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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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부정
작품등록일 :
2012.02.07 07:33
최근연재일 :
2012.02.07 0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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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2.30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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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쪽

존의 이야기 9

DUMMY

평소의 이곳엔 할 일이 없다. 무료한 일상. 외려 역동적인 삶이 스스로를 망치기 때문에 지양하는 바이긴 하지만 적막함이 마냥 좋은 것은 아니다.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고문실로 갔다. 이곳에서 있던 일들이 오늘 일처럼 생각난다.

필립의 얼굴엔 만족스런 미소가 가득했다. 그의 앞에 엎드려 오열하는 라파엘의 모습을 보는 그의 모습은 너무나 인상적이었다.

그들의 정신은 많이 손상되었을 것이다. 깨진 그릇이다. 이제 그들은 일족의 중역을 맡을 수 없을 거다. 라파엘은 소멸의 죄를 받을 수도 있고.

쿵. 갑자기 문이 거칠게 열린다. 돌아보니 앙헬이 서 있었다.

“무슨 일이기에 그렇게 들어옵니까?”

“빨리 영지 서쪽의 호두나무 군락지로 가봐.”

그곳은 영주의 관리 하에 있는 호두나무 밭이다. 영지 직할지이기 때문에 잘 관리되어 있어 제법 울창하고(영지민들이 함부로 나무를 벌목할 수 없기에) 인적이 드문 곳이다.

“오던 두 사람 중 하나가 부상당하고 다른 하나는 잡혀갔다. 갑작스런 습격이라 정체를 확인하지 못하고 도주했다니 어서 가서 현장을 봐봐. 3인 정도라 하니 보통 사람은 아니라 흔적이 남아 있을 터.”

“그러지요.”

나는 재빨리 내 방으로 돌아가 무구와 흉갑을 챙겼다. 그리곤 비밀 통로를 통해 영지 밖으로 나왔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샌슨이 그의 동료 찰리와 함께 나와 있다. 찰리는 샌슨의 오랜 전우로 라파엘 사건 때 안면을 익혔다. 손발을 맞추며 익숙해진 사이라 붙여주었나 보다. 샌슨은 예의 장검과 방패차림이었고, 찰리는 자기의 키보다 큰 미늘창(halberd)을 들고 있었다.

달 빛 아래의 호두나무 군락지는 무척 고요했다. 나는 오감에 집중하며 도끼를 단단히 쥐었다.

앙헬이 말해준 위지를 가늠해 들어가기를 얼마, 부러진 나무 한 그루와 핏자국, 그리고 팔 한 짝을 발견했다.

왼팔. 유난히 검은 피부. 살아남은 일족의 팔이 맞는 것 같다.

샌슨이 내가 발견한 팔을 유심히 살핀다.

“절단면이 날카로운 무기에 의해 생긴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둔기에 눌린 것도 아니고. 잘리듯 뜯겨 나갔네요.”

나는 그의 말을 들으며 주변을 둘러봤다. 상처 입은 나무 한 그루. 그곳엔 맹수가 할퀸 것 같은 흉터가 나있다.

“저곳을 봐.”

세 줄기. 특히 가운데 상처가 길고 깊다. 킴에게 들어본 적 있는 흔적이다. 이건 숲의 악마라 불리는 염소인간들의 손톱자국이다. 그들은 4개의 손가락을 가졌고, 세 번째 손가락이 한 마디 반 정도 길다.

“이게 무슨 자국입니까?”

샌슨이 긴장된 목소리로 묻는다.

바닥을 살폈다. 네 방향으로 갈라진 거대한 발굽 자국. 역시.

“염소인간이야. 정황을 봐서 염소인간들이 분명해. 흔히 볼 수 있는 개체는 아닌데…….”

염소인간이란 것을 처음 들어봤는지 샌슨과 찰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들은 염소를 닮은 외모와는 달리 육식을 한다. 7살 정도의 지능을 가졌고, 보통 300년을 산다. 무척 호전적이라 움직이는 모든 걸 공격하고 본다. 보통 인적이 드문 산속에 산다. 그러나 이 영지 부근은 사람들의 통행량이 많아 이들이 좋아하진 않을 텐데. 가임기엔 일부러 인간을 노린다던데. 그 때문일까?

“주의해. 신체능력은 고릴라보다 강하고, 포악하기론 붉은 곰 보다 더하다고 하니까.”

우선 발자국을 따라 가보자.

염소인간의 체중은 일반적인 성인 남자의 3배가 넘는다. 더구나 이족보행에 단단한 발굽. 그렇기에 축축한 토양에는 그것들의 발자국이 깊게 찍혀있다.

경로를 보아하니 셋.

이 때 찰리가 말했다.

“이쪽으로 계속 가면 석회동굴이 하나 나옵니다. 오래된 동굴이라 이 근방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죠. 무척이나 깊고 커, 한 여름이면 그곳에서 피서를 하곤 했습니다. 그래서 동굴 이름이 ‘하늘뱀의 식도’입니다. 물론 영지 직영이 된 후론 찾아갈 수 없었지요.”

역시나 찰리의 말대로 염소인간들의 발작구은 하늘뱀의 식도로 이어져있었다.

샌슨이 횃불을 꺼내들었다.

“이 동굴은 한 낮에도 칠흑같이 어둡습니다. 존님의 시야에는 방해가 없으시겠지만 저희는 바로 당하고 말겁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염소인간이 두 기만 되었어도 혼자 들어갈 텐데. 확인된 것만 셋에 더 있을 줄도 모르니 어쩔 수 없다.

동굴에 들어서자 멀리서 염소 울음소리 같은 게 들려왔다.

“샌슨은 제일 뒤에 서 떨어져 와.”

어쩔 수 없이 불을 들었지만 미리 들킬 수는 없다. 나는 앞서 정찰을 시도했다.

종유석 숲 너머에 네 명의 염소인간이 보였다. 둘은 덩치가 크고 둘은 조금 작았다. 가족인 것 같다. 암놈이 셋에 수놈이 하나. 암놈은 가슴에 큰 젖이 두 개 달려 있었다. 수놈은 머리에 큰 뿔이 달렸고, 팔뚝만한 좆이 다리 사이에 덜렁이고 있었다. 그들은 시종일관 입을 오물거리고 있었는데, 일족으로 보이는 이를 먹고 있었다. 그 뒤론 오래된 뼈들과 얼마 되지 않아 보이는 뼈들이 꽤 눈에 들어왔다. 덩치에 비해 작은 입을 쉴 새 없이 오물거리는 것이 얼핏 귀여워 보이기도 하다.

나는 샌슨에게 돌아가 지령을 내렸다.

“내가 큰 암놈을 공격하는 순간, 너희 둘이 새끼 암놈 중 하나를 맡아 공격해.”

그들이 결연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둠을 틈타 수컷에게 접근했다. 여전히 오물거리고 있는 놈들. 나는 즉시 수컷과 어린 암놈 중 하나에게 저주를 내렸다.

“메에에!”

수컷이 벌떡 일어나 두 눈을 감싸 쥔다. 작은 암컷 하나도 주저앉아 버둥거린다. 이것이 내 일족으로서의 능력 오감차단(五感遮斷)의 저주이다. 일시적으로 두 개체의 오감을 차단하는 것이다.

곁에 있던 암컷이 일어나 두리번거린다. 재빨리 접근해 뒷모가지를 도끼로 후려쳤다.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암컷이 잘린 나무처럼 넘어간다. 동시에 멀쩡한 새끼에게 도끼를 집어 던졌다. 푹. 거친 소리와 함께 미간이 쪼개졌다.

기합소리와 함께 샌슨과 찰리가 새끼에게 달려든다. 눈 먼 새끼니 둘로 괜찮겠지. 나는 수놈을 바라본다.

가족들의 비명소리와 피 냄새에 흥분했나보다. 온 사방을 들이받고 있다. 나는 허리춤의 송곳을 뽑아 들었다. 그리곤 잽싸게 수놈의 목에 올라타 한 손으로 뿔을 단단히 쥐었다. 수놈은 거친 신음과 함께 머리를 턴다.

망설이지 않고 놈의 귀 아래에 송곳을 꽂아 넣었다. 별다른 저항 없이 박히는 송곳. 급소를 제대로 찔렀나 보다. 이내 수놈은 몸을 부르르 떨며 엎어졌다.

옆을 보니 샌슨 일행도 새끼를 처리한 듯 주저앉아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역시. 그들의 전투력도 생각보다 높은 것 같다.

그들을 둔 채 사체에 다가갔다. 역시나 일족의 사체 특유의 피 모양을 하고 있다. 색이 짙고 점도가 높다. 방금 죽은 시체치고 빠르게 부식되고 있었다.

샌슨이 다가와 내게 말한다.

“실종된 그 분이 맞는 겁니까?”

“응.”

나는 죽은 염소인간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어쨌든 저것들은 보기 힘든 것들이야. 전부 수습해서 앙헬님에게 가져다 줘.”

“알겠습니다.”

그들은 사체를 수습할 동료들을 부르기 위해 자리를 떴다. 덩치가 덩치니 만큼 둘로는 힘들 터였다.

나도 돌아가려는데 발치에 해골이 걸렸다. 무심코 쳐다봤다. 손뼈다. 그런데 그 손엔 제법 크고 납작한 가죽주머니가 들려있었다. 호기심에 가죽주머니를 열었다. 고급스런 재질의 양피지가 들어있다.

“오호라. 이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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