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물의 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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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쿠리퍼
작품등록일 :
2017.05.27 2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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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1.25 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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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스의 과거(3)

DUMMY

“역시나... 엄청나게 몰려드는군.”


캠프밖에 없던 야영지와는 어울리지 않는 성벽 위.


나는 어둠속에 숨어서 야영지를 향해 몰려오는 군단의 졸개들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적을 전부 몰살시키지 못하면 휴식 또한 없다. 과연 우리들 중 몇 명이 내일의 태양을 볼 수 있을까?’


검이 들린 손에 힘이 들어간다.


빛의 교단이라는 이름아래에 활동하기 시작하면서부터 함께 해온 전우들이자 친우들이었다.


그런 그들에게 신의 사명이라는 말 뒤에 숨어 희생을 강요하는 내 자신이 추잡해보였다.


‘도대체 신의 사명이란 게 뭐기에... 저들에게 아무런 거리낌 없이 희생하라 말할 수 있는 거냐고...’


희생의 무게 앞에 굳건했던 신앙심도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갑작스럽게 막심한 후회가 내 머릿속에 밀려들어왔다.


만약 그 빛이 내게 내리지 않았더라면...


성녀님의 말씀대로 이 여정을 시작하지 않고, 군단과의 본격적인 전쟁을 준비하였다면...


하지만 이제 와서 어쩌겠는가?


이미 주사위는 굴려졌고, 나는 그 운명에 순응 할 수밖에 없다.


“후... 지금, 그런 쓸데없는 생각에 신경을 쏟아 부을 수는 없지.”


현실을 순응한 나는 빠르게 광검(光劍)을 뽑아들었다.


그리곤 그 검을 곧장 군단을 향해 겨누며 목청을 높였다.


“신성한 빛이 우리와 함께하는 한, 너희들은 결코 이 벽을 넘을 수 없을 것이다!”


조잡해보였던 성벽을 광검에서 시작된 신성한 빛이 감싸 안았다.


하지만 그것으로 내 말은 끝난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이 빛이 함께하는 한 우리의 전사들은 결코 쓰러지지 않으리라!”


다시 한 번 전장에 나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리고 그에 뒤이어 다시 한 번 광검에서 강렬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오오! 전능하신 루니아님의 빛이여!”

“그분의 영광이 나와 함께 한다!”


광검에서 뿜어져 나온 빛은 성벽을 감싸 안았듯이 단원들에게도 스며들었다.


그러자 모든 병사들의 입에서 ~이 쏟아져 나왔고, 난 빛을 뿜어낸 광검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강력한 힘에는 늘 그 대가가 따르는 법... 이 힘의 대가는 무엇인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맹신적으로 믿던 신의 힘이 두려워졌다.


자신의 신도에게 대의를 위해 희생하라고 아무런 거리낌 없이 말할 수 있는 신이 내려준 힘...


당연히 신께서는 인간을 초월한 존재이시니... 몇 명의 인간이 죽는다고 하여도 개의치 않으시라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게 옳은 일일 지라도 난... 두려웠다.


“단장님! 루니아님의 신성한 빛에 잠시 머뭇거리던 녀석들이 다시 접근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때, 나의 뒤에 있던 단원 하나가 나를 불렀다.


광검에서 시작된 빛에 잠시 움찔했던 녀석들이 다시 접근을 시작했다는 얘기였다.


얘기를 전해들은 나는 당장 고개를 돌려 성벽을 향해 다가오고 있는 군단의 졸개들을 보고는 아군 병력들에게 소리쳤다.


“모든 병력들은 들어라! 우리의 최우선 목표는 성녀님의 수호다. 그 점을 언제나 명심하고, 전투에 임하라!”


아군 병력들에게 수성이 아닌 성녀님의 수호를 중요시하라며 단단히 이르고는 나는 성녀님께로 향했다.


“그가 성녀님의 지원 요청을 받아들였습니까?”

“네, 그가 직접 지원 오겠다고 제게 약조했습니다.”

“그렇다면... 정말로 오늘과 내일이 고비가 되겠군요.”

“저 또한 뒤에서 방관하고만 있지는 않을 겁니다. 루니아님의 광명이 저희를 비추는 한. 저희는 결코 군단에 굴복하지 않을 것입니다.”


성녀님의 단호한 목소리에는 신도들의 희생을 지켜만 보고 있지 않겠노라 라는 의지가 가득 차있었다.


나는 그런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떡이고는 광검을 넘겨드렸다.


“이 검을 받으시지요. 그 검이 성녀님을 지켜줄 것입니다.”

“하지만, 이 성물은 루니아님께서 단장님께 내리신...”

“그렇기에 오히려 드려야만 합니다. 어차피, 제가 쓰는 검은 그런 단검도 아니고요.”


검을 받기를 주저하는 성녀님께 등 뒤에 메고 있던 거대한 대검을 자랑하듯 들어 올리고는 미소를 지어보였다.


애초에 나 같은 이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물건이었다.


이게 맞는 선택이다.


“그 성물이 성녀님께서 가지고 계신 신성력을 더욱 빛나게 만들어 줄 겁니다. 루니아님의 가호가 함께하기를.”


성녀님께 검을 전해드렸으니 이곳에서 내가 해야 할 역할은 끝이 났다.


나 또한 나의 형제들과 함께 전장의 앞에 서리라.


그런데 그때였다.


“혼자 어딜 그리 급히 가시는 거죠?”

“성녀님? 군단과의 전투는 저희의 임무입니다. 계속되는 강행군에 지치셨을 텐데. 들어가서 쉬시지요.”

“그분의 신자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만 보고 있으라고요?”

“...어쩔 수 없는 희생입니다. 그런 것에 주저한다면... 대의를 이룰 수 없는 법입니다.”


나의 말에 성녀님은 입을 꾹 다무셨다.


후우... 결국은 이렇게 되는군.


내가 한 말이 얼마나 무책임하고... 역겹기 그지 없는 말인지는 나도 잘 안다.


하지만... 그분의 말씀을 지키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


“그깟 대의가. 우리의 신, 루니아님의 말씀보다 중요하다는 얘기인가요?”


포기한 줄 알았던 그녀가 나를 붙잡았다.


그녀는 루니아님의 이름을 들먹이며 그깟 대의가 중요한 것이냐며 내게 물었다.


그리고 그 순간 내 꼭지가 돌았다.


“...그깟 대의요? 네! 중요합니다. 그깟 대의 때문에 많은 형제들이 피를 흘리며 죽어나갔으니까요! 그리고 그깟 대의를 내리신 건 우리의 신, 루니아님 이십니다! 잘 아시겠습니까? ”


주위에 있던 수호병단의 단원들이 모두 나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아직 분이 다 가시지 않았기에 나는 여전히 씩씩거리며 그녀를 노려보았다.


“그래서 말하지 않았나요? 루니아님께서 새벽 기도 때 제게 말씀을 전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지금, 그것을 여러분들게 전해드리겠습니다.”

“...!”


척!


그녀의 말에 씩씩거리던 나는 이성을 되찾고는 한쪽 무릎을 꿇고 그녀의 말을 기다렸다.


지금 그녀는 ‘성녀’로서 말하는 것이 아닌 루니아님의 ‘대리자’로서 얘기를 하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척! 척! 척! 척!


물론 무릎을 꿇었던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주위에서 성녀님의 선언을 똑똑히 들은 이들을 시작으로 하여 인근의 모든 이들이 한쪽 무릎을 꿇고는 고개를 조아렸다.


““내 생각이 짧았었다. 세계를 관조하는 12인의 왕들이 흔쾌히 나의 아이와 만나줄 것이라고 생각하였으나 그것은 오착이었다.””


성녀님의 눈에 광명이 비추며 그녀의 본 목소리 위에 누군가의 목소리가 겹쳐졌다.


난 곧 그 목소리가 루니아님이라는 것을 깨닫고는 더욱 머리를 연신 조아렸다.


““그리고 그들을 찾는다 하더라도. 그들은 이미 ‘아발론’이라는 이름의 감옥에 갇혀 세계에 관여할 수 없다. 진정한 왕의 후계자만이 그들을 감옥에서 해방시킬 수 있으니... 그를 찾아라. 그리고... 군단과 맞서라 그것만이 새로운 시작을 여는 끝을 만들 수 있노라.””


그 말을 끝으로 성녀님의 눈을 비추던 광명이 사그라졌다.


“휴... 다들 루니아님의 의지는 똑똑히 들으셨으리라 믿겠습니다. 루멘님?”

“...네, 성녀님.”

“제가 물었지 않습니까? 그깟 대의가 루니아님의 말씀보다 중요하냐고요.”

“...”


나는 성녀님의 물음에 대답할 수 없었다.


그저 입을 꾹 다물고 그녀의 질책을 기다렸다.


“말 하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하지만... 지금 뭐하고 계신 거죠?”

‘왔군... 좌천당하려나? 뭐, 무책임한 자의 말로로는 부적합 하지만 상관없겠지.’


그녀의 날카로운 목소리에 나는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피식 웃었다.


하지만 뒤이어 들려오는 말은 질책의 그것이 아니었다.


“어서 군단과의 전투를 준비하지 않고 뭐하시고 계시냐고 물었습니다.”

“...예?”“그렇게 멍하니 서있을 시간이 없으실 텐데요? 어서 가죠.”


그녀는 내게 손을 내밀고는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런 그녀의 다른 손에는 광명의 검이 아닌 광명을 비추는 거대한 깃발이 펄럭이고 있었다.


“분부. 받아들이겠습니다.”


나는 그녀가 내민 손을 붙잡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임시방편으로 만들어진 성벽은 벌써 무너져 내리고 있었고, 단원들은 군단의 졸개와 전투를 시작하였다.


오늘 밤은 아주 긴 밤이 될 것 같았다.


“성녀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신다! 군단의 졸개들을 말살하라!”


자랑스럽게 외치며 군단의 녀석들에게 달려 나간다.


지금 다시 생각해봐도 그때만큼 속이 후련했던 적은... 없었던 것 같았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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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녹스의 과거(3) +2 18.01.25 635 4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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