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뜨랑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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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삼
작품등록일 :
2010.10.29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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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10.16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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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뜨랑제 (9) - 탈각 -3

DUMMY

3. 탈각 -3



산은 대나무에 꽃혀있는 대검을 잡아 뽑았다. 묘하게도 뽑는 것조차 힘들다. 한참을 끙끙거리다 꽤 힘을 많이 들여 겨우 칼을 뽑아낼 수 있었다.


“이게 왜 이렇게 쉽게 박혔지? 내가 이런걸 여기까지 그냥 잘라버렸다고? 수직방향도 아니고 사선으로?”


고개를 갸웃하며 칼로 만든 나무의 홈에 다시 칼을 박아 넣고 힘을 주며 내리 그었다.


“이렇게 저릿한 느낌이 왔고…”


다시 힘을 세게 주었지만 근 10센티미터에 달하는 껍질 두께의 대나무는 더 이상 꿈쩍도 하지 않는다.


“어디 다시 한번…”


산이 한계라고 생각되는 수준까지 힘을 쓰자 다시 저릿함을 넘어 끔찍한 고통이 뇌리 속으로 살짝 넘실거리며 넘어오고 있다. 놀란 마음에 힘을 풀자, 그 고통도 점차 사그러들었다. 산의 눈빛이 침착하게 변하고 있었다. 다시 칼이 있던 자리를 살폈다.


“음… 역시 칼이 더 파고 내려갔네…”

확실히 변화는 있었다.


“흐음…”


산은 고민하고 있다. 만약 자신이 세운 가설이 정확하다면 극악한 고통 속에서 굉장히 큰 힘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고통이다. 생살을 불로 지지는 듯한 고통이다. 정말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다. 장난으로라도 시도하고 싶지 않다.


“아- 이거 고민되네…씁…”


세 번 정도 다시 ‘살짝’ 시도해본 후, 산은 터덜터덜 비트로 되돌아오고 있었다. 생각이 맞기는 맞았다. 그렇지만 정말 엄두가 안 난다. 한쪽 팔을 불로 지지면서 힘을 쓴다? 정말 고민해봐야 할 일이다. 게다가 안전하다고 확신할 수도 없다. 그냥 힘쓰다 죽어버릴 수도 있을 만큼 그 고통의 정도는 끔찍하다.


그러나 산의 호기심과 굳건한 용기는 고통을 이기고 있었다.


“까짓거… 사나이 한번 죽지 두번 죽나.!”


발길을 다시 돌렸다. 궁금한 것도 궁금한 것이지만 결국 해봐야 할 일이다. 왜 오늘 피해야 한다는 말인가? 내일은 덜 아픈가?


‘흐-읍-‘


대나무 앞에 다시 선 산은 크게 심호흡을 하고 다시 한번 크게, 그리고 천천히 힘을 쏟아부었다.


‘끄-으-으-으’


온몸이 끓는다. 밖에서는 끓고 안에서는 삶아지는 것 같다. 머리에 핏줄이 울룩불룩하게 뛰어나온다. 손이 바들바들 떨린다. 눈은 밖으로 터져 나올 만큼 동공을 꽉꽉 채우며 핏발이 툭툭 서고 있다. 그러나 눈동자는 칼을 잡은 손의 궤적을 집요하게 따라간다.


칼은 대나무를 무우 자르듯 쉽게 파고들어가며 수직으로 대나무를 갈랐다. 다시 옆으로 둥글게 돌려가며 베어냈다. 겨우 반밖에 나가지 않았는데도 이미 인내력은 한계를 보이고 있다.


‘끄-윽- 조금만 더-더… 더 이상은… 이-익.’


‘툭-투-투-툭‘


이윽고 대나무가 사선으로 잘린 채 앞으로 미끄러지며 쓰러지고 있다.


‘훅-훅- 후-욱-‘


산은 칼을 꽉 쥔 채 무릎을 꿇고 앉았다. 머리는 옆의 나무 밑둥에 꼴사납게 처박고 벌레처럼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이 고통은 영원히 갈 것 같은 두려움이 들 정도로 길게 지속되고 있다. 입술 양옆으로는 연신 피가 섞인 침이 흐른다. 뇌리에서는 차라리 손에 쥔 칼로 자살이라도 하도 싶은 충동이 엄습하고 있다.


‘흐-으-‘


다행히도 고통은 점차 사그러들고 있었다. 한참을 지난 뒤에야 몸을 움직일 수 있었다. 온몸의 근육이 놀랐는지 두들겨 맞은 것처럼 아프지 않은 곳이 없다.


산은 아직도 벌벌 떨리는 손으로 담배를 꺼내 물었다.

조금 더 진정은 된다. 머리가 몽롱하다. 원망스런 눈길로 하늘을 쳐다본다. 하늘에는 먹구름이 끼고 있다.


“젠장… 이건 너무 심하잖아! 오늘은 여기까지… 휴 내일은!!!”


산은 담배를 천천히 피며 생각에 잠겼다. 얼마나 악물었는지 입에서는 피비린내가 진동한다.


‘정말 끔찍하다. 생존 훈련때 받았던 고문은 장난이라고 해야 되겠구만. 이제 어쩐다… ‘


골백번 생각해봐도 다시 해보고 싶은 생각은 손톱의 때 만큼도 들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의 현실적 감각은 이 고통만이 길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묻는다.


‘후- 대체 내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이상한 세계, 밀폐된 공간, 괴상한 능력… 그리고 또 뭐냐? 무슨 시험도 아니고…’


산은 비칠비칠한 걸음으로 비트로 돌아오며 투덜거리고 있다.


‘ 어쨌든 외통수다. 어차피 해야 할 일이다. 좋게 생각하자. 좋게 생각하자구…. 그래도 세졌잖아? 다행아닌가? 차츰차츰 연습이라도 해보고… 익숙해져야지. 시간은 많다! 서두르지 말자고…신중하게, 아주 신중하게… 이건 결코 핑계가 아니라고!’



* * *




저녁식사를 마쳤다. 배가 부르게 먹었지만 결코 유쾌한 식사는 아니다.


콩류 비슷한 작은 열매를 갈아서 죽처럼 푹 끓였다. 뿌리 종류는 푹 삶아서 잘라 먹었다. 소금기가 전혀 없는 맹탕 맛이고 풀 냄새 같은 생소한 향이 있었지만, 생존을 위해 참고 그대로 넘겼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단맛이 도는 열매를 먹었다. 군용 배낭에는 특전식량이 몇 끼분이 있었지만, 밀봉 상태로 오랜기간 보관할 수 있는 식량은 아껴야 한다.


“참… 대책을 세우긴 해야 하는데, 어디 소금을 구할 방법이 없을까? 하다 못해 식초 비슷한 거라도 발효를 시켰으면 좋겠군…”


산이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내일부터 한번 만들어 보겠습니다.” 비연 역시 허전한 입맛을 다시며 대답했다.

“오늘 먹었던 콩은 그런대로 괜찮은 데, 많이 있었던가?”

“그리 많지는 않았습니다.”

“그래? 일단 내일 거둘 수 있을 만큼 최대한 구해봐라.”

“예…”


밤이 찾아오고 있었다. 하늘에는 검은 구름이 몰려들고 있는 모습이 비가 올 것 같다. 산은 큰 비가 올 것에 대비하여 비트 주변을 다시 점검하고, 군장을 정비하고 있었다. 여전히 경계를 늦추지 않은 상태에서 어두워지는 주변을 살피고 있다.


둘은 모닥불을 피워놓고 서로 마주 앉아 오늘 한 일과 조사된 사항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고 있다.


“결국… 거대 대나무 숲으로 길을 뚫어야 한다는 말씀이군요.”

“그래… 그것도 쉽지는 않은 일이지.”

“내일부터는 길을 내는 데 전력을 기울여야 하겠군요”

“그래야 할 것 같다. 여기 식량이 떨어지기 전에 새로운 주둔지를 찾아봐야지. 김중위는 식량이나 충분히 확보해둬. 그리고 기록을 해 두는 게 좋겠지.” 산이 대검을 닦으며 무심하게 이야기 했다.


“그리고… 내일부터는 체력단련을 해야 할 것 같다. 무술은 할 줄 아는 게 있나?”

“태권도 4품을 땄고, 양궁선수 생활을 했었습니다.”

“좋군… 수영은?”

“할 줄 압니다.”


“다행이군. 하기야 그런 생활을 했으니 이런 험한 군대에 자원할 수 있었겠지... 아무튼 여기서는 뭐가 벌어질지 모르니 일단 전투력을 키워 둘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내일부터 실전에 준하는 연습을 하도록 하자.”


“알겠습니다. 그렇지만…”

비연이 말을 멈추고 머뭇거렸다.


“며칠 간은 좀 어렵습니다. 그리고 부탁이 하나 있는데요…”

비연이 당혹스런 표정으로 말을 흘렸다.


“응?”

“혹시 속옷 하나 주실 수 있으세요?”

“…”

“위? 아래?”

“위 러닝으로요.” 비연이 얼굴이 빨갛게 물든 채 작게 답했다.


산이 말없이 군장을 뒤져 흰색 러닝을 두 개 꺼내 던졌다.


“새로 산 거야. 두 개면 그런대로 충분할 거야.”

“고맙습니다.”


“실 바늘은 가지고 왔나?’

“예…”


“알아서 하겠지만, 모든 것을 아껴 써야 하는 건 기본이고, 어떤 용도로 쓸지 모르니 하찮고 민망한 물건이라도 결코 버려서는 안 돼.”


“ 알겠습니다.”


“그나 저나 큰 비가 올 것 같은데… 응?”

“힉-!“


두 사람은 거의 동시에 비명을 지르며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고 있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벌떡 일어나 익숙한 물건을 찾아 꺼내 들었다. 그것은 여기서 다시는 쓸 일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물건이었다.


“이럴 수가 있나? 게다가 분명히 전원을 꺼 놓았는데…”


산이 흥분한 표정으로 비연을 쳐다보며 소리를 질렀다.

비연 역시 손을 벌벌 떨며 자신의 손을 들여다 보고 있다.


그들의 휴대폰에서는 문자 메시지가 왔다는 신호등이 점멸하고 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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