장 꺼내 뭔가를 적어 내려가며 말을 이었다.

“사실 아스트리다가 다짜고짜 널 장학생으로 만들어 달라고 해서 사정을 물은 거니 이해해라. 장학생에게 결격사유가 있는지 파악하는 관례 같은 거지. 그리고 네 정도 실력이면 애매한 출신성분 정도는 내가 고집불통 노인네들만 잘 설득하면 해결될 테니 장학생이 되는 데에는 별 문제가 없을 거다.”

“그 장학생이라는 건 뭔가요?”“말 그대로다. 하이스쿨이 아무리 왕립기관이라고 해도 공짜로 운영되지는 않지. 장학생이 되면 아무 비용 없이 하이스쿨을 졸업할 수 있다. 고아인 너로서는 이런 제도의 힘을 빌리는 편이 훨씬 이로울 테고.”

그렇군. 돈 문제를 생각하지 못했어. 아무리 못났어도 천의검문의 소문주인데 돈 걱정을 한 적은 없었고 그건 고아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아무것도 모르고 하이스쿨에 입학했다간 바로 쫓겨날 뻔 했군. 운이 좋았어.

-이 모든 것이 혼돈의 사도가 되는 길일지니.

내 안에서 잠자코 있던 혼돈의 기운이이 슬쩍 요동치며 이런 행운이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고 지껄였다. 무공을 익힌 뒤론 잘 나타나지 않던 것이 오래간만에 나타나서는 개소리를 떠드는군. 평소라면 아무 걱정 없이 혼돈의 헛소리를 무시했겠지만 혼돈의 기운이 발각될 수 있다는 가능성에 흔들린 마음 탓인지, 혼돈이 단순한 헛소리를 한 게 아니라 진실을 말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대체 왜 멜븐이 혼돈의 사도의 몸으로 선택된 것인지 생각해보면 간단한 이야기였다. 멜븐이 특이해서가 아니라, 단지 블로펜의 아내가 그곳의 고아원장이었기에 멜븐의 육체가 선택된 것일 수도 있었다. 정말로 그렇다면 내가 하이스쿨에 입학하고 장학생이 되는 과정까지 모두 혼돈의 사도가 본래 걸어야 하는 길이었다는 거지.

빌어먹을, 추측만으로 하이스쿨을 때려 치기에 이 기회는 너무 아깝다. 생각 같아선 혼돈의 의도와 정반대로 나가고 싶었지만 이런 기회가 흔한 게 아니라는 건 충분히 잘 안다. 제기랄, 사도의 길? 그딴 건 없다. 내가 갈 길만 있을 뿐. 혼돈이고 뭐고 날 조종하려 한 걸 후회하게 해주겠어. 그때까지 이 길은 얼마든지 쓰다 버려주지. 그렇게 각오를 다지고 나는 천의결을 운용해 혼돈을 다시 마음 한구석에 억류해 두었다.

“아직 이해가 되지 않는 건가?”

“아, 아닙니다. 돈 문제를 어떻게 해야 하나 생각했었는데 이렇게 해결돼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떠오르는 대로 얼버무리고는 어설픈 미소를 지어 보였다. 블로펜은 별다른 의심 없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문 밖에서 기다리던 원장을 불렀다. 원장이 들어오자 블로펜은 작성을 마친 서류를 원장에게 건네주었다.

“장학증서다. 은행에 가져가면 다 알아서 처리될 거다.”

“어머, 벌써 이사회의 승인이 난 것도 아닌데 서명부터 해도 되나요?”

“은행에 갈 때쯤엔 승인이 나게 하면 되는 일이니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그야말로 패기 넘치는 한마디였다. 생각보다 하이스쿨에서 교장인 블로펜의 입지는 상당한 것 같았다. 그리고 정말로 은행에 갔을 때에는 아무 문제없이 서류가 처리되어 있었다. 원장은 그런 남편의 칭찬을 한 가득 읊고서는 싱글벙글 웃었다. 그 미소도 잠시. 오후가 되자 원장은 나를 하이스쿨 기숙사에 데려다 주고는 갑자기 우거지상이 된 채, 우는 것도 웃는 것도 아닌 표정으로 작별을 고했다. 나는 가슴이 조금 아릿해지는 것 외에는 별다른 느낌이 없었다. 작별의 슬픔보다는, 미래에 대한 기대가 슬픔이라는 감정을 거의 다 덮어버린 것 같았다.

장학생이라 그런 건지 원래 그런 건지는 모르지만 나는 독실을 쓰게 되었다. 외로움을 타지 않는 성격이라 다행이군. 기숙사에서 하루를 지내고 나는 책상 위에 있던 일정표를 집어 들고 천천히 그것을 읽어나갔다. 아직 격식 있는 문장을 읽을 정도로 이곳의 언어를 이해한 게 아니라 나는 온갖 인상을 찌푸리며 일정표를 읽어 내려갔다.

“음.... 오늘은 반별로 모이기만 하고 본격적인 수업은 내일부터구나.”

내 해석이 틀렸는지 다시 한 번 검토해보고서야 그런 확신을 내릴 수 있었다. 아침 10시까지 A반으로 가면 되는 거였으니 아직 2시간이나 남았다. 벽에 걸린 유리판에는 선명하게 8이라는 숫자가 떠올라 있었다. 유리판에서 미미하게 기이한 기운이 느껴진다. 저게 마법이라는 건가? 마법물품이 있는 걸 보니 확실히 좋은 방에 들어온 것 같다.


9시쯤에 방을 나선 나는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기숙사의 구조를 익히고 곧장 A반으로 갔다. 다른 반과 별다른 차이는 없었지만 머릿수가 조금 적은 것만은 확실히 달랐다. 대뜸 문을 열고 들어가서 책상에 앉아 주위를 살펴보니 나를 빼고는 전부 좋은 집안의 자제인 듯 옷차림부터가 상당히 유복해 보였다. 하기야 재능을 꽃피우기 위해선 주변 환경도 중요한 법이지. 인정하긴 싫지만 백윤의 말대로 아무리 천고의 기재라도 주위에서 알아주지 못하면 그대로 끝나는 법이다.

잠시 후 A반의 담임을 맡은 사내가 들어왔다. 가만 보니 어제 연설대에 올라온 작은 키의 검사다. 헛기침으로 주의를 끌고 작은 체구와는 어울리지 않는 중후한 목소리로 교실을 울렸다.

“로베른의 전임 근위대장 크레베스입니다. 입학시험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둔 여러분이 모인 여기 A반은 저 크레베스가 직접 담당할 것입니다.”

크레베스의 음성은 나직했지만 근위대장을 지낸 관록이 느껴질 만큼 무게감이 있었다. 좌중을 둘러본 크레베스가 말했다.

“이 자리에 있는 여러분은 강합니다. 또래의 아이들보다 훨씬요. 분명 미래에는 로베른 왕국의 자랑이 될 것이 분명합니다. 아마 주위에서 상당한 기대를 받으면서 풍부한 지원을 받으셨을 것이고, 그 기대에 훌륭히 부합하는 결과를 내셨을 것입니다. 그게 바로 여러분들입니다.”

그때 칭찬일색이던 크레베스의 기세가 돌연 변했다. 순간적이지만 광범위한 살기가 자그마한 체구의 사내에게서 폭사된다. 나는 폭사되는 살기에 대항하며 크레베스를 끝까지 바라보았다. 크레베스가 내게 힐끔 시선을 주었다가 다른 쪽을 한번 바라보고는 미소를 지으며 살기를 거두었다. 평범한 아이였다면 울음을 터트렸어도 이상할 게 없을 상황이었지만 여기 A반에 그런 이는 아무도 없었다. 아마 크레베스가 시선을 준 자리에는 나처럼 살기에 대항한 이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러분.”

크레베스가 진중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제부터 여러분들은 겸손해져야 합니다. 제가 시험해본 결과 단 두 명이 제 살기에 억눌리지 않았습니다. 또한 그 두 명은 이번 입학시험에서 최우수성적을 거둔 두 분이기도 합니다. 도군. 그리고 소렌 폰테일, 앞으로 나와 주세요.”

귀찮게 되었군. 조용히 수련에 매진하고 싶었는데. 나는 몸을 일으켜 세우며 소렌 폰테일이라는 소녀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어깨 즈음까지 기른 깨끗한 금발에 보석처럼 푸른 눈을 가진 소녀는 겉으로만 보면 그저 귀족가의 영애으로만 보인다. 하지만 나는 그녀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이 결코 내게 뒤지지 않음을 느낄 수 있었다. 엄청난 천재로군 저건. 나처럼 환생한 게 아니라면.

“여러분. 이 두 사람을 앞으로 부른 건 여러분께 열등감을 느끼게 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여러분에게 처음으로 넘어야 할 벽을 만들어 드린 것이지요. 그만큼 여러분들과 이 두 명의 차이는 큽니다. 그리고 두 명은 서로를 거울삼아 정진에 정진을 거듭해야 합니다. 자,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내일부터는 본격적인 수업에 들어가겠습니다.”

크레베스는 그 말을 끝으로 교실을 나섰다. 전생의 나였다면 이런 자리에 결코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비록 환생의 이점이라고는 하지만 소위 천재와 어깨를 함께한다는 건 정말 감회가 새로웠다.




감상이나 비평은 언제나 환영합니다.


작가의말

지인으로부터 혹평을 받았습니다. 세계관과 용어가 뭔가 부적합다나요?

사실 지인은 퓨전물을 안 좋아해서 그런 걸지도 모르지만 제 필력 문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튼 연재는 계속 이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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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2. 새로운 삶 (4) +4 13.02.04 8,817 208 13쪽
» 2. 새로운 삶 (3) +8 13.02.03 9,909 23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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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1. 천하제일의 둔재 (3) +6 13.01.31 9,560 133 17쪽
2 1. 천하제일의 둔재 (2) +4 13.01.31 11,370 147 14쪽
1 1. 천하제일의 둔재 (1) +12 13.01.31 18,719 303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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