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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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부정
작품등록일 :
2012.02.07 07:33
최근연재일 :
2012.02.07 0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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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1.05 2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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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의 이야기 12

DUMMY

하라엘의 도착과 함께 학교에선 난리가 났다. 답사를 간다던 일행이 모두 죽었다는 사실에 모든 이들이 충격에 빠졌다.

하라엘은 자신은 자신의 시종이 마지막 까지 목숨을 버리며 지켜줘 살 수 있었다고 거짓말을 했다. 그리고 유품이라며 다른 이들의 물건을 챙겨왔다. 기사들의 검, 학자들과 학생의 반지 등을 말이다. 그들의 마지막 가는 길은 물론 각색되었다. 사람들은 죽은 이들의 넋을 기렸고, 그들의 유품을 챙겨온 하라엘의 행동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하라엘은 학교에 마음을 추스를 시간이 필요하다는 핑계를 대며 가문으로 잠시 복귀한다는 청을 올렸고, 그것은 쉽게 받아들여졌다. 원래는 아주 특별한 사정이 생기지 않는 한 졸업 때 까진 집으로 갈 수 없다고 한다.

“긴장돼요.”

하라엘은 땀이 나는 두 손을 쥐었다 폈다 하며 안절부절 못했다. 그는 마차의 창밖을 보며 풍경을 보는 듯 했지만 시종일관 다른 생각을 하는 듯 멍한 눈빛이다.

“집으로 돌아가는 건데 안정이 되는 게 아니고?”

나의 물음에 그가 고개를 저었다.

“어렸을 땐 그랬죠. 그 날이 오기 전 까지는…….”


“형! 이거 봐! 아버지가 사줬어! 귀엽지?”

하라엘이 한껏 들뜬 목소리로 후안에게 말했다.

“뭐야. 강아지야? 아버지가 웬일이시래. 털 있는 동물 근처에만 가면 재채기를 심하게 하셔서 강아지 같은 거 싫어하시는데.”

“그러게 말이야. 그런데 곧 내 생일이잖아. 생일 선물이래.”

“요 녀석. 그렇게 좋은 거야? 잘 키워봐. 대신 아버지 근처로 데리고 가진 말고.”

“응! 잘 키울 거야!”

“이름은 뭔데?”

“해피! 이제 얘 이름은 해피야!”


“형. 그러지마. 해피가 아파하잖아.”

후안이 해피의 목줄을 붙들고 있다. 개의 하얀 털엔 붉은 얼룩이 묻어있다. 그리고 후안이 들고 있는 목검에도.

“그래서 뭐. 이 더러운 개새끼가 내 바지에 흙을 묻혔다고.”

“그러지마. 해피도 형이 좋아서 그러는 거야.”

“그렇다 해도 내 옷에 더럽힌 건 용서가 안 돼.”

“그래서 그렇게 애를 때린 거야? 해피는 내 동생이나 마찬가지야. 어떻게 그럴 수 있어?”

“개 같은 소리하고 있네. 개새끼가 네 동생이면 너도 개새끼고, 네 에미도 개새끼냐?”

“그런 소리가 아니잖아. 그리고 해피 좀 내려놔. 숨을 못 쉬잖아. 그러다 죽어.”

“싫은데?”

“형, 제발.”

“그럼, 너 내 말대로 해. 그럼 목줄을 놔주지.”

후안의 눈빛이 시리도록 차다. 그리고 일그러진 표정. 하라엘은 저 찬 눈빛속의 일그러진 무언가가 너무나 무섭다.

“형. 싫어. 그러기 싫어. 나도 이제 알아. 그런 건 나쁜 거야.”

“이 개가 죽어도 좋아?”

“아냐. 그건 더 싫어.”

“그럼 잔말 말고 엎드려. 저 침대 위에. 개처럼 엎드리라고! 그리고 내가 네 안에 들어가면 넌 이 개처럼 짖는 거야. 멍멍.”

후안이 하라엘의 머리채를 움켜쥔다.

“이 암캐 같은 새끼. 네 놈 어미가 그렇게 이 짓거리를 잘한다며? 그래서 네 놈이 태어난 거잖아. 아버지도 그래. 너 같은 놈이 뭐가 좋다고.”

후안의 숨소리가 거칠어진다.

“너 이 개 같은 놈. 닥치고 찌그러져있어. 뭐 주워 먹을 거 없나 킁킁거리지 말고. 네 손에 쥐어 줄 건 아무것도 없어.”

“오, 오해 하지 마. 난 아무 욕심 없어.”

“욕심이 없다고? 그럼 저 개새끼는 뭔데. 왜 아버진 내게 따뜻한 말 한 마디 없으신 건데? 왜 본인이 멀리하는 털 달린 짐승을 네 놈에게 주는 건 무슨 이유야! 내숭 떨지 마. 그 순진한 얼굴로 아버지를 후리는 건 네 놈 에미나, 네 놈이나 똑같아. 그러니 닥치고 넌 내 아래 깔려 있어. 네 에미나, 너나 후아힘 가문의 씨나 받으면 되는 거야.”


“하라엘! 여기서 왜 이러고 있어?”

“마리아.”

“여긴 매일 오는 구나? 넌 꼭 찾을 때 마다 여기에 있더라.”

바람이 부는 언덕이다. 사방이 탁 트였다. 목초지가 넓게 조성이 되어있다. 하라엘의 어머니는 목동의 자식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이곳을 좋아했다. 답답한 영지생활이 그녀의 영혼을 옥죄였다. 이곳은 그녀의 유일한 쉼터였다.

그녀가 늘 하라엘의 손을 잡고 이곳을 방문했다. 하라엘은 몰랐다. 그녀가 왜 이곳에 오는지를. 왜 한숨을 쉬는지를. 왜 자신을 보며 측은한 표정을 지었는지를. 왜 그녀가 죽어서 이곳에 뿌려지길 원했는지를. 하지만 이제 그가 이곳을 찾는다. 해피도 이제 그녀의 곁에 있다. 내 손에서 저곳으로 날 듯 뛰어갔다. 그의 털을 닮은 하얀 바람이 되어.

“기운 내!”

부드러운 감촉이 하라엘의 입술에 닿는다. 차디찬 그의 입술에 닿는 그 감촉은 봄의 햇살보다 따사롭다. 하얗게 웃는 마리아의 얼굴이 하라엘의 눈에 가득 들어왔다. 그녀의 미소는 어머니를 닮았다.

그래. 마리아. 나의 사랑. 내겐 네가 있어. 이젠 너를 위해 살아갈게. 내겐 너 뿐이야. 너 하나만 있으면 되.

하라엘이 마리아를 품에 안았다. 마리아는 가만히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는다. 그녀의 턱을 든다. 아, 나의 마리아.


“어떻게 그럴 수 있어!”

“하라엘, 이러지 마.”

“마리아! 넌 나를 사랑했잖아! 아니 사랑하잖아. 그런데 네가 왜 후안, 그 사람과 결혼을 하냐고!”

“그 사람이라니. 그런 식으로 말 하지 마. 네 형이야.”

“그걸 아는 사람이 그래? 왜! 왜 하필 형이냐고!”

“하라엘. 우린 이제 어린애가 아니야. 너의 모습을 봐. 그리고 나를 봐. 네가 나와 어울릴 수 있다고 생각해? 난 귀족이야. 사랑? 그건 천민들이나 하는 거야. 삶이 힘드니까! 가진 것이 없으니까! 사랑이란 이름으로 포장된 헛된 꿈을 꾸는 거야. 허울이고 허영이야. 사랑? 없어. 이 세상엔.”

하라엘의 무릎이 꺾인다. 두 팔로 지탱하는 몸이 너무 무겁다. 그의 두 눈엔 눈물이 흐른다.

“아냐. 난 널 사랑해. 사랑한다고! 모르겠어? 우리가 함께한 시간을 돌아봐. 우리 사랑했잖아.”

마리아가 무릎을 꿇는다. 하라엘의 앞에 다가온다. 그녀가 그의 눈물을 닦아준다.

“아니야. 하라엘. 난 널 사랑하지 않아. 너도 꿈을 꾸는 거야. 가진 것이 없으니까. 네 두 손엔 아무 것도 없어. 지금도 봐. 네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 그저 울 뿐이라고. 울어. 계속 울어. 그래도 변하는 건 없어.”


“아버지. 전 신학교에 입학하겠습니다.”

하라엘의 말에 리케르도가 누워있던 몸을 일으킨다.

“왜 그러느냐? 난 네가 내 곁에 더 있으면 좋겠다.”

“전 신학교에 입학하겠습니다.”

리케르도가 하라엘의 손을 꼭 잡는다.

“미안하다.”

하라엘이 자리에 일어섰다. 애써 리케르도의 손을 뿌리친다.

그런 그의 손을 리케르도가 다시 잡았다.

“나는 정말 너의 어머니를 사랑했다. 그리고 너도 사랑한다. 앞으로도…….”

하라엘은 대답 없이 그 자리를 떠났다.


“그런데 왜 돌아가는 거지? 그곳엔 너를 반겨줄 사람도 없을 텐데. 아버진 아직 살아 계신가?”

“예. 살아계십니다. 하지만 건강이 너무 안 좋으십니다. 의사들의 말에 의하면 시간이 많이 남지 않으신 것 같다고 하십니다.”

“그의 임종을 지킬 건가?”

“예. 그것이 아버지가 베푼 사랑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라 생각합니다.”

“후안이라는 너의 형이 분명 네게 해코지를 할 텐데.”

“각오는 되어 있습니다.”

그의 유약하기만 했던 표정이 오늘은 좀 달라보인다.

“단지 그 이유 때문인가?”

“아니오. 전 복수를 할 겁니다.”

“방법은? 그 방법 때문에 우리에게 협조를 한 건가?”

“예. 저를 찾아왔던 킴이라는 분. 오직 그 분만이 저를 도울 수 있습니다.”


“킴. 여기 있어요. 이 자료들 확인해 보세요.”

킴이 내게 준 자료를 차분히 확인한다. 그리고 내가 겪었던 일을 꼬치꼬치 물었다. 그리곤 단호한 음성으로 내게 말했다.

“너도 느끼다시피 이 사안은 가벼운 것이 아니다. 이건 분명 악용될 수 있어. 너는 무슨 일이 있어도 이 사실을 함구해야해.”

“예.”

“분명 다음 책도 있을 거야. 이건 내가 알아볼 테니 넌 내 다음 지시가 있을 때 까지 하수도에서 기다리고 있어.”

“이 열쇠는요?”

“내가 갖고 있지.”

킴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나가려는 그를 내가 붙잡았다.

“왜?”

“하라엘이 어떤 부탁을 했는지 알 수 있을까요?”

“내 능력이 무엇인지 넌 알지?”

“알죠. 당신은 환영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 그것도 너무나 사실 같은.”

“그래. 그 때문이다.”

“제가 아둔하여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앞으로 마리아를 찾아갈 것이다. 한 달에 오일 정도. 그녀가 사내아이를 낳을 때 까지.”

“설마……?”

“그래. 마리아는 후안이라 착각하고 하라엘과 관계를 맺을 것이다. 그리고 하라엘의 아이를 낳을 거야. 후안은 그 아이가 자신의 아이라 생각하겠지. 그리고 가문의 모든 것은 자연스레 그 아이에게 갈 것이다.”

“하라엘. 어떤 의미로든 참 대단하군요.”

“나도 그런 부탁일 줄은 몰랐다. 무슨 사연인지 모르겠지만 그 바닥 치정극이 거기서 거기지. 결국 승자는 하라엘이 될 것이다. 내가 관여한 이상.”

조금 궁금해졌다. 사랑이란 도대체 무엇이기에 내가 만난 그 사람들을 모두 망쳐놓은 것일까? 킴이 내게 왜 사랑을 하면 안 된다고 말했는지 이제 아주 조금은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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