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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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부정
작품등록일 :
2012.02.07 07:33
최근연재일 :
2012.02.07 0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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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2.14 2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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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존의 이야기 4

DUMMY

3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제법 긴 시간이었다. 그 또한 예상보다 오래 걸린다며 투덜거리곤 했다. 어쩔 수 없었다. 내 삶은 어렸을 적의 기억과 하수도, 쓰레기장이 전부였다. 내겐 지혜라는 칼이 전혀 없었다. 이대로 밖을 나간다면 너무 위험했다. 그렇기에 그는 내게 삶을 살아가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그래서 그런지 난 그에게서 부모님의 모습을 보았다. 꼬맹이인데 부모라니. 우습지 않은가. 하지만 난 그의 손을 잡고 이야기를 듣는 것이 좋았다.

킴은 아직도 그 하수도에 남아있다. 그는 그곳에 제법 마음에 드는 모양이다. 아직 회복이 모두 되지 않기도 했고.

그는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진 않았다. 그러나 가끔 넋두리 같은 것을 하기도 했다. 아이의 몸을 한 채로 살아간다는 것은 쉽지만은 않다고 한다. 사회는 어른들의 것이다. 아이 혼자서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누구도 아이를 동등하게 대해주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는 3천살이 넘었다고 한다. 2세대는 100명이 넘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6명뿐이다. 그러나 그는 아직도 살아있다. 아이의 몸이라는 단점에도 불구하고 남았다는 것. 그만큼 그가 강하다는 증거가 아닐까.

귀찮아하면서도 가끔 보여주는 그의 따뜻한 눈빛이 이해가 된다. 이제 그에게 가장 두려운 건 고독이 아닐까.

언젠가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다. 그냥 여기서 둘 만 살면 안 되냐고. 꼭 그 사회의 일원이 되어야 하느냐고. 그도 그 사회에 대해 탐탁지 않은 눈치였다. 그러나 어쩔 수 없단다. 일종의 의무 같은 것. 어쨌거나 살아가려면 사회의 도움과 보호가 필요하다고 한다. 일원이 아닌 이는 동족으로 생각지도 않는단다.

킴은 내게 몇 가지 물건을 주었다. 날이 넓은 전투용 한 손도끼 하나, 제법 굵고 긴 송곳 하나, 얼굴을 모두 가릴 만한 후드가 달린 두툼한 상의, 약간의 돈. 그리고 킴의 사람이라는 증거인 특이하게 생긴 동전 하나.

우리 종족은 어지간한 상처는 재생이 된다. 심지어 손목이 잘려도 손목이 금세 돋아난다. 그러나 심장이 파괴되면 재생이 무척 더디다. 그 상태에서 목이 잘려나가거나 뇌가 곤죽이 되면 비로소 소멸된다. 물론 4세대 이상부터는 햇볕에 의해서 죽기도 한다. 우리들의 뼈는 강철보다 단단하다. 쉽게 손상당하진 않는다. 그래서 송곳이 필요하다. 뼈로 보호받지 않는 눈이나 턱밑, 갈비뼈 사이를 통해 뇌와 심장을 공격할 수 있다. 목 자르기엔 도끼가 좋고. 그런데 왜 무장이 이런 식이냐고? 킴은 내게 절대 동족을 믿지 말라고 했다. 가장 큰 적은 눈앞에, 너의 뒤에 있다는 것을 명심하라고 했다.

당연히 후드야 햇빛을 그렇게 가리면 고통이 많이 감소가 되니 준비했다. 생각보다 돈은 많이 필요 없었다. 이제 내겐 음식이나 물을 섭취할 이유도, 체온을 유지해야할 이유도 없기 때문이다. 여벌의 옷이면 충분하다.

동전이 제일 중요하다. 이것은 내 새 사회의 신분패가 될 것이다.

그가 준 쪽지를 다시 펴봤다.

홀라노이아(Hollonoyia) 영지의 황금보리 술집으로. 그리고 피터를 찾아라.

두근두근. 설렌다. 떨린다. 이제 새로운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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볕이 내게 직접적인 피해를 주지 않는다고 해도 내겐 어쩔 수 없이 부담이 되었다. 그래서 밤을 틈타 이동하다 보니 한밤중에 영지에 도착하게 되었다.

홀로노이아 영지는 나라의 심장과도 같은 곳이다. 모든 물산과 사람이 통과하는 곳. 그렇기에 크로스로드라는 별명이 붙어있기도 했다. 상업적 요충지이기도 하지만 전략적 요충지이기도 한 곳이라 이 영지는 성벽으로 둘러 쌓여있어 성문을 통과해야만 한다. 그러나 성문은 밤엔 누구도 통과시켜주지 않는다.

쪽문 앞에 두 명의 병사가 보인다. 굳은 표정에 군기가 가득해 보인다. 하지만 난 당당하게 다가갔다.

“수고가 많으십니다.”

갑작스런 인기척에 놀란 듯 그들은 창을 겨누었다. 그러나 소년의 모습을 한 내 모습을 확인하더니 이내 긴장이 풀어진 듯 보였다.

“이 시간에 무슨 일이냐?”

그의 물음에 난 등에 메고 있던 작은 보퉁이를 풀러보였다.

“일행 중 아픈 사람이 있어 급하게 약초를 구하러 나갔다 이제야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약초는 무슨. 그냥 잡풀이다.

그러나 그는 무언가에 홀린 듯 성의 쪽문을 열어준다.

“그래? 그럼 지체할 수 없지. 어서 가서 치료해줘라.”

난 보퉁이를 다시 묶고는 성문에 들어갔다. 이것이 우리 일족의 기본 능력 ‘최면’이다. 직접적인 명령은 내릴 수 없지만 그럴 듯하게 포장하면 내게 큰 호의를 보이게 된다. 마치 돈을 구걸할 때처럼.

홀로노이아의 밤은 무척이나 조용했다. 내가 살던 이녹(Ignokk)은 항구를 끼고 있는데다 기본적으로 소비지향적인 도시이다 보니 밤거리가 무척 휘황찬란했다. 사실상 외침이 어려운 지형이니 더 그랬다. 늘어서있는 짐마차들이 무색하게 조용한 거리. 한적하고 이질적인 분위기가 무척 마음에 들었다.

주변을 둘러보았다. 저 멀리 불빛이 보인다. 아직 불이 꺼지지 않은 곳. 여관이나 선술집이겠지.


몇 군데를 둘러보고 나서야 황금보리 술집을 찾을 수 있었다. 2층 목조건물이다. 잘 닦인 나무문. 주인의 손길이 느껴진다.

끼이익. 경첩이 지르는 소리. 늦은 시간이어서 그런지 전체적으로 가라앉은 분위기. 맥주잔을 손에 들고 꾸벅꾸벅 조는 사람들이 눈에 띈다. 붉은 얼굴. 다행이다. 저마다의 고민으로 내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구나.

주석으로 된 맥주잔을 정리하던 바텐더가 나를 담담한 눈빛으로 쳐다본다.

“이런 곳에 오기엔 아직 어리지 않나?”

다가가 앞자리에 앉았다.

“앙헬(angel)을 만나러 왔습니다.”

그의 눈빛이 달라진다.

“다시 말씀해 주시지 않겠습니까?”

“앙헬을 만나러 왔습니다.”

옷매무세를 가다듬은 그가 정중히 대답했다.

“이쪽으로 따라오십시오.”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따른다. 주방 뒤편으로 간다. 계단이 지하로 나있다. 늘어진 맥주통들과 식재료들이 보인다. 그가 통 하나의 뚜껑을 연다. 그곳엔 맥주가 아닌 손잡이가 있었다.

손잡이를 당기자 한쪽 벽이 열렸다.

“길을 따라 들어가십쇼.”

나는 말없이 안으로 들어갔다. 제법 긴 복도. 경사가 아래로 되어있는 것을 보니 점점 지하로 들어가는 듯하다.

멀리 철문이 보인다. 앞에 검을 찬 두 사람이 서있다. 냄새가 난다. 약자의 냄새. 직감적으로 알 수 있다. 5세대이다.

그들도 내게서 무언가가 느껴지는 눈치다. 그 느낌 나도 안다. 내가 킴에게서 느낀 느낌. 세대차에서 느껴지는 위압감. 일족의 혈통이 끼치는 절대적 영향력. 나도 모르게 고양감에 취한다. 우러러봐라. 난 너희들의 위에 있다.

그들이 고개를 숙이며 문을 열어준다. 복도의 풍경이 바뀐다. 잘 정돈된 느낌. 그들 중 하나가 말했다.

“문이 열리면 자동적으로 위에 종이 울립니다. 누군가가 올 터이니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앞엔 폭신해 보이는 소파가 마련되어 있었다. 손을 들어 시트를 만져봤다. 부드러운 가죽이다. 앉았다. 폭신하다. 이게 소파란 것이구나. 아늑하다. 하수도의 돌바닥과는 차원이 다르다. 긴장된 신경이 이완되었다. 잠시 눈을 붙이고 싶을 정도다.

차 한 잔 마실 시간 정도가 흐르자 한 사람이 내려온다. 깔끔한 정장차림이다. 그가 내 앞에서 깊숙이 허리를 숙인다.

“따라 오시죠. 모시겠습니다.”

흥미롭다. 그는 인간이다.

묻고 싶은 게 많지만 조용히 그를 따랐다. 킴에게 들었다. 이곳에선 입을 닫고 귀를 열어야한다. 침묵은 금보다 소중하다.

계단을 한참 오른다. 두꺼운 목제 문을 연다. 나도 모르게 감탄할 뻔 했다. 대저택의 홀이다. 높은 천장에 매달린 샹들리에가 빛나고 있다. 내가 걸친 후드가 초라한 느낌이다. 새 옷이라고 좋아했던 내가 왠지 부끄럽다. 위축되는 것 같아 기분이 나빠졌다. 후드를 눌러써 표정을 가리고 있던 것이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젠장.

그러나 곧 킴의 말이 떠올라 다시 가슴을 폈다.

‘당당해져라. 넌 나의 멘티(mentee)이다. 너는 3세대이다. 외형은 중요치 않다. 네 안에 흐르는 피는 진하다.’

그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알 것 같다.

당당해지자. 난 사자의 영역에 들어왔다. 나 또한 사자이다. 내 발톱은 날카롭다.

접견실에 들어섰다. 건장한 체구의 남자가 소파에 앉아있다. 30대 중반 정도의 외모. 짙은 갈색 머리에 녹색 눈. 건강한 피부색. 그리고 동류의 냄새.

“일단 앉지.”

그의 손짓에 따라 맞은편에 앉았다.

“당신이 앙헬 이군요.”

“그래.”

“제 이름은 존입니다.”

고개를 끄덕인 그가 손을 내민다.

“내게 전해줄 것이 있을 텐데.”

나는 킴이 준 봉투를 내민다. 봉투는 밀랍으로 봉인되어 있었다.

앙헬은 봉투를 꺼내 내용을 읽는다. 놀랍다는 표정으로 나를 본다.

“킴. 그 분이 멘토라니. 그 분이 멘티를 만들었다니 말이야. 놀라운 일이군. 그래. 증표는?”

난 목에 걸린 지갑 안에 넣어둔 동전을 꺼내 그에게 보였다.

“맞군.”

차갑던 앙헬의 표정에 일말의 정감이 어린다. 그가 내게 악수를 청한다.

“축하해 존. 이제 자네도 우리 일족의 정식 일원이야.”

그의 손을 맞잡는다. 손에 느껴지는 질감이 남다르다. 단단하다. 킴의 말이 생각난다. 그가 ‘강철피부의 능력자’라는 것을.

4세대까지는 고유의 능력이 있다. 그는 철갑 같은 방어력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새 사람을 맞이하는 일을 하는 것인가? 이곳은 일족이 처음 알게 되는 곳이기도 하니 위험하기도 하겠지. 어찌 보면 적임자로군.

앙헬의 표정이 편하게 풀린다. 친근감일까, 가식일까.

그가 소파에 몸을 묻으며 말했다.

“윗세대 분들과는 다르게 우리들은 하나씩 임무를 맡지. 보다시피 난 이곳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살펴보는 일을 하지. 그러고 보니 3세대가 새로 들어온 것이 얼마만인지 모르겠군. 어쨌든 자네도 임무를 맡아야하지.”

“그게 무엇입니까?”

“한 달 전부터 이 근방에 실종자들이 생겨나고 있어. 뭐 치안이 안 좋은 이 시대에 그런 사람 한 둘 생기는 거야 예전부터 있었던 일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치기엔 그 수가 너무 많았지. 워낙에 이곳이 유동인구가 많아 눈치 채기 힘들긴 하지만.”

“일족이 그런 것에 까지 신경을 쓰십니까?”

“물론. 심지어 무척이나. 우린 우리가 주목 받길 원하지 않아. 그러니 이런 의심받을만한 일엔 신경을 더 곤두세우지. 어쨌거나 나름 조사를 해봤어. 그리고 실마리를 잡았지.”

“그게 무엇입니까?”

“이 근방에 다른 무리들이 있는 것 같아.”

다른 무리라니?

앙헬이 말을 이었다.

“같은 밤의 일족이라고 해서 같은 이념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은 아니야. 우리 같이 질서를 갖고 살려는 이들이 있는 반면 본능에 의해 움직이는 놈들도 있지.”

“모두 같은 테두리에 있다는 건 아니란 겁니까?”

그가 고개를 무겁게 끄덕인다.

“그럼 단체가 여러 가지란 것입니까?”

“표면적으로 드러나 있는 곳은 우리 하나 뿐이다. 이곳의 역사는 길다. 천년이 넘어. 전엔 소수의 그룹이 많았지만 세월이 지나며 하나가 되었지.”

“쉽게 뭉칠 수 있는 이들이 아닌 것 같습니다만…….”

“큰 이득을 위해서 작은 불편 정도야 감수할 수 있지 않은가.”

“어쨌든 자세한 것은 조사를 해봐야겠군요.”

“그렇지. 하지만 아직 경험이 없는 네가 모든 것을 떠맡기엔 무리가 있을 거야. 내가 그대에게 정확히 바라는 것은 조력자로 활동해달라는 것이지.”

자존심이 조금 상하긴 했지만 그의 말이 옳다. 난 칼을 든 어린아이와 같다.

앙헬이 쪽지를 건넸다.

“받아. 동이 트면 중앙 우물 서편에 있는 용병길드로 가. 거기서 샌슨(sanson)을 찾도록 해.”

“동이 트면 말입니까?”

“그는 인간이거든. 자네에게 조금 부담이 되겠지만 오히려 더 안전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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