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 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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不忘
작품등록일 :
2012.10.04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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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28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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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아침의 나라에서 보낸 3일 (3)

DUMMY

제국의 새벽


1장 아침의 나라에서 보낸 3일 (3)



하서진은 학교로 들어서면서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꼈는데. 아닌 게 아니라 큰 사건이 하서진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3명의 사망자가 나왔기 때문이었다. 사인은 질식사와 두개골함몰로 인한 뇌손상이었다. 학교 내의 건물 중 몇몇 개는 상계동 시가지가 내려다보이는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평소처럼 내려다보인다면 번화한 상계동 시가지가 내려다 보여야만 했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것은 전혀 생소한 풍경이었다. 그러한 풍경을 목격한 학생들은 떠도는 소문이 기정사실화되었음을 깨달았고 그 충격을 견디지 못한 한 여학생이 한 여학생이 화장실에서 목을 매어 자살했다. 자살자가 등장했다는 소문은 빠르게 퍼져나갔고 흉흉한 분위기속에서 잇따른 자살소동이 벌어졌다. 건물 옥상에서 투신한 이들만도 10명에 달했다. 그중 8명은 목숨을 건졌지만 나머지 두 명은 머리가 깨지며 즉사했다. 소스라치게 놀란 치안대와 집행위원회가 황급히 움직이며 간신히 추가적인 사망자의 등장은 막았지만 음울하고 그림자는 교내를 뒤덮고 있었다. 일부는 하서진 일행에게 일말의 희망을 기대며 질문공세를 펼쳤다. 그런 그들에게 하서진은 침묵으로 일관하며 몇몇 치안대 사람들과 함께 학생회관으로 갔다. 그런 그를 기다리고 있었던지 치안대의 대장을 맡고 있던 강우현 대령과 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던 예비역 박강성이 그에게로 다가왔다. 그들이 다가오자 하서진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시신들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일단은 의대 쪽에 안치시켰네. 학생들의 분위기가 좋지 않네. 소문을 잠재우려 했지만 소문은 빠르게 교내를 휩쓸었네. 통제 불능이야.”

강우현의 말에 하서진은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사고사도 아니고 자살이었다. 가뜩이나 음울한 분위기에 터진 자살사건은 불길에 기름을 들이 붓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또한 허무하게 가버린 젊은 학우의 이야기가 그렇게 가슴이 아플 수가 없었다. 안면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학교를 다니면서 한번쯤은 지나쳤을 사람이었다. 특히 이번 사태를 통해서 작게나마 생겨난 동질감이 존재하기에 더욱 안타까웠다. 그러나 그는 슬퍼할 겨를이 없었다. 당장 처리해야 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는 시선을 돌려 강우현의 곁에 있던 박강성에게 물었다.

“별수 없지요. 그보다도 인원파악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일단은 끝났습니다. 남학생 7237명 여학생은 4451명, 아니 4448명입니다. 교수진이 255여명 강사진이 421명 교직원 및 조교가 310명 그 이외에 외부업체 직원 350명입니다. 외부업체에는 보안경비업체와 각단과대학교 매점, 복사실, 미화원 포함입니다. 12921명이 총 인원입니다. 총 인원의 2/3으로 추정되는 인원이 현재 교내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박강성은 조사한 자료에서 황급히 자료를 수정했다. 자살한 이들을 포함하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계산적이고 차갑다고 할 수 있었지만 어쨌든 인원이 줄어든 것은 확실한 사실이었기 때문이었다. 총인원이 만삼천여명에 달한다는 보고에 하서진은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왔다. 인원이 상당했기 때문이었다. 그것보다 더 큰 문제는 그 많은 인원이 통제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군대였다면 차라리 철저한 상명하복으로 밀어붙이면 그만이었겠지만 어쨌든 간에 자율성이 존중되는 대학생들이었다. 또한 21C의 인물답게 개성이 넘쳐흐르는 이들이었다. 제각기 저마다의 생각과 인격을 지닌 그들을 이끌고 무난히 17C 조선사회에 편입할 수 있을지 걱정부터 들었다.

“그것보다도 조사는 어떻게 되었나?”

둘의 대화를 묵묵히 지켜보던 강우현이 건넨 말에 하서진은 대답을 회피했다.

“일단 위원회 사무실로 가시죠. 나머지 이야기는 그곳에서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하지.”

별로 좋은 표정은 아니기에 강우현은 순순히 그의 말에 따랐다. 하서진에 비해 연배가 높았지만 강우현은 능력이라든지 리더십적인 측면에서 그를 인정하고 있었고 일단 위원회의 권위 확립을 위해 최대한 그를 존중하고 있었다.


소강당 역시 뒤숭숭했다. 자살사건은 그들로서도 그리 반가운 소식은 아니었다. 삼삼오오 모여 대책을 논의하던 사람들이 하서진이 입장하자 대화를 멈추고 그를 바라보았다. 자신에게 몰리는 시선에 잠시 심호흡한 하서진은 단상 위로 나섰다. 그리고 그의 뒤를 여러 조사대원이 뒤따랐다. 단상 중앙에 선 하서진은 그리고 잠시 목소리를 가다듬고 입을 열었다.

“이미 어느 정도 귀띔을 받으셨겠지만 우리가 시대를 벗어나 역행한 것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같이 조사대에 참가하신 도현일 교수님의 추측에 따르면 1600년인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먼저 나서서 짤막하게 설명한 하서진은 옆에서 앉아 있는 도현일 교수를 바라보았다. 그런 하서진의 눈빛에 천천히 앞으로 나선 도현일은 그들을 향해 설명했다.

“직접 마을로 내려가 사람들을 만나보았습니다. 그들은 경자 년이라고 했습니다. 연도를 착각하고 있지 않는 한 선조가 즉위한지 38년이고 임진왜란이 끝난 지 2년 후인 서력 1600년이 맞습니다.”

“허허 어떻게 이런 일이.”

“말도 안 되는구먼.”

도현인의 말에 여기저기서 탄식이 터져 나왔다. 또한 분위기는 더욱더 음울해졌다. 그런 그들을 지켜보던 하서진이 다시 나서서 목소리를 높였다.

“말이 안 되는 것 같아도 사실입니다. 저를 비롯한 여러 조사대원이 보고 느낀 바에 따르면 우리가 있는 곳은 확실히 수락산 자락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있는 이곳은 우리가 알던 그곳이 아닙니다. 409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과거로 역행한 것입니다. 저도 무척이나 당황스럽고 이 논리적으로 해결되지 않는 수수께끼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 답답하기만 합니다. 하지만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교수님, 여러 임직원 여러분 최대한 빨리 체제를 정비하여 집단의 형태로 조선과의 교섭을 통해 조선사회에 편입할 것을 여러분께 제안하는 바입니다.”

하서진의 외침에 좌중은 입을 다물었다. 하서진의 제안이 너무 갑작스러웠던 까닭이었다. 그런 가운데 총장 이기호는 잠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기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하서진을 바라보며 물었다.

“조선사회에 편입하자니. 이 시대에 적응하자는 말인가?”

“예 그렇습니다.”

하서진의 대답이 끝나기 무섭게 다른 한쪽에서 한 비교적 젊은 여성 교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단은 이대로 지켜보는 것이 좋지 않겠나요?”

그녀는 현대무용을 담당하고 있는 김은정 교수였다. 김은정 교수에게 좌중의 시선이 집중되다. 김은정 교수는 집중되는 시선에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을 이어 나갔다.

“물론 과학적으로 설명이 되지 않는 일이지만 혹여 다시 우리가 살던 곳으로 돌아갈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저도 처음에 그렇게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우연은 결코 반복되지 않습니다. 또한 우리가 겪은 현상이 우리가 지닌 지식 상에서도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일입니다. 돌아갈 수 있다는 확신이 없는 이상 대책을 간구하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

어느 누구도 설명할 수 없는 비논리적인 현상. 왜 일어났는지. 또 다시 일어날 것인지 확신할 수 없는 현상. 그것이 바로 문제였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왔다는 믿겨지지 않는 현실 때문에 누구도 쉽사리 말을 열지 못했다.

“확실히 일리가 있는 말이군.”

침묵하고 있는 사람들 속에서 걸걸한 목소리가 나왔다. 그 목소리에 좌중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입을 연 이는 농경제사회학부의 학과장을 맡고 있는 김판출 석좌교수였다. 그는 농업관련 부분에서 상당히 강한 영향력을 지니고 방송에도 자주 나왔던 명망 높은 교수였다. 또한 학교 내에서도 호방한 성품으로 큰 영향력을 지닌 교수였다.

“교수님.”

여기저기서 목소리가 나왔다. 하서진의 의견에 반대하는 바는 아니지만 하서진의 뜻대로라면 혹시라도 존재 할 수도 있는 한줄기 희망을 버리는 것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 겉으로 표현하지는 못할망정 동조하지 못하는 교수가 부지기수였다. 그런 그들의 목소리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좌중을 살펴보며 말을 이어 나갔다.

“확실히 지금의 상황은 말이 되지 않는 상황입니다만 이곳에 계시는 여러 교수님들께 묻고 싶습니다.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크게 세 가지가 있지요. 모두 잘 아시다 시피 의식주가 바로 그것입니다. 당장 사는 곳과 의복은 어떻게든 해결한다고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우리에게 식량이 없다는 점입니다. 혹여 일어날 기적을 바라며 이대로 기다리는 것에 반대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저도 기적을 바라는 형국이니까요. 하지만 우리에겐 기적을 기다릴 시간이 없습니다. 당장 가지고 있는 식량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김판출은 여기서 잠시 뜸을 드리고 하서진을 바라보았다.

“이점을 부각하고 싶은 것이겠지. 하서진군?”

“예 그렇습니다.”

김판출의 말에 하서진은 고개를 끄덕이고 부연설명을 덧붙였다.

“무엇보다도 가장 큰 문제점은 우리에게는 식량이 없다는 점입니다. 교내 매점과 식당에 어느 정도 식량이 있긴 하지만 현재 교내에 있는 1만 3천여 명의 인원으로는 하루도 버티지 못할 것입니다. 또한 농업대학에 존재하는 가축과 종자가 있지만 그 것으로도 며칠 버티지 못할 것입니다. 역사니 뭐니 하는 것들은 둘째치고라도 당장 먹을 것을 수급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음.”

여기저기서 신음소리가 들렸다. 상식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사태에 다들 잠시 정신적인 혼란을 겪은 듯 했다. 하지만 김판출 교수의 말에 점차 미래를 생각하게 되었다.

“이대로 버틴다고 하더라도 며칠 지나지 않나 굶주림을 견디지 못한 학생들이 사방팔방으로 뛰쳐나갈 것이고 그들은 이 조선사회에서 왜놈취급을 받아 죽임을 당할지도 모릅니다. 혹여 살아남더라도 결코 21세기 지성인의 삶을 살아갈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럴 바에야 체제를 정비해 집단으로서 조선에 귀속하는 것이 낫다고 봅니다. 미래로 돌아가는 길을 찾아보더라도 일단 생존이 보장된 상태에서 찾아야지 이대로라면 우리에게 남겨진 미래는 절망적일 뿐입니다.”

“과연 조선조정이 우리의 귀속을 받아주겠는가? 자네들과 여러 교수님들이 가져온 정보에 의하면 임란 이후인데 안정된 조선사회라고 하더라도 우리의 등장을 반갑게 맞이할지 말지 의문인데 하물며 임진왜란 이후라면……. 우리의 등장을 그들이 과연 반기겠는가?”

또 다른 교수의 반문이 뒤이었다.

“물론 최악의 경우는 죽임을 당하겠지요.”

“그렇다면 어떻게 하자는 것인가?”

하서진의 담담함에 교수는 기가 차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여전히 담담한 안색으로 말을 이었다.

“하지만 혼란스러운 상황이기 때문에 오히려 기회일수도 있다고 봅니다. 다소 늦은 고백입니다만 조사를 하면서 접촉한 사람들에게 우리들은 조선 초기의 문신 삼봉 정도전의 후인들이라 정도전이 이방원에게 죽임을 당한 이후 한적한 산속에서 학맥을 계승하고 있다는 정도로 소개했습니다. 사실과 거리가 먼 그들이 믿을지 의심스러운 주장입니다만 일단은 효과는 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정도전이라…….”

여기저기서 또다시 웅성거림이 일어났다. 그런 웅성거림은 한동안 지속되었다 그러나 하서진은 끈질기게 잠잠해질 때까지 기다렸다. 이미 해는 지고 있었고 어둠이 소강당을 감쌌다. 비상발전기를 가동한 탓인지 곳 곳곳에서 전구가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이런 생활도 이제 당분간 안녕이겠군.’

400년, 너무도 큰 시간이었다. 그들이 21C에서 누렸던 현대적인 생활은 이제 한 동안 어쩌면 평생 안녕일 수 있었다. 하서진이 그런 잡념에 빠져 있을 때에도 소란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그러나 한참 지속되자 잠자코 있던 이기호가 일어섰다.

“흠흠 일단 조용히들 하십시오. 별 수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쨌든 일단은 생존의 문제와 직결된 문제이니 저는 일단 서진군의 의견에 손을 들어주고 싶습니다. 혹여 다른 의견 있으신 분계십니까?”

총장인 그의 말에 교수들이 다수 웅성거리긴 했지만 좀 전에 비해서 많이 잦아드는 기색을 보였다.

“특별하게 없는 모양이군요.”

그런 그들을 훑어보고 나서 하서진을 바라보았다.

“서진 군 자네에게도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네. 일단은 하루정도는 더 기다려보는 것이 어떻겠는가?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났으니 또다시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나리란 보장도 없는 법 아닌가?”

“예.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차피 조선사회의 편입을 위해서라도 체제 정비가 시급합니다. 그 체제 정비가 끝나기 전까지는 조선과 접촉할 의사는 없습니다. 어찌되었든 일사분란까지는 아니더라도 집단의 통제가 필요한 시점이니까요.”

“다행이군.”

하서진의 대답에 이기호는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대충 의견이 취합된 듯 하자 하서진은 미리 생각해 두었던 말을 진중한 목소리로 풀어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곳에서 교수 여러분들께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무엇인가?”

“일단 조선사회로 귀속이 결정 된다면 좋든 싫든 권력이란 것이 위원회로 집중이 될 것입니다. 또한 21C시대와 같은 민주적인 절차는 당분간 거리가 멀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괜찮겠습니까? 이 질문은 이기호총장님만이 아니라 이곳에 계시는 모든 교수님, 임원 분들께 드리는 말씀입니다.”

이야기를 꺼내면서도 하서진은 잠시 망설였다. 한국 사람이라면 독재라는 단어에 유난히 더 민감하게 반응하곤 했다. 해방 후의 거친 역사의 굴곡 속에서 독재는 개인의 시련과 희생을 강요했다. 그리고 지금 하서진이 했던 말은 일종의 독재 선언이었다. 권력이 위원회로 집중된다면 필연 적으로 그 위원회의 수장인 하서진에게 권력이 몰릴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군사독재 시절처럼 일방적인 독재를 할 순 없겠지만 하서진의 말대로라면 위원회는 개인의 희생을 요구할 것이 분명했다. 하서진 말의 끝나기 무섭게 한 노교수가 입을 열었다.

“흠. 자네 그거 꽤 위험한 발언일세. 알고 있는가?”

정치학을 가르치는 전건우 교수였다. 그의 말은 짧았지만 그의 의도는 충분히 하서진에게 전달되었다. 하서진은 그런 전건우의 말에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습니다.”

“허허허 자네가 내 수업에 들어왔던 것을 기억하네만 자네는 꽤 위험하고 무서운 사람이었지. 특히 자네의 나이 또래에 비해서 말일세. 내 수업을 들었다면 알겠지만 나는 독재에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일세. 하지만 강단에선 교육자라는 입장에서도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나보다는 자네가 더 낮겠지. 나는 일단 자네의 뜻에 따르겠네!”

“젊다는 것은 좋은 것이군. 나도 자네의 뜻에 따르겠네.”

“상황이 상황이니 별수 없겠군.”

전건우 교수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여기저기서 동조의 뜻이 나타났다. 주로 나이가 지긋한 교수가 주류를 이루었다. 하지만 그와 반대로 거부의 뜻을 명확히 나타내는 이들도 있었다.

“서진군 사석에서는 형 동생 할 정도로 친한 사이지만 나는 자네 의견을 동조할 수 없네.”

“저 역시도 마찬가지입니다.”

“서진이형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안면이 있던 신정우교수를 시작으로 여기저기서 항의성 발언이 봇물 터지듯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주로 젊은 교수들이 대부분이었는데. 또한 편에서는 임원중 하나였던 김현석의 항의까지 들어왔다. 그런 그들의 항의에 소강당은 한순간에 아수라장이 되었고 하서진은 이 소란을 잠재워야할 필요성을 느꼈다.

“조용히 해주십시오.”

그러나 목소리가 작아서인지 소란은 쉬이 가라앉지 않았다. 하서진은 큰 몸짓으로 발을 구르며 재차 소리쳤다.

“조용히 하십시오.”

너무도 소리가 컷 던 탓일까.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었고 소란도 한순간 잦아들었다.

“다소 버릇이 없어 보이겠지만 일단 우리의 미래를 결정짓는 중요한 자리입니다. 혼란스러운 것은 저도 여러분들과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만큼 진중한 행동을 보여주셨으면 합니다. 한 분씩 차례대로 발언해 주십시오. 먼저 광고학교수이신 신정우교수님 말씀해 주십시오.”

“서진은 나는 자네와 사석에서는 형 동생이라 할 정도로 친분이 깊고 자네의 그 과감성과 추진력을 좋아하네만 자네의 발언에는 공감할 수 없네. 위험한 발언일세. 자네가 분명히 나쁜 의도로 한 말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하네만 필요하다면 개인의 인권을 짓밟을 수도 있다는 말이지 않은가?”

신정우의 얼굴에는 실망의 기색이 가득했다. 그런 그에게 어떻게 대응할까 고민을 하던 하서진은 생각한 그대로 솔직하게 입을 열어 털어놓았다.

“아마도 그럴 수도 있겠지요.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그렇지 않다고 장담할 수 없습니다. 이미 우리는 21C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도 무섭습니다. 제가 그러한 일을 벌 일수도 있다는 사실이 하지만 그러한 저를 견제할 수 있는 것도 여러분들이지 않습니까? 저는 권력은 사람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결코 일순간의 권력욕에 사로잡혀 벌이는 것이 아닙니다. 현재 중요한 것은 우리의 생존문제입니다. 이 조선시대 사회에서 최대한 빠르게 편입하고 가능하면 우리의 생존이 보장시키는 것이 첫 번째 라고 생각합니다.”

“…….”

하서진은 그리고 신정우의 반응을 기다렸다. 그러나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런 신정우에게 시선을 뗀 하서진은 김현석을 바라보았다. 작년 선거에서 자신에게 밀려 낙선했지만 엄연히 학생회소속의 임원이었고 또한 차후 학생회장으로 출마한 중요인사였다. 선거기간뿐만 아니라 선거 이후에도 하서진은 그와 다각도적인 측면에서 대화를 나누었었다. 김현석은 하서진과 너무도 생각하는 바가 달랐다. 그리고 그 자신의 뜻을 결코 굽히지 않았다.

“학생임원이신 김현석 부회장님 말씀하시지요.”

“회장님의 말씀은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잊고 계시는 것은 아닙니까? 학교의 주인은 학생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학생의 동의 없이 이 자리에서 결정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학생 전체의 뜻을 수렴하여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정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잘 알고 있습니다. 현석학우. 하지만 일단은 우리는 아직 학생이라는 틀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학생들의 의사가 무엇보다도 중요하지만 여러 교수님 역시 존중되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차후 학생들의 의사도 취합할 예정입니다.”

“하지만 이대로 진행 된다면 학생들의 의견이 무시될 소지가 큰 것으로 보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매섭게 공세를 벌여오는 김현석이었다. 하서진 역시도 굽히지 않고 반박의견을 개진했다. 어찌 되었든 임원회를 구성했던 두 학생의 언쟁이 여러 교수들은 심도 있게 지켜보고 있었다.

“일단은 현 학생회장의 권한으로 밀어붙이고 있지만 원한다면 충분히 다른 학우의 의견도 경청할 생각입니다. 그리고 이런 제안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새로운 대표 선출을 위한 투표도 수용할 의향이 있습니다.”

원한다면 물러나겠다. 강수를 두는 하서진이었다. 그런 그의 강수에 김현석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미 일 년 내내 그와 함께하면서 느꼈었지만 그의 카리스마에는 도통 당해낼 수가 없었다. 나이차이 때문인지 아니면 그가 겪었던 다양한 체험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당해낼 수 없는 사람처럼 보였다. 억지로 다양한 반론을 끌어낸다면 끌어낼 수 있겠지만 그것으로는 대세를 뒤엎을 수는 없을 것 같았다. 하서진은 그이후로 계속 되는 반론 공세에도 때로는 강하게 때로는 온유하게 비껴가며 절대적은 아니라도 암묵적인 동의정도는 얻어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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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16

  • 작성자
    Lv.14 소광월
    작성일
    10.10.22 18:20
    No. 1

    엉? 대따 침착하네 ㅋㅋ

    위기는 곧 기회라는 건가 ㅋㅋ

    난 21세기에 외국만 나가도 우왕좌왕하는데 ㅋㅋ

    아무튼

    이제 학생들

    천자문부터 소학, 사서삼경, 대학

    등등

    여러 책자에 붙잡혀 살겠군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안 그럼 과거를 볼 수 없고, 관직에 못 나갈테니...

    적어도 100~300명 사이의 학생들은 죽어나겄구만..ㅋㅋ

    아니면 동양어문학과 중 중국어학과나 일본어학과가 유리하려나?

    ㅋㅋㅋ 암튼 한문암기 파이링이네 ㅋㅋ 언문 퍼질 때 까지 버팅기는

    사람도 있으려나 ㅋㅋ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5 정감
    작성일
    10.11.17 08:24
    No. 2

    재밌게보고갑니다 ㅋㅋ 소재가 너무맘에들어요 ㅋ 감사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7 wp별sp
    작성일
    10.12.13 13:18
    No. 3

    우왕 굿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참좋은아침
    작성일
    11.03.02 20:40
    No. 4

    건필하세여~~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Gersigi
    작성일
    11.03.30 12:34
    No. 5

    감사히 읽고 갑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화일박스
    작성일
    11.07.27 08:58
    No. 6

    와우,,저 많은 구성원들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건가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 면피용
    작성일
    11.08.05 10:38
    No. 7

    문서는 사전있겠다 어학과나 이미 좀 아는 사람 있는데 쉽죠
    이미 충분히 아는 몇몇만 한자 좀 더 배우면 되죠
    대체역사의 기본은 피의 역사인데 잽싸게 기득권사회는 한글로 교체하면 됨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87 평생낙원
    작성일
    11.09.03 21:52
    No. 8

    조선에겐 꿈도 희망도없는 1600년대군. ㄱ-;;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79 BeKaeRo
    작성일
    12.01.06 13:40
    No. 9
  • 작성자
    Lv.67 우드스워드
    작성일
    12.02.07 12:43
    No. 10

    잘 보고 갑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54 휴우
    작성일
    12.02.07 16:53
    No. 11

    근데 전력도 끈겼으면 수도도 안될텐데 당장 화장실과 샤워에서부터
    여자들은 미쳐돌아가시겠네요..
    며칠만 있으면 휴지도 없어질테고..지푸라기로 닦나요..
    온갖 생필품을 어떻게 감당할지..궁금..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68 pr*****
    작성일
    12.02.24 10:39
    No. 12

    건필하십시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67 뱃살이랑
    작성일
    12.02.26 13:08
    No. 13

    생활용품..서답이 필요하겠네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78 저냥그냥
    작성일
    12.03.28 22:17
    No. 14

    낮다 낫다 오타 정정 바랍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OLDBOY
    작성일
    12.05.29 16:24
    No. 15

    잘 봤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60 후회는늦다
    작성일
    12.09.25 21:19
    No. 16

    다른 무엇보다도...세상은 넓고 또라이는 많은바 저부터가 그러겠지만, 필히 도망가는놈이 생길텐데? 그에 대한 언급이 없네요. 앞으로 나오는건가...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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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새벽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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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안녕하세요 불망입니다. +4 15.11.19 1,970 0 -
12 2장 광해군의 난 (3) +25 10.10.28 22,155 104 14쪽
11 2장 광해군의 난 (2) +16 10.10.26 23,951 103 14쪽
10 2장 광해군의 난 (1) +25 10.10.24 26,104 96 17쪽
9 1장 아침의 나라에서 보낸 3일 (8) +17 10.10.23 23,337 97 19쪽
8 1장 아침의 나라에서 보낸 3일 (7) +23 10.10.21 22,443 95 17쪽
7 1장 아침의 나라에서 보낸 3일 (6) +14 10.10.21 23,178 101 16쪽
6 1장 아침의 나라에서 보낸 3일 (5) +19 10.10.20 23,199 89 17쪽
5 1장 아침의 나라에서 보낸 3일 (4) +17 10.10.19 24,295 106 15쪽
» 1장 아침의 나라에서 보낸 3일 (3) +16 10.10.19 26,219 111 20쪽
3 1장 아침의 나라에서 보낸 3일 (2) +25 10.10.19 30,103 131 15쪽
2 1장 아침의 나라에서 보낸 3일 (1) +25 10.10.18 50,959 115 16쪽
1 서 장 +27 10.10.18 60,499 125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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