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erior Struggle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요개
작품등록일 :
2013.01.31 09:36
최근연재일 :
2021.11.10 22:29
연재수 :
226 회
조회수 :
587,290
추천수 :
10,871
글자수 :
1,513,856

작성
14.08.04 00:55
조회
1,317
추천
33
글자
18쪽

3. 천의검문의 소문주 (8)

DUMMY

“잘 하셨어요.”


무사가 지키고 있는 문을 지나며 심하령이 말했다. 나는 아무런 대답 없이 계속 걸어갔고, 심하령도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무림초출인 도 공자를 이용해서 천의검문의 이름을 빌리려는 자들이에요. 어울리지 않는 게 타당하지요. 괜히 친밀하게 지냈다가는 이용만 당했을 거예요. 하지만....”


머뭇거리며 말을 잇지 못하는 그녀를 내버려 두고 나는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심하령 역시 당연하다는 듯 나를 따라 들어왔다. 그리고는 그제야 말을 계속했다.


“너무 과하셨어요. 굳이 저들을 대놓고 적으로 만들 필요까지는 없는데 그렇게까지 화를 내실 줄은 몰랐네요.”


잔뜩 언성을 높였던 뒤라 그런지 마음이 가라앉은 나는 새삼 내가 한 짓이 후회스러웠다. 아니, 후회도 잠시다. 나는 그저 하고 싶은 말을 했을 뿐이다. 다만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점은, 내 행동이 심하령이나 천의검문에 누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뿐이었다.


“제가 큰 실수를 한 겁니까? 혹시 저 때문이 검문이나 심가장에 피해가 간다면......”


“그건 아니에요. 사실 도 공자께서 어떻게 행동하시든지 상관없어요. 천의검문은 공자께서 어떤 행동을 하든 받아들일 수 있는 큰 곳이니까요. 원한다면 천하에 둘도 없는 건방진 사람 행세를 하셔도 돼요.”


“그럴 생각은 없습니다.”


가진 바 능력도 없는 주제에 배경만 믿고 날뛰는 애송이가 되고 싶지는 않다. 이에는 심하령 역시 동감하고 있었다.


“물론 그러셔야죠.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건, 공자께서는 원하는 걸 얼마든지 하셔도 된다는 말씀이에요. 적어도 배경이 부족해서 못 하실 일은 없을 거예요. 저도 마찬가지로 공자를 도울 거고요.”


“어쩐지 불합리한 것 같군요.”


“좋은 집에 태어난 게 원래 이런 거죠.”


그런 말을 한 본인도 조금 멋쩍은지 슬쩍 시선을 돌렸다. 이런 걸 든든하다고 해야 하나? 상식적으로는 크게 반겼어야 할 사실이었지만 마음이 편치는 않다. 저만큼 큰 혜택을 누린다면, 필경 그에 상응하는 값을 치러야 할 것이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저는 도 공자께서 조금 자중하셨으면 좋겠어요. 검문은 어떤 일이라도 받아들일 수 있는 곳이지만 책임을 대신 져 주지는 않을 테니까요.”


아마 아버지께서 내가 천둥벌거숭이처럼 날뛴다면 크게 노하시겠지. 형편없는 무공을 가졌을 때도 소문주의 자리에서 내쫓지 않으신 분이지만, 그런 작태는 결코 용납지 않을 분이시다.

내가 지지리도 못났음에도 불구하고 소문주 자리를 지킨 건, 평소 모난 곳 없이 살아갔기 때문이다. 그 흔한 추문 하나도 없었지. 어쩌면 이건 심하령이 일찍부터 나를 보살펴 주었기 때문일까?


“방금 그 일로 동평왕의 딸에게 상당히 안 좋은 인상을 심어 주었고, 그게 우리 일에 좋은 영향을 끼치지는 않을 거예요. 그리고 용봉회에 속한 이들 역시 공자를 같은 편으로 여기지는 않겠지요. 그에 대한 결과는 결국 공자께서 감당하셔야 해요.”


“저런 자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 지까지 신경 써야 합니까?”


말을 내뱉고 나서, 나는 내가 정말로 방약무인한 소리를 해버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젠장, 정신 차려라. 마음대로 해도 된다 해서 정말로 멋대로 건방을 떨어도 된다는 건 아니지 않는가. 그리고 나는 아직 저런 소리를 내뱉을 정도로 강한 사람이 아니다.


“그럴 지도 모르죠. 저들이 나중에 엄청난 고수가 될지도 모른다는 말씀은 안 드리겠어요. 하지만 저들 역시 동평왕의 부탁을 듣고 평도로 향하는 이들이에요.”


그제야 나는 문주전에서 들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제후가 도움을 청한 건 천의검문만이 아니다.


“물론 우리처럼 정식으로 청을 받들지는 않았어요. 그저 멋대로 용봉회에 속한 소 공주가 돌아가는 길에 합류한 이들이지요. 그렇지만 저들이 속한 곳에서는 이 일을 방관하고 있어요.”


“낙성곡이나 비룡검파에서 말씀이십니까?”


“네. 그렇지만 말리지도 않고 있어요. 젊은이들의 치기를 통해 어부지리(漁父之利)를 노리려는 거죠. 그래서 용봉회가 신투를 찾는 일을 도우려 한 거예요. 그 일에서 작은 공이라도 세운다면 천의검문과 심가장의 이름에 얹혀갈 수 있으니까요.”


복잡하군. 요는 저들이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한 상태에서 동평왕의 땅으로 가는 거였고, 이 때문에 나와 친해지려 했다는 것이군. 한편으로는 소연화가 왜 그리도 나와 친해지려는 것에 시큰둥했는지 알 수 있었다. 아니지. 원래 성격이 그런 것도 있으려나?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니 점점 용봉회란 것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용봉회의 구성원들은 모두 훌륭한 능력을 가진 후기지수들이다. 얼마든지 강해질 수 있는 재목들. 그런 이들이 정략 따위로 스스로를 드높이려 한다니, 나로서는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도 공자님.”


심하령이 경칭까지 붙이며 나를 불렀다.


“만약 이번 일이 정말로 불쾌하셨다면 제가 사과를 드리고 싶어요. 제가 미리 판단해서 저들을 물릴 수 있었는데 섣불리 저들의 청을 받아들여서 공자의 심기를 어지럽혔어요.”


심하령이 머리를 숙이면서 진심으로 사과를 하고 있다. 그 목소리와 태도는 못난 나를 돌보아 주었던 때를 떠올리게 했다. 무공에 관심이 없는 척 했던 나를 위해 조용히 도움을 주었던 그때를.


“제가 옹졸해서 그런 것뿐이니 심려 놓으셔도 됩니다.”


한층 마음이 진정되어서 금세 용봉회의 일을 머리에서 지울 수 있었다. 지금은 이런 사소한 일에 연연할 때가 아니다. 그렇군. 마침 잘 됐다. 심하령이 눈앞에 있는 김에 그 일도 의논해봐야겠어.


“그보다 심 소저, 이걸 봐 주십시오.”


품속에 잘 갈무리 해 두었던 현철비도를 슬며시 꺼내서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심하령이 그것을 보고는 흠칫 놀라더니 천천히 비도를 살피며 말했다.


“설마 현철로 만든 비도인가요?”


“그렇다 들었습니다.”


심하령이 말을 잇지 못한다. 아무리 재지가 뛰어나도 이런 터무니없는 일에 평정을 지킬 수는 없겠지. 잠시 침묵하며 비도와 나를 번갈아보던 심하령은 비도를 시선 아래로 내려놓고는 나를 바라보았다.


“누구에게 받으셨나요?”


“그래도 제가 훔쳤다고는 생각하지 않으시는군요.”


“애초에 제가 옆에서 죽 지켜보고 있었으니 직접 훔치거나 누굴 시켜서 훔친 건 아닐 테니까요. 그리고 그럴 주변이라도 있었다면 제가 그동안 왜 속을 태우고 있었겠어요?”


절로 쓴웃음이 나올 대목이다. 심하령의 봉목(鳳目)을 바라보며, 나는 그간 있었던 일을 말해주었다. 이에 심하령이 아미(蛾眉)를 찌푸리며 그간의 일을 평했다.


“절 버리고 멋대로 돌아가다가 또다른 사고를 치셨군요.”


“또다른?”


내가 또 무슨 사고를 쳤을까? 사실 굳이 따지자면 인생 자체가 사고로 점철되어 있어서 도무지 갈피가 잡히지 않는다. 심하령이 입술을 삐죽였다가 약간 삐친 것처럼 시선을 돌리며 둘러댔다. 아무래도 자세히 말해줄 생각은 없어 보인다.


“그냥 말이 그렇다는 거죠. 음, 그렇군요. 그래서 용봉회가 찾아왔을 때 그런 말씀을 하셨던 거군요. 하지만 저들이 먼저 공자를 찾을 이유는 없겠지요. 그러니 우리가 먼저 그 두 사람을 찾아야 해요.”


“방법이 있습니까?”


심하령이 자신 있게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물론이지요. 말씀드렸지요? 한중성의 주춧돌 하나마저도 심가장이 만든 것이라고. 다시 말해서, 심가장은 한중성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알고 있어요. 두 사람을 찾는 건 제게 맡겨 주세요.”



두 사람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심하령은 곧장 객잔을 나섰다. 본래는 나와 함께 심상의 거점으로 가자고 했지만 이번에는 사양하기로 했다.

이에 심하령은 뭔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조금 심상치 않은 표정을 지었지만 이번만큼은 나도 양보할 수 없다. 한동안 너무 수련을 등한시했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마음에 걸렸다.


“소문주님.”


막 수련을 시작하려는 순간, 바깥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한상염이다. 문을 여니 생각대로 한상염이 호목을 번뜩이며 문 앞에 서 있었고, 그 옆에는 어린 토끼처럼 신이 난 설초아가 있었다.


“무슨 일....”


용무를 물으려 하는 차에, 설초아가 먼저 용무를 밝혀 왔다.


“소문주니임, 한중성 구경 갈 건데 같이 가요. 대주님이 소문주님을 혼자 두고 갈 수는 없다고....”


“초아야, 함부로 끼어들지 말거라.”


한상염이 나직이 주의를 주며 설초아의 머리를 눌렀다. 이에 설초아는 정말로 맹수 앞의 토끼처럼 기가 죽어서는 금세 조용해졌다. 어쩐지 사이좋은 남매 같아 보여서, 나도 모르게 마음이 푸근해지는 것 같다.


“다녀오세요. 저 역시 잠시 다녀올 곳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호위를....”


한상염이 진중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자, 설초아의 표정이 점점 우울해진다. 그렇게 구경하고도 아직도 보고 싶은 게 있을까? 그렇지만 금방 이해가 된다. 나 역시 한중성의 정경에는 정말로 감탄했었으니까.


“괜찮습니다. 지금은 제 사적인 일로 머물고 있는 것이니, 두 사람 모두 당분간은 편히 쉬어도 좋습니다. 전 혼자서 수련을 하고 올 생각입니다.”


“하오나...”


한상염이 조심스레 우려를 표했지만 나는 이미 마음을 정했다. 한상염이 수련을 방해하는 건 아니었지만, 왠지 아무도 없는 곳에서 마음 놓고 수련을 하고 싶은 때가 있는 법이다.


“허면 이리 해 주십시오. 한중성 내에 제가 아는 무관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수련을 해 주신다면 저도 소문주님의 분부에 따르겠습니다.”




결국 백기를 든 쪽은 한상염이다. 그렇게 우리는 함께 객잔을 나서서 번화한 곳과는 정반대편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제법 번듯한 무관 앞에 다다랐다. 한상염이 절도 있게 무관을 지키고 서 있는 이들에게 포권을 취했다.


“천도성에서 온 한상염입니다. 한중무관의 서 대협을 뵙고 싶습니다.”


한상염의 말을 듣고 무관을 지키고 있던 두 사람 중 젊은 쪽이 지체 없이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잠시 후 다시 밖으로 나온 그 청년은 꽤나 긴장한 얼굴로 다른 이에게 귓속말을 전했다.


“들어오십시오.”


귓속말을 전해들은 사내 역시 딱딱하게 굳어서는 조심스레 문을 열어 주었다. 무슨 영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부디 내가 일으켰던 소란 탓이 아니길 빌 뿐이다.


“상염. 네가 여기 다시 왔다는 게 뭘 의미하는지는 알겠지?”


우리를 맞이한 자는 한눈에 봐도 무공이 고강해 보이는 장한이었다. 얼굴에 붉은 기가 돌고 미간에 주름이 가득해서, 꽤 성정이 난폭할 것만 같다. 심지어 풍성한 수염이 이리저리 뻗쳐 있었고, 그 목소리 역시 외양에 어울리게 괄괄하기 그지없었다. 이쯤 되니 벨스터 공왕 못지않은 거구는 곁다리에 불과해 보인다.


“물론.”


한상염이 대뜸 검을 뽑아들며 대답했다. 뭘 하려는 거지? 그때 설초아가 내 소매를 잡아끌었다.


“소문주님. 위험하니까 우리는 조금만 뒤로 가요.”


위험? 그 말을 이해하기도 전에 한상염과 괄괄한 사내가 일순간에 충돌했다. 삽시간에 주위가 살기로 가득 들어차고, 광대한 내공이 자웅을 겨루며 파공음을 자아내기 시작했다.


“우아앗, 벌써 시작했어요. 이크, 이건 너무 심한데..”


내 쪽으로 날아드는 돌조각을 쉽사리 쳐내며 설초아가 혀를 내두른다. 나는 두 사람의 흉험한 대결을 지켜보며 한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러나 그 이상은 움직일 수 없었다. 어느새 두 고수의 대결에 정신을 빼앗긴 것이다.


“크하하핫! 붕산장(崩山掌)이다!”


괄괄한 사내가 호탕하게 웃으며 쌍장을 내뻗었다. 그와 함께 누런 기운이 양 팔을 타고 쏟아져 한상염을 덮쳤다. 검으로 치자면 검기와도 같은 것이 쏟아져 내린 것이다.


“단월.”


이에 맞서 한상염이 펼친 것은 천의검문의 절기인 단월. 누런 기운이 한상염을 뒤덮으려는 찰나, 새파란 검기가 누런 기운을 단박에 갈라버렸다. 실로 대단한 수준의 검이다. 편법으로 검기를 터득한 나는 결코 펼쳐내지 못할 예리한 검에, 나는 다시금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크으, 빌어먹을 놈. 또 검이 늘었구나.”


괄괄한 사내가 이를 부득부득 갈며 중얼거렸고, 이에 한상염은 태연하게 기수식을 취하며 대꾸했다.


“그저 네가 약해졌을지도 모르지.”


“뭐, 뭐라고? 그렇다면 이건 어떠냐?”


사내가 재차 몸을 날려 한상염을 압박해 들어갔다. 성난 황소처럼 거칠면서도 강맹한 돌격에, 한상염의 검세가 일순 흐트러졌다. 전체적으로는 무디기 짝이 없는 강(强)의 일격이었지만, 빈틈을 파고드는 것만큼은 충분히 예리했다.


“대호출동(大虎出洞)! 범의 움직임은 강맹하지만 발톱은 예리한 법!”


생사결을 방불케 하는 대전의 정체는, 저 한마디를 통해 확실히 드러났다. 믿기지는 않지만 이건 대련이었다. 일일이 초식을 읊으며 움직이는 걸 보아도 확실히 이 싸움의 목적은 서로의 무공을 확인하는, 그야말로 수련의 연장이었다.


“대련치고는 꽤 과한데....”


“그렇죠? 대주님은 너무 위험하게 사신다니까요.”


혼잣말을 내뱉었을 뿐인데 누군가 대답해서 흠칫 놀라 버렸다. 목소리가 들려온 쪽에서는 설초아가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


“그래도 그게 멋지지 않나요?”


눈을 빛내며 한상염을 바라보는 설초아. 그녀가 처음으로 보여주는 열의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까? 변변한 대답을 찾지 못한 나는 다시 치열한 대련을 지켜보기로 했다.


“하지만 느려.”


잠시 수세에 몰렸던 한상염이 더욱 예리하게 검을 휘두르고, 또 찔러내며 공세를 점하기 시작했다. 검을 쳐내는 사내의 손이 점점 어지러워지고, 마침내 사내가 다른 방도를 찾기로 마음먹는다.


“에이이! 그럼 이건 어떠냐?


쌍장만을 고집하던 사내가, 요란한 기합소리와 함께 양 손으로 검을 튕겨내는 동시에 한쪽 다리를 들어 자세를 바꾸었다. 아니, 단지 다리를 든 게 아니다. 저건 앞으로 차는 동작이다.


“큭!”


막대한 내공이 실린 발을 피해내려 한상염이 상체를 살짝 뒤로 젖힌다. 그러나 그 순간 바닥을 딛고 있던 사내의 다리마저 앞으로 뻗어나갔다. 거의 동시에 양 다리가 하늘로 솟아오르며, 사내가 재주를 훌쩍 넘었다.


“으랏차!”


뒤이어 날아드는 발을 피해내고 나니, 한상염의 자세가 완전히 흐트러졌다. 그 틈을 노리고, 사내의 억센 팔이 한상염의 양 어깨를 움켜쥐었다. 그리고 굵직한 통나무 같은 두 다리가 한상염의 가슴팍을 그대로 파고들었다.


“꺄악! 대주님!”


육중한 타격음이 울려 퍼지고 한상염이 검까지 놓친 채 뒤로 나자빠졌다. 설초아가 놀라서 한상염에게 달려가고, 사내는 사뿐히 착지해서 씩 웃었다.


“어떠냐?”


“.....너답지 않군. 전혀 예상하지 못했어. 그 초식은 무엇이지?”


한상염이 설초아의 부축을 받아 일어나며 말했다. 한편 설초아의 매서운 시선을 받으며 볼을 긁적이던 사내는 볼멘소리로 중얼거렸다.


“아직 못 정했다. 젠장, 이렇게 빨리 재회할 줄 알았다면 이름부터 지어놨을 거다. 솔직히 쓸까 말까 고민도 많이 했다. 이런 계집애 같은 방식, 네 말대로 나한텐 안 어울려.”


계집애 같다고? 그렇지 않다. 강맹한 것이 사내다운 것이라면 그럴지 모르지만, 저건 엄연히 상승의 무리가 녹아든 일격이다. 아마 한상염이 그 공격을 피하거나 파훼했어도 변화무쌍하게 또 다른 공격을 이어갈 수 있는 그런 일격이다. 한상염도 그걸 알고 더 이상 싸울 의지를 내보이지 않는 거겠지.


“한 대주께서 방심하셨군요. 사람이 언제나 한결같다면 발전이 없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나는 나도 모르게 포권을 쥐어 두 사람에 대한 감탄을 대신하며 앞으로 나섰다. 사내가 한상염을 슥 바라보며 나에 대한 의문을 표한다. 이에 나는 아차 싶어서 뒤늦게 스스로를 밝혔다.


“천의검문의 소문주, 도군입니다.”


“엉? 어이, 상염. 그게 정말이냐?”


한상염이 고개를 끄덕이자 사내의 눈이 번쩍 빛난다. 한상염의 것 못지 않게 압도적인 기세를 담고 있는 시선이 나를 한차례 훑고 지나간다.


“허... 믿을 수가 없다. 저 몸으로 어떻게 진천을 보여주었단 말이야?”


“무례하게 굴지 마라.”


사내가 흘리듯이 한 말에 한상염이 진심으로 화를 내며 검에 손을 댔다. 이에 사내는 허둥지둥 손을 내저으며 한상염과 내게 사과를 했다.


“미, 미안하다. 그리고 죄송합니다, 소문주님. 본의는 아니었습니다.”


불혹에 가까운 이가 머리를 조아리니 참 기분이 껄끄럽다. 괜찮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이니 그제야 한상염이 검에서 손을 떼었고, 일촉즉발로 치닫던 분위기로 가라앉았다.


“어흠, 이거 소개가 늦었습니다. 한중무관의 관주, 서거문이라 합니다.”


언제 무레를 저질렀냐는 듯 호쾌하게 포권을 취하는 그를 바라보며 나는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외양과 언행이 똑바로 일치하는 참으로 정직한 사내다. 그렇지만 사파의 마두와 같은 사악함은 엿보이지 않는다. 정도만을 고집하는 올곧음이 느껴지는, 그런 사내다움이 물씬하다.


“헌데 소문주께선 이 누추한 무관에 어인 일로...”


“거문, 소문주께서 수련할 곳이 필요하신데 수련장을 마련해 주지 않겠나?”


“그거야 얼마든지 가능하다만 여긴 정말로 형편없는 수련장밖엔 없네. 소문주께 누가 되지 않을까 걱정이구만.”


“그건 소문주께서 결정하실 일. 거문 자네는 잠자코 수련장을 마련하면 되네.”


한상염의 무뚝뚝함에 꽤 익숙한지, 서거문은 흔쾌히 그의 청을 받아들였다. 그러다 문득 생각이 났는지, 갑자기 조심스러워져서는 말했다.


“어흠, 그... 소문주님. 수련장을 내 드리기는 어렵지 않으나 작은 청이 있는데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말씀해 보십시오.”


나는 꽤 이 서거문이라는 사내가 마음에 든 모양이다. 어지간한 부탁이라면 전부 들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렇지만 서거문의 청은 그런 생각을 단번에 뒤집게 만들 정도로 놀라운 것이었다.


“그.... 무례가 안 된다면 진천을 한번 보여주실 수는 없으신지요?”




감상이나 비평은 언제나 환영합니다.


작가의말

우우, 생각보다 일찍 돌아왔네요. 점점 바빠지는 가운데 쓴 글이니 허점이나 오타를 매의 눈으로 잡아 주세요! 검수한다고 하는 글인데 왜 계속 오타가 나는지.... 부끄러울 뿐입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4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Inferior Struggle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71 6. 북천(北天)의 망령(亡靈) (3) +5 15.01.05 887 21 16쪽
170 6. 북천(北天)의 망령(亡靈) (2) +3 14.12.29 813 25 18쪽
169 6. 북천(北天)의 망령(亡靈) (1) +6 14.12.20 886 21 12쪽
168 5. 무림대회(武林大會) (9) +5 14.12.13 976 21 17쪽
167 5. 무림대회(武林大會) (8) +7 14.12.07 923 21 16쪽
166 5. 무림대회(武林大會) (7) +3 14.12.02 859 25 15쪽
165 5. 무림대회(武林大會) (6) +2 14.12.01 820 17 18쪽
164 5. 무림대회(武林大會) (5) +7 14.11.18 786 23 11쪽
163 5. 무림대회(武林大會) (4) +6 14.11.15 846 22 11쪽
162 5. 무림대회(武林大會) (3) +1 14.11.08 873 24 7쪽
161 5. 무림대회(武林大會) (2) +6 14.10.24 1,342 24 13쪽
160 5. 무림대회(武林大會) (1) +4 14.10.15 1,028 24 16쪽
159 4. 유아독존(唯我獨尊) (10) +5 14.10.14 1,178 24 25쪽
158 4. 유아독존(唯我獨尊) (9) +2 14.10.13 1,338 20 21쪽
157 4. 유아독존(唯我獨尊) (8) +5 14.10.03 1,108 28 18쪽
156 4. 유아독존(唯我獨尊) (7) +5 14.10.01 1,589 27 11쪽
155 4. 유아독존(唯我獨尊) (6) +4 14.09.27 1,013 24 16쪽
154 4. 유아독존(唯我獨尊) (5) +5 14.09.27 1,222 25 17쪽
153 4. 유아독존(唯我獨尊) (4) +8 14.09.27 1,327 26 21쪽
152 4. 유아독존(唯我獨尊) (3) +7 14.09.26 1,148 21 22쪽
151 4. 유아독존(唯我獨尊) (2) +6 14.09.20 1,269 27 10쪽
150 4. 유아독존(唯我獨尊) (1) +4 14.09.12 1,367 34 21쪽
149 3. 천의검문의 소문주 (12) +7 14.09.05 1,472 37 13쪽
148 3. 천의검문의 소문주 (11) +7 14.08.31 1,476 33 11쪽
147 3. 천의검문의 소문주 (10) +6 14.08.24 1,225 33 10쪽
146 3. 천의검문의 소문주 (9) +9 14.08.10 1,557 35 20쪽
» 3. 천의검문의 소문주 (8) +4 14.08.04 1,318 33 18쪽
144 3. 천의검문의 소문주 (7) +9 14.08.01 1,413 37 12쪽
143 3. 천의검문의 소문주 (6) +4 14.07.30 1,159 33 12쪽
142 3. 천의검문의 소문주 (5) +5 14.07.29 1,222 33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