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進化) 바이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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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hcha
작품등록일 :
2016.10.22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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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05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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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1.10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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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4. 핏빛 황혼 (3)

DUMMY

단호하고 결의에 찬 목소리, 베르커스는 진심을 말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란 말이었다.


장호와 이산은 순간 어떻게 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동료가 제 발로 죽으러 가겠단다. 그것도 만난 지 몇 분도 되지 않은 사람을 위해. 이건 용기가 아니라 만용이었고, 신념을 가장한 아집이다.


베르커스는 그렇게 가서 뒈져버리면 그만이겠지만, 남아있는 사람들은 어쩌란 말인가.


동료는 안중에도 없단 말인가?


“중2병 같은 소리 하고 자빠졌네.”

“뭐?”


배낭을 짊어지던 베르커스가 고개를 돌렸다. 할 말을 찾지 못해 땅만 보고 있는 이산과 달리 장호는 씩씩거리며 베르커스의 멱살을 잡았다.


“니가 지금 무슨 말을 지껄였는지 알기나 하냐? 시발, 니가 영웅 놀이에 빠져서 이렇게 가버리면 우리가 아~ 존나 멋있다 하면서 박수라도 칠 줄 알았어? 그것도 아니면 네놈한테 우린 아무것도 아닌 거였냐? 그런 거냐고!”

“........”


항상 사람 좋게 웃는 장호가 소리치자, 베르커스는 잠시 지그시 눈을 감고 말이 없었다. 그러다 곧 굳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니들에게 같이 가 달라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럴 생각도 없고. 이건 내 전쟁이야.”

“이 자식이 끝까지!”


장호의 주먹이 쥐어졌다. 진짜 친구고 나발이고 한 대 쳐버리고 싶다는 생각에 꽉 쥔 주먹이 부르르 떨렸다.


“한 대 치고 싶으면 쳐라. 하지만 따라올 생각은 마라. 다시 말하지만, 너희와는 상관없는 일이다. 가자.”


평소보다 훨씬 차가운 목소리로 말한 베르커스는 준호를 부르더니 성큼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두려운 눈으로 장호를 바라보던 준호가 따라 나섰다.


“그래! 가서 뒈져버려! 내가 그쪽으로는 오줌도 안 눈다. 이 답답한 영웅병 환자야!”


화난 장호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렸지만, 베르커스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산을 올랐다.


기분이 좋지 않았다. 베르커스는 지금 장호와 이산의 기분이 어떨지 누구보다 잘 알기에 마음이 착잡했다. 하지만 또다시 빚을 질 수는 없었다. 더구나 그게 목숨값이라면야 말할 것도 없다.


샘과 그의 부대원들이 그를 살리려 죽어간 이후 얼마나 괴로웠던가. 평생을 자존심 하나로 살아온 그에게 있어 갚지 못할 빚이란 목에 걸린 가시보다 더 괴로운 일이었다. 숨을 쉴 때마다 항상 따끔거리는, 뽑아내지도 못하는 가시. 그리고 그런 가시가 그에겐 하나 더 있었다.


‘오늘로 끝낸다.’


문득, 가슴의 흉터가 욱신거렸다. 왼쪽 어깨부터 옆구리까지 길게 그어진 네 줄기의 상처가 불이 붙은 것처럼 화끈거렸다. 작년 여름, 용병으로 지내던 그가 곰의 습격을 받아 얻은 상처였다.


호위하던 상단이 전멸하고 그 역시 갈라진 상처 틈으로 보이는 내장을 구경하며 죽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 죽을 때가 아니었던지 기적적으로 그를 발견해 치료해준 자가 있었다. 그게 바로 김민국이었다.


베르커스와 김민국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상처를 치료한 이후, 베르커스는 김민국을 위해 이런저런 일을 했다. 대부분 더러운 일이었다. 겉으로는 인력소장으로 있었지만, 뒤로는 온갖 구린 일들을 처리했다. 하지만 차마 자신의 신념과 어긋나는 일까진 할 수 없었기에 점점 김민국과의 관계는 악화됐다. 뒷조사와 협박까지는 견딜 수 있었으나, 암살 같은 일들은 베르커스가 할 수 있는 행동이 아니었다.


그렇게 악화된 둘의 관계는 결국, 한 가지 타협을 하곤 매듭지어졌다. 이번 정찰을 끝으로 베르커스는 인력소장 자리에서 내려오고 대신, 나중에 김민국이 원하는 일 한 가지를 해주기로 얘기가 됐다.


이런 사정이 있는 베르커스는 어차피 요새로 가야만 했다. 시청 주차장의 흔적들을 보고 이미 놈들이 요새 방향으로 몰려간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어떻게 장호와 이산을 떼어 놓을지 고민 중이었는데, 마침 준호가 물꼬를 열어줬다.


녀석들이 화내고 욕할 건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죽을 자리에 데려가는 것보단 나았다.


빚을 갚으러 가는데, 또다시 빚을 지을 순 없는 일이니까.


그러나 세상일은 계획대로만 되는 게 아니었다.


“뭐냐 니들?”


한참을 올라 산 정상에 다다랐을 때, 바위에 앉아있는 장호와 이산을 보며 베르커스는 얼굴을 찡그렸다.


“아, 오랜만이야.”


데우지도 않은 ‘멧돼지 장조림’ 깡통을 까먹으며 장호가 인사했다. 그리고 옆에서 이산이 투덜거렸다.


“그만 좀 먹어요. 요새(fortress)도 망했는데 세 개나 까먹네.”

“야, 한 개는 나눠 먹었잖아.”

“나눠 먹은 게 아니라 제가 반만 먹은 겁니다. 아까워서 반만 먹은 거라고요.”

“쳇, 너 그렇게 바가지 긁는 거 아니다. 남자가 쪼잔하게시리...”

“쪼잔해도 좋으니까 우리도 부자 좀 돼봅시다. 아니, 1년 동안 집도 절도 없이 이게 뭐야.”


이산의 잔소리에 장호가 머리를 벅벅 긁었다. 그가 생각해도 지난 1년 동안 발전이 좀 느리긴 했다.


베르커스는 이놈들이 묻는 말에는 대답 없이 잡담이나 하고 있자 한숨을 내쉬며 그대로 지나쳤다.


녀석들이 무슨 생각으로 여기 있는지는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이건 그의 전쟁, 끌어들여서는 안 됐다.


“돌아가라.”


장호와 이산을 스쳐 지나가며 베르커스가 말했다. 하지만 이어 들리는 장호의 말에 그의 발걸음이 멈췄다.


“이걸로 옛날에 기절시킨 건 없는 걸로 하는 거다.”

“뭐?”

“니가 이렇게 뒈져버리면 내가 누구한테 빚을 갚아? 젠장, 샘 그자식이 나만 나쁜 놈으로 만들어가지고. 아니 근데 이게 왜 빚이지? 어쨌든 살려 줬으니까 내가 채권자 아니냐?”


장호가 말을 하다 황당한지 이산을 보며 물었다.


“그렇게 따지면 내가 더 억울하죠. 빌려 간 돈 받으려고 따라 나왔으니.”

“야야, 그건 수업료라니까.”

“내가 다 적어놨는데 이상한 소리 하지 마시죠. 채무자님.”


이산의 말에 장호가 머쓱한 표정을 짓다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곤 베르커스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좀 전과 달리 진지한 표정이었다.


“니가 뭔 생각을 하는지는 모르겠다. 왜 죽으러 가는지, 왜 너답지 않게 고집을 피우는지는 모르겠어. 근데 난 니가 어쭙잖은 영웅 흉내나 내는 놈은 아니란 건 알거든. 그니까 내가 모르는 무슨 이유가 있겠지.”


장호는 잠깐 말을 끊었다. 베르커스의 눈동자가 흔들리고 있었다. 역시 이놈에게 말 못할 나름의 사정이 있는 것 같았다.


장호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의뢰받은 셈 치기로 했다. 의뢰 내용은 요새 방어전 참가. 그리고 대금은 글렌 베르커스의 종신계약. 물론 선금에다 거절은 없다.”


장호는 말을 마치곤 빙긋 웃었다.


자신도 이것이 얼마나 억지인지는 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라도 녀석을 따라가야 했다. 그리고 힘들 긴 하겠지만, 계룡요새는 현재 토벌을 준비 중이었기 때문에 잘하면 막을 수 있을 것도 같았다.


장호가 말을 마치자, 베르커스는 고개를 한번 젖더니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제정신으로 하는 말이냐? 아까 주차장을 보지 못했나? 추정 수치가 500 아니 어쩌면 그 이상의 괴물이란 말이다!”


이놈들은 지금 이게 소풍 가는 줄 아는 것인가? 목숨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 이런 헛소리라니.


그때, 이산이 옆으로 다가왔다.


“형님 말이 맞아요. 진짜 괴물을 상대하러 가는 거죠. 어제 만난 놈보다 더 무서운 괴물. 근데요, 전 우리가 죽을 것 같진 않네요.”

“뭐?”

“어제였다면 이런 생각은 못 했을 겁니다. 하지만 오늘은 달라요.”


이산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함부로 놈이 날뛰진 못할 겁니다. 왜냐하면.....”


이산은 소총을 툭툭 쳤다.


“다 보이는 데다 다 맞출 수 있거든요. 물론 좀 좋은 총을 구해야겠지만.”


작가의말

오늘는 쓸 말이 좀 많네요.

먼저 후원금을 받았습니다. 얼라쇼님 정말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어제의 내용에 많은 분들이 우려와 격려를 주셨습니다.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뜬금없는 작중 베르커스의 태도에 많은 분들이 분노를 금치 못하신 것 같은데 이건 제가 이전에 설명이 부족했다는 생각이 드네요.

베르커스와 김민국은 후에 심각할 정도로 역이는 관계입니다. 흔히 말하는 애증(?)이라고 해야 하나.... 하여간 은원이 실타래처럼 꼬이게 되죠.

제가 미숙하여 떡밥(?) 하여간 그런 걸 제대로 뿌리지 못한거죠.

마지막으로 베르커스의 성격에 관한 부분인데, 고지식하고 우직한 사람을 표현하려 했습니다. 이는 능력과 포지션에 맞추려는 것이었죠. 그러니 앞으로도 베르커스는 좀 답답한 면이 있을 것입니다. 미리 밝혀 둡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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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Chapter 4. 좀비가 농사를 짓는다고? (4) +3 16.12.05 1,009 47 9쪽
35 Chapter 4. 좀비가 농사를 짓는다고? (3) +3 16.12.03 1,138 60 8쪽
34 Chapter 4. 좀비가 농사를 짓는다고? (2) +5 16.12.02 1,139 61 9쪽
33 Chapter 4. 좀비가 농사를 짓는다고? +6 16.12.01 1,267 64 10쪽
32 Chapter 4. 핏빛 황혼 (12) +3 16.11.21 1,672 72 13쪽
31 Chapter 4. 핏빛 황혼 (11) +9 16.11.19 1,801 79 8쪽
30 Chapter 4. 핏빛 황혼 (10) +6 16.11.18 1,628 67 8쪽
29 Chapter 4. 핏빛 황혼 (9) +4 16.11.17 1,661 72 10쪽
28 Chapter 4. 핏빛 황혼 (8) +3 16.11.16 1,687 76 11쪽
27 Chapter 4. 핏빛 황혼 (7) +3 16.11.15 1,709 71 8쪽
26 Chapter 4. 핏빛 황혼 (6) +5 16.11.14 1,670 83 13쪽
25 Chapter 4. 핏빛 황혼 (5) +6 16.11.12 1,900 85 12쪽
24 Chapter 4. 핏빛 황혼 (4) +7 16.11.11 1,835 69 9쪽
» Chapter 4. 핏빛 황혼 (3) +6 16.11.10 2,045 85 8쪽
22 Chapter 4. 핏빛 황혼 (2) +11 16.11.09 2,101 73 11쪽
21 Chapter 4. 핏빛 황혼 +7 16.11.08 2,151 74 7쪽
20 Chapter 3. 사냥꾼과 사냥감 (6) +5 16.11.07 2,382 84 11쪽
19 Chapter 3. 사냥꾼과 사냥감 (5) +5 16.11.06 2,429 77 11쪽
18 Chapter 3. 사냥꾼과 사냥감 (4) +2 16.11.05 2,426 83 12쪽
17 Chapter 3. 사냥꾼과 사냥감 (3) +5 16.11.04 2,371 80 17쪽
16 Chapter 3. 사냥꾼과 사냥감 (2) +10 16.11.04 2,403 97 19쪽
15 Chapter 3. 사냥꾼과 사냥감 +1 16.11.03 2,673 83 14쪽
14 Chapter 2. 안개 속으로 (7) +4 16.11.03 2,372 93 15쪽
13 Chapter 2. 안개 속으로 (6) +3 16.11.02 2,367 96 14쪽
12 Chapter 2. 안개 속으로 (5) +1 16.11.01 2,500 88 10쪽
11 Chapter 2. 안개 속으로 (4) +1 16.10.31 2,494 76 10쪽
10 Chapter 2. 안개 속으로 (3) +2 16.10.30 2,497 91 10쪽
9 Chapter 2. 안개 속으로 (2) +1 16.10.29 2,816 89 13쪽
8 Chapter 2. 안개 속으로 +3 16.10.28 3,152 8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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