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erior Strugg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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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개
작품등록일 :
2013.01.31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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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1.10 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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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2.29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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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쪽

6. 북천(北天)의 망령(亡靈) (2)

DUMMY

생각대로 두 사람은 놀라고 있다. 그렇지만 분명 차이는 있었다. 벽정문이 대경실색해서 헛웃음까지 짓는 것과는 달리, 금정하는 부드럽게 웃으며 그 이유와 이후를 물어 주었다.


“어찌 문무쌍절과 겨루려 하는가? 그리고 질 가능성이 더 크다는 것을 모르지는 않을 터. 그리 어려운 길을 택하고 후회하지 않을 텐가?”


나는 벽정문의 눈치를 슬쩍 살폈다. 내 말이 정말로 마음에 안 드는지 표정이 좋지 않다. 나를 직접 질책하지 못한 건 금정하가 먼저 말을 꺼냈기 때문이리라. 다시 눈을 돌려 금정하를 똑바로 응시한다. 그리고 나는 확신에 찬 모습을 보여주었다.


“벽 어르신께는 외람된 말씀이오나 저는 이기고 싶지 않습니다. 이기더라도 계속해서 싸워서 끝내는 지고 말 것입니다. 그리고 그걸 통해 배우겠습니다.”


지기 위해 싸운다. 그리고 강해진다. 비무에서 이기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나는 수많은 실패와 좌절을 겪어왔다. 그것들은 도군이라는 이름의 검을 정련하는 열기였다. 그렇게 수없이 두드리고 담금질한 끝에, 세상에서 가장 형편없는 검은 이제 종잇장 정도는 벨 수 있는 검이 되었다.


“그건 대체 무슨 말인가? 그럼 비무에서 진다면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다는 소리인가?”


벽정문이 퉁명스러운 어조로 나를 추궁해왔다. 그의 말 역시 옳기에 나는 좀처럼 대답을 할 수 없었다. 그때 금정하가 어슴푸레 가슴을 가득 채운 것을 선명한 말로 거듭하게 해 주었다.


“소협의 말대로일세. 때로는 이길 때보다 질 때 더 많은 것을 배우기도 하지. 그리고 바다에서 기른 고기는 못에서 기른 고기보다 더 크다고 하지. 문무쌍절이나 되는 자에게 진다면 다른 이에게 이기는 것보다 더욱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음이야.”


금정하가 그렇게 말하고는 벽정문을 향해 고개를 숙이고 포권을 취해 들어 보인다. 벽정문이 이에 당황해서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금정하의 손을 마주 잡고 그 손을 아래로 내렸다. 금정하가 천천히 고개를 들며 말했다.


“정문, 내 부탁 하나 함세. 자네가 입은 손해는 내 어찌 되든 보전할 테니 양 소협에게 기회를 주게.”


“어허, 이 사람이 왜 이러나? 내가 편협하게 돈 때문에 이러는 것 같은가? 돈도 돈이거니와 자네의 제자를 자처한 자가 형편없이 진다면 자네의 이름도 깎여나가게 된다는 걸 왜 모르는가?”


숭고한 의지로 불타던 마음에 찬물을 끼얹는 말이었다. 정도는 다르지만, 이 역시 져서는 안 될 싸움이었다. 정녕 혼자 힘으로 여기서지 않은 이상, 져도 되는 싸움은 하나도 없었다.

후회스럽다. 괜한 말을 했다는 생각과 죄책감이 밀려온다. 나를 위해 체면을 불고하고 고개를 숙인 금정하를 배신하는 것만 같아서 얼굴이 차츰 달아올랐다. 그러나 금정하는 여전히 포권을 풀지 않고 친우를 간곡히 설득하고 있었다.


“나는 이미 마음을 굳혔네. 이 보잘것없는 이름을 팔아서 소협에게 더 큰 세상을 보여줄 수 있다면 그보다 더 값진 일이 어디 있겠는가? 자네만 허한다면 나는 소협을 돕고 싶네.”


어째서일까? 홍산검객이라는 이름은 그리 큰 이름도 아니었지만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는 이를 위해 버릴 정도로 작은 이름도 아니었다.

하물며 정파무림에서 이름이란 무인 자신이나 다름없는 것. 어째서 금정하는 저리 쉽게 그것을 포기할 수 있을까? 나라면 그럴 수 있을까? 단지 후학을 위한다는 마음으로 천의검문의 소문주라는 이름을 버릴 수 있을까?


“아직도 자네는 서역에 가지 못한 것을 마음에 두고 있었던 게야. 그래, 그때부터였지. 산에 틀어박혀 무공밖에 모르던 자네가 홍산검객이라는 이름을 위해 나를 도운 건...”


벽정문이 금정하의 손을 거세게 움켜쥐며 침통한 듯 입을 꾹 다물었다가 말했다. 서역이라는 말에 나는 자신도 모르게 몸을 움찔했다가 주위의 눈치를 살폈다. 금정하도 비룡검객이나 오행진권처럼 서역에 가려 했던 걸까?

그리고 나는 마침내 이해할 수 있었다. 서역에 나타난 용을 처치하기 위해 무림에서 수많은 협사가 들고 일어섰지만, 그중 서역에 갈 수 있도록 지원을 받은 이는 실력이 검증된 소수에 불과했다. 즉, 금정하처럼 명성만이 모자란 이는 서역에 갈 수 없었다는 것이다.

절로 몸이 떨린다. 천의검문의 소문주 대접을 받을 수 없는 내가 그런 대접을 받았기에. 그렇기에 나는 금정하가 그런 취급을 받았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나는 지금까지 정도무림은 숭고하고도 올바른 의지가 가득한 곳인 줄 알았다. 그러나 아니다. 무언가 잘못되었다. 설명할 수는 없었지만 무언가가 그릇되어 있었다.


“알겠네.”


마침내 벽정문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금정하가 기쁜 얼굴로 나를 바라볼 때, 나는 복잡하게 얽힌 마음을 갈무리하고 다시 비무대회에 집중했다. 지금은 이런 생각에 빠져 있을 때가 아니다. 비무에 집중해라. 문무쌍절이라는 자를 이기고 싶다면 지금은 다른 생각을 할 때가 아니었다.


“열을 셀 때까지 상대가 나오지 않는다면 비무를 마무리하겠습니다.”


그때 비무대 가운데 서 있는 사내가 천천히 열을 세기 시작했다. 연달아 여러 상대를 물리친 문무쌍절은 조금도 지친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벽정문이 헛기침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가 보게 양 소협. 그리고 기왕이면 멋지게 져 보게나.”


장난스럽게 들리는 격려를 가슴에 품고 나는 묵묵히 비무대에 올랐다. 한걸음 씩 내딛으며 하나씩 잡념을 지웠다. 그리고 그 자리를 검의와 초식으로 채워갔다. 이윽고 심신이 무공에 대한 것으로 가득 찼을 때, 나는 비무대 위에 올라 문무쌍절과 마주할 수 있었다.


“호중 태생의 양요평이라 합니다.”


“청류곡의 유문이라 하오. 호중은 먼 땅이라, 본인이 식견이 부족하여 그대를 알아보지 못하였소. 혹 어느 고인의 문하에서 검을 연마하셨소이까?”


등 뒤로 금정하와 벽정문의 시선이 느껴진다. 아니, 착각이다. 단지 두 사람의 신뢰를 스스로 자각한 것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나는 누구보다 훌륭하게 또 다른 자신을 가장할 수 있었다.


“태생은 호중이지만 검은 홍산에서 났습니다. 과연 문(文)으로 이름난 청류곡의 무예가 얼마나 대단한지 견식하고자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아, 그렇다면 혹시 그대는 홍산의 금 대협께서 사사하신...”


“그렇습니다.”


주위가 술렁인다. 무명소졸이 올라오자 싸늘하게 식었던 분위기가 차츰 달아오른다. 그리고 유문 역시 조금은 자세를 바로 하고 포권을 쥐었다.


“과연 금 대협의 제자다우시오. 홍산의 기개를 담은 검이라면 능히 본인의 검을 누를 수 있으리라 보오.”


“과찬이십니다.”


나 역시 포권을 쥐어 지루한 대화를 끝내고 드디어 비무가 시작되었다. 가운데에 선 사내가 뒤로 물러남과 함께, 유문이 말했다.


“곡에 매여 있던 몸이라 미처 홍산의 기개가 얼마나 대단한지 보지 못하였소. 부디 본인이 깨달을 때까지 그 날카로움이 얼마나 대단한지 보여주시길 바라오.”


말은 길었지만 삼초를 양보한다는 말이다. 새삼 정도의 문인과 겨룬다는 것이 실감 난다.


“사양치 않겠습니다. 그럼...”


서슴없이 선공을 취한다. 가장 먼저 내보인 것은 단순하지만, 위력적인 일격. 그러나 단순히 힘이 잔뜩 들어간 검이 아니다. 검을 뽑을 때는 누구보다 빠르게. 그리고 검로에 접어들 때는 더없이 부드럽게. 그리고 검극에는 강매한 기세를 담는다.

발검과 함께 청명한 검명이 사방으로 울려 퍼지며 군중이 놀라움을 표한다. 그러나 내 검이 놀라워서가 아니다. 내 검을 쉽게 피해낸 유문의 움직임에 감탄한 탄성이다.


“실로 대단하오. 본인이 조금이라도 방심했다면 당했을 것이오.”


겸허하게 나를 칭찬하지만 그는 아직도 뒷짐을 진 채 나를 상대하고 있었다. 결정적으로 아직 여유가 넘쳐 흐르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반면 나는 초조함이 온몸을 갉아먹는 것을 느꼈다. 최선을 다해 날린 일격이 이리 쉽게 파훼되었다는 것이 안타까웠다. 하지만 생각하던 바다. 그 덕에 나는 초조함을 내색하지 않고 다음을 궁리할 수 있었다.


“이번에도 방심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 검에 내공을 퍼부었다. 의념에 따라 내공이 검에 응축되어 검이 웅웅대며 울었다. 그러나 비단 검에만 내공을 집중한 것이 아니다. 아직은 검과 하나가 되지 못해서 조금은 부자연스럽지만, 검과 체내를 순환하며 내공이 육신의 힘을 북돋아 준다.


“호오.”


내공의 양은 보잘것없었지만 나는 서역에서의 경험. 그리고 단약을 취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위력적인 내공을 발할 수 있었다. 그걸 알아차리고 유문이 조금은 긴장하여 내 움직임을 주시했다. 조금 이르지만, 승부수를 던진다. 잠룡보의 구결에 따라 다리에 내공이 깃들고 잠력이 폭발한다.


“큿!”


사방이 흐릿해지며 입술을 꽉 깨물고 침음성을 내뱉는 유문만이 선명하게 보인다. 폭발적인 기세로 달려들어 검을 내뻗었다. 이번에는 피할 수 없었는지 유문이 뒷짐을 풀고 유려하게 검을 뽑아들었다.


챙! 챙! 챙!


연달아 세 번이나 검이 부딪친다. 초식명 따위는 없었다. 검영연파라는 검의에 따라 마음 가는대로, 흐름이 이끄는 대로 연달아 검을 휘두를 뿐이었다. 유문이 가벼운 기합성을 내어 내공을 발한다.

그러나 조금 늦은 감이 있어 북돋은 내공이 탄탄치 못하다. 유문이 내 검을 흘려내고 쳐낼 때마다 그의 검력(劍力)이 한 움큼씩 줄어드는 것이 느껴졌다. 승산이 보인다. 나는 더욱 거세게 그를 몰아붙이려 했다. 더욱 강맹하고 빠르게 검을 휘두르려는 찰나, 문득 금정하의 가르침이 떠올랐다. 그리고 위화감을 느끼고 검을 거두고 뒤로 물러섰다. 바로 그 순간 유문의 검이 빈공간을 가르며 섬전과도 같은 날카로움을 발했다.


“이 비검을 알아차린 자는 많지 않소만 그대는 과연 홍산검객의 제자답소. ”


유문의 검력이 줄어든 건 나 때문이 아니다. 그건 내 검을 제압하려 한 결과였다. 한순간에 질 뻔했다는 생각에 식은땀이 줄줄 흐른다. 이마와 귀를 타고 흐르는 한 줄기 땀을 의식하며 나는 호흡을 가다듬었다.


“부끄럽게도 운 좋게 귀하의 검을 피했을 뿐, 아직 사문의 이름에 누가 되는 실력입니다.”


서로 자세를 가다듬으며 나는 세 번째 공격에 대해 생각했다. 유문에게서 상당히 방심한 기색이 사라졌다. 이제 어설픈 공격을 해봐야 통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분명 방심하고 있었다.

한결같이 여유를 가지고 있는 그를 보니, 그제야 나는 금정하가 언제나 최선을 다해 나와 싸웠던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적어도 최선을 다하는 금정하보다는 여유만만한 유문이 더 상대하기 쉬운 상대였다.


“다시 가겠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검병을 굳세게 움켜쥐었다. 검이 무겁다. 고작 열 번도 되지 않는 합을 겨루었는데 몸이 축 늘어졌다. 내공이 고갈되고 있었다. 이를 악물고 부족한 내공을 끌어올리고, 그 내공에 마음을 담는다. 내공이 부족하다면 마음으로 대신한다. 극에 달한 검의는 능히 내공을 대신할 수 있다. 당장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나는 그 믿음이 틀리지 않았다 생각하며 묵묵히 검을 들어 올렸다.


“오시오.”


유문이 검을 내리트리고 나를 응시했다. 기수식조차 없는 자연체였지만 역시 빈틈없는 자세다. 그러나 분명 빈틈은 있었다. 실낱같은 방심에서 비롯된 빈틈은 너무나도 작아서 내 실력으로는 없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나는 마치 불나방이 된 것처럼 그 빈틈을 노리고 달려들었다.


“큭!”


예상치 못한 궤적을 그리는 검로에 유문이 살짝 당황해서는 주춤한다. 그러나 정도에서 이름난 무인답게 흐트러진 모습에서도 절대 무너트릴 수 없는 단단함이 보인다. 작은 빈틈에 우겨넣은 검이 어쩔 수 없는 현실처럼 덧없이 틀어막힌다. 이로써 양보는 끝났다. 유문이 본격적으로 움직인다.


“청류도도(淸流滔滔)요.”


사지가 묶여 바위조차도 깎여나가는 계곡에 던져진 기분이 이럴까? 사방을 점한 검영이 묵직한 기세를 담고 짓쳐든다. 막막하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는다. 눈을 부릅뜨고, 마음의 중심에 선 의기를 꼿꼿하게 세우고 이를 악물었다. 다시 실낱같은 활로가 보인다.


“하압!”


자세를 낮추고 안간힘을 쓰며, 검으로 바닥에서부터 머리 위를 지나는 호를 그린다. 작은 빈틈을 파고 든 검이 약간의 틈을 만들었다. 그리고 연이어 한 손으로 바닥을 짚고 재주를 넘어 도도한 청류에서 몸을 빼냈다. 그러나 쉴 틈도 없이 청류는 거세게 넘쳐 흘러 나를 집어삼키려 들었다.


“승복한다면 다치지 않고 끝날 수 있소.”


관중의 요란한 함성과 검명 사이로 유문의 목소리가 미약하게 들려온다. 포기하라고? 턱도 없는 소리다. 고작 상처를 입지 않기 위해 더욱 큰 상처를 입으라니. 그것이 과연 가당키나 한 말이던가?


“그럴 수는.....없습니다!”


긴박한 순간 아슬아슬하게 빈틈을 가르고 나는 다시 몸을 날려 검영에서 벗어났다. 중검(重劍)으로 나를 억누를 수 없다 생각한 유문은 이번에는 다른 초식을 선보였다.


“그렇다면 세류첨(細流尖)은 어떻소이까?”


폭류와도 같던 검이 돌연 세밀한 물줄기가 되었다. 그 변화는 실로 감탄할 정도로 순식간이고 자연스러워서, 나는 비무도 잊은 채 잠시 탄성을 내뱉었다. 저것이야말로 진짜배기 실력이다. 검의 예리함이나 내공의 양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실력의 간극이다.


“변화라면 지지 않습니다!”


검영을 가르던 구명(救命)의 검을 대신해 나 역시 예리한 검초에 대응해 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분명한 격차가 존재한다는 것을 입증하듯, 점차 내 옷이며 살갗에 날카로운 핏줄기가 맺혔다. 이대로는 필패다. 잠시라도 시간을 벌기 위해 온 힘을 다해 뒤로 도약해 거리를 벌렸다. 그리고 혹시라도 집요하게 날아들 공격에 대비해 내공을 끌어모았다. 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공격은 오지 않았다.


“숨을 고르도록 하시오. 본인은 좀 더 홍산의 검을 보고 싶어졌소.”


유문이 빙그레 웃으며 핏방울이 맺힌 검을 비무대를 향해 가볍게 휘둘렀다. 검을 따라 작은 핏방울이 비무대에 떨어진다.


“그러겠소.”


숨을 돌릴 틈은 생겼지만 도리어 낭패였다. 문무쌍절이라는 이름대로 유문은 무인이며 또한 학사이다. 집요하게 공격을 가하지 않으리라는 걸 왜 생각지 못했을까? 덕분에 가뜩이나 부족한 기력이 더욱 부족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배운 것은 분명 있었다. 무공을 겨룰 때는 사람의 별호 역시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점 말이다.


“염치없게도 귀하의 호의는 잘 받겠습니다.”


체면을 차릴 때가 아니다. 유문의 호의를 서슴없이 받아들이고 허리를 굽힌 채 숨을 고르며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날뛰는 내공을 진정시켰다. 거칠게 물결치던 내공이 점차 진정되고 나는 다시 검을 들어 올렸다. 이에 유문이 고개를 끄덕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포기하겠다는 생각은 조금도 없어 보이오만. 본인의 안목이 정확하다 보시오?”


“그렇습니다.”


싸우고 계속 싸워서 검을 쥘 수 없을 때까지 싸우다 지고 싶다. 그런 각오를 읽어냈을지도 모르지. 유문은 곧장 나온 대답치고는 꽤 마음에 들었는지 부드럽게 웃으며 돌연 검을 집어넣고 포권을 쥐었다. 생사투에서는 볼 수 없을 묘한 상황이었다.


“만일 본인이 그대였다면 본인은 이미 진작에 후일을 기약하였을 것이오. 그대의 분투에 경의를 표하겠소. 홍산의 기개는 과연 천하일절이라 해도 부끄러울 것이 없겠소이다. 다시 그대의 이름을 듣고 싶소이다.”


“.....양요평입니다.”


나를 인정하는 자 앞에서 내 진짜 이름을 밝힐 수 없다는 것이 조금은 아쉬웠다. 그렇기에 조금은 망설이다가 결국 가짜 이름을 댈 수밖에 없었다. 유문은 한참이나 내 이름을 되뇌이더니 이내 검을 들어올리며 말했다. 그와 함께 나는 그만 흠칫 놀라고 말았다. 그에게서 미약하게나마 느껴지던 방심한 기색이 완전히 사라져 있었다. 분위기가 달랐다.


“좋소이다 양 소협. 나 청류곡 문하의 유문은 양 소협에게 경의를 표하여 진신절기를 보여드리겠소. 이 검을 받을 자신이 있다면 일어서 검을 들어 올리시오. 자신이 없다면 검을 집어넣고 후일을 기약하시오.”


영문을 알 수 없는 미소가 배어 나온다. 헛된 이름도, 숱한 제약도 뛰어넘어 순수하게 절기를 견식할 수 있다는 것이 이리도 기쁠 줄이야. 검을 쥔 손이 덜덜 떨린다. 두려움이 아니다. 이건 환희다. 그리 명민하지 못한 머리였지만 나는 지금 이 순간을 잊지 않으려 애쓰며 검을 들어 올렸다. 유문에게서 미증유의 기세가 뿜어져 나왔다. 비무대를 포장하고 있는 납작한 돌이 달그락대기 시작했다.


“옛 성현께서는 이리 말씀하셨소. 무릇 무위(無爲)야말로 최고의 도(道)이며 또한 선(善)이다. 하니, 무위로써 행하는 것이 가장 좋은 일이다.”


무위로 행하다. 터무니없는 모순이었지만 나는 한때 경험했던 궁극을 떠올리며 그 말을 일부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아마 지금 이 자리에서 내가 가장 저 말을 잘 이해하지 않을까 싶었다.


“본인은 아직 부족하여 무위에 이르지 못하였으나 그 일면만은 우스꽝스럽게라도 흉내 냈다 자신하오. 무위로 일보를 내디뎠다고 누구에게라도 말할 수 있겠소.”


유문이 비스듬히 서서 검을 머리 위로 들어올렸다. 그리고 한 자씩 천천히 입에 담았다.


“이것이 그 일면이외다. 소협께서는 각오하고 견식해 보시오.”


무심코 검을 들어 올린다. 이윽고 유문의 검이 움직였다. 찰나와도 같은 순간에 날아든 검. 그러나 더없이 느리게 날아드는 검에 나는 내 검을 가져댔다.


그리고 나는 졌다.




감상이나 비평은 언제나 환영합니다.


작가의말

며칠 전에 ZENRA님께 표지를 받아서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번 ZENRA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요즘 주인공이 제법 강해져서 좋아하시는 분이 계실 것 같은데, 애석하게도 작중 흐름은 영 아니올시다로 흘러가네요. 이제 곧 새해가 옵니다. 주인공도 새해에는 조금 더 나아지기를 바라며, 다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만사형통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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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북천(北天)의 망령(亡靈) (2) +3 14.12.29 815 25 18쪽
169 6. 북천(北天)의 망령(亡靈) (1) +6 14.12.20 887 21 12쪽
168 5. 무림대회(武林大會) (9) +5 14.12.13 976 21 17쪽
167 5. 무림대회(武林大會) (8) +7 14.12.07 923 21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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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 5. 무림대회(武林大會) (4) +6 14.11.15 847 2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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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4 4. 유아독존(唯我獨尊) (5) +5 14.09.27 1,222 25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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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 4. 유아독존(唯我獨尊) (3) +7 14.09.26 1,149 21 22쪽
151 4. 유아독존(唯我獨尊) (2) +6 14.09.20 1,269 27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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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 3. 천의검문의 소문주 (10) +6 14.08.24 1,225 33 10쪽
146 3. 천의검문의 소문주 (9) +9 14.08.10 1,558 35 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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