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th 09. 검은 날개(5)
“그런데 말이죠...”
“뭐가?”
여신은 예전에 보았던 그 집에 있지 않았다. 덕분에 찾는데 조금 고생했다.
“여기는...”
“이사 한 거지.”
아니, 그걸 물어본게 아닌데...
“왜? 나는 이사하면 안 돼?”
“그건 아닌데요...”
“어차피 로엘이 없으면 혼자 살아야 되잖아.”
“......”
그렇다. 이곳은...... 로엘의 저택이었다. 사방으로 뚫려있는 곳에 저택이라는 말을 붙여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그래서 이곳으로 이사한 거에요?”
처음에 오다가 천족들이 모여 있길래 잘못 찾아온 줄 알았다.
“뭐, 조금만 있다가 다시 이사 갈 거야.”
“그러세요?”
뭐... 이곳도 나쁘지는 않다.
-뭐 필요 하신거 있으십니까?-
“간단히 마실 것 좀 주세요.”
-알겠습니다-
이렇게 알아서 다 해주니 편하고, 게다가 눈도 즐겁고.
“......”
그런데 여신은 왠지 나를 한심한 눈빛으로 보고 있었다.
“그런데 저 천족은 날개가 많네요.”
세 쌍이나 되었다.
“계층형 천사니까.”
계층형이라면...
“로엘이나 파리아는 천족 중에서도 상급... 굳이 말하자면 인간의 귀족이라고 해야 할까.”
“그래요?”
그런데 파리아는 맨날 천계에서 자기 무시했다고 투덜거리지.
“물론 파리아는 그 중에서도 약간... 악소문이 퍼져서 좋지 않은 상태였고.”
“생각 읽지 말아요.”
여신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얼굴에 다 쓰여 있는데 왜 생각을 읽냐!”
그랬나?
“어쨌거나... 계층형 천사들은 한 쌍에서부터 여섯 쌍까지의 날개가 있는데... 전부...”
“전부?”
여신은 왠지 말하는 것을 꺼리는 것 같았다.
“후훗......”
“......?”
‘뭐야?’
내가 의심쩍게 여기는 동안 아까 그 천사가 돌아왔다.
-여기 마렘의 과즙입니다-
“고마워요.”
과즙을 받아들자 천족은 밝은 웃음을 지어주었다. 그 웃음에 같이 웃어주며 그대로 그가 들거 온 과즙을 삼켰다.
“......음...”
천계의 과일은 마음대로 먹으면 안 된다는 걸... 왜 난 겨우 몇 년만에 잊어버렸을까?
“하하하......”
그래도 옆에서 웃고 있는데 먹지 않을 수도 없고...
‘그래, 그냥 죽자!’
나는 눈을 딱 감고 과즙이 담긴 잔을 그대로 들어올렸다.
벌컥. 벌컥. 벌컥.
“......”
넘어온다.
“그냥 먹지 마.”
여신의 한심하다는 듯한 목소리는 내 구원이었다.
주르룩...
잔을 내리자 입에 들어있던 내용물이 그대로 반납되었다.
‘도저히 못 삼키겠어...’
뭐야... 왜 이렇게 끈적거리고 냄새는 또 왜 이런 거냐...
“먹을 건 됐으니까 돌아가.”
-알겠습니다. 다른 필요한 일은...-
“없어.”
여신은 매정하게 그녀를 쫓아냈다.
“에이......”
“뭐야 그 반응은.”
“별거 아니에요.”
별거 아닌 건 아니지만.
“......하아... 계층형 천사들의 특징은 말이지...”
여신은 잠시 주변을 둘러보았다.
“전부 중.성.이야.”
중성?
“으음.......”
중성이라. 내성과 외성 사이에 있는 그 중성?
“한마디로 남자도 여자도 아니라 이거다.”
“......그래요?”
그 말을 듣고 나니 여신이 쫓아주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깐. 별거 아니잖아’
그냥 성별이 없는 것인데... 뭐 이상할 것까지야...
“우욱...”
그런데 왜 속이 이상하지.
“뭐, 정상적인 성별을 가진 존재들만 주변에 있으니 꽤 충격일거다.”
“그런 것 같...”
중성이래... 그럼 아무것도 없는 거야?
“우우욱...”
“야! 토하지 마!”
하지만 아까 과즙도 내 속을 뒤집었는데 속이 더...
“으이구!”
일을 저지른 나는 다른 천족들이 치워 줄 때까지 한참동안 여신의 잔소리를 들어야 했다.
“그래도 하나밖에 없는 신관인데 구박 좀 하지 마요.”
만날 만나기만 하면 구박만 하는 것 같아.
“그럼 잘 하던가.”
여신은 구름으로 만들어진 의자에 몸을 비스듬히 기대며 뚱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더 이상 뭘 잘하라고...”
“그럼 다른 일 하지 말고 조용히 신도나 늘려.”
그건 불가능하다.
“아니 그건...”
“네가 나서서 포교하면 신도가 최소 30만은 들어올걸.”
그거야 그럴지도 모르지만...
“그러려면 신전이 먼저 있어야 되잖아요.”
“으음......”
여신의 말문이 막혔다.
“그건 네 저택에서...”
“무슨 마족숭배잡니까. 저택에서 포교하게.”
마족숭배자들은 대부분 자신의 집에서 은밀하게 퍼트리고는 한다.
“시끄러. 하여간 이렇게 따지니까 예뻐해 줄 수가 없지.”
“......에효...”
다른 신관들은 그냥 신족이 위대하고 대단하고... 하여간 좋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오로스... 난 오히려 네가 부럽다’
난 신족을 직접 만나니 환상이 깨진다. 도저히 믿음이 안 간다고 해야 하나.
‘이래서 모르는게 약이라는 말이 있는 거구나...’
다른 신족들도 이렇다면 우리 신관들은 다 이상한 사람이 될 것 같아...
“흐아암...”
여신은 나를 혼내기도 지루해졌는지 있는 대로 하품을 하고 있었다.
-다녀왔습니다-
로엘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여신은 귀찮다는 듯 인상을 찌푸리며 몸을 일으켰다.
“어서 와.”
“......”
뭐야. 로엘 앞에서는 정상적으로 변하잖아.
-응? 라드님 표정이...-
“아... 이건...”
찌릿.
사실대로 말했다가는 아마 굉장한 고통이 있을 것 같았다.
“그냥 뭘 잘못 먹어서...”
결국 대충 둘러대야 했다.
“일은 잘 됐어?”
여신의 물음에 로엘은 고개를 저었다.
-단번에 거절하던데요-
응? 무슨 일이길래...
“무슨 일인데요?”
“......”
여신은 내 물음에 잠시 나를 주시하다가 로엘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설마... 말을 안 했다던가...?”
-호호......-
로엘은 곤란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죄송해요. 사실은 티엘에게 어머니를 만나게 해 주려고 했는데...-
티엘의 어머니라면... 전대 가주의 부인 말인가?
“그런데요?”
-티엘이 별로 만나고 싶지 않다더군요-
로엘은 왠지 내 눈치를 보고있었다.
‘왜 저러지?’
아니, 티엘에게 부모를 만나게 해주려고 했다는데 저런 눈치를 보나?
-훗...-
그런데 로엘이 웃음을 터트렸다.
“......순진하긴.”
여신도 알 수 없는 말을 하고 있었다.
“아직까지 로엘의 본성을 모르는군.”
“네?”
본성?
“사실 로엘이 하려던 일은.......”
거기까지 말하던 여신은 잠시 로엘의 눈치를 살폈다.
-괜찮아요. 말하세요-
로엘은 아직도 웃음을 참고 있었다.
“티엘을 이용해 전대 가주의 부인 견제할 생각이었지.”
잠깐, 여기서 무언가 걸리는 말이 있었다.
“......티엘을 이용?”
“그래. 굳이 말하자면...”
여신이 말하려던 것을 로엘이 끊었다.
-인질극이죠-
“......”
지금 티엘을 데리고 인질극을 벌이려 했단 말인가?
-아, 물론 티엘의 의사를 먼저 물었고, 거부해서 그냥 데려왔어요-
“아무리 그렇다고는 해도...”
기분이 나쁜 것은 별 수 없다.
“원래 로엘은 이런 녀석이야. 괜히 가주가 된 것이 아니라고.”
“......”
파리아의 악담이 약간은 이해가 갔다.
-하지만 티엘은 제 생각을 읽었는지, 바로 거절하던데요-
그러고 보니 로엘은 티엘을 데리고 오지 않았다.
“티엘은 어디에 있죠?”
내 물음에 로엘은 묘한 눈웃음을 지어다.
-대답 여부에 따라서...-
“......”
난 나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리고 있었다.
-저를 공격할 수도 있나요?-
“......물론.”
충분히 공격할 수 있다. 어차피 여신과는 친할지 몰라도 나는 아니다. 몇 번 얼굴 본 사이밖에 안 되니까.
“로엘. 장난 그만 쳐.”
여신의 말에 로엘이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지금 어린 천족들이 있는 곳에 데려다줬어요-
“그곳은 어디에...”
“내가 알려줄게. 먼저 가고 있어.”
“......”
여신은 일단 나를 로엘과 떼어놓을 생각인 것 같았다.
“......”
얼굴을 만져보니 상당히 일그러져 있었다. 지금 내 얼굴, 그렇게 무서웠나?
“......알겠습니다.”
피잉!
나는 일부러 소리를 더 크게 내며 날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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