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로몬의 후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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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렉스
작품등록일 :
2019.05.09 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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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01 2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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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3.23 2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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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ng Night 5

-Hello, world-




DUMMY

한편 2층에는 라이너와 베타니아 단 둘만이 남아있었다.


라이너는 베타니아의 왼손을 붙잡고 절대로 손을 쥐지 못 하게 만들었다. 라이너는 결코 초신체가 원상복귀 된 것이 아니었다. 그의 손은 그저 손을 쥘 공간을 틀어막기 위해 억지로 비집어 넣은 것에 지나지 않았다.


베타니아의 오른팔은 샬롯에게 당해서 쓸 수 없게 되었기에 왼손의 악력만으로 그의 손을 부수고 떨쳐내려 했다. 힘만은 아직 멀쩡한 그녀의 악력이라면 그런 일은 손아귀에 든 과자를 쥐어서 부수는 것 만큼 간단할 것이다. 예상대로 베타니아가 손아귀에 힘을 서서히 주기 시작하자, 라이너가 이를 악 물고 버텼음에도 불구하고 손이 서서히 부서지기 시작했다. 피부 안의 뼈가 뒤틀리고, 갈라지고, 부서지고.


"끄아아으윽!"


라이너의 입에서 비명이 튀어나왔지만 그는 샬롯을 위해서 이를 악물고 참았다. 그리고 손아귀의 악력이 사라지기 전에 두 다리로 땅을 박차고 올라 베타니아의 왼팔에 거꾸로 매달렸다. 그는 두 다리를 그녀의 팔에 둘러 억세게 붙들었다. 그는 손에 해일처럼 몰아치는 격통에도 불구하고 결코 손을 빼지 않았다. 고통을 떠나 손의 감각이 사라졌을 텐데도 그는 팔 힘 만으로 이미 자신의 것이 아닌 고기 덩어리를 애써 밀어넣었다.


베타니아는 팔을 벽에다 휘두르고, 라이너는 비명과 함께 등짝으로 벽에 흠집을 냈다.


"절대로 안 놔. 안 놓을 거야!"


베타니아는 한 번더 휘둘렀지만, 라이너는 여전히 껌딱지처럼 달라붙어 있엇다. 결국 베타니아가 입을 열었다.


"초신체을 잊어 버렸으면서 그러는 게 의미가 있을 것 같냐."


머리에 피가 쏠려 핏줄이 시뻘겋게 올라온 라이너가 목소리를 쥐어 짜내 대답했다.


"하지만 발화 능력은 아직 잊지 않았어."

"그 발화 능력을 견디기 위해 초신체가 존재하는 거다. 발화 능력에 함께 들어있는 저항력 덕에 어느 정도는 버티겠지만, 몸이 약해 얼마 안 가 바스러질 거다."

"초신체만 있고 발화 저항은 없는 당신이랑 피차일반이지. 그리고 설령 내 몸이 재가 되어 스러질지언정 나의 진정한 불은 한 번 문 상대를 놓치지 않아. 당신도 알잖아."

"알지. 근데 겁쟁이 주제에 왜 그렇게까지 하는 거냐."


라이너는 그 말에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무엇을 생각하는지 그의 입가에 서서히 미소가 번지기 시작했다.


"샬롯에게 첫 눈에 반했거든.


걔한테는 마음 씀씀이가 마음에 들어서 함께한다는 식으로 말해놓긴 했지만, 사실은 그냥 첫눈에 반해서 그런 거야. 홍두건단 짓거리도 질렸겠다, 걔랑 함께하고 싶어서 적인데도 친근하게 말을 걸었어."


누그러진 표정으로 라이너의 속내를 가만히 들어주는 베타니아.


"적인데도, 그래서 받아줄 리가 없는데도, 나는 걔랑 함께하고 싶다고 속으로 간절히 빌었어. 이런 지루한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빌었어. 그러자 기적이 일어났어. 걔가 나를 의심하지 않고 받아들여준 거야. 알고 보니 외모 뿐만 아니라 마음 씀씀이까지 훌륭했다는 거지.


베타니아, 우리는 지금까지 사회의 북풍에 떠밀려 살아왔고,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수많은 배신들을 당해왔어. 우리가 사회에서 만난 사람들은 순수하지 않은 사람들 뿐이었지. 그런데 샬롯은 오랜만에 만난 순수한 친구였어.


당신도 이미 그랬겠지만 나 역시 사람을 더 이상 믿지 못 하게 될 즈음에, 그녀는 나를 진심으로 믿어주었어. 나와 함께 다니는 것을 진심으로 즐거워 해주었어. 걔 덕에 나도 오랜만에 누군가를 믿어 볼 수 있었어. 그녀와 등을 맞대고 싸울 수 있었어. 마음이 따뜻해지는 좋은 경험이었지."


"그렇게 무턱대고 사람을 믿는 게 좋은 일이나고 보나?"

"아니, 이 척박한 시대에 믿을 놈은 거의 없다는 게 내 생각이야. 만약 샬롯이 생각 없이 낮선 사람들을 믿고 다닌다면 언젠가 크게 한 번 데이겠지. 하지만 그녀는 그냥 무턱대고 날 믿은 게 아니야. 혜안을 갖고 내 본질을 꿰뚫어 보았어. 나는 그녀에게 받은 은혜를 잊을 사람이 아니라는 걸 그녀는 알고 있었던 거야."

"샬롯이 너를 위험에 빠지면 미끼로 쓸만한 녀석으로 생각했다는 거지?"

"아니, 샬롯은 그렇게 생각할 녀석이 아니야. 똑똑하지만 바보 같이 착한 녀석이니까. 설령 그렇게 생각한다고 해도 나는 전혀 상관없어. 그녀 생각대로 나는 그 은혜에 보답할 놈이니까. 그러니까 한 번 당신을 잡은 이상 절대로 안 놓을 거야."


베타니아는 한숨을 쉬고 말을 이어갔다.


"동화에서는 빨간 두건이 늑대를 믿다가 잡아먹히는데, 넌 좀 다르군."

"그래, 당신 말대로 난 겁쟁이니까. 그렇게나 날 믿어주는 사람을 배신하고 잡아먹을 용기는 없어."

"난 널 늑대로 키웠는데, 기대가 어긋났군."

"근데 표정은 나쁘지 않아 보이는데?"

"전장에서 고독하게 구르기만 하는 늑대 보단, 떼 지어 다니며 함께 적을 물어뜯는 게 더 늑대 답다고 생각한 참이었거든."


그 말에 폭소를 터뜨리는 라이너.


"긍정적인 평가 고마운데. 그래서 당신은 이제 어쩔 거지? 더 해볼 거냐?"

"한 번 맡은 임무를 포기할 생각은 없지만, 너 또한 절대로 포기하지 않겠지."

"용병으로서의 의무 때문인가?"

"그래, 여기서 임무를 포기한다면 지금까지의 내 인생을 부정하는 것과 같으니까. 하지만 적어도 아들의 길을 가능한 한 끝까지 바라봐주는 것 또한 부모된 자의 의무 아니겠나?

"당신이 부모 역할을 제대로 해주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제대로 못 해줬으니까 지금이라도 얌전히 네 응석을 들어주는 거다. 그러니까 라이너, 네 인생을 건 마지막 재롱을 떨어봐라."


라이너는 마른 침을 삼켰다.


"좋지. 함께 떠나자. 더티 밤."


그의 온 몸에서 불이 뿔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 불은 이제까지와의 것과는 다른, 물을 들이붓더라도 떨쳐낼 수 없는 더러운 불이었다.


주변은 순식간에 불바다가 되고, 라이너와 베타니아 두 사람 다 온몸에 불이 붙었다. 라이너의 피부가 우그러지기 시작하고, 베타니아 또한 몸 곳곳에서 피부가 뜯겨나가며 그 안에 있던 기계 관절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미안하다 샬롯. 마지막에 약속을 못 지키게 되어서."

"걔가 그렇게 마음에 들었냐?"

"첫 눈에 반했다고 말했잖아. 나이가 좀만 더 있었다면 당장 내 색시로 맞이했을 거야."

"만난지 하루 밖에 안 된 녀석을 위해 그렇게까지 하다니."

"분명 그렇지만 여기까지 오기 위해 수년은 지낸 것 같아."


베타니아의 머리에도 불이 번졌지만, 그곳에는 기계가 들어있지 않았다.


"그렇군, 확실히 나는 수년 전부터 겁쟁이가 되어 있었다. 평생을 바친 싸움을 결국 포기하고 레이몬드빌에 와서 주민들을 착취하며 안정적으로 살게 되었지만, 결국 내 삶엔 돈 이외엔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되었군."

"평생 다른 사람들을 적으로 돌렸을지언정, 마지막엔 그나마 나라도 붙어있잖아."

"네 말대로 그나마 다행이긴 하군. 내 곁을 떠난 네가 다시 돌아와줘서.


내가 정상적인 부모였다면 널 어떻게든 살리려 했겠지만, 나는 그렇게 못 하겠다. 이런 상황에서도 너와 함께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는 나는 부모 실격이겠지."


"죽을 장소나 방법을 선택하는 것도 삶의 일부 아니겠어? 그리고 내게 있어서도 당신은 내 삶의 대부분이었어. 그러니까,


사랑해, 엄마."


불꽃의 괴수가 두 사람을 완전히 집어삼켰다.


한편 같은 시각, 샬롯은 3층에 올라와 있었다. 그녀는 문득 자신의 발 아래가 묘하게 뜨거워지고 뭔가가 무너져가고 있는 소리를 들었다.


"라이너 씨, 설마······."


그녀는 마음 속에서 물이 차오르는 듯한 듯한 먹먹함을 느꼈다.


라이너는 한 쪽 팔을 잃었고 초신체도 잃은 상태였다. 정상적인 방법으로는ㄴ 베타니아와 전혀 겨룰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을 것이다.


그는 분명 결사의 각오를 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다리에 힘이 풀리기 시작했다. 만난지 비록 하루 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동료였다. 동료를 잃어버린다는 건 그녀로서는 상상도 못 하던 일이었다.


내려가 보아야 하나, 아니야 이미 늦었을 거야. 하지만 그냥 죽게 놔두는 거야? 그는 나더러 서둘러 3츨으로 올라가라 했잖아. 내가 여기서 해내지 않으면 그는 개죽음을 당하게 되는 거야.


"엄마, 아빠."


샬롯은 울먹이며 부모를 불렀다. 마치 자기 스스로에게 주먹질을 하는 것 만큼 괴로운 상황이었지만, 그녀는 결국 결단을 내릴 수 밖에 없었다.


"샬롯?"

"샬롯이니?"


방문 너머에서 부모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분명 이 너머에 부모가 있다. 샬롯은 당장 달려들어 방문을 벌컥 열어젖혔다. 베타니아가 홀로그램 영상으로 보여주었던 대로 줄에 붂인 두 사람이 있었다.


"엄마, 아빠!"


샬롯은 두 사람에게 달려들어 껴안았다. 두 사람은 딱히 저항하지 않고 걱정하는 말과 함께 샬롯을 맞이해 주었다. 베타니아의 암시가 풀린 듯했다.


샬롯은 창문 쪽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뭔가 결심을 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 아빠, 우리는 여기에서 걸어서 탈출하진 못 할 거에요. 그러니까 제가 두 분을 안고 저 창문으로 뛰어내릴 거에요.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사이키터가 되었으니까, 3층에서 뛰어내리는 것 정도는 간단해요."


샬롯은 부모를 최대한 안심시키기 위해 떨리는 목소리로 어떻게든 달래였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그런 그녀의 갸륵한 마음을 알아챘는지 순서대로 한 마디씩 했다.


"여기까지 네가 어떤 길을 헤쳐왔는지 잘은 모르겠지만, 네 얼굴에서 듬직함이 느껴지는구나."

"널 기꺼이 믿을 테니 나중에 이야기를 들려주렴."


샬롯은 창문을 열어 아래를 바라보았다. 아래층에서부터 붉은 열기와 빛이 흘러나오며 어둠 속을 비추고 있었다. 바닥에는 푹신해 보이는 풀숲이 있었다.


라이너 씨. 그 동안 고마웠어요. 샬롯은 마음속으로 라이너를 향한 마지막 인사를 보냈다.


그리고는 부모를 각각 양팔에 하나씩 안고, 둘을 번갈아 보며 반드시 구해주겠노라고 행세했댜.


"우리 예전처럼 행복하게 살아가요. 엄마, 아빠."


샬롯은 초신체를 믿고 부모와 함께 3층에서 뛰어내렸다. 묵직한 충격이 물밀듯 들어와 무릎, 골반, 가슴, 목, 머리를 꿰뚫었다. 저도 모르게 내뱉은 신음. 샬롯은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지듯이 쓰러졌다.


아아, 이제까지 거의 쉬지도 않고 싸워왔구나. 샬롯은 자신의 몸 상태가 어떠한지 이제서야 절절히 깨달았다.


일어나는 것은 불가능했다. 도저히 그럴 몸 상태가 아니었다. 샬롯이 할 수 있는 건 옆으로 몸을 돌려 눕는 것 뿐이었다. 코 앞에서 초록색 풀들이 나풀거리고, 밤 하늘로 붉은 불씨들이 날아오르는 것이 보였다.


부모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샬롯을 향해 괜찮냐고 물어보는 목소리는 들렸다.


"부모님이야말로요."


그녀는 거의 자기한테만 들릴 정도로 죽어가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들어도 듣지 않아도 상관없다. 두 분이 무사하다는 건 알았으니.


주변에서 뭔가 인파가 몰려드는 듯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우리가 걱정되어 찾아온 레이몬드빌 사람들일까? 모르겠다.


샬롯은 미소를 히죽지으며, 서서히 눈을 감았다.




-For 꿈과 믿음의 바다를 헤엄치는 소년 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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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break of day 21.04.01 94 0 8쪽
48 Long Night 6 21.03.26 23 0 12쪽
» Long Night 5 21.03.23 26 0 12쪽
46 Long Night 4 21.03.19 35 0 11쪽
45 Long Night 3 21.03.15 44 0 14쪽
44 Long Night 2 21.03.14 34 0 12쪽
43 Long Night 1 21.03.13 37 0 11쪽
42 황혼의 때 21.03.12 54 0 11쪽
41 아발론의 고아들 21.03.11 25 0 11쪽
40 SORRY, I'M STRONG. 21.03.10 56 0 13쪽
39 SORRY, I'M WEAK. 21.03.09 34 0 13쪽
38 Lunatic Gate 6 19.05.10 92 0 11쪽
37 Lunatic Gate 5 19.05.10 45 0 9쪽
36 Lunatic Gate 4 19.05.10 50 0 10쪽
35 Lunatic Gate 3 19.05.10 58 0 7쪽
34 Lunatic Gate 2 19.05.10 52 0 8쪽
33 Lunatic Gate 1 19.05.10 69 0 8쪽
32 Big Arms 19.05.10 56 0 14쪽
31 로빈 후드의 우울 5 19.05.10 55 0 11쪽
30 로빈 후드의 우울 4 19.05.10 49 0 8쪽
29 로빈 후드의 우울 3 19.05.10 44 0 7쪽
28 로빈 후드의 우울 2 19.05.10 49 0 12쪽
27 로빈 후드의 우울 1 19.05.10 53 0 13쪽
26 Dogfight 2 19.05.10 52 0 7쪽
25 Dogfight 1 19.05.10 42 0 7쪽
24 행진 19.05.10 67 0 9쪽
23 모험의 시작 19.05.10 53 0 7쪽
22 대파괴 4 19.05.10 59 0 9쪽
21 대파괴 3 19.05.10 50 0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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