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뜨랑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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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삼
작품등록일 :
2010.10.29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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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21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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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10.03 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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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뜨랑제 (6) - 탈선 -6

DUMMY

6. 탈선 -6




이곳의 저녁하늘은 정말 아름다웠다. 잔인할 정도로 환상적이다.

뭉게구름이 석양의 노을을 받아 붉게 빛나고 있고, 그 위로는 에머랄드 빛 창공이 숨이 가쁠 만큼 푸르고 장엄하게 펼쳐져 있다. 어제와는 달리 별님들도 어슴푸레하게 등장하고 계신다.


“그러니까… 여기는 지구가 아닐 수도 있다 이거냐?

우리는 지구를 떠난거다 이거지? 우주선으로 슉 날아가서도 아니고, 그냥 낙하산으로 뚝 떨어져서리… 그런거야?”


산이 심드렁하게 말했다. 앞에는 비연이 벌건 얼굴로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산은 그런 그녀가 석양의 햇빛을 받아서 그런지 그런대로 귀엽고 예쁘다고 생각했다.


“저도 미친 소리라는 걸 알아요. 그렇지만 도저히…”

“거기까지!”

산이 낮게 끊어 말했다.


비연이 가볍게 한숨을 쉬며 그를 쳐다본다. 본인이 생각하기에도 한숨이 나올만한 소리를 하긴 했다. 그렇지만 그렇게밖에 해석이 안 되는데 어쩌란 말인가?


산의 표정은 무덤덤하다. 입을 꾹 다문 채 화려하게 꺼져가는 석양을 바라보고 있다. 그렇지만 화낸 것 같지는 않다.


비연 역시 얼굴을 잔뜩 찡그린 채 무릎을 세우고 팔을 두른 채 석양을 바라본다. 만년설을 배경으로 해가 꺼진다. 여태까지 그녀가 보았던 어떤 황혼보다 세배는 큼직한 커다란 태양이 무너지고 있다. 하늘과 땅 사이에는 옅은 구름이 깔려있다. 그 밑으로는 끝없이 펼쳐진 끝없는 수림의 바다위로 시커멓게 멍든 것처럼 땅거미가 달린다. 정말로 세상이 무너져 내리는 듯한 착각이 일 정도로 끔직하게 큰 스케일이다.


아마 그도 지독하게 혼란할 것이다. 바쁘게 일한 낮에는 잊었다가, 이렇게 조금의 여유라도 생기면 스멀스멀 맨 정신으로 젖어드는 공포와 혼돈이 이토록 무섭다. 비연은 처음으로 진정한 고독이 무엇인지 경험하고 있었다. 그 고독의 진정한 두려움도 함께 느끼고 있었다.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세계에서, 어떤 미래도 계산할 수 없는 이 절대의 불안감, 무엇을 해도 안전하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 얼마나 두려움을 줄 수도 있는지를.


“김중위…”


비연은 고개를 돌렸다. 그는 눈길을 전방에 향한 채 담배에 불을 붙이고 있었다. 담배연기가 바람에 부서져 산산이 흩어진다.


“저 황혼이 지는 곳이 어떤 방향이지?”

“그건 서쪽….” 비연이 대답하다 멈칫 말을 끊었다.


“증명할 수 있나? 만약 네 말대로 지구가 아니라면 지구 축이 서쪽에서 동쪽으로 돌지 않을 수도 있겠네? 그러면 해지는 곳이 동쪽일 수도 있지? 남쪽일 수도 있겠고?”


“…”


“그런데 말야…


나는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30년을 보냈어. 그런데도 안 가본 곳이 훨씬 더 많아. 하물며 장기파견 나갔던 중국 빼놓고, 다른 나라는 어떻게 생긴지도 몰라. TV나 사진으로 보여준 것 말고는 말이지. 그런데 사람들은 마치 갔다 온 것처럼 생생하게 이야기하지. 오히려 살다 온 사람보다 훨씬 더 잘 떠들더군. 그리고 정말 안다고 스스로 최면을 걸지… “


“…”


“그런데 알긴 개뿔을 알아. 그 동네 날씨가 어떤지, 사람들은 뭘 처먹고 사는지? 나무나 동물은 한국과 어떻게 다른지? 물맛은 똑같은지? 북극은 정말 얼마나 춥지? 적도 정글은 얼마나 덥지? 직접 가 봤나? 다 상상이잖아? 남미의 깊은 늪지 속에는 뭐가 있는지 알아? 하다 못해 네 고향집 뒷동산 계곡에 정말 팔뚝만한 가재가 있는지도 모르잖아? 진짜 확인 한 것이 대체 몇 종류나 될까? 그런 주제에 사람들은 자기가 못 본거나 이상하다 싶으며 상식적이지 않다고 지랄하거든. 세상이 보여준 1% 중에 그 1%도 제대로 모르는 처지에 말이야.”


“…”


“김중위… 잘 들어둬라. 난 말야.한가지 철칙이 있어. 어떤 정보라도 절대로 100%로 믿지 않는다는 거지. 만약 그 정보가 전투 현장의 냄새를 모르는 놈이 책상머리에서 긁어 댄 거라면 1%도 믿지 않아. 오히려 편견만 생기더군. 직접 갔다가 온 놈이 이야기해주는 것도 50%만 믿어. “


“…”


“왜 그런지 아나?”


“?”


“스무고개와 똑 같은 거야. 정찰 관측은 원래 불확실하고, 전달하는 말은 더 불확실하고, 그걸 듣는 내 이해는 더더욱 불확실하거든. 결국 99%는 상상으로 머리 속에 그린 것들이야. 그것도 내 머리 속으로 어설픈 작문과 상상력으로 땜빵해서 말이지.


결국, 불확실한 부분은 내가 직접 확인해야 할 일이 되더군. 난 경험을 더 믿어. 몸빵으로 직접 겪어 보는 것만큼 확실한 건 없어. 특히 나와 내 부하의 목숨이 걸린 작전이라면! 나는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직접 확인해보지 않고는 절대로 움직이지 않아.”


“?!”


“김중위… 우리… 여기서는 느리게 가자. 가능한 한 아주 느리게 가자. 지금 판단을 빨리 내린다고 뭐가 더 나아지지? 그리고 그 판단이라는 게 얼만큼이나 신뢰할 수 있지?


좀더 지켜보자구. 우리는 이 곳에 대한 정보는 고사하고, 제대로 된 첩보조차 없는 상황이지 않나? 잘못된 전제하에서, 게다가 부족한 첩보로 작전을 세우면 결과는 보나마나야.


이런 말해서 자네한테 미안하지만, 전투는 책상머리에서 이루어지지 않아. “


“예… 알겠습니다.”


“기본부터 하자고. 그것도 쌩 기초부터 시작하자고.

너도 봤잖아? 우리가 알았던 상식이 이미 깨진 동네야. 우리는 진짜 아무것도 모른다고 봐야돼. 이 동네에서는 1 더하기 1이 2가 아닐지도 몰라. 뭐가 더 깨질지도, 어디서 뭐가 튀어나올지도 전혀 모르고 있다고. 우리가 아는 익숙한 규칙이 깨진 마당에 그 불안한 규칙을 잣대로 판단한 들 그게 얼마나 정확하겠어?”


“…”


비연의 얼굴이 붉어지고 있다. 황혼의 노을에 물들어서가 아니다. 그는 정말 정곡을 찌르고 들어왔다. 인정하기는 싫지만 이번에는 확실히 그의 판단이 옳다고 느꼈다.


산이 천천히 일어났다. 그가 보기에 아직도 일은 많이 남아있다. 옆에 둔 야전 삽을 집어 들더니 비연의 어깨들 툭 치며 한마디를 던졌다.


“자식! 조급하기는… 여기서 급한 일은 없어. 쓸데없이 갈구는 인간도 없을 거고. 마음 편히 먹고 천천히 일이나 챙겨. 걱정하다 병 난다. 약도 없잖아?”


산의 저녁일과가 시작되었다. 그가 생각하기에 어두워지기 전에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다. 전기가 없는 동네의 밤은 길다. 그리고 가장 무방비 상태가 되는 시간이다. 이 밤에 불을 피우는 것이 독이 될지 약이 될지 모르겠지만, 어찌되었든 뭔가 준비는 해야 한다.


일단 아쉬운 대로 큰 돌을 써서 비트 주변에 꼼꼼하게 배치하며 석책을 쌓았다. 일종의 미로 같이 여기저기 쌓아 중심점이 없도록 대강 진지를 구축 하고, 그 바깥 쪽으로는 낮에 거둔 마른 풀과 장작을 둘러 가며 목책 겸 화로용 장작으로 배치했다. 가운데 모닥불과 조명을 겸한 화덕을 설치했다.


“흠… 이 정도면 불을 보고 하늘에서 날라오는 것들도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지. 병력이 겨우 둘인데 밤새 불침번 설 수는 없지 않겠어?”


이미 해가 넘어가며 주둔지는 급속하게 어두워지고 있다. 비연이 산이 만든 화덕에 불을 붙였다. 수액에 송진 같은 기름기가 있는지 불은 잘 붙었고, 잘 타고 있다. 임시로 만든 화덕이지만 열보다는 빛이 잘 나도록 길죽하게 배치했다.


비연은 불을 붙이면서 사내가 일하는 모습을 유심하게 살피고 있었다.


‘그래도 행운이지 뭐야…’


이 사내는 걸걸한 말투에 비해 무척이나 세심한 사람이다. 어차피 10시가 되기 전에 취침하지 못할 것이다. 그 시간 동안 이 모닥불 가에서 일을 할 수 있도록 이미 바닥과 작업장소까지 고민하여 설치한 것 같다. 모닥불 앞에 바닥을 고르고, 그 위에 널찍한 통나무를 여러 개 엮어 편편하게 깔았다. 그 위에 마른 풀을 덮어 편하게 앉거나 누울 수도 있게 했다. 그리고 비연 자신의 자리는 안쪽으로, 자기 자리는 사주경계(四周警戒)가 쉬울 만한 위치를 잡았다. 그 위치도 그녀와 눈이 마주치며 서로 어색한 모습이 관찰되지 않도록 같은 방향을 보도록 비스듬히 배치한 모습이다.


이어 낮에 챙긴 식량 후보들을 챙겨 하나하나 섬세하게 펼쳐놓고, 꼼꼼하게 분류했다. 냄새도 맡아보고, 이파리와 꽃, 뿌리의 모양, 씨앗의 형태를 정밀하게 살폈다.


“어떻게 하실 생각인데요? “

“뭘 어떻게? 먹어봐야지!”

“독이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그러면 다른 방법이 있나?”

“…(침묵)”

“아니면 네가 먹을래?”

“…(묵묵)”

“자식이… 까불기는…”


산은 스위스 칼을 꺼내 약간씩 식량이 될 가능성이 있는 열매를 잘게 잘랐다. 머스크메론 만큼이나 커다란 크기다. 그리고 주저 없이 한 조각을 입에 넣었다. 옆에는 복통에 대비해서 이미 물과 구토를 돕는 도구까지 준비한 상태다.


“우선 하루에 두 종류씩은 먹어볼 생각이다. 문제 없으면 더 먹어야지.”

“…”

“음- 이 열매는 제법 달군… 독성이 없을 확률이 큰데.”


산이 비연을 향해 손가락으로 V자를 그렸다. 이 열매는 아까 제법 많이 본 종류였기 때문이다. 그는 주저 없이 다른 열매에 손을 대고 있었다.


산은 큰 열매 종류는 비교적 안심할 수 있다고 믿었다. 당이 많은 열매는 동물에게 먹여 씨를 퍼뜨리는 종류라 할 수 있기 때문에 독성이 없을 확률이 크다. 물론 이 동네 동물들이 단 것을 싫어하는 종류라면 문제는 ‘매우’ 심각해진다.


비연은 기가 막혀 입을 벌린 채 쳐다보고 있다. 사령부에도 골통들은 많지만 이런 종류의 무대포 원단 골통은 없을 것이다.


그날은 다행히 일없이 지나가는 것 같다. 이로써 2개의 식용 식물을 확보했다.


이제 밤이 깊어가고 있다. 그래 봐야 9시지만 어제 밤을 꼬박 샌 두 사람은 졸음을 견디기 어려울 것이다.


문제는 좁은 비트에서 함께 자야 한다는 것인데….


....


다음 날 아침이 밝았다.

그들은 잘 잤다.


- End of Chapter 탈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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