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뜨랑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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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삼
작품등록일 :
2010.10.29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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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21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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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9.29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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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뜨랑제 (1) - 탈선 -1

DUMMY

1. 탈선-1





“일만, 이만, 삼만, 사만!”


언제나 그랬듯 구호를 크게, 그리고 꼬박꼬박 외쳤다. 오른쪽 어깨가 얼얼하다. 있는 힘을 다해 문밖으로 도약을 했는데도 워낙 비행기의 전진 속도가 빨라 동체에 한번 ‘쎄게’ 부딪쳤다. 덕택에 몸이 스핀을 먹고 한 바퀴 빙글 돌며 자세가 흐트러졌다. 그렇지만 노련하게 구호를 외치며 시간이 되기를 침착하게 기다린다.


‘투-툭- 철렁!’


허리에서 어깨까지 기분 좋은 충격이 왔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본다. 밤하늘 음공을 가득 채우며 머리 위에 둥그렇게 활짝 펴진 거대한 막이 보인다. 이제야 살았다고 느낀다.


비행기와 엮어놓은 탯줄을 끊어버리고 스스로 펼쳐지는 낙하산은 그 자체가 모든 것을 담보하는 생명줄이다. 이제 조금 여유가 생겼다. 주변을 둘러본다. 허공에 둥실 떠 있는 기분은 정말 최고다. 안 타본 놈은 이 기분 절대로 모른다.


C141 수송기는 밤하늘을 가득 메우며 토해내듯 또 한 팀의 낙하산 부대를 쏟아내고 있다. ‘산’은 빙긋 웃으며 땅을 쳐다보았다. 이제 땅에 깔린 패널을 찾아야 한다. 아마 선발대가 횃불로 깔아놓았을 것이다.


허공에서 한참을 뒤졌다. 낙하산이 떨어지는 시간은 끽해야 1분이다. 요새는 이 산골 촌구석도 워낙 불빛이 많아져서 그 표식을 식별하기가 쉽지 않다. 그렇지만 ‘산’은 진정한 베테랑이다. 그의 날카로운 눈이 빛났다. 왼쪽 10시 방향에 ‘T’자형 패널이 보인다.


낙하거리와 이동거리를 고려하면 제법 거리가 멀다. ‘산’은 낙하산 어깨 줄에 매달려있는 테이크 라인(Take Line)을 당기며 몸을 회전을 시켰다. 바람 방향은 다행스럽게도 뒤쪽이다. 빨리 갈 수 있을 것이다.


밀리터리 점프 방식의 낙하산은 모양이 둥그렇고 뒤쪽이 둥글게 터져있다. 이 터진 곳을 ‘기공(氣孔)’이라고 부르는 데, 몸이 내려가는 공기압으로 낙하산이 팽팽해지면 기공이 풍선 주둥이처럼 뒤쪽으로 공기를 분사시키는 효과가 있어 낙하산을 앞으로 이동시킬 수 있다.


테이크라인을 잡아당기면 좌우 측으로 기공이 닫히거나 열린다. 왼쪽으로 당기면 왼쪽으로 회전하고, 오른쪽을 당기면 오른쪽으로 돈다. 양쪽을 모두 당기면 기공이 막히면서 동시에 공기를 가둘 표면적이 줄어들어 빨리 떨어진다. 당긴 라인을 동시에 놓으면 갑자기 펼쳐지며 낙하산을 순간적으로 정지시키는 효과가 있다. 맞바람을 맞으면 수평이동을 정지시킬 수 있고, 뒷바람을 맞게 하면 이동속도가 배 이상 빨라진다. 바람 부는 방향은 낙하산이 찌그러지는 모양을 보고 판단한다.


낙하산이 쭉쭉 앞으로 가는 느낌이 난다. 그래 신나게 가는 거야!


그렇지만 표정과는 달리 패널 쪽으로 가까이 갈수록 경험 많은 그는 더욱 긴장한다. 그 지점으로 모든 낙하산이 모이기 때문이다. 재수없으면 골로…


“이-런! 빌어먹을!

아- 이런 병신같은 새끼! 빨리 방향 못 틀어? 이 머저리 놈아!”


산이 급박하게 고함을 질렀다. 오른 쪽 위 옆쪽에서 낙하산이 급격하게 가까워지고 있다. 조종하는 꼴을 보아하니 딱 봐도 신병이다. 놈은 입을 벌린 채 엉뚱한 곳을 쳐다보고 있다. 패널 근처는 공중이 항상 소란하다. 여기저기서 비명 소리가 들린다. 대부분 욕설들이다. 옆으로 낙하산이 쉭쉭 지나가는 것 자체가 공포다.


그래도 이건 너무 빠르게 다가오고 있다.


산은 눈을 질끔 감았다. 방향을 틀기에는 이미 시간이 늦었다. 그렇지만 그의 눈은 다시 냉정하게 위쪽을 쳐다보고 있다. 벌써 멍청한 병사 놈의 발이 그의 낙하산 줄 사이로 비껴 들어오고 있다. 이제 꼼짝없이 그의 낙하산과 자신의 낙하산이 엉키게 될 것이다. 바닥은 아직도 200미터 가량 남았다.


몸이 순간적으로 휘청거리며 빙빙 돈다. 낙하산이 엉켜 서로 스핀을 먹은 채 감겨 돌아가고 있다. 서로 엉키고 말리며 몸이 밑으로 쭉 빠지는 게 느껴진다. 아! 이젠 죽었구나. 재수도 없지... 산은 냅다 소리를 질렀다.


“이게 무슨 개 같은 경우냐… 어라! 또? 안돼! 이 병신새끼!”


산은 추락하는 경황 중에도 신병의 동작을 세밀하게 살폈다. 그리고 산은 손을 뻗어 놈의 옷깃을 잡았다. 병사를 자신 쪽으로 끌어당기며 주저 없이 허리를 퉁겼다. 몸을 비틀며 그 반동으로 군화 발을 위로 차올렸다. 지지할 곳이 없는 허공에서 그야말로 있는 힘을 다해 갈겼다. 발은 정확하게 병사의 헬멧 뒤를 치고 퉁겨 나왔다.


“끄-윽”


찢어지는 비명소리와 함께 병사의 목이 앞으로 움츠러들었다.

그 충격의 반동으로 산과 병사는 허공에서 반대방향으로 돌고 있다. 이 효과는 괜찮았다. 속칭 담배말이라고 불리는 칭칭 감긴 낙하산이 반대로 돌면서 다시 공기를 받아 펴지고 있다. 이제 전형적인 패턴으로 내려온다. 낙하산 하나는 펴지고, 하나는 꺼지며 번갈아가면서 그렇게 내려간다.


산은 심호흡을 하고 있었다. 대충 수습은 했지만 하강속도가 정말 빠르다. 낙하산 하나가 두 사람을 지탱하니 별 수 없다. 대강 어디 하나 정도는 부러지겠지만 그게 어디냐. 그래도 살 확률이 큰데… 저 멍청한 병사 놈은 기절한 것 같다. 상관없겠지. 어차피 기절한 채 떨어지는 것이 지랄발광하며 떨어지는 것보다 더 안전할 지도 모른다. 어차피 발부터 닿을 테니…


아 담배피고 싶다. 정말.


그 긴장된 와중에도 노련한 산은 아래 땅 쪽의 주변을 둘러본다. 어떻게든 낙하산을 조종 해서 땅바닥이 아닌 나무 위에라도 걸치게 할 수 있으면 이 상황에서 최고다. 삐죽한 자갈은 싫다. 바위는 더 싫다. 많이 아프다고.


“어? 저건 또 뭐야?”


땅을 내려보는 그의 시야에서 세계가 사라져간다. 빛이 사라진다.

땅바닥에 깔아놓은 불빛 패널이 흐늘흐늘 꺼져간다. 그리고 암흑의 세계가 찾아왔다.


정전인가? 그럴 리가 없잖아? 마치 세계의 불빛이 모조리 꺼진 것 같다. 캄캄한 무저갱처럼 뭔가 아가리를 벌리고 있는 것 같다. 사방은 컴컴한데, 어둠과 빛을 분리시킬 수 있는 방법이 그에게는 없었다.


산의 낙하산은 원래의 바닥을 지나서도 멈추지 않았다. 마치 악마의 아가리처럼 검고도 검은 숲 속으로 끝없이 추락하고 있었다. 몽롱하고 답답한 기분에 산은 바닥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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