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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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부정
작품등록일 :
2012.02.07 07:33
최근연재일 :
2012.02.07 0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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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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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2.11 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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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쪽

존의 이야기 1

DUMMY

내가 그 아이를 만난 것은 운명이었을까?


어느 허름한 골목길, 쓰레기통을 뒤지던 중 한 아이를 발견했다. 일곱 살이나 되었을까? 머리카락이 까맣다. 얼굴의 윤곽을 보니 천리를 간다는 말을 타도 몇 달을 달려야 한다는 먼 동방의 아이인 것 같다.

창백하다 못해 푸르기 까지 한 피부, 시꺼멓게 도드라진 실핏줄, 흐리멍덩한 동공 그리고 차디 찬 체온까지. 어느 것 하나 살아있는 생명체의 특징이라고 할 것은 없었다.

먹을 수 있을까? 잠시 고민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럴 순 없었다. 아직 인간으로서 가져야할 마지막 양심마저 버릴 순 없었기 때문이다. 아니면 배가 덜 고팠던 것인지도.

그 아이를 매장하기 위해 근방의 산으로 들쳐 업고 갔던 건 내가 좋은 사람이기 때문은 아니다. 그 쓰레기장이 내 주요 작업장이기 때문이다. 근방의 식당들이 찌꺼기나 남은 음식 등을 그곳에 버리곤 했다. 물론 경쟁자들이 많긴 하다. 시체가 썩도록 둘 순 없다. 마음 한쪽에는 착한 일을 한 내 행동에 감동한 신이 빵이라도 하나 주었으면 하는 순진한 생각이 있기도 했다.

산은 어둠이 빨리 온다. 아이를 어서 묻어야겠다는 생각에 상황을 고려하지 못했다. 시간을 생각하지 못해 꼼짝없이 밤에 땅을 파게 생겼다. 다행히 이 산은 도시와 가까워 위험한 야생동물을 찾기 힘들었지만 은연중 내 등을 엄습하는 두려움을 떨치기란 요원한 일이다.

물론 나는 이 아이를 정성스레 묻어줄 마음 따윈 없다. 대충 구덩이에 밀어 넣고 덮어 줄 생각이었다. 봉분 정도는 만들어주려고 했지만.


--------------------------


“날 파묻으려는 거야?”

나는 갑작스레 들려온 음성에 놀라 자빠졌다.

“그래도 인간적인 녀석이네. 아님 아직 어려서 그런가?”

시체가 일어선 것이다. 어느새 근처의 그루터기에 걸터앉아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나는 너무 놀라 말을 이을 수 없었다.

“이걸 어떻게 한다. 의도하진 않았겠지만 날 구해준 것인데 말이야.”

턱을 괴고 있는 그 아이의 눈엔 망설임이 가득했다.

“좋아. 선택의 기회를 주지. 너 세상의 이면에 대해 알고 싶어?”

무지렁이인 나였지만 그 물음이 나에게 미칠 영향이 무척이나 클 것이란 것쯤은 느낄 수 있었다.

“무슨 소리에요? 귀신? 악마? 전 그저 무덤을 만들어 주려고 했을 뿐이에요. 제발 저를 그냥 보내주세요.”

아이의 얼굴에 연민의 빛이 떠올랐다.

“그럴 순 없어. 내 모습에 대해 조금이라도 안 이상 넌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어. 그나마 너에게 선택을 할 기회를 주는 건 네가 한 행동이 내게 큰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야.”

“도움이라니요?”

아이의 표정이 찌푸려진다.

“그런 것이 있다. 알아서 좋을 건 없지. 선택이나 해라.”

그의 기세가 변했다. 그의 눈빛은 칼날과도 같았다. 나는 차마 더 물어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두 가지가 뭐에요?”

아이가 손가락 두 개를 폈다.

“나에 대해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않도록 영원한 침묵을 선사 받거나, 내가 살고 있는 곳으로 들어오는 거지.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으로 말이야.”

“그게 무슨 말입니까? 살고 있는 곳이라니요?”

“뭐라 설명하기 어렵군. 하지만 하나는 확실해. 쓰레기통이나 뒤지며 시궁쥐처럼 살고 있는 너의 삶이 더 나아질 것이란 걸.”

나는 아이의 말에 가슴이 요동쳤다.

“더 이상 굶지 않아도 되는 건가요?”

지금까지의 나를 압박했던 공포가 사라지는 듯 했다. 10여년을 굶주린 내게 배고픔을 면할 수 있게 해준다는 그의 말은 꿀처럼 달았다.

나의 물음이 원인이었을까? 그 아이의 눈망울에 슬픔이 고였다.

“음……. 그래. 네가 말하는 그 굶주림은 더 이상 너에게 고통을 주진 않을 거야.”

“그럼 그 말에 따를게요.”


나는 그 대답을 한 순간을 두고두고 후회한다.


--------------------


눈을 떴다. 머리가 아프다. 주변을 둘러봤다. 익숙했다. 하수구 속이다. 몸을 일으켜 주저앉았다. 그런데 이상했다. 하수구엔 빛이 거의 들어오지 않았다. 그런데 잘 보인다. 색을 구분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모든 사물의 윤곽이 또렷하게 들어왔다. 마치 세밀히 스케치된 그림처럼.

“욱!”

갑자기 욕지기가 올라왔다. 역한 냄새 때문이다. 이것도 이상하다. 이미 적응이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더 역하게 느껴진다. 심지어 그 냄새를 구분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물이 썩으며 나는 냄새, 부패하는 냄새, 멀리 어딘가 웅크리고 지내고 있을 부랑자들의 냄새까지.

“컥! 억! 숨이, 숨이 막혀!”

냄새를 맡던 나는 목을 움켜쥐며 절규했다. 숨이 안 쉬어진다. 가슴이 움직이지 않는다. 폐가 제 기능을 하지 않는다. 너무 답답하다. 미치도록 답답하다.

한 동안 웅크리고 있던 나는 의문이 생겼다.

‘시간이 한참 지난 것 같은데 난 왜 죽지 않지? 숨을 안 쉬고 있는데? 아니 못 쉬고 있는데?’

그렇다. 난 숨을 쉬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죽지 않는다.

무언가 잘못 되었다. 내가, 내가 아닌 것 같다.

여기가 하수구 어디쯤 인지 모르겠지만 우선 나가봐야겠다. 길은 자세히 모르지만 무작정 발걸음을 옮겼다. 이 도시는 지하 전역에 걸쳐 하수도가 설게 되어 있다. 고대 문명의 흔적이라던가? 그 위에 세워진 도시라 그렇다. 아마 이곳을 건설한 사람들도 자세히 파악하고 있진 못 할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구조가 복잡하지 않고, 일정한 방식으로 설계되어 있어 정확한 장소는 몰라도 대충 짐작해 가다 보면 도시 위로 올라갈 수는 있다. 간혹 다른 집의 지하실이 나오는 경우도 있긴 했지만.

저 멀리 틈 사이로 빛이 보인다. 문이다.

떨리는 마음으로 하수도 문을 연다. 빛이 들어온다.

“악! 아파!”

빛이 내 피부를 파고드는 것 같다. 아프다. 고통스럽다. 빛이 불로 변해 나를 삼키는 것일까?

빠르게 어둠으로 되돌아갔다. 피부를 살펴봤다. 이상했다. 분명 불로 지지는 것 같았는데 아무런 이상은 없다. 그리고 드러난 손과 손목 근처는 아직도 화끈한 느낌이 나는데 옷으로 가려진 부분은 덜하다. 참을 만 했다.

옷을 벗어 손을 감았다. 용기를 내어 다시 손을 내밀었다. 역시 참을 만 했다. 옷가지를 벗긴다. 역시 아프다. 고통스럽다. 그러나 각오를 해서 그런지 이를 악물면 버틸 수는 있다. 손등을 바라봤다. 검은 때가 덕지덕지 붙어 있는 손. 그러나 좀 달랐다. 곱다. 영양실조와 더러운 위생상태, 갖은 고생으로 인해 푸석하고 갈라졌던 피부가 아기처럼 곱다. 그리고 창백하다. 햇볕에 그을렸던 내 손이 푸르스름할 정도로 하얗다.

다시 하수도 깊은 곳으로 돌아왔다.

확실히 내게 무슨 일이 생긴 것 같다. 먹지 못해 늘 내게 달려있던 무기력함도 없어졌다. 달고 살았던 허기와 복통도 없어졌다. 굶주림을 없애준다더니. 정말일까? 그런데 왜 빛에 고통을 느끼나? 그것도 상처를 내진 않으면서. 일단 해가 지길 기다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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