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erior Strugg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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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13.01.31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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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1.10 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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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9.26 2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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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유아독존(唯我獨尊) (3)

DUMMY

“도둑 사정은 도둑이 제일 잘 알지. 그리고 한중성에서 벌어먹는 도둑이라면 더 많은 걸 알아.”


수많은 사람이 오가는 길목에 다다른 소연화가 자신 있게 멈춰선 곳은, 나로서는 별로 달갑지 않은 곳이었다. 현철비도를 잃어버린 바로 그 장소다. 다시 뭔가를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절로 주위를 두리번거리게 된다.


“음..... 아, 저깄다.”


소연화가 냅다 군중 속으로 파고들어서는 금세 한 소년의 팔을 움켜쥐고 바깥으로 잡아끌었다. 소년이 끌려가지 않으려 발버둥 치지만, 무림인의 손길을 피할 리 없었다. 결국 소연화에게 뒷덜미를 잡아 채인 소년은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질질 내 앞까지 끌려오고야 말았다.


“뭐, 뭐에요?”


고개를 푹 숙인 채 끌려온 소년이 퉁명스럽게 내뱉었다. 그렇지만 저 소년이 정말로 심지가 굳어서 무림인 앞에서 강당을 부리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퉁명스러운 목소리가 미미하게 떨리고 있었고, 내 허리에 찬 검을 보고는 안색이 새파랗게 질렸기 때문이다.


“너 배수지? 잔말 말고 우리 좀 너희 소굴로 안내해.”


“내가 왜!.....”


소년이 두려움을 감추려 소연화를 향해 언성을 높이려 한다. 그나마 어린 여자가 만만하다는 의미일까? 허나 만약 그렇다면 그건 크나큰 실수다. 소연화는 기가 차다는 듯 혀를 차고는 냉큼 뒷덜미를 잡아끌어 바닥에 내팽개쳤다.


“아악!”


비명이 수많은 인파가 만들어낸 소음을 뚫고 사방으로 울려 퍼졌다. 비단 비명만이 주위를 메운 이들의 시선을 끈 것은 아니었다. 소년과 흙바닥이 충돌하는 소리 역시 만만치 않게 컸다. 혹시 소년이 죽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한 손으로 소년을 바닥에 메다꽂아버린 소연화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소년을 억지로 일으켜 세우고는 물었다.


“다시 말해볼래?”


경칭과 함께 짙은 살기가 소년을 덮친다. 아직 충격이 가시지 않아 비틀대던 소년이 기어이 힘이 풀려서 주저앉았다. 그리고는 금세 눈을 까뒤집고 경기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그래. 다음은 너!”


소연화가 바람을 가르고 군중 속을 파고든다. 갑작스런 움직임에 당황한 것도 잠시. 소연화의 손이 절묘하게 군중의 빈 틈을 파고들어 또 다른 소년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어딜 도망가?”


소연화가 두 번째로 질질 끌고 온 소년은 앞서 소년이 당한 것을 똑똑히 보았기 때문인지, 더더욱 거세게 발버둥 치고 있다. 이에 소연화는 냅다 혈을 짚어서 움직임을 잠재우고는 같은 말을 내뱉었다.

당연히 대답은 정해져 있었다. 앞서 소연화에게 당한 소년은 아예 거품까지 물고 쓰러져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객기를 부리는 자라 있다면 그자는 무림을 떠나는 게 옳으리라.


“이 방식도 소란스럽기 짝이 없군요.”


압도적인 힘에 굴복하고 겁에 질린 소년을 바라보며 나는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아무리 좋은 목적을 위해서라지만 이런 식으로 일을 해결하는 건 정말로 내키지 않았다.


“맞아. 하지만 효과는 확실하지. 어차피 소문이야 다 퍼졌을 테니 아예 크게 만들어 보자고.”


기도 안 차는군. 저런 무모함은 대체 어디서 오는 걸까? 어쩔 수 없이 동행하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소연화와 나는 여러 면에서 맞지 않는 것 같다.


난데없는 봉변을 맞이한 소년은 골목 깊숙한 곳으로 잰걸음을 옮기고 있다. 한시라도 소연화로부터 벗어나려는 듯 걸음은 꽤 빨랐지만 소연화는 아무렇지도 않게 뒤를 따르고 있다. 몸을 단련하기 전이었다면 아마 난 슬슬 가빠오는 숨을 감추려 애썼어야 할 것이다. 새삼스레 수련을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여, 여기에요.”


우리가 당도한 곳은 한중성에서 가장 어두운 곳이라 할 수 있었다. 비유가 아니라, 이곳은 변변한 불빛 하나 없이 고요한 공간이었다. 불야성에 의당 생길 수밖에 없는 그림자. 소년이 가리킨 좁은 길목은 그런 느낌이 물씬했다.


“안에 가서 높은 사람 불러와.”


소연화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소년이 재빨리 소연화로부터 멀어진다. 그런데 이상하군. 아무리 소연화의 손속이 거칠었어도 저렇게 겁을 집어먹을 수가 있을까? 아니지. 내가 한낱 배수에게 지나친 대범함을 바란 걸지도 모른다.


“만약 배수 무리로부터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한다면 어떻게 할 생각입니까?”


소년이 사람을 부르러 간 틈에 생긴 정적을 깨고서 물었다. 이렇게 난리를 쳐서 대단한 사실을 알아낸다면 좋겠지만 애꿎은 곳만 뒤집어 놓은 걸지도 모르지. 심하령이라면 절대로 이런 막무가내를 허용치 않았을 것이다. 그런 만큼 나 역시 소연화의 행동을 막았어야 한다는 후회가 들었다.


“몇 군데를 더 뒤져 본 다음에도 모르겠으면 심상이라도 가봐야지 뭐. 처가댁인데 박대야 하겠어?”


참 뻔뻔도 하다. 부디 소연화가 동평왕의 성격을 물려받은 게 아니기를 바랄 뿐이다.


“뭐야, 왜 안 나오지?”


한참을 기다렸음에도 불구하고 감감무소식이라, 소연화가 괜히 신경질을 부리며 나를 돌아보았다. 문득 적당한 이유가 떠올라 조심스레 그 이유를 말해 주었다.


“속은 게 아닐까요? 여기가 배수의 소굴이 아니라 그냥 어두운 길목일지도 모르지요.”


“하! 그 꼬맹이가 아주 실성한 모양이지? 감히 나를 속여먹어? 좋아. 다른 놈을 족쳐야겠어. 물론 그 전에 이 빌어먹을 놈을 찾아서 혼쭐을 내줘야겠지.”


소연화가 버럭 화를 내며 어두운 골목으로 뛰어들려 한다. 이만 해야겠군. 더이상 난리를 피우면 오히려 방해가 될 뿐이다. 그리 생각하고 성큼성큼 앞으로 나아가는 소연화에게 다가가는 중이었다.


“소저!”


어두운 길목에서 무언가가 반짝였다. 그 빛에는 병장기 특유의 예리함이 서려 있었다. 안 좋다. 무방비하게 앞으로 걸어가는 소연화의 팔을 잡아채고 잡아당긴다. 무의식적으로 현묘한 금나술을 보인 덕분인지, 소연화는 별다른 저항도 하지 못하고 휙 뒤로 딸려왔다.


“이게 무슨 짓이야?”


당연한 순서로 소연화는 화를 냈다. 그렇지만 그런 사소한 일이 신경 쓸 때가 아니다. 어둠 속에서 더욱 많은 예기가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그제야 소연화도 상황을 알아차리곤 자세를 바로 하고 나지막하게 말했다.


“속았네. 그 꼬맹이가....”


내 추측은 절반만 맞아떨어졌다. 여기는 배수의 소굴이 분명했다. 하지만 순순히 우두머리를 데려오는 대신 배수 무리를 죄다 불러모은 모양이다.


“뭐야, 저것들. 간이 부었나?”


곧 사방에서 횃불이 켜지고, 사내들의 모습이 드러나자 소연화가 콧방귀를 뛰며 중얼거렸다. 여전히 여유만만이다. 그만큼 실력에 자신이 있다는 걸까?


소연화와는 달리 나는 마른침을 삼키며 긴장한 기색을 숨기려 애썼다. 사실 이건 그렇게 큰 위기는 아니다. 우리를 노리는 이들의 실력은 한눈에 보아도 파락호에 지나지 않았고, 역으로 두려움에 휩싸인 건 저들이었다. 더욱이 꿈속에서 겪은 사투에 비하면 이런 건 아무 위협도 되지 못했다.


그래서 더욱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무의식에 잠들어 있는 무언가가 튀어나올 리 없다. 즉, 지금 나는 온전히 내 힘만으로 싸워야만 했다.

불안하다. 적이 두렵지는 않았지만 우습게도 그 때문에 더욱 불안하다. 과연 무의식에 의존치 않는 내가 얼마나 강할지 나 자신도 모르기 때문이다.


“쳐라!”


사내들 가운데서 우렁찬 고함이 터져 나오고, 마침내 각양각색의 병장기를 든 이들이 일제히 달려 나왔다. 그러나 이미 소연화가 움직인 뒤였다.


“어딜!”


소연화가 양팔을 휘두르자 수많은 비도가 쏘아져 나가 사내들에게 쇄도했다. 맨 앞줄이 비도에 맞아 우수수 쓰러지고 순식간에 진형이 엉망이 된다. 지금이다. 숱한 경험을 통해, 나는 지금이야말로 오히려 공격을 감행할 때라는 것을 직감했다.


“으아악!”


“커헉!”


우리에게 달려오던 이들은 비명과 함께 완전히 무너져가고 있었다. 그러나 중심에 서 있던 몇몇은 날랜 몸놀림으로 비도의 비를 피해 다시 달려오고 있었다. 약간이지만 무공을 익힌 자들이 분명하다. 하나같이 체구가 크고 인상이 험악한 이들이었다.


“난 조무래기를 정리할 테니 저놈들 정도는 알아서 해.”


소연화는 그리 말하고는 연신 비도를 던져 사방으로 흩어진 사내들을 하나씩 제압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니 한결 마음이 놓인다. 최소한 사방에서 날아드는 병장기에 맞서 싸울 일은 없다. 긴장이 한결 사라지니 절로 검이 움직여갔다.


챙!


요란한 검명이 사방으로 울려 퍼졌다. 일격으로 거한이 든 낭아봉을 깨부수고 가슴팍에 검을 찔러넣을 수 있었다. 뒤이어 또 다른 사내들이 사이한 모양의 병장기를 휘둘렀다.


“이 새끼!”


맹수의 이빨처럼 삐죽한 날을 가진 칼날이 거칠지만 정직한 투로를 따라 날아들었다. 이런 공격은 막을 필요도 없다. 수없이 단련한 육신이 점차 달아오르며 움직임이 더욱 민활해진다. 칼날을 가뿐히 피해낸 나는 자세를 고치지도 않고 그대로 다리를 걸어 사내를 넘어트렸다. 그리고 동시에 검병을 쥔 손을 휘둘러 사내의 턱을 날려버렸다.


“이, 이익!”


간단히 둘을 제압하는 걸 지켜보던 자가 주위에 널브러져 있는 나무상자며 돌덩이 따위를 집어 던진다. 묵직하게 날아드는 그것들을, 승천보라는 상승의 보법으로 피해냈다. 그리고 사내에게 바짝 접근해서 검을 내리그었다. 가볍게 가한 일격에 사내가 피를 뿜으며 나자빠졌다.


“후우...”


한차례 숨을 고르고 나는 주위를 살펴보았다. 아무도 내게 접근하려 하지 않는다. 생각보다 몸이 잘 움직인다. 수련의 성과일까? 모든 걸 놓아버린 때는 상상도 할 수 없던 움직임으로 나는 이들을 압도하고 있었다.

이건 비단 무공 때문만은 아니다. 나는 피를 보는 것에 한치의 주저도 없었고 너무나도 익숙하게 사람 몸에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뭘 하는 거냐! 죽여버려!”


한 사내가 억지로 사기를 북돋으려 하며 고함을 질렀다. 그러나 곧 그 고함은 사기를 깎아내리는 비명으로 뒤바뀌었다. 소연화의 비도가 수차례나 날아들어 사내의 사지에 박혀들었기 때문이다.


“크아악!”


“도, 도망쳐!”

결국, 기세등등하게 우리를 치러 왔던 이들은 꽁무니가 빠지라 도망치기 시작했다. 쓰러진 이들을 수습하지도 못하고 도망치는 이들은 고작 다섯. 아니. 이젠 넷이다. 방금 소연화가 비도로 한 명을 쓰러트렸다.


“혹시 명주천 같은 거 있어?”


소연화가 쓰러진 사내에게서 비도를 뽑아내며 물었다. 비도를 뽑아낸 자리에서 피가 용솟음치고, 사내가 흙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면서 조금이라도 소연화에게서 멀어지려 애쓴다. 조금은 섬뜩한 모습이군. 이 와중에 명주천을 찾는다니.


“없습니다.”


한차례 허공으로 검을 휘두르자 검에 맺혀 있던 핏방울이 모조리 바닥으로 날려간다. 과연 명검이군. 날이 일그러져 있던 부분에 미미하게 붉은 기가 있을 뿐 검신은 새하얗기 짝이없다.


“그래? 그럼 말지 뭐.”


소연화는 대수롭지 않게 사내들에게 박혀 있는 비도에서 눈을 뗐다. 설마 이대로 비도를 버리려는 건가? 그 추측은 정답이었는지, 소연화는 옆구리며 팔 부분을 툭툭 치며 중얼거렸다.


“이제 한 열 개 남았나? 조만간 또 사둬야겠네.”


“고작 피가 묻은 것 뿐인데 버리는 겁니까?”


“응. 저걸 도로 옷 안에 넣으면 이 비싼 옷이 망가지잖아. 차라리 비도를 새로 사는 게 낫지.”


소연화가 그리 말하며 자랑스레 옷에 내려앉은 먼지를 툭툭 친다. 멀리서 비도만 썼기 때문일까? 그녀의 옷에는 피 한방울 묻지 않았다. 반면 나는 가까이서 검을 썼기 때문인지 꽤 많은 피가 튀어 옷이 볼썽사납게 되어 있었다.

고작 피가 묻고 묻지 않은 차이였건만, 그것이 진짜 실력의 차이로 느껴져 조금은 기분이 가라앉았다. 파락호를 압도한다 한들, 아직 나는 미력하다.


“약속을 뒤집다니.”


그때 어둠 속에서 냉막하기 그지없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윽고 그 목소리가 들려온 쪽에서 환한 불빛이 터져 나왔다. 누군가의 좌우에 서 있는 두 소년이 횃불에 불을 붙인 것이다. 불빛이 주위를 환하게 밝히고, 나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한눈에 봐도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가진 장년인이 일렁이는 불빛을 받으며 서 있었다.


“궁지에 몰리면 쥐도 고양이를 무는 법. 더는 노부도 가만히 있을 생각이 없다.”


얼굴에는 큰 흉터가 난 험악한 인상의 장년인이 인상을 찌푸린 채 우리를 노려보고 있었다. 체형에 맞지 않는 펑퍼짐하고 허름한 옷을 입고 있어서 광대처럼 우스꽝스러운 모습이었지만, 도무지 웃음이 나오지 않는다.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만만찮은 고수다.


“흥, 당신이 뭔데?”


미치겠군. 지금 우리가 어떤 상황에 있는지 실감이 안 나는 건가? 소연화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태평하게 상대방을 자극하고 나섰다. 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냉막한 목소리의 주인은 소연화의 말을 듣고서 오히려 평정을 되찾았다.


“이상하군. 너희는 누구냐?”


장년인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선다. 그와 함께 펑퍼짐한 옷이 그를 따라 펄럭인다. 그리고 그제야 나는 장년인의 양 소매가 축 늘어져 있다는 걸을 알 수 있었다.

장년인의 움직임과 함께 좌우에 서 있는 시동들이 횃불을 들고 앞으로 나아갔다. 불빛이 더욱 환하게 우리를 비춘다. 그리고 장년인이 허탈한 듯 고개를 저었다.


“역시 그자들이 아니군. 괜한 짓을 저질렀어. 아아, 그자들에게 그리 당해놓고도 나는 아직 멀었구나.”


장년인이 뜻 모를 소리를 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무슨 말일까? 아무튼, 잘 되었다. 저쪽에서 싸울 의지가 없다면 우리도 더 싸울 필요는 없다.


“오해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저희는...”


나는 양손을 맞잡고 읍을 해 보였다. 그리고는 상황을 정리할만한 말을 궁리하고 있으려니, 소연화가 내 옆구리를 팔꿈치로 쿡 찌르고는 말했다.


“뭘 하는 거야? 물어볼 걸 물어봐야지. 저기요. 우리가 좀 궁금한 게 있는데 아는 걸 말해보시겠어요?”


“하, 당돌한 아이구나. 반대로 묻겠다. 네가 무엇인데 내가 그걸 말해야 하는가?”


“소연화.”


소연화의 한마디에 장년인은 흠칫 놀라서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잠시 후 장년인은 평정을 되찾아서는 고개를 내저었다.


“이 문제는 설령 평도의 빙희(氷姬)라 해도 알려줄 수 없는 문제다. 아니, 평도의 공주이기에 더욱 알려줄 수 없다.”


심상치 않다. 평도의 공주이기에 더더욱 알려줄 수 없는 문제라니. 아무래도 이 일을 물고 늘어진 보람이 있을 것만 같다. 나는 포권을 쥐고 앞으로 나서서 물었다.


“이 일은 제가 알고자 하는 문제입니다. 노사께서는 혹여 아는 바가 있다면 알려주십시오. 세이경청(洗耳敬聽)하겠습니다.”


“비룡의 제자라 해도 알려줄 순 없다. 돌아가라.”


장년인이 그리 단정하고는 돌아서는 찰나, 소연화가 정말로 불쾌해 하면서 쏘아붙였다. 마치 장년인이 그녀 자신을 모욕하기라도 한 것처럼.


“내가 왜 그런 변태 자식하고 같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죠? 당장 주둥이를 이쪽으로 돌리지 않으면 그 입을 찢어버리겠어요.”


장년인의 걸음이 멎는다. 야단났군. 터무니없는 폭언에 장년인이 화가 치밀어 오른 모양이다. 마침내 그가 다시 이쪽을 향한다. 이마에 핏줄이 불거진 채 장년인은 분을 이기지 못하고 덜덜 떨고 있었다.


“평도의 공주께서는 말씀이 지나치군. 설마 여기가 평도가 아니라는 걸 잊어버렸나?”


“그러는 당신이야말로 지금 이분을 모독한 것이나 다름없어요. 소천검을 비룡이란 이름이 아까운 그런 기생오라비로 깎아내리다니. 우선 심가장에서 이 더러운 골목을 쓸어버리고 천검대가 이곳을 쑥대밭으로 만들어도 이상할 게 없겠죠. 안 그래?”


“천의검문은 물론이고 심가장도 그런 쓸데없는 일에 심력을 소모하는 곳이 아닙니다. 자중해 주십시오.”


말도 안 되는 억측에 부아가 치밀어 한소리하고 있으려니 저 앞에서 쿵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의 근원지에서는 장년인이 느닷없이 바닥에 머리를 박고 오체투지를 하고 있었다.


“......설마 여기 한번 와서 다 쓸어버린 적 있어?”


소연화도 뜬금없이 장년인의 태도가 돌변하자 꽤나 당황해서는 물었다. 그러나 나도 짐작 가는 바가 있을 리 만무했다. 그런 사이 장년인은 조용히 머리를 조아린 채 입을 열었다.


“소천검이 이런 누추한 곳에 어인 일이십니까. 대협의 주머니를 노린 놈은 이미 사지를 찢어 놓았는데 또 어떤 볼일이 있으신지요.”


그거였군. 이제야 알겠다. 현철비도를 훔쳐간 자들이 바로 이자들이었다. 한상염이 어떻게 일을 처리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결코 말만으로 문제를 해결한 건 아닌 듯 싶다.


“흐음, 소천검이 소매치기를 당했다니. 알고 보니 꽤 맹한 구석이 있네.”


소연화가 묘한 눈으로 나를 뚫어질 정도로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그 눈이 내 밑천을 모조리 파헤칠 것 같아서, 나는 애써 화제를 다른 쪽으로 돌렸다.


“그 문제는 이미 끝났습니다. 그보다 혹시 도둑떼에 대해 아는 게 있다면 부디 가르쳐 주십시오.”


극도로 공손하게 돌변해서 간이라도 빼 줄 것 같던 장년인도, 그 문제에 대해서는 좀처럼 입을 열지 못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장년인은 순순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저 역시 많은 것을 알지는 못합니다. 그렇지만 그들이 서악 출신이라는 것만 알 뿐입니다.”


“설마 서악왕의 수하들?”


소연화가 지금까지 보았던 표정 중 가장 놀란 표정을 짓는다. 장년인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서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럴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얼마 전에 그들은 우리를 찾아와 신투의 행방을 물었습니다. 이유는 알 수 없으나, 그들은 신투를 쫓고 있었습니다.”


평범한 도둑떼가 아니라는 말이군. 신투의 명성에 숨어들어 역으로 신투를 노린다라? 문영의 사람좋은 얼굴이 떠오른다. 그리고 그 입에서 나온 화포에 대한 이야기. 아직 알지 못하는 뭔가가 있군.


“뭐야, 혼자 끄덕거리고. 나도 좀 알려 줘.”


소연화가 툴툴대며 내 옷깃을 잡아당겼다. 미안하지만 그럴 수는 없다. 이 사실은 아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위험한 일이다. 설령 빙룡이 화포에 대한 문제는 지워버릴지라도, 지금으로선 그러하다.


“말씀 감사합니다. 그럼 저희는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야! 뭐야 대체. 나도 알 권리가 있어. 서악왕이 뭔가를 꾸미는 거지? 그렇지?”


소연화의 목소리를 무시하며 나는 묵묵히 어두운 골목을 나섰다. 이 문제는 혼자 해결할 문제가 아니다. 염치 불고하지만 심하령과 상의해봐야겠어. 그때 뒤에서 장년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협, 사죄의 의미로 작은 충고를 드리겠습니다. 서둘러서 돌아가십시오. 그들이 위협을 느낀다면 대협을 해할 수도 있습니다. 혼자 계시다간 습격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야겠군. 작지만 충분히 도움이 되는 충고였다. 비록 이들은 정도의 인물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아주 악랄한 이들은 아닌 모양이다.


얼마나 걸었을까? 묵묵히 골목을 빠져나오니 이미 바깥은 칠흑 같은 어둠과 깊은 고요에 잠겨 있었다. 해가 뜨기 직전인 시간이라 정말로 어두워서 한 치 앞도 분간하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소저께서도 이만 돌아가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시간이 너무 늦었습니다.”


“칫, 정말로 끝까지 입 다물고 있을 생각인가 보네. 알았어. 그럼 내일 봐.”


소연화는 뜻밖에 순순히 물러나는 눈치다. 물론 내일 다시 찾아올 생각은 만만해 보였지만 내일 다시 찾아오더라도 변하는 건 없을 것이다.

그렇게 소연화를 보내려다가 마음속에 걸리는 것이 있어 얼른 소연화의 뒤를 쫓았다. 다행히도 소연화는 경공을 펼치지 않아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발소리에 뒤를 돌아온 소연화가 퉁명스럽게 물었다.


“뭐야, 왜 따라와?”


“밤이 늦었으니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흥, 설마하니 소천검께서도 남자셨군요. 미안하지만 사양하겠어. 흑심을 품은 남자는 꼴불견이라서.”


얼굴이 확 붉어진다. 그런 의미는 아닌데. 별수 없이 나는 마음 속에 떠오른 걱정을 그대로 내보일 수밖에 없었다.


“혹시 그들이 제가 아니라 소저를 노릴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거처까지는 함께 가는 편이 좋겠습니다.”


“흐음, 그래? 그럼 마음대로 해. 하여튼 사람 귀찮게 왔다 갔다 하게 만든다니까. 진작부터 나랑 같이 간다고 했으면 좋잖아.”


소연화가 주절주절 꺼내는 소리가 어둠 속의 고요를 쫒아 낸다. 사방이 고요한 가운데 오로지 우리 두 사람만이 살아 숨 쉬는 것 같아서 기분이 꽤 묘했다.


다행히도 소연화의 거처에 이르는 동안 아무런 위협도 없었다. 게다가 슬슬 해가 뜨고 있어서 조금은 마음이 풀리는 것 같았다.


“소 소저.”


“왜?”


내가 머무는 곳 못지않게 화려한 객잔에 들어서는 소연화를 불러세운 다음, 나는 볼을 긁적였다. 내가 생각해봐도 다음에 꺼낼 말은 너무 얼빠진 소리 같았다.


“제가 머물고 있는 객잔이 어느 쪽인지 아십니까?”


“야, 너 사실 바보지? 진짜...”


그 말이 정답이다. 소연화는 내 어리석음에 혀를 내두르고는 해가 뜨기 시작한 쪽을 가리켰다. 그래도 다행히도 맞는 방향을 가리켰는지, 그녀가 가리킨 방향에는 꽤 낯익은 것들이 많았다.

이윽고 저 멀리 내가 머물고 있는 객잔이 눈에 들어왔다. 혹시 모를 위협에 잔뜩 긴장했던 몸이 탁 풀린다. 괜한 긴장이었을지도 모르겠군. 아무리 그들이 노리는 것이 크다 한들 대로 섣불리 나를 해할 리가 만무하다. 그렇게 나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객잔을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


“소천검.”


싸늘한 목소리. 묵직하고 끈적한 살의가 담긴 그 목소리를 듣고서 나는 아찔한 통증을 느끼고 볼썽사납게 넘어졌다. 마지막으로 본 광경은 흉험한 기세를 간직한 사내가 사갈(蛇蝎) 같은 눈으로 나를 내려다보는 광경이었다.


“너는.....”


나를 내려다보는 그 사내는 낯이 익은 사내였다. 해가 다시 뜨면서 어슴푸레한 빛이 사내의 얼굴을 은은하게 비추고 있다. 소연화와 시비가 붙었던 그 고수다. 그것을 깨닫자마자 나는 더는 말을 잇지 못하고 정신을 잃었다.




감상이나 비평은 언제나 환영합니다.


작가의말

기분도 안 좋고 스트레스도 풀 겸 열심히 써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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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 6. 북천(北天)의 망령(亡靈) (3) +5 15.01.05 890 21 16쪽
170 6. 북천(北天)의 망령(亡靈) (2) +3 14.12.29 814 25 18쪽
169 6. 북천(北天)의 망령(亡靈) (1) +6 14.12.20 887 21 12쪽
168 5. 무림대회(武林大會) (9) +5 14.12.13 976 21 17쪽
167 5. 무림대회(武林大會) (8) +7 14.12.07 923 21 16쪽
166 5. 무림대회(武林大會) (7) +3 14.12.02 861 25 15쪽
165 5. 무림대회(武林大會) (6) +2 14.12.01 820 17 18쪽
164 5. 무림대회(武林大會) (5) +7 14.11.18 786 23 11쪽
163 5. 무림대회(武林大會) (4) +6 14.11.15 847 22 11쪽
162 5. 무림대회(武林大會) (3) +1 14.11.08 873 24 7쪽
161 5. 무림대회(武林大會) (2) +6 14.10.24 1,343 24 13쪽
160 5. 무림대회(武林大會) (1) +4 14.10.15 1,028 24 16쪽
159 4. 유아독존(唯我獨尊) (10) +5 14.10.14 1,178 24 25쪽
158 4. 유아독존(唯我獨尊) (9) +2 14.10.13 1,339 20 21쪽
157 4. 유아독존(唯我獨尊) (8) +5 14.10.03 1,108 28 18쪽
156 4. 유아독존(唯我獨尊) (7) +5 14.10.01 1,589 27 11쪽
155 4. 유아독존(唯我獨尊) (6) +4 14.09.27 1,015 24 16쪽
154 4. 유아독존(唯我獨尊) (5) +5 14.09.27 1,222 25 17쪽
153 4. 유아독존(唯我獨尊) (4) +8 14.09.27 1,327 26 21쪽
» 4. 유아독존(唯我獨尊) (3) +7 14.09.26 1,149 21 22쪽
151 4. 유아독존(唯我獨尊) (2) +6 14.09.20 1,269 27 10쪽
150 4. 유아독존(唯我獨尊) (1) +4 14.09.12 1,367 34 21쪽
149 3. 천의검문의 소문주 (12) +7 14.09.05 1,472 37 13쪽
148 3. 천의검문의 소문주 (11) +7 14.08.31 1,476 33 11쪽
147 3. 천의검문의 소문주 (10) +6 14.08.24 1,225 33 10쪽
146 3. 천의검문의 소문주 (9) +9 14.08.10 1,558 35 20쪽
145 3. 천의검문의 소문주 (8) +4 14.08.04 1,318 33 18쪽
144 3. 천의검문의 소문주 (7) +9 14.08.01 1,414 37 12쪽
143 3. 천의검문의 소문주 (6) +4 14.07.30 1,160 33 12쪽
142 3. 천의검문의 소문주 (5) +5 14.07.29 1,223 3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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